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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s5 2017. 8. 13. 22:47

 

2013 5 18--

 

 

님을 위한 행진곡에 대한 논란으로  또 다시 5월이 더럽혀지고 있다.

 

33년전의 5월을 가시처럼  기억에서 빼내지 못하고 살아가는  영혼이 어디 나 뿐이랴 !!

 

지나고나서야   "서울의 봄"은 허구였고,  광주 학살마저도 계획된 시나리오 중 하나였다는 허탈함에 치를 떨었던 젊음이 어디 나 뿐이랴 !! 

 

그 아픈 5월을 팔아 출세가도를 달려 온 자들이 감히 5월을 이야기한다

 

그 두꺼운 낯짝 들고 5월을 모독한다.

 

5월엔 김 남주와 고정희시인을 그려보자고 하고는 계속 몸이 좋질 않아 블로그와 냉담 중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몸이 힘들어도 , 오늘은 넘기고 싶질 않았다.

 

김남주시인의 고통에 비한다면,

5월의  아픔에  비한다면 이건 엄살일 뿐이니까.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
오월은 바람처럼 그렇게
오월은 풀잎처럼 그렇게
서정적으로 오지는 않았다
오월은 왔다 비수를 품은 밤으로
야수의 무자비한 발톱과 함께
바퀴와 개머리판에 메이드 인 유 에스 에이를 새긴
전차와 함께 기관총과 함께 왔다
오월은 왔다 헐떡거리면서
피에 주린 미친개의 이빨과 함께
두부처럼 처녀의 유방을 자르며
대검의 병사와 함께 오월은 왔다
벌집처럼 도시의 가슴을 뚫고
살해된 누이의 웃음을 찾아 우는
아이의 검은 눈동자를 뚫고
총알처럼 왔다 자유의 거리에
팔이며 다리가 피묻은 살점으로 뒹구는
능지처참의 학살로 오월은 오월은 왔다 그렇게!
바람에 울고 웃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
오월은 바람처럼 그렇게
오월을 풀잎처럼 그렇게
서정적으로 일어나거나 쓰러지지 않았다
오월의 무기 무등산의 봉기는
총칼의 숲에 뛰어든 맨주먹 벌거숭이의 육탄이었다
불에 달군 대장간의 시뻘건 망치였고 낫이었고
한입의 아우성과 함께 치켜 든 만인의 주먹이었다
피와 눈물 분노와 치떨림 이 모든 인간의 감정이
사랑으로 응어리져 증오로 터진 다이너마이트의 폭발이었다
노래하지 말아라 오월을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바람'은
학살의 야만과 야수의 발톱에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노래하지 말아라 오월을
바람에 일어나는 풀잎으로 '풀잎'은
피의 전투와 죽음의 저항에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학살과 저항 사이에는
바리케이드의 이편과 저편 사이에는
서정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자격도 없다
적어도 적어도 오월의 광주에는 !



꽃이여 이름이여 자유여

내란의 무기 위에 새겨진
피의 이름
시가전의 바리케이트에서 피어나는
꽃의 이름
자유여 나는 부르지 않으리
함부로 그대 이름을
그대가 한 발자국 전진하면
그 뒤에는 피가 강물이 되어 흐르고
그대가 한 발자국 물러나면
그 앞에는 시체가 산이 되어
오 자유여 무서운 이름이여
나는 부르지 않으리 그대 이름을 함부로
내란의 무기 위에서 시가전의 바리케이드에서
피의 꽃으로 내가 타오르는 그 순간까지는

 

 

 

 

 

 

 

광주광역시 중외공원에 있는 시비

 

 

노래(죽창가)

 

이 두메는 날라와 더불어

꽃이 되자 하네 꽃이

피어 눈물로 고여 발등에서 갈라지는

녹두꽃이 되자 하네

 

이 산골은 날라와 더불어

새가 되자 하네 새가

아랫녘 웃녘에서 울어예는

파랑새가 되자 하네

 

이 들판은 날라와 더불어

불이 되자 하네 불이

타는 들녘 어둠을 사르는

들불이 되자 하네

 

되자 하네 되고자 하네

다시 한번 이 고을은 발란이 되자 하네

청송녹죽 가슴으로 꽂히는

죽창이 되자 하네 죽창이

 

 

자유


만인을 위해 내가 일할 때 나는 자유
땀흘려 함께 일하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다 라고
노래할 수 있으랴

만인을 위해 내가 싸울 때 나는 자유
피흘려 함께 싸우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다 라고
노래할 수 있으랴

사람들은 맨날 겉으로는
자유여 민주주의여 동포여 외쳐대면서도
속으로는 제 잇속만 차리고들 있으니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제 자신을 속이고서
도대체 무엇이 될 수 있단 말인가

 

 

 

 함께 가자 우리 이 이 길을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셋이라면 더욱 좋고 둘이라도 함께 가자

뒤에 남아 먼저 가란 말일랑 하지 말자

앞서 가며 나중에 오란 말일랑 하지 말자

일이면 일로 손잡고 가자

천이라면 천으로 운명을 같이 하자

둘이라면 떨어져서 가지 말자

가로질러 들판 물이라면 건너주고

물 건너 첩첩 산이라면 넘어주자                          

고개 넘어 마을 목마르면 쉬어가자

서산 낙일 해 떨어진다 어서 가자 이 길을

해 떨어져 어두운 길

네가 넘어지면 내가 가서 일으켜주고

내가 넘어지면 네가 와서 일으켜주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언젠가는 가야 할 길

누군가는 이르러야 할 길

가시발길 하얀 길

에헤라, 가다 못 가면 쉬었다나 가지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p/s

지나고보면  민주주의에 대한 깊은 성찰이나   민주주의의 근원이 되는 철학적 기반 , 

즉 인간에 대한 존엄성, 살아있는 것(생명)에 대한  존엄성 같은 철학적 바탕이 없이

허둥 대기만 하던 (소위) 운동권,

거기에 정치적 야심을 채워줄 하나의 수단으로  운동권을 이용하려던 무리들까지 더해져

5월의 아픔을 자초한  것이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아직도 그런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면 지나친 비관일까??

 

십수년전 망월동참배후 경거망동을 하던 소위 386 의 행태를 보면 답은 저절로 구해질 것이다.

(나는 당시 임수경의 고뇌와 분노를 이해하는 쪽이다)

 

"(당신들 모두가) 바람에 지는 풀잎일 뿐이니 더 이상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고 외치고 싶다.

 

 

 

--펌글---

 

/이글은 동아일보에 이명희씨에 의해 올려진 글인데 동아일보의 게시판과 OH MY NEWS인터넷에서 확인한 바에 의하면 문제의 발발이 된 "임수경"씨의 원문이라고 생각됩니다.


386-그 두 얼굴의 위선을 알린다.

5월 18일. 세상 많이 변했지요.
80년대 권위주의 정권 아래서는 폭도로 몰리던 상황에서 어느덧 20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뛰어넘고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고, '5,18 광주 민주항쟁 기념일'로 제정되고 망월동은 민주화의 성지로 모든 국민들에게 의심의 여지없이 인정받고... 정말이지 80년대를 온 몸으로 살았던 우리 386세대에게는 감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겠지요.
그리고 새천년을 맞이하는 2천년 5월 18일 오전 일간지에 여야 386 국회의원 당선자들이 망월동 묘지에 참배하는 모습의 사진이 나왔더군요.
몇몇 40대 초반의 선배 당선자들과 함께 당신들은 검은 양복을 입은 채 진지하고 의연한 자세로 고개 숙이고 있었으며 이러한 모습이 꽤나 숙연해 보이더군요.

당신들과 함께 그 시절을 함께 살아왔으며 그다지 내세울 일은 아니지만,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서 나름대로 노력하며 민주화 운동의 앞줄에 서 왔던 저 개인으로서는,
여러분들이 그렇게 급히 정치의 앞에 서서 나가려는 모습이 왠지 달갑지 않게 받아들이던 저로서도 그 날 만큼은 예외였습니다.

역시 민주화운동을 했던 역사와 철학을 갖고 있으니 부패의 극치를 달리고 있다는 기성 정치인들과는 역시 다르구나 하고 자랑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젊은 정치인들이 자신들 삶과 역사의 출발점이었던 광주 항쟁의 현장에 서서 저렇듯이 진지하고 숙연한 모습으로 역사를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구나.
이 땅의 민주화와 군사독재 정권을 몰아내기 위해서 앞장서 외치다 아까운 죽음으로 삶을 마감했던 그 분들 앞에서, 살아남아 부끄러웠던 세월을 반성하며 진정으로 당신들이 외쳤던 그 일을 이제 국민의 대표로 대신하겠노라고 결의하고 있는 것 같아 진정으로 당신들에 대한 일말의 부정적인 평가라도 그 날 만은 접어 두려고 했습니다.
진정 당신들을 믿고 당신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자고 몇 번이고 마음속으로 다짐했습니다.
그날 적어도 5월 18일 하루만이라도 말입니다.

아마 제 기억으로는 지금 정치권에서 이른바 386 세대라고 하며 여야가 지난 총선에서 앞다투어 공천을 줬던 사람들은 주축이 82학번이고 일부 81학번이 끼어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부분 학생회장이나 학생회의 간부를 지냈던 당신들은 학생운동에 이은 1년 내외의 짧은 감옥 생활 이후 빠르게 정치권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여러분들이 그 짧은 시절의 고생을 '훈장 삼아' 혹은 그 이후의 몇 년 안팎의 재야 활동을 역시 또 다른 '경력 삼아' 정치권을 두들기며 다닐 때 노동 현장에서 혹은 농업 현장에서 혹은 자신들의 생업 현장에서 묵묵히 이 사회의 변혁과 개혁을 위해 힘쓰며 살아가고 있었던 대다수 여러분의 동료, 선배들은 여러분들에게 적지 않은 실망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유는 여러분이 대외적으로는 '국가와 민족'이라는 대의를 앞세우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자신들 출세에 너무 집착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마 어느 정도 당신들의 생리를 아는 사람들은 다 꿰뚫어 보고 있었겠지요.
오죽하면 일부 언론에서는 지난 총선 때 여러분의 행태를 꼬집어 '무늬만 젊은 피, 하는 행동은 썩은 피'라는 탄식조의 기사까지 썼겠습니까?

그러나, 당신들이 '개인의 출세에 집착하는' 그러한 부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는 사실도 저는 그날, 5,18, 그날 신문에서 당신들이 여야를 막론하고 검은 양복에 숙연한 모습으로 망월동에 서 있는 것을 보고는 모두 잊었습니다.
여러분이 믿음직스럽고 여러분들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80년 이후를 살고 있는 이 땅의 의식 있는 사람들은 삶의 출발이 그곳 광주였으며 그곳이 우리들의 영원한 정신의 고향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데...

신문에 났던 당신들 사진의 모습은 광주 민중 항쟁 기념식 전야제가 열릴 예정이었던 5월 17일 오후 1시였었던 것 같더군요.
아니 당신들은 5월 17일 오후 1시, '정말로 진지하게' 망월동에 참배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더군요.
당신들 상당수는 전야제가 진행되는 동안에 모습을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 전야제가 6시간 넘게 자정까지 진행되도록 당신들은 어디에 있었나요, 아마 망월동 참배의 자리를 마련한 당신들은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며 이런 저런 얘기하면서 술을 몇 잔 했겠지요.
그리고 술이 거나해진 당신들은 그 다음에 어디에서 17일 저녁과 18일 '신새벽'을 맞이했나요?
20년 전 당신들의 선배들이 독재에 항거해 10일 뒤 바참하게 죽어갈 목숨임을 예견하면서도 비극의 역사를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없어서, 투쟁과 항거를 준비하며 숨죽여 분노하며 맞이하던 5월 18일을 어디에서 맞이하셨나요?
5,18 그 후, 정확히 20년 뒤 당신들은 이 나라의 대표자라는 위치가 되어 그 역사적인 날을 어디에서 맞이하셨나요?
당신들은 이 나라의 역사를 다시 쓰고자 그분들의 넋을 이어내려 가고자 광주를 방문하셨지요? 그리고 그 숙연한 참배의 뒤 당신들은 어디에서 그 5월 18일을 맞이하셨습니까?

대답하세요!

김민석 의원님, 송영길 당선자님, 장성민 당선자님, 우상호 새천년민주당 서대문 지구당 위원장님, 김성호 당선자님, 이종걸 당선자님. 당신들은 그 5월 18일을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맞이하셨습니까?
왜요?
말씀하시기 곤란한가요?
그렇다면 제가 알려드리지요. 당신들은 17일 늦은 저녁부터 18일 새벽까지 광주 그랜드호텔 옆 '새천년 NHK' 가로오께에서 술에 취한 채 흥청망청하고 하고 있었습니다. 그게 다가 아니죠. 당신들은, 광주를 추모하기 위해 그 곳에 간 당신들은 5월 17일 저녁과 5, 18 새벽, 술집 여종원 아가씨들을 하나씩 옆에 끼고 술을 마시며 술에 취한 채 흐느적거리고 있었습니다.
어느 의원은 아가씨를 옆에 세우고 노래를 부르며,
어느 사람은 아가씨를 꼭 껴안고 노래에 맞춰 부르스를 추고 있었으며,
또 어느 의원은 양쪽에 두 명의 아가씨를 끼고 있었으며,
다른 의원 당선자 전원이 마치 시위라도 하듯 옆에 술집 아가씨들을 하나씩 끼고는 흐느적거리고 있었습니다.
아, 이렇게 말하면 유언비어라고 말하며 '타락한 정치인'들과 똑 같이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겠지요.
그렇다면 말해야겠습니다.
송영길 당선자는 여자를 옆에 세우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으며,
그 노래에 맞춰 '노동의 새벽' 박노해씨는 술집 아가씨와 부르스를 치고 있었고,
김민석의원은 양쪽에 아가씨를 끼고 있었더군요.
그 안쪽에는 장성민 당선자가 앉아 있었구요,
그리고 나머지 의원들도 모두 한사람씩 끼고 말입니다.
당신들이 놀고 있었던 그 문앞에는 술에 만취되어 고래 고래 악을 쓰며 욕을 해대던 우상호 위원장이 있었지요.

너무 슬퍼서 말이 나오질 않습니다.
나의 분노가 정당한지 묻고 되물으며 몇 날을 보냈습니다.
일반 사람들에게 정말 솔직하게 사실을 말하면서 나의 분노가 정당한지 묻고 되물었습니다.
모두가 분노에 치를 떨더군요.
아직도 떨려서 말을 제대로 못 하겠습니다.
당신들 그 날이 이 나라, 이 민족에게 어떤 날인지 아시는 분들인가요?
더욱이 광주의 분들에게 그 날이 어떤 날인지 아시나요?
5월 17일부터 19일 까지는 광주에서는 시끄러운 음악도 삼가고 있습니다.
당신들이 찾아갔던 그 술집도 당신들 외에는 한 명의 손님도 없었고 그것이 그날의 사람들의 마음 자세입니다.

김태홍 당선자님, 이 상수 의원님, 정범구 당선자님.

선배님들도 역시 선배로서 그 자리에 있었지요?
이제 국회의원된 후배들에게 무엇을 가르쳐 줄려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선배님들에게는 기대도 없어 관심도 없습니다.

386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술집에서 여자를 끼고 술을 마신 것을 탓하는게 아닙니다.
누구나 다 그럴 수 있지요.
우리사회의 현상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나, 그 날만은 정말로 그 날만은 그럴 수 없습니다.
아니 이런 당신들은 가장 엄혹한 역사의 칼날로 단죄 받아 마땅합니다.
정말로 어떻게 썩은 모습으로 세상을 살지라도 우리들은 그날 하루만이라도 그래선 안됩니다.

안 보이던가요?
원통히 쓰러져가던 광주의 그분들이 술에 취한 눈에는 안보이던가요?
여자가 옆에 앉아 있으니 함께 하던 동료들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주검으로 돌아오던 모습들이 하나도 안 보이던가요?

아, 아, 당신들 위선의 모습은 여기서 끝나질 않더군요.
다음날 대통령이 광주를 방문한다고 하니 또 다시 양심적인 정치인의 모습으로 변모해 술이 벌건 눈으로 대통령을 맞이하더군요.
그리고는 며칠 뒤 386 정치인이 광주 항쟁 기념 사이트를 개설했다는 신문 기사를 보고는 이제 위선에 대한 증오의 단계를 넘어 그렇게까지 철저하게 속이면서 살아가야만 하는 당신들의 모습에 가여운 연민의 정마저 느끼게 되더군요.
그렇게까지 하면서 살고 싶던가요.

이 불쌍한 사람들이여.

우상호 지구당 위원장은 인터넷 Ohmynews 와의 인터뷰에서 광주를 방문한 이야기며 등등을 하면서 떨어진 사람들을 모아 제2국회를 만들겠다고 하더군요...등 등 당신들 거짓의 모습은 밤을 세워도 부족합니다.

저는 당신들이 실수했다고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것이 당신들의 진짜 모습입니다.
이 일 이후 모든 대처는 당신들이 하십시오.
위선으로 살던, 진실로 살던, 진정 타락한 모습으로 살던 모든 삶은 당신들의 것입니다.
다만 저는 오랜 갈등 끝에 다른 사람의 ID를 이용해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누군지 찾으려 하지 마십시오.
혹 남아 있다면 당신들 내면의 양심의 소리일 수도 있고 그날 마지못해 당신 옆에서 술시중을 하고 있었던 이런 치욕을 현장에서 목격한 술집 아가씨의 소리일 수도 있습니다.
광주에서 20년 전 사랑하는 가족, 친지를 잃고 당신들이 놀고 있던 모습을 분노에 차서 보고 있었던 광주의 시민일 수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는 손으로 가릴 수 없는 역사의 질타라는 것입니다.

언론계 종사하시는 분들.

모두가 알고 있는 일입니다.
현장을 조사하려할 때 이들의 서슬퍼런 권력이 무서워 현장을 거부할 술집 주인이나 당시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말하길 꺼려 한다 해도 이미 모두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전해주십시오.

그리고 총선 연대 여러 선배님들,
당신들이 이러한 위선에 칼을 댈 수 없다고 한다면 누구를 믿고 이 나라의 정치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제발 이러한 상황을 직시해 주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당신들에게 그다지 기대가 크지 않았었습니다.
또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커다란 실망을 안겨 주지 말고 386 정치인 여러분 '위선의 탈을 벗어 버리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