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의 세계

먼 발치 매운 눈 2008. 1. 26. 15:11

유교문화의 종주국 중국에서 꾸준히 이어진 식인 풍습  

 

공자의 초상

 

식인문화는 중국 4천년 역사에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다. 한나라가 건국된 기원전 206년부터 청나라가 멸망한 1912년까지, 중국에서는 식인의 기록이 220차례나 정사(正史)에 기록되어 있다.

 

최초의 식인 이야기는 중국의 전설적인 왕조인 하나라 당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아들을 죽인 원수를 죽여 육장(肉醬)을 만들어 원수의 아들에게 먹기를 강요한 여인 이야기다. 유교는 복수주의를 인정할 뿐 아니라 오히려 장려한 면이 있어 복수에 의한 식인행위가 있었다. 부모의 원수와는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다(불구대천, 不俱戴天)는 생각으로 심하면 부친의 원수를 29대까지 갚기도 했다. 복수할 때는 한 칼에 숨통을 끊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천 갈래, 만 갈래로 잘랐으며 때로는 고기를 잘라먹고 심장과 간을 꺼내어 씹어 먹으며 뼈까지 갈아 먹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한 예로, 측천무후 당시 잔혹한 고문과 형벌로 유명했던 내준신이 처형되었을 때에는 군중들(그에게 처형당한 이들의 가족들)이 다투어 그의 고기를 잘라먹었다고 한다. 황제는 법률로 살육의 형을 규정했다. 이는 주나라 때의 율령 체제부터 등장하지만 이전에도 마찬가지였다.

 

식인 기록이 나타난 최초의 정사인 <사기(史記)>는 중국 최초의 역사왕조인 은 왕조(주나라 이전의 왕조)의 마지막 임금 주왕이 신하들을 해(인체를 잘게 썰어 누룩과 소금에 절인 고기), 포(脯, 저며서 말린 고기), 자(炙, 구운 고기)로 만들었다고 기록했다. 해, 포, 자는 이후 중국 춘추전국시대까지의 인육 조리법의 대표격으로 계속 등장한다. 춘추시대 노나라 사람인 공자는 이 해를 즐겨서 해 없이는 식사를 안 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공자가 아끼던 제자 자로가 위나라의 신하로 있다가 왕위다툼에 휘말려 살해되고, 그의 시체는 잘게 토막내어져 해로 만들어지고 말았다. 이 해는 사자에 의해 공자의 식탁에까지 전해졌다. 그 후 공자는 그렇게 좋아하던 해를 먹지 않았다.

 

중국 역사사회에서는 생존경쟁의 패자가 승자의 먹이로 식탁에 오르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리고 충성심을 보이기 위해 식인이 자행되기도 했다.

 

춘추전국시대의 유명한 제나라 환공은 미식가로도 유명했다. 그가 진미를 찾자 요리사인 역아(易牙)는 자기의 장남을 잡아서 삶아 바쳤다. 역아뿐 아니라 극한 상황에서는 자기 살을 베어내거나 아내나 자식을 잡아 주군을 대접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흔히 이런 경우는 충성으로 기려졌다.

 

인육은 가끔 약용으로도 쓰였다. 이시진의 <본초강목(本草綱目)>에는 인체 각 부위의 약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통념에다 효라는 유교 사상의 실행으로서, 병으로 죽어가는 부모에게 자신의 넓적다리살 등을 잘라서 봉양하는 일은 더욱 흔했다. 단, 이런 일이 진정한 효행인가 하는 정치적인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당시의 황제 뜻에 따라 어떤 시대의 사람들은 효자로 표창을 받았고, 다른 시대 사람들은 신체를 훼손한 불효자로서 매를 맞은 후 귀양을 갔다. 수·당대에는 인육시장이 출현했고, 인육애호가가 열전(列傳)에 기록되기도 했다.

 

송 말기부터 원대에는 <철경록(輟耕錄)>이라 하여 인육 요리법을 자세히 적은 요리책까지 출판되었다. 원나라를 방문한 마르코폴로는 <동방견문록>에서 자신이 목격한 복주(福州)의 식인 풍습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이 지방에서 특별히 기록할 만한 것은 주민들이 그 어떤 불결한 것이라도 가리지 않고 먹는다는 사실이었다. 사람의 고기라도 병으로 죽은 것만 아니면 아무렇지 않게 먹는다. 횡사한 사람의 고기라면 무엇이건 즐겁고 맛있게 먹는다. 병사들은 잔인하기 짝이 없다. 그들은 머리 앞부분을 깎고 얼굴에 파란 표식을 하고 다니면서 창칼로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죽인 뒤, 제일 먼저 피를 빨아먹고 그 다음 인육을 먹는다. 이들은 틈만 나면 사람들을 죽여 그 피와 고기를 먹을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중국의 식인 풍습은 <삼국지>, <수호지>, <서유기> 등 유명한 중국 고대의 소설에도 잘 나타나 있다. <삼국지>의 경우, 정사로 기록된 진수의 삼국지에는 유비가 즐겨먹은 음식이 인육으로 만든 포였다고 하며, 여포가 죽은 후 그 고기를 죄인들에게 먹였다고 한다.

 

소설 <수호지>에서는 인육으로 고기만두를 만들어 파는 악한이 등장하고, <서유기>에서는 고승(高僧)의 고기가 불로장생의 영약이라 하여 삼장법사가 끊임없이 요괴들의 공격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인육의 판매를 금지하는 법이 송나라 때에 만들어졌지만, 명나라를 거쳐 청나라 말기에 이르기까지 인육은 시장에서 공공연히 매매되었다.

 

1918년, 중국 근대의 사상가 노신은 <광인일기(狂人日記)>에 식인의 피해망상증에 걸린 광인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식인 풍습이 만연한 사회상을 폭로했다. 그는 또한 국가는 사람이 사람을 먹는 역사사회라고 정의한 바 있다. 중국 5·4운동의 사상적 지도자 오우(吳虞, 1874∼1949)는 유교 = 식인이라 하며 강력히 유교를 비판했다.

 

식인풍습은 공산화된 중국에서 유교의 폐해 중 하나로 비판되었고, 최근에 이르러서야 점차 사라져 갔다. 오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해 온

유교문화의 종주국인 중국에서 식인 풍습이 꾸준히 이어져 내려왔다는 이해하기 힘든 역사의 단면이다.

잘 읽고 갑니다. 몰랐던 사실을 알게되어 기쁘긴 하나 장구한 식인의 풍습이 약간은 섬뜩하군요.
잘 읽고 갑니다.
참고로 저 블로그의 주인장 분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이 점 오해마시길...
유교=식인이라는 공식속의 식인은 인육을 먹는다의 직역 의미가 아니라,당시 사회에서 유교의 규율로 사람들을 억압했던 규제들을 비유한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좋은 말 잘보고 갑니다
죄수들을 죽여 인육을 먹었으니 인육을 널리 자주 먹었다고 볼 수 없음.
죄수 사형이 옛날에도 흔하지는 않음.
현대에 와서나 식인문화가 미친 쓰레기 비인간적으로 취급되지 세계사만봐도 비일비재햇음
아즈텍 문명은 다들 아실거라 생각되고 뭐. .
해는 인육을 절인고기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고기나 생선을 소금에 절인 음식을 모든 해라 불렀고 우리나라 사서에도 식해를 즐겼다 할때 해는 고기나 생선을 절인음식입니다. 자로를 죽여 해로 만들어 돌리니 공자께서 좋아하던 염장 음식들마저 드시지 않았다 이말을 공자께서도 식인하셨다로 해석하다니요.,

이상한 답변 있어서 추가 설명합니다. 공자님 인육설은 최근 생긴 악의적 루머입니다.

하느님,산천신,조상신,공자 숭배 동아시아.

고대의 인류역사 관련, 문자를 가졌던 중국같은 문명국은 여러가지 사실대로 기록하고,문자없던 나라들은 기록할 내용이 없었던 역사. 문자를 일찍 가진 고대중국역사나 성경에는 인육먹은 역사가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습니다.2차대전중 미군.중국인 인육먹어 재판받은 현대식인종 일본.하느님.창조신 이기려던 일본 불교Monkey.


중국의 한자를 수입해 문자로 기록하게 된 이후 한국도 역사를 사실 그대로 기록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삼국사기에 의하면 고구려 소수림왕때, 백성들이 굶주려 서로 잡아먹을 지경에 이르렀다고 서술되어 있습니다.


세계의 식인풍습. 선사시대 유적에 따르면 식인풍습은 남동유럽과 서남아시아에서 주로 있었다. 역사시대에도 여전히 존재.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뉴기니, 멜라네시아, 폴리네시아, 중국과 인도의 일부 지역,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의 대다수 지역, 북아메리카의 동부와 중부, 중앙아프리카와 서부아프리카 등이 있다고 나옵니다.

한편

醢는 육장.젓갈로 형벌해와 다름. 소금.양념넣고 육류로만든 醢는 한국의경우에도 제사.결혼예물.김치에도 들어가는 문명의 산물.중국문물 수입,한국도 신라때부터 醢등장.삼국사기,고려사,세종실록지리지에도 나옴.황하문명,유교,하느님,조상신,공자나라 중국과 양념도 잘몰랐고 지금도 회.맛없는간장이 주식인 일본.2차대전중 미군.중국인 인육먹어 재판받은 현대식인종 일본.하느님.창조신 이기려던 일본 불교Monkey.

http://blog.daum.net/macmaca/30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