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필/》수필과 산문2

권영의 2008. 9. 1. 17:09

    낮은 집 작은 거인 / 글. 권영의

 

 

 

 

70대 쯤 으로 보이는 그 아주머니를 만난 곳은 내가 사는 근교가 아니라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경기북부지방에서였다. 장마철이 되어 비가 많이 내리면 하천이 범람하여 온 동네가 물바다가 되는 동두천 외곽, 지은 지 반세기가 넘은 허름한 집에서 그녀는 홀로 살고 있었다.

 

 전기 기술자로 일 하고 있는 나는 가끔 오늘처럼 먼 곳으로 출장을 가서 일을 하고 돌아오기도 한다. 당일로 다녀올 때도 있지만, 일 이 년에 한 번 쯤은 이틀에 걸쳐 일을 보고 오기도 한다. 대부분이 빌딩이나 공장, 상가와 같은 큰 건물 위주로 일을 하는데 오늘은 난생 처음 가정집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이른 아침에 출발을 해서 두 시간을 넘게 달려간 곳은 흡사 그 옛날 서울의 달동네를 연상케 하는 곳이었다. 좁은 골목길 사이에 위치한 오래된 건물들은 녹슬고 패인 곳이 많았으며, 건물 곳곳에 균열이 생겨 어딘가 모르게 기우뚱한 모습으로 세월을 증거하고 있었다.

 

 

 도로 겸 마당 같아 보이는 공간에는 이미 꺼내놓은 가재도구와 생활 집기들이 가득 차 있었다. 집은 예상과 달리 지붕이 아주 낮고 지붕위에 슬레이트가 얹어져 있는 일자형 집이었다. 마치 가축을 키우는 우사나 돈사 같은 건물에 칸막이만 치고 사람이 사는 것 같았다.

 

 실상 이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은데, 미처 알지 못하거나 보고도 무심히 스쳐 지나가버린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그다지 넉넉하지 않은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연민이 밀려들어 가슴 한 구석을 쓸고 있는 것은, 어쩌면 그 아주머니가 느끼며 겪고 살아야 할 심정에 공감과 유대감이 이미 형성이 되어 가고 있다는 것 이었다. 내가 어릴 적 살던 그 아픔들과 현실 속에 가려진 나의 숨겨진 이야기들이 나의 가슴에 울분이 되어 목구멍을 타고 가슴속을 후벼 파고 있었다.

 

 △참고사진(해당 지역과 무관함)

 

 언제나 그렇듯, 작업 반경에 들어 있는 건물의 내부와 보이지 않는 천정 속 까지 확인을 하기 위하여 작업복을 갈아입고 천정의 얇은 합판을 부수는 순간 산더미처럼 쏟아지는 오래 묶은 먼지와 스티로폼 부스러기, 딱딱하게 굳은 쥐의 배설물이 얼굴과 머리위로 가득 떨어졌다.

일을 시작한지 한 두 시간쯤 지났을까, 언 듯 봐도 병색이 완연한 연세 드신 여자 한 분이 길가에서 바로 집으로 들어오는 문을 들여다보며 내게 말을 건넸다.

 

 “뭐 먹고 싶은 것 있으면 말해요”

 

 라고 말씀을 하시더니 드링크 한 박스를 내려놓고 계셨다. 그 때만 해도 더 자세한 그 집과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 수 가 없었다. 농담 삼아 대답을 했다.

 

 “네? 그렇다고 다 말하면 되나요. 이것만으로도 감사 합니다”

 “아냐요. 수고하시는데…….”

 

 아주머니의 대답은 여인의 순수함이었으며 꾸밈없는 사람의 선성설을 입증하기에 충분하였다. 이미 나는 아주머니에 대하여 다소나마 예감을 하고 있었기 때문인지, 아주머니의 말을 듣는 순간 순박하고 선량한 한 인간의 고운 마음을 훔치고 있는 것 같아 부끄러운 마음을 애써 감추면서 잔잔한 감동의 전율이 미끄러지듯 스쳐 지나갔다.

 

 전기 분야 쪽은 나 혼자서 일을 하여야 하기 때문에 내겐 시간이 없었다. 혼자서 그 많은 일을 오늘 하루에 마치고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부랴부랴 서둘러도 하루에 마칠지 말지는 장담 할 수 없었다. 우선 알았다고 대답만 해 놓고 일사분란 하게 나의 계획에 의해 일을 시작했다.

 

 

 어느덧 점심때가 가까워지면서 얼핏 밖을 쳐다보니 집 앞 길모퉁이 쯤 아까 보았던 그 아주머니가 오전 내내 그곳에 계셨음을 알 수가 있었고, 그 이후로 그 여자 분이 그곳에 사는 주인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돌아 올 길이 멀고 일요일이라서 차가 많이 정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점심을 먹고 바로 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오후가 되면서 뇌리에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언제인가 들었던 말인데 생활이 어려운 영세민을 상대로 지방자치단체와 정부에서 무상으로 집수리를 해 준다는 말을 들은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러고 보니 모든 것이 듣지도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예감은 자꾸 그 쪽으로 맞춰 들어갔고, 길목에서 웅성거리는 동네 사람들이나 다른 일로 나와 함께 갔던 사람들이 내뱉는 은연중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정신없이 하루를 보냈다. 시간이라도 알기 위해 시계를 쳐다보니 벌써 오후 4시가 넘어 5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더 이상의 일의 진전을 기대 할 수가 없었다. 이미 나는 마무리에 접어들었는데 다른 분야로 함께 간 사람들의 일은 진전이 없기도 했고, 하루 쯤 더 와야 했기에 여기서 마무리를 해도 될 것 같았다.

 

 하루만으로 끝날 수 없는 일임을 알았는지, 공사를 맞은 책임자도 여기서 공사를 끝내고 내일 자기들 끼리 와서 못다 한 일을 하겠다고 한다. 근처 수돗가에서 세수를 하고 먼지 묻은 옷을 갈아입고 아까 보았던 그 아주머니 쪽으로 갔다. 이미 아주머니의 눈은 알 수 없는 설움으로 인하여 눈시울이 붉게 닳아 올라 있었으며, 눈동자엔 눈물까지 글썽이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슬며시 다가가 물었다.

 

 “여기가 아주머니 댁인가 보죠?”

 “네…….”

 "그럼 잠은 어디서 주무셔야하죠? 며칠 더 걸릴 것 같은데……."

 "다 마칠 때 까지 아는 친구네 집으로 돌아다니며 자야죠."

 

 이 말을 듣자 메마른 사막위에 내동댕이쳐진 것 같은 가슴의 갈증을 느껴야 했으며 울분을 삭혀가며 내 심방을 쓰러 내려야 했었다.

 

 하루 종일 가슴이 아픈 상태에서 일을 하다가 결국 아주머니와 얼굴 마주보며 이야기를 하려니, 조금 전보다 더 가슴 답답한 심정을 참아야 했다. 사실 이쯤이면 내가 궁금해 하는 것을 다 알게 되었기에 더 이상의 나의 궁금증도, 그것을 알기 위한 더 이상의 물음도 결국, 그분의 가슴을 더 아프게 할 것 같아 고개를 숙인 채 침묵 할 수밖에 없었다.

 

 천 원짜리 몇 장 밖에 들어 있지 않은 주머니 속으로 손이 자꾸만 들어갔다 나왔다 한다. 머뭇거려지는 내 자신의 마음은 내가 보아도 무엇을 하려 하는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저……. 제가 아주머니에게 무슨 도움이 되어 드려야 하나요?”

 

어렵게 입을 열자 훌쩍이는 아주머니의 콧소리를 듣게 되었다. 아무렇지 않는 듯 자신의 울분을 숨기려 하시는 음성을 듣는 순간 난 이미 가슴에서 울고 있었는지 모른다.

 

 뜨거운 얼굴을 겨우 들고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전화 번호 좀 알려 주실 수 있나요?”

 “지금은 전화를 사용 할 수가 없어요.”

 

 공사 중인 집안에 아무것도 남아 있는 것이 없는데 아주머니의 말은 지극히 당연한 대답이었다.

 

 “지금 말구요. 제가 올라가서 시간 나면 전화 드리도록 할게요.”

 

 불러주시는 전화번호를 핸드폰에 입력을 하고, 마지막으로 아주머니께 인사를 했다.

 

 “먼 곳에 아주머니의 건강을 생각하는 아들 하나 더 있다고 생각하세요.”

 

 측은지심이 온 몸 구석구석에 둘둘 뭉쳐있는 여인은 여전히 훌쩍이는 콧소리로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저녁노을은 이미 울긋불긋 물이 들어 그 위용을 찬란히 만들어 가고 있었다.

 

 출발을 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함께 올라와야 할 사람들이 내일 계획을 이야기 하고 있는 시간, 이미 난 내 삶에 대한 상념에 젖어 구석진 모퉁이 상가 건물 앞에서 삶의 절규소리를 듣는다.

 

 그늘진 곳에서 들리는 그 소리에 난 내 자신을 되돌아본다. 16년 전부터 황제펭귄이라는 뜻하지 않은 제3의 인생의 막이 오르면서 힘겹도록 키운 두 아이들, 그 속에서 버릴 수밖에 없었던 나의 소망들, 끝끝내 버릴 수 없었던 '가정'과 '가족'이라는 울타리, 퉁퉁 부운 그 아주머니의 얼굴, 세상에 소리 없이 흔들리며 소리 없이 우는 것들이 어디 한 두 개 일 뿐이겠는가.……. 저녁노을은 내 가슴에 울분의 눈물이 되어 찾아왔다.

 

 

 

 여리고 가난한 사람들의 진실, 삶의 애환과 뜨거운 눈물의 의미는 '영혼의 자유로움'이라는 가상의 존재를 넘어 그것은 '울분'이었다. 내 삶이 때론 그 아주머니보다 못 한 절박한 상황에서도 그 아주머니가 생각나는 이유는 고난으로 뒤엉킨 삶 일지라도 시커멓게 타버린 잿더미 속을 헤쳐 가며 한 줌 희망 같은 불씨를 찾아 살려내기 위함이다.

 

 모두가 서민이라고 자칭을 하는 이 세상, 한 점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는 이 세상의 진짜 서민들의 가슴에 사시사철 지지 않는 무궁의 꽃이 만개하기를 바라며 한 나절의 짧았던 동행은 이렇게 끝내야만 했다. 한동안 움직이지 못하는 육신의 정체, 떠나가지 못하는 힘없는 영혼들의 삶 앞에 새삼스럽게 또 고개를 숙인다.

 

 어렵고 쉬움은 사람이 만들어 가는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오늘도 사람이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노을은 설움에 잠겨 뜨거운 눈물을 품고 있었다.

 

 

                                                           

'동트는 집'. '상아詳雅의 문학풍경' http://blog.daum.net/02myway

참 좋은 남자가 사는 알쿵마을 달쿵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