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감동 예술

먼 발치 매운 눈 2008. 8. 21. 13:03

근대회화의 모든 흐름을 예고했던 고 야(Goyay Lucientes, Francisco Jose de 1746~1828)   

 

"나의 스승은 벨라스케스와 자연이다"라고 말했듯이 벨라스케스의 예술에서 많은 영향을 받아 종교화, 초상화 및 민중생활에서 제재를 취한 사실적 풍속화를 많이 그렸다.

 

1792년 혹독한 질병으로 청력을 상실하면서 고립된 자아를 발견하고 인간의 내면세계에 몰두함으로써 그의 작품에는 보다 세부적인 사실이 냉혹하게 묘사되고 종교적이고 풍자적인 강렬한 힘이 자리잡게 되었다.

 

로코코를 지나 낭만주의까지 스페인의 가장 뛰어난 화가 예리한 관찰과 밝은 색채, 상쾌한 필치. 초상화에서 인물화로 유명하다.

 

잠자는 이성은 괴물을 깨운다(1799년. 판화집 카프리초스 43번)

 

뒤러의 멜랑코리아 (1514년. 루브르 박물관 )

 

르네상스 시기에 뒤러가 예술가를 우울증에 사로잡힌 천재로 묘사했던 것을 떠올리게 한다.

 

고야는 내면의 상상력이야말로 예술 창조력의 보고라는 점을 인식하였던 것 같다. '상상력'은 자유와 개성을 중시하는 낭만주의 정신의 근간이었으며, 바로 이러한 점에서 낭만주의는 19세기 말의 상징주의나 표현주의와 상통한다. 또한 현실과 충돌하는 초현실의 영역에 대한 탐구는 후에 프로이트의 무의식의 발견으로 이어진다.

 

화실의 자화상(1791-92년경. 마드리드, 산 페르난도 왕립 아카데미)


실크 스타킹에 모자를 쓴 멋쟁이 신사의 모습은 당시 궁정화가 고야의 자화상이다

 

카를로 4세의가족(1800년.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고야가 수석 궁정화가로 임명된 후 그린 이 그림은 그 동안 다루어 온 초상화 작품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다.

 

작품의 내용은 영화가 극에 달하여 퇴폐와 부패로 치닫던 스페인 왕조의 가식적이고 오만하며 탐욕스런 모습을 담은 것이다. 고야는 자신의 후원자를 민중을 착취하는 폭정과 무능의 화신으로 그렸다. 도도한 왕비가 화면 중앙을 차지하고 왕이 옆으로 비켜서 있는 것은 카르로스의 무능을 암시하고, 그 대신 국권을 좌지우지한 왕비를 부각시키려는 의도 때문이었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인물배치에 있어서의 구성적 변화, 광선 효과와 질감 표현에 있어서의 다양한 변화는 고야 예술의 한 정점을 이루며, 특히 등장인물에 대한 예리한 통팔력은 그의 예술을 미와 추의 한계를 초월하는 수준으로 올려놓았다. 고티에는 "복권에 당첨된 빵집 주인 일가족 같다"고 풍자했다.

 

거인(1808년. 마드리드, 프라도 박물관)


전쟁이 가져다주는 공포와 잔혹, 인간의 내면적인 폭력성, 그리고 공포가 악몽처럼 거침없이 드러난 이 작품들을 접하면 인간이 정말 이성적이며 선한 본성을 지녔는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20세기의 대량살상의 전쟁을 두 번이나 경험한 현대인들에게 고야의 이미지들은 소름끼치는 예언력을 지니는 것처럼 느껴진다.

 

1808년5월3일(1814년. 마드리드, 프라도 박물관)

 

나폴레옹의 군대가 스페인에 입성하였을 때 민중들은 내심 혁명군이 자신들에게 자유를 선사할 것이라 기대하였지만 제국주의적인 욕심을 지닌 프랑스 군대는 단지 침략자였을 뿐이었다.

 

고야의 <1808년 5월의 처형>은 전날 스페인의 기습공격을 당한 프랑스인들이 무고한 농민들을 상대로 무자비한 보복을 가하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두려움에 얼굴을 감싸고 형장으로 올라오는 인물과 이미 주검이 되어 쓰러진 인물 사이의 흰 옷을 입은 인물은 그 강렬한 빛으로 인해서 이 그림의 하이라이트이다.

 

고야는 이 무지랭이를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처럼 순교자로 그리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스페인의 맹렬한 저항으로 마침내 무적의 나폴레옹군은 1814년 퇴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스페인인들은 프랑스와의 투쟁을 통해 새로운 민족의식을 고취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은 이러한 스페인의 저항을 기념하기 위해 1814년 페르디난트 7세의 요청으로 제작된 역사의 기록화이자, 혁명의 그림자가 어둡게 드리운 19세기 낭만주의의 걸작이다.

 

자화상

렘브란트와 함께 가장 많은 자화상을 그린 화가 중의 한 사람으로, 현재 알려진 고야의 자화상은 20여 점에 달하고 있다.

 

고야의 초상화들은 변화하는 그의 정신적 상태와 생활환경을 반영하는 일종의 자전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이미 노년에 접어든 69세 때의 것이지만 그의 모습에는 자신감과 정력이 넘치고 있다. 두툼한 목과 가슴팍, 그리고 무엇인가를 깊이 응시하고 있는 듯한 시선과 풍가어린 입 모습 등 고야 자신의 건재를 과시하고 있는 자화상이다.

 

옷을 벗은 마하(1798-1805년. 프라도미술관)


짝을 이루는 옷을 입은 마하가 있다. 같은 여성이 같은 포즈를 취하고 있는 두 작품에는 같은 듯하지만 묘한 차이가 있다. 나체 쪽은 머리를 풀었고, 표정도 몽롱하다. 두 그림 사이에 시간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작품에서 에로틱한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이 작품들을 의뢰한 사람은 당시 왕비 마리아 루이제의 사랑을 받아 젊은 나이에 수상이 된 마누엘 고도이었다. 모델은 고도이의 애인으로 생각된다. 고도이는 자택 거실에 이 작품과 벨라스케스의 <거울을 보는 비너스>를 걸어 놓고 손님들에게 보여 주었다. 나중에 고야는 이 작품을 이유로 이단 심판을 받게 된다.

 

옷을 입은 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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