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땅의 고대문화

먼 발치 매운 눈 2015. 11. 10. 09:28

100년 전 나주 반남면 고분 발굴자료 첫 공개 

한국고고학전국대회서 정인성 영남대 교수 발표

日 학자 야쓰이 세이이츠 미공개 문서ㆍ사진 확인 


마한 시대의 역사를 간직한 나주 반남 고분군의 100년 전에 작성된 미공개 문서와 사진 등 발굴 관계 자료가 처음 공개됐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학자들이 주도했던 '조선고적조사사업'과 관련 발굴 당시의 상황 등에 초점을 맞춰 구체적으로 파헤친 첫 논고가 나온 것이어서 주목된다.


지난 7일 나주 혁신도시 동신대학교 첨단 강의동에서 '고고학과 현대사회'를 주제로 제39회 한국고고학전국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에서 고고학자인 정인성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100년 전 나주 반남면 고분과 야쓰이 세이이츠'란 발제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을 통해 정인성 교수는 1916년 조선고적조사 5개년 계획 수립의 입안자이자 사업의 핵심 실행자를 일본 학자 '야쓰이 세이이츠'라 지목했다.


야쓰이는 1909년부터 시작된 '세키노 다다시 조사단' 주도의 예비조사를 현장에서 직접 돕거나 수행한 인물이다. 1917년 초부터는 아예 경성으로 거처를 옮겨 고적조사사업에 본격적으로 참여했고, 1921년 부친의 병세를 이유로 조선을 떠날 때까지 계속 총괄했다. 1917년과 1918년에 진행된 것으로 알려진 나주 반남면 고분군의 조사 역시 그가 주도했다. 세키노 조사단 단원은 오바 쓰네키치, 오가와 게이키치, 노모리 켄 등이다.


하지만 정 교수는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이 공개한 총독부 문서(분류번호 F117-007-004)를 확인한 결과 반남면에서 고분이 1916년 3월 이전에 발굴된 정황이 적시돼 있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문서에는 나주군수가 전라남도 제1부장에게 보낸 '고분 성지 및 고대유적의 소재 조사보고'라는 제목이 명시돼 있다. 여기에는 조선총독부 토목기사가 나주지역을 답사하면서 반남에서 고분을 발견한 내용이 기록돼 있다. 1916년 3월 이전에 이미 나주 반남면과 그 주위에 삼국시대 토기요지와 옹관을 부장하는 고분을 총독부 기사가 발견하고 굴착했음을 추정케 하는 대목이다.


정 교수는 "결국 반남면 고분군의 첫 발굴조사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 달리 이미 1917년이 아니라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야쓰이가 발굴조사를 하는데 있어 중요한 굴착 장비는 현지 행정기관의 협조를 통해 조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삽과 곡괭이, 괭이 등은 현지에서 차용증을 써주고 빌린 다음 조사가 끝나면 반납한 정황이 야쓰이가 남긴 자료에 포함돼 있다.


인부는 오롯이 현지 조선인을 고용했으며 조사가 마무리될 즈음에 일괄로 임금을 지불했다. 출토 유물은 나주역까지는 지게를 이용, 경성까지는 기차를 이용해 운반했다. 이로써 1918년 반남면 고분군의 발굴은 마무리된다. 하지만 야쓰이가 작성한 반남면 고분군에 대한 조사 보고서는 한 페이지를 채우지 못하는 짧은 문서로 마무리됐다.


정 교수는 "보고서의 첫 부분을 살펴보면 '그 개요를 보고하는데 그 중요한 마한(馬韓)과 왜(倭)와 백제(百濟)의 유적에 대해서는 별도로 정세(精細)한 보고를 제출할 것이다'고 기록돼 있다"며 "이는 나주 대형 옹관묘장이 발견된 반남면 일대를 야쓰이가 '왜(倭)' 그 자체로 인식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조사 과정에서 옹관과 출토 유물 노출 상황의 사진 촬영을 담당한 야쓰이는 사진마다 캡션과 촬영 방향을 정확하게 기재하고, 사진 촬영대장도 꼼꼼하게 기록했다. 그런 그가 조사 보고서에 붙인 발굴 풍경과 옹관 노출상태를 찍은 사진은 겨우 6장, 사진번호만 있을 뿐 개별사진에 대한 설명도 전체 일련번호도 붙어있지 않았다.


정 교수는 "학문적 욕심이 앞섰던 야쓰이가 독점적으로 발표하기 위해 보고서를 제대로 작성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언젠가는 자신이 제대로 된 보고서를 낼 것이라 공언했지만 부친의 병세를 비롯해 후배들도 야쓰이의 그런 의지가 부담스러워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주정화 기자 jhjoo@jnilbo.com








일본 학자 야쓰이 세이이츠가 1917년 당시 고적조사 보고를 위해 인쇄소에 보낸 가편집 사진. 정인성 교수 제공 

저의 집안 선산이 반남면 청송리에 있는데 성묘하러 오가면서 멀리서 고분을 봤었는데 지금은 국립나주박물관이 있고 관리를 제대로 하고 있더군요.
그리고 제가 살고 있는 나주시 세지면 송제리 송산마을에 반남고분군과 역사를 함께한 고분이 있었는데 그동안 방치 되었던것을 최근에 발굴하고 진입로등을 정비해서 제대로 관리하고 있어서 참 다행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저러한 고분들을 일본놈들이 다 도굴해가버리고 우리는 그들이 남긴것들만 발굴하고 있는데 지금 생각해도 화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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