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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m 2015. 6. 30. 21:02

독일에서는 보기 드물게 쾌청한 날씨가 이곳 함부르그의 조용한 주택가 Grottenstrasse에 3일째 이어지고 있어 사람들이 절로 좀더 친절해 지는 즈음입니다. 점심을 먹으러 오트마쉔Othmarchen역 부근의 거리로 나가는 철로 밑을 가다가 마주 오는 노인과 인사를 나누었는데 제 옷이 멋지다고 하면서 중국에서 왔냐고 물어서 한국에서 왔노라 대답하니 ‘안녕하세요.’ 라고 한국말로 인사를 하면서 자기는 울산에서 81년에서 3년간 현대중공업에서 일을 하면서 제주도와 설악산을 다녀온 적이 있으며, 지금은 은퇴하여 산다고 합니다. 참선을 지도하고 내일 독일을 거쳐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말하면서, 서양에 우울증을 비롯한 마음병을 앓는 이가 많다고 했더니 자기도 우울증에 시달린다고 하면서, 직장을 다닐 때는 매일 규칙적으로 일어나 일하고 하여서 생활의 리듬이 있었지만 지금은 해야 할 일이 없기에 침대에 누워서 일어나기가 싫다고 합니다. 직장에 다닐 때는 타율적으로 생활에 질서가 부여되었었지만 막상 은퇴하여 일없이 지내게 되면 혼자 사는 법에 전혀 훈련이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완전히 자신에게 맡겨진 시간을 관리해 본 적이 없기에 타율적인 일이 없어진 것이 바로 우울증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인가 합니다. 나이가 많이 든 노년에는 이미 굳은 습관을 고치기가 어려우므로 은퇴하기 전에 그리고 아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힘이 있는 나이에 일찌감치 혼자서 외롭지 않고 재미있게 몰두할 수 있는 삶의 방법을 터득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대인이 대비해야할 가장 큰 과제입니다.

   내일 서울로 귀국하기에 앞서 누리는 하루를 전혀 아는 사람과의 약속이 없이 온전히 혼자서 마음 내키는 대로 발 닿는 대로 어슬렁댑니다. 화창한 가을의 초입의 점심때라 거리에 사람들이 붐비지는 않고 기분 좋을 정도로 간간이 지나치는 사람, 식당에서 차나 식사를 드는 이들 모두가 행복해 보입니다. 극락을 느끼는 이 시간 이 자리에서 걸어가고 있는 제 자신에 대해서 스스로 감동합니다. 곧추 세운 허리, 활짝 편 가슴 그리고 젖힌 어깨로 온몸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의식하며 움직이는 꽃으로 걸으면서 이 거리가 부여하는 모든 풍요와 기쁨과 여유와 싱그러움의 기운을 한껏 빨아들입니다. 이빨 사이의 오물을 청소하는 명주실을 잡아매는 Y자형 플라스틱 틀을 두 개, Weleda 천연 치약 75그램 한 개, 향내 나는 치간 청소용 명주실 한 통, 그리고 청색과 흑색의 굵은 볼펜심을 사서 이 가게의 이름이 까만 글씨로 써진 갈색의 재생 종이봉지에 담아서 부자가 된 듯이 뿌듯한 마음으로 나와서 점심 먹을 식당을 찾아 맞은 편 거리를 걷다가 이태리 식당으로 가서 스파게티 뽀모도로를 먹습니다. 입에서는 향긋한 고수가 곁들인 매콤한 인도음식을 먹고자 하기에 특별히 입에서 당기지는 않으나 먹을 만합니다. 독일에 오던 날 콜만 부부와 저녁을 함께 했던 곳이기에 주인인 중년의 건강하고 매력적인 이태리 여인이 알아보고 아! 하면서 웃음 지으며 식탁으로 손님을 이끕니다. 말랑말랑한 빵에 발사믹 식초와 올리브유를 타서 찍어 한 쪽을 먹고 나서 제법 시간이 걸려서 나온 뜨거운 스파게티를 스푼에 대고 말아서 먹습니다. 국수가 단단하기에 110회를 씹어서야 거의 다 씹어집니다. 고급스럽고 멋진 유리병에 담긴 이태리의 천연탄산수 san pellegrino terme를 작은 샴페인 잔에 부어서 조금씩 마셨는데 식사할 때는 물을 먹지 않는 습관을 거슬러서 반병 조금 못되게 마셨습니다. 물을 흔하게 무심코 마셔버리는 것이 아니라 소중한 생명의 액체로 두 손으로 잔을 받쳐 들고 마십니다. 입안을 적시고 목구멍을 흐르는 그 차갑고 상쾌한 느낌을 누리면서 말입니다. 잠시 후 젊은 이태리 사람 한 쌍이 들어와 가까운 곳에 자리 잡고서는 스스럼없이 주인과 대화를 나눕니다. 이태리 말에 낯선 제 귀에는 따발총 총알처럼 빠르게 말을 뱉어내는 이들의 생기발랄한 모습을 간간이 훔쳐보자니 퍽 재미있습니다. 아가씨는 빠르고 경쾌한 노래가 나오자 어깨를 들먹이며 노래를 따라서 흥얼대는데 천연덕스러워 보는 눈이 즐겁습니다.

   고르쉐Gorche라는 옷가게 앞에 가로수와 화초가 있는 곳에 놓인 나무 벤치에 젊은 여인 한 분이 앉아 가을의 햇살을 맛있게 누리고 그 주위로 암회색의 돌로 조각한 부처님이 세 분 계시는 것이 너무도 인상적입니다. 길게 드러누운 열반상, 오른 팔이 떨어져 나간 선정에 들어계신 님, 그리고 큰 머리 만이 있는, 얼굴 전면에 영원의 미소와 평화가 흐르는 분입니다. 이 서양의 거리에 나투신 백억화신의 모습이 하도 감동적이어서 지나치면서, 또 맞은 편 거리를 거슬러 천천히 걸으며 멀찍이서 바라보는 제 눈이 빛나고 얼굴에 미소가 번지는 걸 느낍니다. 평화가 흐르는 눈과 연민으로 물든 얼굴. 선정에 든 저 희미한 미소여! 거리에 나앉은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가 이들의 우울과 치매와 분노와 권태와 짜증으로 병들어가는 심신을 어루만지고 영겁의 여유로 맑히는가 합니다. 인도네시아 조크 쟈카르타 섬의 보르부두르 사원을 에워싼 메라피 화산의 폭발로 쏟아져 내린 화산석으로만든 검은 빛이 감도는 저 돌부처에게서 저리도 부드럽고 섬세하고 은근한 기운이 흘러나오는 것을 바라보면서 거죽으로만 판단하는 우리 인간의 표피적인 이해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새삼 깨닫습니다. 돌처럼 차갑고 딱딱한 사람의 속내가 실은 부드럽고 온화해 보이는 사람의 치레 마음보다 더 다숩고 끈끈하다는 것을 내다봅니다.

   저는 특별한 옷과 모자에 의해서 거리를 거닐 때마다 이곳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기에 마주 오는 사람과 미소를 건네는 즐거움을 누립니다. 모르는 사람과 미소를 교환하며 지나친다는 것만큼 더 기분 좋은 일도 없습니다. 길을 지나치면서 '참 멋진 날씨예요.' '그래요. 콧마루가 찡하게 빛이 화사한 날입니다.'라고 날씨 얘기로 지나치는 행인들 사이에도 인정이 흐릅니다. 서점 문을 밀고 들어가면서 뒤에 들어오는 신사를 위해 문을 잡아주면 그 분은 미소 머금은 얼굴로 '감사합니다.'하면서 자신도 뒷사람을 위해서 문을 잡아 줍니다. 아, 내 식구, 친지만이 배려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처하는 곳 그 매시간마다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과 물건들이 그대로 나 자신의 또 다른 분신들이 아닌가요? 나 자신의 좁은 감옥으로부터 벗어나면 이리도 모든 세상 어딜 가도 어느 때고 그대로 살만한 곳, 기쁨을 우려내어 삶을 윤택하게 물오르게 하는 시간으로 누립니다.

   런던에서 함부르크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읽은 The Sunday Telegraph 신문의 정원 가꾸기 칼럼에서 ‘너무 일찍 포도 히야신스grape hyacinth를 방안으로 들여오면 잎이 웃자라면서 영양을 소비하기 때문에 그만큼 꽃을 피우는 데 좋지 않게 된다.’라는 글을 읽으면서, 인생도 한정된 시간을 살게 되므로 때를 잘 맞춰서 만나고, 헤어지고, 사라지고, 나타나도록 민감하고 단호한 태도를 지녀야 한다는 교훈을 읽습니다. 함부르크, 런던 그리고 데본에서의 만남들과 그 체류기간을 잘 헤아려서 낭비가 없이 한껏 시간을 황금으로 빛내도록 일정을 미리 잘 검토하여 정해놓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