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 목 시 원(雲木詩園)

나는 나를 찿아 떠나고 있습니다. 출세를 위해 명함을 돌리기위해, 오늘도, 옛 詩友들은 賞을 찿아 퉁방울 눈이 되었네요. 내려 놓을것은 내려놓고 가야 하는데 버거운 짐을 지고 어떻게 요단강을 건너 가려는지? http://blog.daum.net/0504jjk

世宗 文壇 原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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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시인 협회

2021. 1. 17.

孤 獨 한 사 슴 盧 天 命 (未發表. 評論)

 

 

(1강) 외로운 여인

  노천명 하면 그에게 고유 대명사가 있다. 孤獨고독, 盧天命은 西海서해씨 노계일의 次女차녀로 황해도 장연군 비선리에서 基善기선이라는 兒名으로 1912년 9월2일 태어나 사내 아이를 바라는 부모는 어린 기선을 항상 男裝을 시켜 왔다. 여섯살때, 그는, 紅疫홍역으로 인하여 死境사경을 헤매게 된다. 가까스로 살아난 기선이는 하늘에서 보낸 아이라 해서 이름을 天命천명으로 改名개명 한다. 여기서, 天命천명의 殞命운명은 기구하게 되니 말수가 적고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이때부터, 고독이 늘 함께 했으리라고 본다. 일찍, 아버님의 殞命운명으로 진학하던 進明學敎진명를 그 당시, 변호사 였던 형부 崔斗煥(최두환.언니 基用의 남편)의 도움으로 간신히 졸업하고 1934년에 이화여자 전문 영문과를 졸업하게 된다. 이때부터, 그는, 詩를 가까이 하게 되고, 詩를 지어 學友학우들 앞에 朗讀낭송하게 되며 이화여자 전문 시절 <밤의 찬미> <단상> <포구의 밤>등을 新東亞신동아에 發表발표 하는 등,日本일본에서 出刊출간되는 <어린이 소년>에도 글을 발표, 남들보다 創意力창의력이 돋보이게 된다. 1934년 부터 1937년 까지의 朝鮮日報조선일보 출판부 女性여성잡지의 編輯人펀집인으로 근무 할때는, 天命의 문학이 더욱 바쁠 때이다. 한때는,극예술 연구회 참가 하기도 했으나 그만두고, 1943년 부터는 每日新報매일신보 문화부 기자를 거쳐, 서울신문 문화부 기자, 婦女新聞신문 編輯편집次長차장을 거치는 동안 여인으로써의 길과 고독이 마음에 깊이 자리하게 된다.안국동 집에서 누하동으로 거처를 옮기며 이때,양녀 仁子인자를 얻는다. 6.25의 亂을 피하지 못한 天命은, 조선 문학가 團體단체에 드나 들었다는 혐의로 9.28 수복 후 投獄투옥 되어 일년 여 동안 獄中옥중生活생활을 하고 出監출감하나 그를 반기는 것은 虛無허무와 그리고, 孤獨고독 뿐 이었다.그래서, 믿음으로 귀화되는데, 일년여의 獄苦에서 출감한 후 부산의 中央聖堂중앙성당에 베로니카 라는 영세명으로 入敎입교하게 된다.그러므로,1955년에는 서라벌 藝大예대출강 하면서 모교인 이화여전 출판부에서 <이화 여전 70년사>를 집필 했다.1912년 9월2일에 태여나 1957년에 12월 10일 짧은 生을, 腦貧血뇌빈혈로 청량리 병원에서 누하동 집으로 옮겨와 生 마감하기 까지 항상 깔끔하고 고독을 즐겼다기 보다 고독과 結婚결혼을 한다 ,고향을 그리며 情景정경과 鄕愁향수의 여인. 자신의 觀照관조와 자신의 고독과 향수가 살아있는 隨筆集수필집과 評論평론동시, 동요 등도 발표 하는 한 문학 에서는 다재 다능한 여인,이며, 냉철히 고독한 여인 이었다. 그러면, 여기서 그의 짧은 생애와 그에 얽힌 작품을 살펴 보기로 하자.

 

-----여자의 길----문학의 길-------조국의 길------(문학+여자).(불행한 유년)+(불행한 조국 ) 짧은 生생을 마친 이유(원인)=-------고독. 잃어버린 고향의 향수 위에서 보듯이, 이어진 문학의 길, 여자의 길, 조국의 길에서 무엇이 그토록 천명을 냉철한 아니, 혹독한 고독에 독신으로 짧은 生을 마치게 했나 函數關係함수관계를 살펴보기로 하자.

 

 

[2강] 외로운 여인,그리고, 고독 (盧天命)

 

외로운 女人. 盧天命노천명,

  우리는, 우선 어린 基善기선이가 男裝남장을 하고 자랐어야 하는 배경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 序論 에서도 밝혔듯이 男尊女卑남존여 사상의 우리나라 옜날 제도를 볼때 得男득남을 바라는 부모의 心情심정이 背題배제되 있음을 알아야 겠다. 옛날, 七去之惡칠거지악의 한 예로 자식을 생산하지 못한 아녀자의 구박과 억압 소박 맞는 이야기는 누차 듣고 알고 있을 것이다. 七去之惡 중에서 嫉妬질투, 猜忌하는 죄도 크다 하였으나 아마, 죄에 으뜸은 대가 끊겨 조상님께 뫼(제사) 한번 올리지 못함이 아닐까 한다. 여기서, 基善기선은 자라면서 남성의 우월성과 여성에 대한 억압, 죄의식이 부모를 통해 점차 머리 속에 자리하게 됐을 것이고, 그것이, 말수를 적게 만들고, 고독의 씨알이 뿌려진 계기가 됐을 것이다. 그러면서, 사경을 헤매이다 起死回生기사회생, 기적적으로 살아나 개명 까지 하는 홍역, 부친의 죽음, 가정의 몰락이 잇단 불행으로 언니 基用의 손에 성장하여 형부 崔斗煥두환의 도움으로 進明學敎진명학교를 졸업하는 天命천명은 이화여전에 진학 하는데, 이때의 작품 1932년 新東亞신동아에 발표된 "밤의 찬미"를 보기로 하자.

 

삶의 줄거움이여!

삶의 괴로움이여!

이제는, 아우성 소리 그쳐진 밤.

죽은듯 다 잠들고 고요한 깊은 밤

 

미움과

시기의 낚시 눈도 감기고

원수와 사랑이 한가지 코를 고나니

밤은 거룩 하여라. 이 더러운 땅에서도

이 밤만은 별 반짝이는 저 하늘과

그 깨끗함을 그 香氣향기를 겨누나니

 

오! 밤 거룩한 밤이여

영원히 네 눈을 뜨지 말지니

네가 눈 뜨면 苦痛고통도 눈뜨리.

 

밤이면 네 거룩한 베개를 대지말고

고요히 고요히 잠들어 버려라.

--- [밤의 찬미]- 全文----

 

  이로써,고통과 싸우며 변하여 가는 마음은 고독하여 지고, 그래서,고독을 즐기며 고독과 싸우는 몸부림을 문학에 매달려 글을 가까히 하고 글에 고독한 心情심정을 反芻하는 괴로움의 몸부림이 엿보인다.

 

창으로 불빛이 나오는 집은 다정해

볼수록 정다와

저 안에 엄마가 있고

아버지가 살고

그리하여, 형제는 多福다복하고-

마음이 가난한 이는 눈을 모아

고운 情景정경을 한참 마시다-

 

아늑한 집이 온갖 시간에 벌어졌다.

친정엘 간다는 새댁과 마주앉은

急行列車급행열차 밤 찻간에서도

中年紳士중년신사는 넥타이를 찼고

有福유복한 婦人부인은 물건을 온종일 고르고

-- - 중략 ----

기댈 데 없는 외로움이 박쥐처럼 퍼덕이면

눈감고 가다가

슬프면 하늘을 본다

--.-[창변] 의 일부--

 

  고독해 보지않은 사람은 고독을 모른다. 고독을 모르는 사람은 고독이 무슨 아름다운 奢侈品사치품 쯤으로 안다. 天命은 고독의 達人달인 일까? 그는, 고독으로 자신의 외로움을 노래했고, 고독으로 여자의 향수를 달랬으며 고독에서 사랑하는 戀人연인을 찾았다. 天命도 여자이기에 사랑하는 사람과 아기를 갖고 싶고 행복한 삶을 추구해 보지만 고독한 마음으로 고독을 키우며 그 속에서 脫出탈출하지 못하는 자신이 때로는 미웠을 것이다.

 

라일락 숲에

내 젊은 꿈이 나비 같이 앉은 正午정오

계절의 女王여왕 오월의 푸른 女神여신 앞에

내가 왠일로 無色무색하고 외롭구나

--- -[푸른 오월]의 일부- --

 

  그렇다. 그도 젊은때 청자빛 푸른 꿈은 있었다. 푸르고, 해맑은 푸른 꿈이 나비 같이 따스한 오월의, 어느 오후에 내려 앉을때 생각의 둘레를 고독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을 탓했으리.

 

孤獨고독이 성처럼 나를 두르고

캄캄한 어둠이 어서 밀려오고

달도 없어주

 

눈이 내려라 비도 퍼부어라

가슴의 薔薇장미를 뜯어버리는 날은

슬퍼좋다

하늘에 불이 났다

하늘에 불이 났다.

-- -[사슴의 노래]일부---

 

  이렇게, 고독할 수가 있을까? 사랑 한다기 보다는 차라리, 섬찟하고 무섭도록 고독을 갈구하며 그리워 하는 여인이 또, 있었던가.天命.그는 외롭게 살다 고독하게 간 여인이다. 그도, 가정이 그리웠고 사랑하는 가족이 그리웠다. 호수 같은 생각에 혼자 잠겨보는 바람이 수수밭 사이를 스치는 밤에는 더욱 설레는 마음을 억제치 못해 울었다.

 

목메여 소리치며 부를 그 사람은

언제나 온다는 것이냐

---[대합실]일부-.

 

어느, 조그만 산골로 들어가

나는, 이름 없는 女人이 되고 싶소

草家초가 지붕에 박넝쿨 올리고

삼밭엔, 오이랑 호박을 놓고

薔微장미로 울타리를 엮어

마당엔, 하늘을 慾心욕심껏 들여놓고

밤이면, 실컷, 별을 안고,

 

부엉이가 우는 밤도, 내사, 외롭지 않겠오

汽車기차가 지나가 버리는 마을

놋양푼의 수수엿을 녹여 먹으며

내 좋은 사람과 밤이 늦도록

여우 나는 산골 얘기를 하면

삽살개는 달을 짖고

나는 女王보다 더 幸福행복 하겠오.

---[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전문- --

 

  머언, 하늘을 향해 슬픈 모가지를 뽑아 올려 향수를 달래며 우는 사슴처럼, 수국꽃(불도화)그러운 저녁에는 별 만큼이나 설운 옛날 이야기를 삼키며 어린애 처럼 울기도 하고 ,함부로 가까히 할 수도 없고, 함부로 친할 수 없는 고독을 그는 사랑했고, 그로인해, 고독과 함께 生活생활하는 버릇이 생겼다고 아니할수 없다. 울고 울어서 부얼부얼, 일그러진 잃어버린 얼굴(자화상에서) 불만스런 작은 키를 호숫가에 비춰보며 고독을 친구했던 여인, 그는, 조그마한 꺼리낌에도 밤잠을 못자고 괴로워 하는 性味성미 였다.

 

언제든 가리라.

마지막에 돌아 가리라.

목화꽃이 고운 내 고향으로

조밥이 맛있는 내 본향으로,

아이들이, 한 울타리 따는 길목엔

學林寺학림사 가는 달구지가 조을며 지나가고

대낮에 여우가 우는 산골.

---[망향]-일부 ---

 

  돌아 가야지, 언제나 가고팠던 고향. 지나는 汽車기차 소리 들으며, 조밥을 맛있게 지어 사랑하는 가족과 오손도손, 별을 세며 단란히 살고픈 여인. 盧天命. 그는, 고독과 결혼하여 이혼하고 재혼하고 고독에 묻힌 여인 이었다. 그도, 여인 이었기에 행복한 가정을 보노라면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현실에서 脫出탈출 하고픈 마음의 애씀이 있다.

 

호랑담요를 쓰고 가마가

웃동리서 아랫몰로 내려왔다

 

차일 친 마당 멍석 위엔

잔치 국수상이 벌어지고,

 

상을 받은 아주머니 들은

이차떡에 절편에 대추랑 밤을 수건에 쌌다.

 

대례를 지내는 마당에선

장옷을 입은 색시 보다도, 나는

그 머리에, 쓴 칠보 족도리가 더 맘에 있었다.

--- [잔치]의 전문- -

 

  [잔치]에서 보자면 마지막 행을 살펴 보기로 하자. -대례를 지내는 마당 에선/장옷을 입은 색시 보다는 나는/그 머리에 쓴 칠보 족도리가 더 맘에 들었다-라고, 天命은 밝히고 있다. 이것은,무얼 의미 하는가. 天命. 그 자신이 그 칠보 족도리를 써보고자 함이요. 즉, 결혼하고 싶었다 함인데, 현실의 자신의 마음은 고독의 울타리에 꼭 갇히어 나오지 못함이다. 어찌보면, 너무, 가혹하리만치 자신을 鶴帶학대하지 않았나 싶다. 양녀 仁子를 통하여 조금이나마 가정의 행복과 단란한 안정기를 맞은 그는, 부러움을 충족하지 못함으로 이웃의 아이들을 볼때마다 귀여웠고 사랑스러웠으리라.

 

수수경단에 백설기 대추 송편에 꿀편

인절미를 색색으로 차려놓고

책에 붓에 쌀에 금전, 은전

가진 보화를 그득, 싸논 돌床상에

할머니는 사리사리, 국수를 내놓으시며.

 

命福명복을 비시고

할아버진 청실 홍실을 느려 활을 놔 주셨다.

 

 

온 집안 사람의 웃는 눈을 받으며

전복에 복근 쓴 애기가 돌을 잡는다.

 

고사리 같은 손은 문장이 된다는 책가계를 스쳐

將軍장군이 된다는 활을 꽉 잡았다

---.-[돌잽이] 전문----

 

  그러면, 이렇게도 家庭가정을 갖고 싶어했고 아이를 갖고자 했던 그가, 왜 평생을 獨身독신으로 살아야 했을까. 위 글에서도 잠깐 밝혔지만 자신을 너무 苛酷가혹하리만치 현실에 비추어 그 이하로 虐待학대했고, 너무나 가혹하리만치 고독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함에 (극 예술 연구회)"아냐"역을 맞아 공연하던 시절에 보성 전문학교 교수로 있는 김광진과도 결혼을 이루지 못했으리라 .필요 이상으로 고독의 사슬에 묶여 세상과 격리 시키는 그는, 생각과는 달리 현실이 무척 야속 했을 것이다. 그래도 ,仁子가 있었기에 조금의 慰安위안을 삼으며 고독의 帳幕장막에 자신을 감추었으리라.

 

빨래해서 손질하곤 이어 또 꿰매는 일

어린것과 그이를 위하는덴 힘든줄을 모르오.

오랫만에 나와 거닐어 보는 지름길엔,

어느새, 綠陰녹음이 이리 짙었오.....

 

생각하면 꿈을 안고 열에 해했던 時節시절도 있어

이런델 거닐면 떠오르는 그 날들-

----[여인]의 일부---

 

 

[3강] 고독이라는 이름의 따스함을

 

강의내용

  얼마나, 세상과 격리 시켰으면 녹음이 짙은줄도 모르는, 오랫만의 散策산책일까.苛酷가혹하리만치 冷徹냉철한 고독을 즐기는 所有者소유자. 고독에 君臨군림하는 天命이지만, 그의, 마음은 따스 했으니, 이웃의 불행이 나의 아픔이요. 고통으로 이웃과 함께 괴로워 했으니, 고독은 차갑지만은 아닌가 싶다.

 

숱한 學兵학병들 틈에 끼어

아들이 入營입영 한지도 여러 달

 

등잔 심지를 돋우며, 돋우며,

농 속에서 어머니는

아들의 편지를 또, 꺼냈다.

 

읽고, 다시, 읽고

겉봉을 뒤적거려

보고는, 다시, 보고

 

아들이 가 있는

구마모도 라는 곳이

어머니는, 지금

故鄕고향보다 더 그리워

밤이면, 꿈마다, 찾아가 더듬는다.

- - -[아들 편지]의 전문---

 

몹시 차 보여서 좀처럼 가까히 하기를

어려워 한다

----.(중략) ----

조그마한 거리낌에도

밤잠을 못자고, 괴로워 하는 성미는

살이 아물지 못하게 학대를 했다.

꼭 다문 입은 괴로움을 뿜기 보다

흔히는 혼자 삼켜 버리는 서글픈

버릇이 있다. 세 온스의 살만

더 있어도, 무척, 생색나게 내 얼굴에

쓸데가 있는것을 잘 알지만 무디지

못한 성격과는 타협하기 힘들다.

 

  위에 글 盧天命의 [自畵像자화상]에서 보면 그를 잘 알것 같다. 獨身독신의 이유와 이름 만큼보다 닉네임으로 붙어 다니는 고독, 자신이 말했듯이 남들이 가까히 하려들지 않는 차갑게 생긴 외모에 이웃과 함께 할 수 있는 아픔과 눈물 뜨거운 정이 있을 줄이야. 아래의 글 [분이]를 보면 그의 마음을 잘 알수 있다 .

 

七月칠월 낮 마루의 햇살이 베둥거리에 따가웁고

경지나무 아랜 唐四柱당사주 쟁이 영감이 조는 마을

江에선 사람이 빠졌다구 아이들이 수선스레 모여 들었다.

<다섯살 난 내 어린것이 오늘,

물에 놀러 나갔다가 빠져 죽었오,

신발과 옷을 벗어논 체 이렇게 없어졌오.>

 

한 여인이 물가에 앉아 미친듯이 울면서 넋두리 했다.

하느님, 난, 세상에서 악한 일 한 기억이 없습니다.

그렇거늘, 당신은 내 어린것을 .....내 어린것을.........

 

젊은 아낙네 손엔 애기의 고무신이 꼭 쥐어져 있고,

땅을 짚은 팔엔 계집아이 꼭두선 다홍치마가 감겼다.

물가에 앉아 그 속을 들여다 보곤 자꾸 서러워 졌다.

粉伊분이야! 너 들어오면 주려고 집에 참외 한 개 사놨다.

아버지가 품팔고 들어오면 너 어디갔다 하려느냐.

그렇게 갈것을 ....

잘 입히지도.....잘 먹이지도 못하고...

-- [분이]의 전문-

 

  고독은 차갑지 않다. 다만, 固執고집이 있을뿐이다. 天命은 외로웠다. 그래서, 고독 했다. 고독은 冷情냉정하지 않다. 天命은 自激之心자격지심이 강했을 뿐이다. 홀로라는 외로움이 그늘에 어둠으로 잦아드니 고독의 굴레에서 헤여나려 무진 애도 썻을 것이다. 사람을 그리워 하면서도 가까히 할 수 없었고, 가정이 그리웠으면서도 멀리 했던 盧天命. 그는, 고독한 진정한시인 이었다.

 

 

 

[4강] 분단된 조국

 

강의내용

 -------일제식민(친일과 구국운동)----6.25남침 -----사회혼란과 비리-------분단된 조국 =信仰신앙生活생활. 1에서의 盧天命의 고독으로 인한 숱하게 흘린 눈물과 悲哀비애를 알아 보았다. 잃어버린 고향을 그리워 하면서, 약한 여자의 몸으로 어떻게 조국을 사랑했고. 日帝彈壓탄압을 糾彈규탄함과 6.25 南侵남침을 어떻게 지냈으며, 9.28 修復수복 후 獄中生活옥중생활 속에서 그가, 얻은 것은 무엇이며, 잃은것은 무엇인가와 그당시 비리들, 성모마리에게(신앙) 虛無허무한 삶과 고독을 의지 하여야 하는 背景배경을 알아 보기로 하자. 자고로, 우리 한민족 역사를 볼때 당파싸움을 하지 않은적이 없을까마는, 이때에도, 한민족의 悲劇비극은 左翼좌익이니, 右翼우익이니 하여 같은 民族민족끼리 미워하며 流血劇유혈극을 벌이는 混亂혼란에 6.25 戰爭전쟁이 발발 하였다. 敵禍적화 統一 통일될 위기에 처한 한민족의 비극은 소위 조선 문학가 동맹에 "임화"등과 드나들었다는 혐의로 獄苦옥고를 치루게 했던 것이다. 이에,지치고 지친 心身심신을 더 이상 지탱키 어려운 그는, 中央聖堂앙성당에 찾아가 성모마리아를 맞나게 된다.

 

내 가슴에선 사정없이 장미가 뜯겨지고

멍청히 바보가 되어 서 있습니다.

------중략------

사람들 이젠, 종소리도 깨일 수 없는 악의 꽃 속에 묻힌 밤.

여기, 저도 모르게 저지른 악이 있고

남이 나로 인하여 지은 죄가 있을 겁니다.

聖母성모마리아여,

臨終임종모양 무거운 이 밤을 물리쳐 주소서

그리고 ,아름다운 새벽을

----[아름다운 새벽을]의 일부- --

 

  天命.그는 격동기의 혼란 속에 성장한 不運불운한 詩人이다. 자신의 잇단 불행과 나라의 分斷분단, 사회의 혼란, 그 모든 것들은 그에게 悔疑회의의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래도,民族민족을 激勵격려하며 나라를 걱정하는 舊國挺身구국정신은 젊은이들을 督勵독려하여 일깨우고 있다.

 

칡넝쿨 우거진 山峽산협을 지나

太極旗태극기 출렁 거리던 마을을 생각하며

지금쯤, 어데의 高地고지를지키고 있느냐.

 

아카시아, 흰꽃이 香氣향기롭던 아침

너는, 임께 바친 몸 이었어라.

弱小民族약소민족의 悲哀비애를 삼키며

祖國조국이 危急위급하던 아침.

 

大漢대한의 男兒남아답게 내달아

正義정의의 칼을 잡고 戰列전열에 끼었나니

오늘은, 북으로, 으로

 

-꽃망울 같은 젊은이

祖國조국 위하여, 自由자유를 위하여

軍歌군가소리 드높이

끝날줄 모르는 戰列전열이 굽이치며 지나간다.

----[북으로 북으로]의 일부---

 

  激動期격동기의 혼란에는逆賊역적도 많고, 역적 중에 奸臣간신도 나오지만, 그래도, 愛國志士애국지사 또한, 많은 법이다. 天命은, 오직,舊國一念일념으로 미약한 힘과 여자의 연약한 몸을 怨望원망하며 글로써 나라를 지키고자 민족을 일깨우니 가히, 詩人으로써, 글쟁이로써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다 하겠다.

 

조국을 위한 매운 싸움이 있었나니

울안의, 紅桃花홍도화는 유관순의 넋인가

三月장한 달, 이 나라의 아름다운 달,

거리 거리, 골목 골목

獨立精神독립정신이 출렁 거리는 달

-- -[三月의 노래]의 일부-

 

  望鄕망향의 鬱憤울분을, 머나먼 他國타국에서 鄕愁향수를 달래던 憂國衷情우국애정들, 맨몸으로, 맨손으로, 일제의 총칼 앞에 성난 이리떼의 발톱과 부리에 맞서 피 흘려 강을 이룬 亂을 天命은, 보았고 겪었다. 天命은 붓을 들었다. 붓에 힘을 주어 조국을 부르기 시작했다. 이를 갈며 피눈물을 원고지에 뿌리며, 그는, 분연히 일어섰다.

 

더 참을 수 없이 臨終임종처럼 괴롭던 밤.

이 부드득 갈며, 어려운 고비 깜박할 제

온 누리를 둘렀던 어둠, 번개 같이 찢기며

활짝, 열린 새 천지

-[불덩이 되어]의 일부-

 

  얼음장 같이 차리만치 고독을 즐겼던 여인, 즐겼다기 보다 고독에 헤여나려 몸부림 치며 울었던 여인. 그러한, 그도, 조그만 꺼리낌에 조차 밤잠을 못이루고 괴로워 했으니. 가슴으론 따스한 정이 이웃에 흐르고, 激動期격동기의 혼란 속에서도 흘러 사회 곳곳의 生存競爭생존경, 아귀다툼과 각종비리가 亂舞난무하는 거리에도 흘렀다. 그는, 그들을 情으로 감싸는 한편, 붓을 들어 辛辣실랄하게 詰責힐난하는 것이었다

 

큰불이 타더라. 폭팔사건 이라도 생겨라.

外動외동에서 들려오는 전화가

비상 하기를 바라는 젊은 편집자

그는, 殘忍잔인한 인간이 아니다.

저도 모르게 되어진 機械기계다.

 

그 불이 방화가 아니라 報告보고 될때

젊은이의 마음은 서운 했다.

鐵筆철필이 재빠르게 미끄러진다.

짠바-노타이-루봐쉬카靑年청년-

싱싱하고 미끈한 양들이

해군복 이라도 입히고 싶은 맵시다.

오늘은, 또, 저 붓끝이 몇 사람을 찔렀느냐.

젊은이 手容수용에 懺悔참회 있는 날,

그 날은 그 날은 무서운 날 일지도 모른다.

-[號外호외]의 일부-

 

 

 

[5 강] 苦亂,그리고 作別

 

강의내용

  盧天命 .6.25는 그에게 獄苦 치르게 했고 苦難고난을 겪게 했다. 그때의,옥고 중에 屋中옥중 獄苦옥고 "誤算오산 이었다" "누가, 알아주는 투사냐" 등 20여편의 詩를 모아 1953년 제3詩集시집 <별을 쳐다보며>를 발표 했다. 끔찍히도 고독을 사랑 했고 사랑 했기에 背信배신을 하지 못하고 그 속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고독한 사슴 노천명. 그의 작품 <고별>을 끝으로 맺을까 한다.

 

어제, 나에게 讚辭찬사와 꽃다발을 던지고

우뢰 같은 박수를 보내주던 人士인사들,

오늘은, 滅視멸시의 눈초리로 혹은 無心무심히

내 앞을 지나쳐 버린다.

 

청춘을 바친 이 땅,

오늘, 내 머리에는 容受용수가 씌워졌다.

孤島고도에라도 좋으니, 차라리, 머언 곳으로-

나를 보내다오.

뱃사공은 나와 방언이 달라도 좋다.

 

내가 떠나면

정든 冊床책상은 古物商고물상이 없어갈 것이고,

아끼던 책들은 천덕구리가 되어 장터로 나갈께다.

나와 친하던 이들, 또, 나를

猜忌시기하던 이들

잔을 들어라. 그대들과 나 사이에

마지막인 作別작별의 잔을 높이 들자.

 

友情우정이라는 것 또한 信義신의라는 것.

이것은, 다 어디있는 것이냐.

생쥐에게나 띁어먹게 던져 주어라.

온갖 禍根화근 이었던 이름 석 字를

갈기 갈기 찢어서 바다에 던져 버리련다.

나를, 어느, 떨어진 섬으로 멀리, 멀리, 보내다오.

 

눈물 어린 얼굴을 돌이키고

나는, 이곳을 떠나련다.

개 짖는 마을들아,

닭이 새벽을 알리는 村家촌가들아,

잘 있거라,

별이 있고

하늘이 보이고

거기, 自由자유가 닫혀지지 않는 곳이라면-

 

등록일. 2002년 03월 17일 (한국 디지탈 문학 도서관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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