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 정읍 여행 # 2 - 세계문화유산 무성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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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고싶다/아! 그리운 南道

2020. 9. 25.

 

엄청난 물나리를 낸 섬진강댐

채계산 출렁다리를 내려와 섬진강댐으로 향했다

지난달 7~8일 섬진강댐 방류로 제방이 무너지고 범람해 곡성, 구례, 하동에 큰 피해를 입힌 섬진강을 보기 위해서다.

댐 가는 길, 강 유역은 거의 도로까지 물이 흐른 흔적이 남아있다. 수문 아래는 깊이 패였고 물은 만수다.

아직도 누런 황토물을 댐 아래로 토해내고 있다.  전망대에서 댐을 보고 있는데 나비 한마리가 날아와 주먹에 앉는다.

배가 고픈지 빨래로 손등을 빨아대기 시작한다...ㅎㅎ

 

 

 

손등에 앉은 나비

세계문화유산 무성서원

무성서원은 정읍시 칠보면 무성리 500번지에 있는 고려시대 서원이다. 무성서원은 신라말 고운 최치원 선생이 태산태수로 부임해 8년 동안 선정을 베풀며 공적을 남기고 떠나자 주민들이 생사당(생존해 있는 사람을 모시는 사당)을 세우고 태산사(泰山祠)라고 한데서 유래됐다. 1544년(중종 39) 태인현감으로 부임한 신잠이 6년간 선정을 베풀다 강원도 간성 군수로 발령나자 주민들이 ˙또 생사당을 세워 배향하다가 고운의 태산사와 병합했다. 출처 : 천지일보(http://www.newscj
1696년(숙종 22) 최치원과 신잠의 두 사당을 병합한 뒤 ‘무성(武城)’이라고 사액(賜額)되었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훼철(毁撤)되지 않고 존속한 47개 서원 중의 하나다. 그 뒤 계속적인 중수와 보수를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사우(祠宇)·현가루(絃歌樓)·명륜당(明倫堂)·강수재(講修齋)·흥학재(興學齋)·고사(庫舍) 등이 있다.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홍살문

섬진감댐을 내려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무성서원에 도착했다.

홍살문을 들어서니 강수재(옛 기숙사/1891년 건립) 대청에 사람들이 많다.

무슨 일인가 하여 가보니 붓글씨 쓰기에 열중이다.

무더운 날씨 임에도 집중해 따박 따박 한자씩 써내려가는 모습이 모두 진지하다

학문을 갈고 닦는 서원의 정신을 이어가는 모습이 존경스럽고 향기롭다.

공부하는데 방해가 될까봐 현가루로 향했다.

 

현가루 絃歌樓

 논어의 "현가불철絃歌不撤"에서 따온 말이라고 한다,

 공자는 "재난이 닥쳐도 거문고와 노래를 끊지 않았다" 라고 했는데 이 말인즉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공부를 계속해야 한다" 라는 의미라고 한다.

  이런 의미를 가진 현가루를 서원 입구에 세웠지 싶다. 

 

무성서원 전경

 

현가루
현가루 오르는 나무계단
강당, 무성서원

현가루를 들어서면 강당영역인 무성서원이 있다.

정면으로 5칸이다. 가운데 대청마루가 있고 좌우로 온돌 방이 있다.

 

굽어진 나무를 대들보로 썼다.

써가래, 기둥 등 나무 본연의 무늬가 아름답다.

선조들의 건축미 의식이 매우 높음을 알수 있다.

 

 

마루도 반질반질 광이 난다. 관리를 아주 잘하고 있다.

유생들이 금방 앉았다 떠난 자리같다. 대청에는 많은 현판들이 걸려 있다.

대청을 중심으로 대칭되게 온돌방이 있다.

 

 

강당에서 바라본 현가루 뒷태
내삼문

강당 위로 태산사의 내삼문이 있다. 이곳부터 제향영역이다. 태산사는 문이 잠겨져 있다.

이곳에는 최치원을 비롯해 신잠, 정극인, 송제림, 정언충, 김양묵 등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태산사

 

태산사에서 내려와 무성서원 강당 마루에 앉아 잠시 쉬었다.

현가루의 풍경이 멋드러진다. 드러누워 한숨 자고 싶은 마음 꿀떡같다.

 

불망비 2개가 서있다.

아래 불망비가 신용희 불망비, 위쪽은 서호순 불망비다.

 

 

불망비를 답사하고 현가루를 나오니 비석군 중에 눈에 들어오는게 하나 있다.

서원 철폐령을 내린 대원군의 형, 이최응 불망비다.

 

대원군 형 이최응 불망비

비석은 1882년 고종 19년에 세워진 것으로, 당시 흥선대원군인 이하응의 형인 이최응이 하사했다.

당시 영의정이었던 이최응의 하사품인 것이다. 1868년(고종5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정책이 펼쳐질 당시 살아남았던 원동력 중 하나다.(출처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http://www.jjan.kr)

 

사진자료: 전북일보

무성리 3층 석탑

무성서원을 나오다가 무성리 삼층석탑 안내판이 있다.

궁금해 찾아가 보았다. 마을 위쪽 논 가운데에 있다.

제작기법이 고려시대 석탑으로 추정 된다고 한다. 

석탑은 간결하면서 묵직한 느낌이다.

- 여행 : 2020. 8. 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