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그것/♣가르치며 배우다

2009. 7. 8. 12:40

  용풍(慵諷); 게으름을 풍자하다

 

  거사('나')에게는 게으른 병이 있다. 그래서 어느 손님에게,

“세상은 급속히 변하지만 이 게으름은 그대로 남아 있고, 몸은 쇠약하나 이 게으름은 그냥 붙어 있네.

그래서 집 뜰에 풀이 우거져도 깎지 않고 있으며 책이 천 권이나 있는데 책에 좀이 생겨도 펼쳐서 말리지 않고 있네그려.

그뿐인가? 머리가 헝클어져도 빗지 아니하며, 병이 나도 치료하지 아니하네.

더군다나 남들과 즐겁게 노는 일, 남들과 교제하는 일까지 귀찮다네. 입이 있어도 말을 게을리 하고

발이 있어도 걸음을 게을리 하고, 눈은 보는 것을 게을리 하여,

땅을 밟거나 일을 당하거나 무엇이든지 게으르지 않은 것이 없네. 도대체 이런 병을 무슨 방법으로 고치겠는가?”

하고 물었더니, 손님은 아무 대꾸도 없이 물러갔다.

열흘이 지난 뒤 이 게으른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비방을 가지고 와서는,

“요즘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더니 매우 그립더군. 한번 보고 싶어 찾아왔네.”

한다. 그런데 거사는 게으른 병 때문에 만나기를 꺼려하였다. 그렇지만 그는 굳이 보자고 하면서,

“내가 오랫동안 거사의 부드러운 웃음소리와 다정한 말을 듣지 못했는데,

요즘 새는 동산에서 지저귀고 날씨는 화창하며 온갖 꽃들은 만발하는 늦은 봄이네.

내게 향기가 방에 가득하고 훈기가 독에 넘치는, 밥알이 동동 뜨는 좋은 술이 있는데, 혼자서 마시기가 미안쩍네.

그대가 아니면 누구와 함께 마시겠는가?

집에 노래 잘하고 생황을 잘 불며 게다가 비파까지 잘 타는 시중드는 계집아이가 있는데,

그것도 혼자 듣기는 너무 아까워 그대를 기다리네. 그러나 그대가 가기를 꺼릴까 염려되네. 갈 생각이 없는가?”

하였다. 

거사는 너무 기뻐서 옷을 갖추어 입고 일어나며,

“그대가 늙은 나를 괄시하지 않고 맛좋은 술과 어여쁜 자색(姿色)*으로 답답한 마음을 위로하려고 하는데

내 어찌 굳이 사양하겠는가?”

하고 행여 늦을세라 허리띠를 서둘러 매고 행여 더딜세라 신을 허둥지둥 신고는 급히 가려 했다.

그런데 손님은 갑자기 게으른 태도를 보이며 입마저 열기 싫은 듯이 하더니, 조금 후에 태도를 고쳐 말하기를,

“그대가 이미 나의 요청을 승낙하였으니 번복할 수는 없을 듯하네.

그러나 그대가 전에는 말이 게으르더니 지금은 재빠르고, 전에는 돌아보는 동작이 게으르더니 지금은 민첩하며,

전에는 걸음이 게으르더니 지금은 잽싸니, 아마도 그대의 게으른 병이 이제는 다 나은 것 같네.

그러나 성품을 해치는 것으로는 여색이 가장 심하고, 창자를 상하게 하는 데는 술을 으뜸으로 치네.

이렇게 해로운 것인데도 그대는 자신도 모르게 게으름이 절로 풀려서 서두르는 태도가 마치 시장에 가려는 것과 같네.

아마 그대가 이대로 가다가는 성품을 훼손하고 몸을 망치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 것이네.  

나는 그대가 이렇게 되는 꼴이 보기 싫어서 함께 말하는 일도 게을러지고

같이 앉는 일도 게을러지네.

이것은 그대의 게으른 병이 나에게 옮은 것이 아닌가?”

하였다. 

거사는 부끄러워서 낯빛이 붉어졌다. 이마에 땀을 흘리며 사과하기를,

“착하도다. 그대가 나의 게으름을 풍자함이여 !

내가 종전에 그대에게 게으른 병이 있다고 말하였는데, 지금 그대 말을 듣자,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는 것보다 더 빨리 그 병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몸에서 종적을 감추어버렸네.

즐기려는 욕심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귀를 기울이기를 이렇듯이 쉽게 하는 것임을 나는 이제야 알았네.

이런 식으로 간다면 그것이 끝내는 사람의 몸에 크나큰 화를 초래할 것이니, 진실로 조심하지 않을 수 없네.

내가 앞으로 마음에서 게으름을 버리고 인의(仁義 ; 핵심어)에 힘쓰려 하는데,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는 나를 조롱하지 말고 조금 기다려 보게나.”

하였다.  -이규보

 

 주제 : 게으름과 주색(酒色)에 대한 경계와 인의(仁義)에 따른 삶의 다짐 (거사와 손님의 대화를 통해

     게으름을 탈피해 바쁘게 살아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인의'에 힘쓰며 살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물론 '게으름'에 대한 상황적 해석은 다르지만

   '게으름'에 대한 아낌 없는 찬사를 보낸 버트란드의 '게으름에 대한 미학'을 심화 학습의 대상으로 해도 좋을 듯하다.

   긍정적으로 해석을 덧붙인다면 게으름보다는 '느림'이라 의미가 더 낫게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