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 정읍여행 # 4(끝) - 팔각형 정자인 낙덕정, 가인 김병로 생가, 가인 대법원 연수관, 전봉준 장군 피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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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1. 26.

 

낙덕정

보기드문 팔각 정자 낙덕정 樂德亭

추령천의 맑은 물이 흐르는 천변 큰 바위 위에 아름다운 팔각 정자인 낙덕암이 있다.

김노수가 조상 하서 김인후를 기리며 1900년에 세운 정자로 팔각의 문을 열면 사방이 터지는 형태의 정자다. 

120년의 풍상을 겪은 정자는 고풍스러움이 베어있다.  여행의 피로도 풀겸 아내와 천천히 올랐다.

 

2020. 8. 16 여행

 

낙덕정 오르는 돌계단

낙덕정 주변은 노송이 우거져 있고 정자에서 보면 추령천이 한눈에 들어온다.

전망이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정자 관리가 잘 되어있다.

이곳에서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 김병로가 공부를 했다고 한다.

생가는 이곳에서 2km 정도 멀지 않은 중리마을에 있다.

 

 

 

낙적정에서 본 낙덕저수지보와 추령천
천렵

추령천에서 족대로 물고기를 잡고 있다.

매운탕을 끓여 먹기 위해 천엽을 하고 있는듯...

어릴적 어른들이 여름이나 가을에 천엽을 많이 했었다.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청렴하고 강직한 가인 김병로 생가

 

낙덕정에서 그리 멀지 않은 주동마을에 가인 김병로 생가가 있다.

강직하고 청렴한 그는 초대 대법원장을 지냈으며 법조 3성聖으로 존경 받는 분이다.

국민의 힘 김종인 대표의 할아버지이기도 하다

 

생가마을 조각

 

 

생가 대문

 

생가는 안채, 사랑채, 문간채로 이뤄졌으나 6.25때 불타고 2014년에 복원한 것이다.

후손들의 증언을 토대로 복원했다고 하는데 평범한 시골집 같다.

 

 

 

대법원 가인 연수관

가인 김병로 생가를 나와 광주로 향하던 중 대법원 가인 연수원 안내판이 있다.

존경 받는 가인의 고향에 대법원의 연수관을 세웠다는 것은 의미가 있어 보인다.

궁금해 아내와 그곳으로 차를 몰았다. 이런 연수관이 있는 줄 처음 알았다.

 

연수관 전경

대법원 가인 연수관은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으로서 사법부 독립의 초석을 놓은 가인() 김병로()[1887~1964]의 정신을 기리고 사법부 구성원의 교육 및 수양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2010년 7월 2일에 준공식을 거행하였으며, 같은 해 7월 16일에 개관하였다.(자료 : 향토문화대사전)

 

 

연수원 천연잔디구장

연수원관 운동장에서 보면 가인 생가가 훤히 내려다 보인다.

대법원 가족들이 이곳에서 연수하면서 가인의 강직하고 청렴한 정신을 배울 것이다.

여름이라 연수기간이 아닌듯 연수관은 조용하다.

 

 

 

 

 

동학혁명의 녹두장군 전봉준  피체지

 

동학혁명을 이끈 녹두장군 전봉준이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 일본군과 관군에 패하여 남쪽으로 피신

순창 피노마을에 은거하게 된다. 전봉준이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고부 접주로 활동할 당시 집사업무를 맡아보던

김경천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라는 속담처럼 현상금이 탐난 김경천의 밀고로 관군에 의해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 1895년 3월 30일 손화중, 최경선, 김덕명 등과 함께 처형 당한다.

 

전경
전봉준관

유적지는 전봉준관, 창의문을 선포하는 동상, 체포당시 주막 등이 설치되어 있다.

전봉준관은 동학혁명일지, 전봉준 압송사진, 창의문 등 동학혁명 관련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전봉준관 내부

전봉준은 김경천의 밀고로 이곳에서 관군에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어 사형을 당한다.

만약에 전봉준이 체포되지 않고 동학혁명이 성공했더라면 세상은 어떻게 변했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혁명가는 이렇게 측근의 밀고로 꿈을 이루지 못하게 된다.

 

압송되는 전봉준

 

체포된 주막

 

창의문을 선포하는 전봉준 장군

blog.daum.net/yyc5932/1655

 

고창여행 # 2 (끝)- 동학농민혁명 발상지 구수마을, 김질을 배향한 도암서원

동학혁명 조형물 동학농민 발상지가 고창군 공음면 구암리 수구마을이란다. 처음 알았다. 전봉준 등 농학농민혁명군이 1894년(갑오년)3월 20일 이곳에서 포고문을 발표하고 사회개혁에 나섰다.

blog.daum.net

전봉준 장군이 체포된 주막

 

 

전봉준 장군 피체 유적비 뒷면에 밀고자 김경천을 새겨 놓았다.

혁명가와 동학혁명의 정신인 보국안민 제폭구민은 실현되었는가?

반문해보며 순창·정읍 여행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