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필/ 》비망록. 메모

권영의 2008. 9. 1. 17:21

영원한 동경/ 글. 권영의

 

 

 

 

 

 

 행복의 價値와 意味가 가면 갈수록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우리의 家庭이<家庭>이라는 名分과 모습만을 유지하며 제 3의 물결 속으로 빠져 들고 있는 것 같은 가슴 아픈 현실이 지금 현재뿐만이 아니라 미래까지 이어져 더 深化 된다는 것에 <未來>라는 단어를 놓고 우리가 너무나 쉽게 생각을 하고 있으며 漠然하면서도 單純하게 생각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勞動法에 명시한 일일勤勞時間은 8시간이다.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삶과 인생 그 자체가 된다. 그러므로 <살아간다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우선시 되어야 하는 일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루 24 시간 중 1/3로 잠재적 구분을 통하여 8시간은 수면을 하고, 8시간은 휴식 및 여가를 하며, 8시간은 살기위해 노동을 하여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 들여야 한다. 그 중 정신적, 육체적 안정적인 일터에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비교적 수면을 덜 취하거나 일터에서 조금 더 보낸다고 삶에 지장을 주거나 여가 및 가정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그다지 크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삶을 위해 일을 하며 사는 것이지, 일을 위해 한 평생 사는 것이 인생은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현실은 8시간 노동을 하기 위해서 가족과 떨어져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으며, 8시간 노동을 하기 위하여 새벽 일찍 일어나 일터로 향하는 경우, 이미 정해진 노동의 시간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수 십분 눈치만 보다가 일터에서 나오면, 또 다시 한 두 시간 걸려 집으로 와야 하는 경우, 직장에서 휴일을 빼앗는 경우 또는, 퇴근시간을 보장해 주지 않는 경우, 가정과 사생활에 기여해야 할 개인적 시간을 회식이나 단합, 기타 이에 준하는 명분을 만들어 반강제적으로 빼앗는 경우가 있다.

 

 살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하여야 한다. 가족이라는 공간속에서 돈독한 정을 쌓아가며 각자의 위치에서 발생되는 가정의 업무 또한 일터에서 해야 할 그 일들보다 더 중요하고 큰 일이 되는 것 이다. 그 어느 누구라 하더라도 감히 넘볼 수 없고 개입을 하여서는 안 될 곳이 바로 본인 외의 <가정>과 <가족>이며, 그들의 삶의 질적 행복을 위하여 비록 그들이 일하고 있는 事業場이라 하더라도 침해 할 수 없는 절대 保障적 태도가 意識的 定着이 되어야 한다.

 

 절대적으로 보장이 이루어져야 할 일터에서 직장과 일을 위한 절대적 충성을 강요하거나, 정신적 육체적 혹사를 바란다면 일터 또한, 미래의 不分明한 청사진만을 그리며 영원한 미래의 모습으로 남께 될 것이다.

 가족의 각 개인마다 동떨어진 자신만의 시간 속에서, 자신만이 추구하는 또 다른 이상세계에서, 자신만이 꿈꾸는 제 3의 세상을 위하는 일은, 삶과 인생을 가장 가까이 함께하며 살아가고 있는 가족을 배제하고는 우리가 바라는 미래는 영원한 미래가 되며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現實世上도 豫測不許의 세상이 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

 

 미래로 돌아가 산다 하더라도 결국, 미래는 또 다시 먼 미래가 되어 언제나 동경하는 꿈과 이상의세상이 되기 때문에 현실이 곧 자신이 꿈꾸며 바라는 미래의 모습이 되는 것이며, 그 세상에서 자신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게 만드는 일이 된다.  다시 말해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지금 바로 이 순간이 자신이 바라보는 자신만의 미래 세상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