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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수필과 산문2

권영의 2008. 9. 1. 17:20

 

/글. 권영의

 

 

 



 가끔, 아주 가끔은 길거리를 거닐면서 아찔한 순간을 천만다행으로 넘기는 경우가 빈번하게 생기고 있다. 직립보행을 하는 사람은 걸음의 형태로 봐선 팔과 다리의 반동에 의해 이동을 하게되어있다. 마치, 네발로 걷는 동물이 꼬리를 흔드는 이치와 같은 원리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두 팔을 앞 뒤로 노를 젖 듯 흔드는 일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인 듯싶으나, 그 정도가 지나치게 되면 자신의 어께를 많이 흔드는 자세가 되어 앞 뒤를 걸어가는 사람에게 손이 닿는 경우가 생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비교적 걸음걸이가 빠르며 그 보폭은 상대적으로 짧다. 그 보폭은 동양인이 서양인과 상대적으로 단신이어서가 문제가 아니다. 생활의 습관에서부터 만들어진 걸음의 형태라고 봐도 크게 다를 봐 없겠다. 앞사람과의 거리를 충분히 유지하고 걷다가도 앞사람이 갑자기 멈추는 순간 결국, 작은 충돌은 거의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나라 인도의 폭은 그다지 넓은 편이 아니다. 또한, 양방향 통행을 하고 있는 현실의 도로 사정을 생각해 보면, 비좁은 길을 얼기설기 얽혀가며 걷는 길이 바로 우리 대한민국의 인도인 것이다. 일부 도심의 외곽지역은 한산한 곳도 있다는 것 또한 모르는 일은 아니다. 보행 중 보폭이나 보행의 속도가 서로 비슷한 사람이 앞을 가고 있을 때, 앞사람을 앞질러 가기에는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좌, 우 추월의 공간이 넓다면 가능하겠지만 그 또한 상황은 그리 쉬운 것만은 아니지 않던가. 그렇다고 멀쩡히 걸어가다 갑자기 설 수도 없는 일이다. 뒤따라 걷는 사람에게 지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길을 거닐면서 유난히 대범하게 팔을 젖히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면, 큰 반구형 곡선을 그리며 팔자걸음을 걷는 사람들 또한 적지 않는 것이 동양인의 걸음걸이 이다. 가끔은 앞사람의 손에 나의 중요한 중심부분을 유린당할 것 같은 순간들이 조마조마하게 비켜 갈 때가 있다. 대부분 보면 앞사람은 30대부터 50대의 아주머니들이다.

 

 비교적 젊은 여자들은 몸이 다소 유연하기 때문에 팔을 뒤로 젖혀도 팔꿈치 관절 밑으로도 얼마만큼은 뒤로 더 젖혀질 수 있다. 이것은 본인 스스로도 인식을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기 때문에 뒤 따라 오는 사람의 성기부분을 치는 경우가 생기지 않으라는 법은 없는 것이다.

 

 직장생활을 하는 여자들 보다 전업주부들의 보행습관이 그렇다. 말하자만 특별히 뚜렷한 목적지나 목표가 없기 때문이다. 시간에 구애를 받지 않는 걸음걸이가 나태함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 때 마다 나름대로의 보폭을 조절해 가며 걷지만 한참을 가서야 내 보폭을 찾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오랜 시간 전업주부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는 여자들의 보행습관이다. 가끔 길을 걷다가 이웃집 아주머니라도 만나게 되면 바로 걷던 그 곳에 멈춰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물론 길을 가다 갑자기 아는 사람을 만났을 때에는 남자들에게도 가끔은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그다지 많은 일은 아닐 것 이다.

 

 어떤 도시를 가서 길을 걷다보면 적당한 거리를 두고 나무 몇 개와 더불어 그 밑에 벤치 몇 개가 있는 풍경도 본적이 있는 것 같다. 마치 자동차가 다니는 좁은 도로에서 마주 오는 차와 조우 시 비켜 줄 수 있는 옴폭하게 만든 차량 대피구간 같고, 고속도로의 갓길 같은 것 말이다.

 도로 옆으로는 난 좁은 인도, 그 옆으로는 다닥다닥 붙은 건물들, 한참을 가야 나오는 샛길, 어디쯤 있을지 모르는 공중화장실..... 이 모든 것은 도심 속 답답함을 더해주는 요인이 되며, 그로인해 변화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성격과 정서에 큰 장애의 요인으로 작용을 하고 있다. 뭣하나 시원스럽게 해결하지도 못하며 걷는 종종걸음, 바로 그것이 우리들의 삶이며 인생의 길인 것이다. 분명 그것은, 길이 사람을 그렇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옛 부터 우리 조상들은 걸음걸이를 빠르게 걷지 않았다. 그것이 양반의 자세라고 생각을 했다. 비단,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서 그게 뭐 그리 중요하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걸음걸이가 곧 성격이 되며 생활이 되는 것이다. 빠르게 지나가는 것은 뇌가 기억을 해 내지 못한다. 근대화의 물결 속에 사회강국을 만들기 위했던 4공화국시절, 그 때부터 걸음걸이의 양상이 바뀐 것이다.

 

 서양 사람들은 우리보다 더 부유하고 강한 나라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느긋하다. 인도(人道)중간 중간에 길 가는 지친 발걸음 쉬고 갈 수 있는 편안한 벤치 몇 개 만들고 행여, 길 위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게 되더라도 편안히 걸어가며 담화도 나누고 지친 발걸음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는 그런 공간 몇 개 없다는 것이 회색빛 도심을 더욱 어둡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몸과 마음은 저 멀리 있는데 생각만으로 선진국대열에 끼어 있다고 하면 생각처럼 뒤쳐진 몸과 마음을 끌고 나 갈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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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수필과 산문2

권영의 2008. 9. 1. 17:19

초로 / 글. 권영의

 

 

 

 

 

 며칠 전, 고등학교를 졸업한 딸내미가 매콤한 닭발이 먹고 싶다고 해서 저녁 무렵 업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옆 동네 재래시장에 들렀다.

 

 이보다 더 크고 오래된 재래시장도 동네에 얼마든지 있는데도 불구하고 다소 먼 시장을 찾는 이유는, 다른 시장에 비해 상인들이 거칠지 않고, 손님을 대하는 자세가 차분하고 얌전하기 때문에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기어이 찾아가 생필품을 사가지고 오는 시장이다.

 

 자주 가다 보면 어디에 어떤 물건을 파는 상가가 있고, 어디쯤 가면 어떤 노점상들이 있다는 것 까지 부처님 손바닥 보듯 잘 알 수 있는 비교적 작은 곳이다. 아래 쪽 부터 위로 올라가면서 내게 더 필요한 물건이 있는지 두리번두리번 거리며 가던 중, 노점에서 닭을 파는 40대 후반이나 50대 초반 쯤 보이는 아주머니의 가게 앞에 발길을 멈추어 서게 되었다.

 

 내 나이 40대의 남자이긴 하지만 비닐봉투를 덜렁덜렁 거리며 자주 생필품을 사가지고 다니는, 어찌 보면 그런 면에서는 초 현대판 남자라고 자부하며 살기도 한다.

 아무리 장바구니 경험이 많은 남자라 하더라도, 남자가 장을 보러 다닌다는 그 하나만으로도 어찌 보면 우스꽝스럽게 보여 질 수도 있을 일이다. 하여, 가끔은 황당한 일이 생기게 되고, 그 때마다 감당하여야 할 고초를 어느 누가 알겠는가. 남자의 몸으로 태어나 여성의 영역을 침범했다는 무언의 경고인지, 때 마다 암시적 경계선이 있음을 느낀다.

 

 그 집도 가끔 가는 집이긴 하지만 가뭄에 콩 나듯 오는 사람들을 일일이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상점 앞에 무턱대고 앉아 통에 담겨져 있는 닭 봉지에 손이 갔다. 두 봉지를 들썩거리며 어느 것이 더 많이 들어 있는지 나름대로의 눈 저울을 사용하여 무게를 재고 있는데 갑자기 코앞에 선 주인아주머니가 갑자기 소리를 지른다.

 

 "아저씨!"

 

 이 소리를 듣는 순간 오히려 내가 더 놀란 가슴 쓰러 내리며 물끄러미 아주머니를 바라다 볼 수밖에 없었다.

 

 "왜요?"

 

 라고 묻자 그 아주머니는 한 동안 말문을 이어가지 못하다가 결국 입을 연다.  


 "그거…… 토종닭이라고요"

 

 이 말이 곧 그 아주머니에게 있어 위기를 모면하겠다는 대처임을 느끼게 되었다.

 

 "그럼, 토종닭이 더 비싼가요? 모두 한 봉지에 2000원씩 아닌가요?"

 

 라고 반문을 하자 이 아주머니는 나보다 더 당황을 했는지 멍하니 서 있는 참 웃지 못 할 정적이 잠시 흐르고 지나가는 이상한 풍경을 그리고 있었다.

 

 순간, 뒤편에서 바람을 타고 전해져 오는 느낌으로 인하여 무의식적으로 맞은편을 바라 봤다. 대체 이 광경은 무슨 광경인가, 그 남자도 야릇한 눈빛을 내게 열심히 보내고 있었다.

 머뭇거리고 있던 아주머니 입에서 침묵을 깨는 소리가 들려왔다.

 

 "외국인인줄 알았습니다."

 

 맞은 편 남자를 쳐다보았을 땐 이미 그 남자도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길 가는 아가씨 작업 걸 때나 쓰는 야릇한 미소를 끝없이 보내고 있었다. 참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뭐라고 대답을 할 사연도 되지 못하였을 뿐 더러 그렇다고 무슨 표정도 지을 수 없는 이상한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내가 그렇게 보인다고요?"

 

 라고 묻자 그 남자가 대답을 한다.

 

 "네, 인도사람처럼 보이는 듯도 한데요"

 

 가끔 서구적으로 생겼다는 말은 들었어도 인도 쪽 이라는 말은 처음 듣는 말이라 반사적으로 감정상의 질문이 자연스럽게 나오고 말았다.

 

 "뭐라고요?, 내가 인도사람처럼 보인다고요? 서구적으로 생겼다는 말은 간혹 듣는데……."

 

 이 말을 듣고 있던 아주머니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말을 꺼낸다.

 

 "맞아요, 그렇게 보여요"

 

 듣고 있던 나로서는 기분 좋은 말은 되지 못하였다.
 농담도 지나치면 서로의 감정이 나빠질 수 있기 때문에 내가 시장에 가야 할 이유만을 충족하고 오기로 했다. 아주머니에게서 2봉지를 건네받으면서 그냥 갈 수 없다는 생각이 슬금슬금 똬리를 틀었다.

 

 "오랜만에 시장에 왔다가 이거야 원, 별소릴 다 듣고 가네."

 

 결국에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뱉어버린 것이다. 이 말을 듣고 있던 두 남녀 상인, 얼마나 무안했던지 쥐구멍을 찾고 있었다.

 

 하루 종일 밥도 굶어가며 일 보러 돌아다니고, 그놈의 닭발 사가지고 집에 와서 밤늦게 저녁을 먹고 잠을 자려고 하는데, 때 마침 엄습해 오는 복통으로 인하여 잠 한 숨 못 자고 아침을 맞이하였다. 복통은 다음 날 점심때 까지 이어 졌고 그 날 오후가 돼서야 한 끼의 밥을 먹을 수 있었다.

 

 골똘히 생각해 보면 참 기가 막히기도 하고, 거울 한 번 또 보게 되는 초로의 내 모습을 보게 된다. 보고 있어도 그것이 나를 쳐다보고 있는 느낌, 그 의미가 주는 것처럼 내 자신을 비추어 볼 수밖에 없다는, 그저 그러려니 생각하며 무심히 살아온 지난 날 들의 내 모습이 아니었던가.

 

 거울이 나를 쳐다보면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내게 또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했을까? 아니면 무엇이든 내게 알려주고 싶어 했던 것이 있었는지는 않았을까?, 그냥 자신에게 비친 내 모습을 보며 마냥 웃고 있었을까? 성미 급한 나라도 한 번 묻고 싶은 날이었다.

 

 '나, 이렇게 살아왔는데…… 이정도면 나 열심히 살아 온 것 이였지?
 그런데……. 남은 것은 하나도 없다. 그래도 나의 두 아이들은 나보다 더 아껴가며 아이들만을 위해 살아왔다. 나…… 지금 죽는다 해도 여한은 남지 않을 것 같아. 아쉬움은 남더라도 정말 최선을 다 했어……‘

 

 세월이 흐르면 듬성듬성 흰머리가락이 생겨나고, 얼굴엔 빗물정도가 흐를 만 한 골이 그 개수와 깊이를 더해가는 것이 초로기의 모습일 것이다. 

 자신의 외모에 더 이상의 집착을 가지지 않는 것, 진정 그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가장의 모습이고 어버이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도 어쩔 수 없이 장성해가는 자식을 둔 어버이가 분명한 것이다. 나이는 세월과 함께 먹어가는 것 이며 숫자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세월과 함께 몸과 마음도 그 임무를 다하다가 쇠약해져 가는 것이 인생이며 그 어느 누구든 세월 속에서 빠져 나가지 못한다는 것은 거부 할 수 없이 도태되는 자연현상이 아니었던가. 나, 지금부터 꺾어지는 인생길을 걸을지라도 서운하다거나 섭섭하다 말 하지 않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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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수필과 산문2

권영의 2008. 9. 1. 17:12

 

어느 해 겨울/글. 권영의

 

 

 

 



 1980년도 중반, 아득히 오래된 일도 아닌 그 해 겨울은 지금보다 더 큰 감동이 잔잔히 물드는 따뜻한 겨울을 맞이할 수 있었다.

 유난히 길기만 했던 그 겨울, 찬바람이 몹시도 불어오더라도 두툼한 외투 하나로 목을 감싸면 심장이 숨 쉬는 따뜻한 소리 까지도 느낄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11월이 지나고 12월인 겨울의 초입에 서서 하늘을 가끔 올려다보면, 어느덧 하얀 눈발이 세상위에 나래 짓을 하면서 수를 놓고, 수를 놓으며 떨어지는 하얀 눈을 맞으며 한 없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꿈꾸었던, 고달프지만 결코 고프다 하지 못 할 만큼의 평화로움이 온 세상을 덮고, 그 위에서 꿈틀거리는 생의 욕망과 숨소리는 하늘을 날며 낭만과 정갈한 삶의 애착을 느끼기도 하였었다.
 연탄 200장정도 판자로 만든 광속에 채워 놓고, 동네 주변에 있는 밭에 가서 배추 50포기를 사면 다소 품질이 떨어지는 50포기가량의 배추도 덤으로 얻어와 많지 않은 양념이지만, 흐뭇함이라는 특별한 양념을 섞어 정성을 다해 버물이고 다소곳이 파묻은 두 세 개의 항아리에 가득 채우고 나면 더 이상 겨울나기에 대한 걱정이나 근심은 하나도 없었던 그 시절이 있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꿀맛 같은 시절이 아니었나 마냥 그 때가 그립기만 하다. 

 따뜻하게 데워진 아랫목에 배 깔고 누워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을 되 집어 보다 잠이 들어도, 다음날 아침이 밝아 오면 따뜻이 데워진 물 한 바가지와 더불어 상쾌한 아침을 맞이하였던 그런 시절이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들통이 하루의 여독을 푸는데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 책임과 의무를 다해 왔지 않았던가.

 반 포기씩 잘라 담가 놓은 김장김치를 꺼내 돼지고기 몇 점을 넣고도 천하일품인 김치찌개도 만들어 낼 수 있었고, 입 속에서 살 살 녹는 그 것 하나만으로도 행복해 하며 살아 갈 수 있었던 지난 날 들은 지금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다.
 그 누구에게나 한 번 쯤은 있을만한 지난 시간 속에 잠이 들어버린 추억과 그리움,
지금의 자기 자신의 모습을 생각해 보면 불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먼 훗날 지금을 돌이켜 생각을 한다면 지금이 바로 인생에 있어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운 행복의 세월이었음을 느끼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오늘의 부족함으로 내일을 채우고, 내일의 부족함으로도 성내거나 노여워하지 않는, 내 삶의 겨울이라는 길목의 초입에 서서 다시 한 번 다짐하며 그 다짐이 헛되지 않기를 내 자신과 약속 하게 한다.


 

                                                                                                                               

 
 
 

• 수필/》수필과 산문2

권영의 2008. 9. 1. 17:09

    낮은 집 작은 거인 / 글. 권영의

 

 

 

 

70대 쯤 으로 보이는 그 아주머니를 만난 곳은 내가 사는 근교가 아니라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경기북부지방에서였다. 장마철이 되어 비가 많이 내리면 하천이 범람하여 온 동네가 물바다가 되는 동두천 외곽, 지은 지 반세기가 넘은 허름한 집에서 그녀는 홀로 살고 있었다.

 

 전기 기술자로 일 하고 있는 나는 가끔 오늘처럼 먼 곳으로 출장을 가서 일을 하고 돌아오기도 한다. 당일로 다녀올 때도 있지만, 일 이 년에 한 번 쯤은 이틀에 걸쳐 일을 보고 오기도 한다. 대부분이 빌딩이나 공장, 상가와 같은 큰 건물 위주로 일을 하는데 오늘은 난생 처음 가정집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이른 아침에 출발을 해서 두 시간을 넘게 달려간 곳은 흡사 그 옛날 서울의 달동네를 연상케 하는 곳이었다. 좁은 골목길 사이에 위치한 오래된 건물들은 녹슬고 패인 곳이 많았으며, 건물 곳곳에 균열이 생겨 어딘가 모르게 기우뚱한 모습으로 세월을 증거하고 있었다.

 

 

 도로 겸 마당 같아 보이는 공간에는 이미 꺼내놓은 가재도구와 생활 집기들이 가득 차 있었다. 집은 예상과 달리 지붕이 아주 낮고 지붕위에 슬레이트가 얹어져 있는 일자형 집이었다. 마치 가축을 키우는 우사나 돈사 같은 건물에 칸막이만 치고 사람이 사는 것 같았다.

 

 실상 이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은데, 미처 알지 못하거나 보고도 무심히 스쳐 지나가버린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그다지 넉넉하지 않은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연민이 밀려들어 가슴 한 구석을 쓸고 있는 것은, 어쩌면 그 아주머니가 느끼며 겪고 살아야 할 심정에 공감과 유대감이 이미 형성이 되어 가고 있다는 것 이었다. 내가 어릴 적 살던 그 아픔들과 현실 속에 가려진 나의 숨겨진 이야기들이 나의 가슴에 울분이 되어 목구멍을 타고 가슴속을 후벼 파고 있었다.

 

 △참고사진(해당 지역과 무관함)

 

 언제나 그렇듯, 작업 반경에 들어 있는 건물의 내부와 보이지 않는 천정 속 까지 확인을 하기 위하여 작업복을 갈아입고 천정의 얇은 합판을 부수는 순간 산더미처럼 쏟아지는 오래 묶은 먼지와 스티로폼 부스러기, 딱딱하게 굳은 쥐의 배설물이 얼굴과 머리위로 가득 떨어졌다.

일을 시작한지 한 두 시간쯤 지났을까, 언 듯 봐도 병색이 완연한 연세 드신 여자 한 분이 길가에서 바로 집으로 들어오는 문을 들여다보며 내게 말을 건넸다.

 

 “뭐 먹고 싶은 것 있으면 말해요”

 

 라고 말씀을 하시더니 드링크 한 박스를 내려놓고 계셨다. 그 때만 해도 더 자세한 그 집과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 수 가 없었다. 농담 삼아 대답을 했다.

 

 “네? 그렇다고 다 말하면 되나요. 이것만으로도 감사 합니다”

 “아냐요. 수고하시는데…….”

 

 아주머니의 대답은 여인의 순수함이었으며 꾸밈없는 사람의 선성설을 입증하기에 충분하였다. 이미 나는 아주머니에 대하여 다소나마 예감을 하고 있었기 때문인지, 아주머니의 말을 듣는 순간 순박하고 선량한 한 인간의 고운 마음을 훔치고 있는 것 같아 부끄러운 마음을 애써 감추면서 잔잔한 감동의 전율이 미끄러지듯 스쳐 지나갔다.

 

 전기 분야 쪽은 나 혼자서 일을 하여야 하기 때문에 내겐 시간이 없었다. 혼자서 그 많은 일을 오늘 하루에 마치고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부랴부랴 서둘러도 하루에 마칠지 말지는 장담 할 수 없었다. 우선 알았다고 대답만 해 놓고 일사분란 하게 나의 계획에 의해 일을 시작했다.

 

 

 어느덧 점심때가 가까워지면서 얼핏 밖을 쳐다보니 집 앞 길모퉁이 쯤 아까 보았던 그 아주머니가 오전 내내 그곳에 계셨음을 알 수가 있었고, 그 이후로 그 여자 분이 그곳에 사는 주인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돌아 올 길이 멀고 일요일이라서 차가 많이 정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점심을 먹고 바로 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오후가 되면서 뇌리에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언제인가 들었던 말인데 생활이 어려운 영세민을 상대로 지방자치단체와 정부에서 무상으로 집수리를 해 준다는 말을 들은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러고 보니 모든 것이 듣지도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예감은 자꾸 그 쪽으로 맞춰 들어갔고, 길목에서 웅성거리는 동네 사람들이나 다른 일로 나와 함께 갔던 사람들이 내뱉는 은연중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정신없이 하루를 보냈다. 시간이라도 알기 위해 시계를 쳐다보니 벌써 오후 4시가 넘어 5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더 이상의 일의 진전을 기대 할 수가 없었다. 이미 나는 마무리에 접어들었는데 다른 분야로 함께 간 사람들의 일은 진전이 없기도 했고, 하루 쯤 더 와야 했기에 여기서 마무리를 해도 될 것 같았다.

 

 하루만으로 끝날 수 없는 일임을 알았는지, 공사를 맞은 책임자도 여기서 공사를 끝내고 내일 자기들 끼리 와서 못다 한 일을 하겠다고 한다. 근처 수돗가에서 세수를 하고 먼지 묻은 옷을 갈아입고 아까 보았던 그 아주머니 쪽으로 갔다. 이미 아주머니의 눈은 알 수 없는 설움으로 인하여 눈시울이 붉게 닳아 올라 있었으며, 눈동자엔 눈물까지 글썽이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슬며시 다가가 물었다.

 

 “여기가 아주머니 댁인가 보죠?”

 “네…….”

 "그럼 잠은 어디서 주무셔야하죠? 며칠 더 걸릴 것 같은데……."

 "다 마칠 때 까지 아는 친구네 집으로 돌아다니며 자야죠."

 

 이 말을 듣자 메마른 사막위에 내동댕이쳐진 것 같은 가슴의 갈증을 느껴야 했으며 울분을 삭혀가며 내 심방을 쓰러 내려야 했었다.

 

 하루 종일 가슴이 아픈 상태에서 일을 하다가 결국 아주머니와 얼굴 마주보며 이야기를 하려니, 조금 전보다 더 가슴 답답한 심정을 참아야 했다. 사실 이쯤이면 내가 궁금해 하는 것을 다 알게 되었기에 더 이상의 나의 궁금증도, 그것을 알기 위한 더 이상의 물음도 결국, 그분의 가슴을 더 아프게 할 것 같아 고개를 숙인 채 침묵 할 수밖에 없었다.

 

 천 원짜리 몇 장 밖에 들어 있지 않은 주머니 속으로 손이 자꾸만 들어갔다 나왔다 한다. 머뭇거려지는 내 자신의 마음은 내가 보아도 무엇을 하려 하는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저……. 제가 아주머니에게 무슨 도움이 되어 드려야 하나요?”

 

어렵게 입을 열자 훌쩍이는 아주머니의 콧소리를 듣게 되었다. 아무렇지 않는 듯 자신의 울분을 숨기려 하시는 음성을 듣는 순간 난 이미 가슴에서 울고 있었는지 모른다.

 

 뜨거운 얼굴을 겨우 들고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전화 번호 좀 알려 주실 수 있나요?”

 “지금은 전화를 사용 할 수가 없어요.”

 

 공사 중인 집안에 아무것도 남아 있는 것이 없는데 아주머니의 말은 지극히 당연한 대답이었다.

 

 “지금 말구요. 제가 올라가서 시간 나면 전화 드리도록 할게요.”

 

 불러주시는 전화번호를 핸드폰에 입력을 하고, 마지막으로 아주머니께 인사를 했다.

 

 “먼 곳에 아주머니의 건강을 생각하는 아들 하나 더 있다고 생각하세요.”

 

 측은지심이 온 몸 구석구석에 둘둘 뭉쳐있는 여인은 여전히 훌쩍이는 콧소리로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저녁노을은 이미 울긋불긋 물이 들어 그 위용을 찬란히 만들어 가고 있었다.

 

 출발을 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함께 올라와야 할 사람들이 내일 계획을 이야기 하고 있는 시간, 이미 난 내 삶에 대한 상념에 젖어 구석진 모퉁이 상가 건물 앞에서 삶의 절규소리를 듣는다.

 

 그늘진 곳에서 들리는 그 소리에 난 내 자신을 되돌아본다. 16년 전부터 황제펭귄이라는 뜻하지 않은 제3의 인생의 막이 오르면서 힘겹도록 키운 두 아이들, 그 속에서 버릴 수밖에 없었던 나의 소망들, 끝끝내 버릴 수 없었던 '가정'과 '가족'이라는 울타리, 퉁퉁 부운 그 아주머니의 얼굴, 세상에 소리 없이 흔들리며 소리 없이 우는 것들이 어디 한 두 개 일 뿐이겠는가.……. 저녁노을은 내 가슴에 울분의 눈물이 되어 찾아왔다.

 

 

 

 여리고 가난한 사람들의 진실, 삶의 애환과 뜨거운 눈물의 의미는 '영혼의 자유로움'이라는 가상의 존재를 넘어 그것은 '울분'이었다. 내 삶이 때론 그 아주머니보다 못 한 절박한 상황에서도 그 아주머니가 생각나는 이유는 고난으로 뒤엉킨 삶 일지라도 시커멓게 타버린 잿더미 속을 헤쳐 가며 한 줌 희망 같은 불씨를 찾아 살려내기 위함이다.

 

 모두가 서민이라고 자칭을 하는 이 세상, 한 점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는 이 세상의 진짜 서민들의 가슴에 사시사철 지지 않는 무궁의 꽃이 만개하기를 바라며 한 나절의 짧았던 동행은 이렇게 끝내야만 했다. 한동안 움직이지 못하는 육신의 정체, 떠나가지 못하는 힘없는 영혼들의 삶 앞에 새삼스럽게 또 고개를 숙인다.

 

 어렵고 쉬움은 사람이 만들어 가는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오늘도 사람이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노을은 설움에 잠겨 뜨거운 눈물을 품고 있었다.

 

 

                                                           

'동트는 집'. '상아詳雅의 문학풍경' http://blog.daum.net/02myway

참 좋은 남자가 사는 알쿵마을 달쿵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