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charm 2018. 8. 1. 05:34

지난 6월 초에 8일간 이스탄불에 다녀왔습니다. 1500년의 비잔틴제국이 마흐메드 2세의 오토만제국에 몰락하던 1453년 5월 29일 자정의 대사건이 너무나 흥미진진해서 일부러 그 역사의 현장인 이스탄불의 보스포러스 바닷가의 옛 왕궁이던 지금의 켐핀스키 호텔의 보스포러스 해협을 마주한 방에 지내면서 로마쇠망사의 그 장면을 읽어 내리는 감동을 누렸습니다. 아, 매일 아침 해가 뜨는 6시 즈음에 보스포러스 바다를 바로 면한 노천 수영장에서 1시간 동안 수영을 하는 그 맛은 아, 아찔하게 황홀했습니다. 수영을 하는 이곳은 유럽 쪽 이스탄불 바로 저 건너편은 아시아 쪽 이스탄불입니다. 도처에 낭자한 과거 화려하던 영화의 유물과 자취가 도처에 널려있어 그 찬란한 역사가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듯하고 그 사람들이 바로 제 눈앞에 나타나 말을 걸어올 듯한 착각을 느끼면서 몽롱한 행복에 젖어 대리석 건물을 어루만지고 유물 사이를 걷고 냄새를 맡으며 흐른 시간들이었습니다.
   햄튼코트팰리스플라워쇼에 가서 자주군자란을 보면서 언뜻 보아 거미집처럼 생긴 뽀얗고 향기가 참 좋은 제주도 문주란 꽃에 대한 지나간 날 어느 여름날의 달콤한 추억이 아련히 되살아나면서 연이어 길상사 청향당 앞뜰에 피어나던 비슷한 향기를 흘리던 옥잠화도 선하게 떠오릅니다. 아름다운 상념의 꼬리는 이어서 대흥사 수련회를 마치고 환희에 젖어 휘파람을 불며 잰걸음으로 청신앞 숲을 거쳐 관음암에 오르면서 입구에서 만나던 극락의 꽃으로 보이던 자귀나무의 핑크색 꽃도 눈앞에 하늘댑니다. 드디어 관음전 앞에 오르면 두 그루 파초가 석등과 짝하여 크고 시원하게 푸른 미소로 맞이하고, 그 왼쪽으로 적치마와 초록치마 상추가 고추와 함께 자라는 텃밭 가운데로 하얀 치자 꽃들이 뿜어내던 그 芳香! 해가 가고 달이 가며 그 때의 그 사람도 흘러갔으되 눈만이 아니라 귀, 코, 입, 혀, 살갗의 여섯 가지 통로로 한껏 高揚된 意識을 통해 겪은 입체적 만남의 감동은 더욱 싱싱 생생합니다.
   로마쇠망사를 완독하고 나서 再讀에 들어가기 전에 요즘 두 권으로 된 1941년 출간의 헤로도투스의 ‘역사’를 읽으면서 서력기원전 10세기부터 5세기까지의 그리스인들이 알고 있던 아시아와 유럽의 같고, 비슷하고, 판이한 토양과 풍토에서 천차만별의 패러다임 속에 살던 인간집단들의 葛藤, 離合集散, 榮枯盛衰를 들여다보는 재미를 滿喫합니다.
   쇠망사는 짙은 쪽빛의 헝겊 표지인데 반해 이 역사는 초록의 헝겊표지에 서표는 진홍색 백 퍼센트 실인데, 팔걸이의자에 비스듬히 께느른히 누워서 살랑바람을 볼에 반기며 두 손으로 정답게 책을 펴들고 까만 글씨를 읽어 내리면서 수시로 누렇게 세월에 곱게 숙성되어간 고서의 빛에 한없이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을 받으면서 꺼끌꺼끌한 종이와 활판인쇄의 오톨도톨한 글자의 감촉이 사랑스러워 수시로 일부러 손가락으로 찬찬히 만져보고, 곰팡이 냄새인 듯 비스킷쿠키의 맛인 듯 혹은 향나무 연필 깎을 적에 맡아지는 좋은 냄새인 듯도 한 묵은 종이의 냄새를 짐승처럼 게걸스레 가끔 맡으면서 3년간 숙성시켜 만든, 아주 기막히게 짙은맛의 체다치즈와도 같다는 미식가식의 비유를 떠올리며 아름다운 鄕愁에 흠뻑 젖어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