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그것/♣가르치며 배우다

2010. 6. 15. 00:23

◆빌러비드<Beloved> 읽기가 주는 의미를 살펴본다.

 

  ★토니 모리슨이 <BELOVED>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모리슨은 자신의 작품의 목표는 “과거로부터 유용한 것과 버려야 할 것을 구별하여 증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과거는 미래를 구성할 유용한 것과 현재를 억압하는 버려야 할 것을 모두 갖고 있다. 그런 점에서 모리슨은 과거의 고통과 슬픔을 애도하고 떠나보내면서, 동시에 미래를 구성할 희망과 공동체성을 보존하는 이중적인 작업을 진행했다. 소설 말미에서 세 번 등장하는 “이 이야기는 전해질 이야기가 아니다.”는 과거의 반복으로서의 미래가 아닌 과거의 치유로서의 미래에 대한 모리슨의 희망이다. 희망을 말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과거를 용기를 갖고 직면해 그것의 실체를 낱낱이 파헤치는 작업, 그 와중에 인간은 우는 동물이라는 것을 집단적으로 느끼는 행복을 체험해야 하는 것이다.

  모리슨은 너무 무거워서 감당하기 어려운 역사적 사실을 다루면서도 “문학은 정치적인 색채를 띠어야 함과 동시에 더할 나위없이 아름다워야 한다.”고, “언어는 땀 흘려서도 안 되고 솔기(옷이나 이부자리 따위를 지을 때 두 폭을 맞대고 꿰맨 줄)가 보여서도 안 된다.”고 말한다. 모리슨의 소설은 한 마디로 아름답다. 미국(백인) 문학의 전통적인 주요 테마인 타락한 도시 문명을 떠나 자연이나 황야를 찾아가는 인간 주체가 겪는 사회와 개인의 대립이라는 주제는 흑인 문학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백인 중심 사회에서 거세된 흑인들의 흑인성을 회복하고, 그들의 조상을 되찾고 잊혀진 역사를 되살려내는 것이 그들의 화두이다. 자신의 문학 세계가 백인 문학의 흐름에서 해석되는 것을 경계하면서 흑인 문화 속에서 자신의 근원을 찾으려는 모리슨의 소설은 이 점에서 미국 백인 문학의 대서사에 도전하는 대항 담론으로서의 성격을 지닌다.

  노예제의 폭력과 비극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노예제의 슬픔과 고통을 ‘느끼게’ 하려는 모리슨의 작품 <빌러비드>는 살아남지 못한 자들을 위한 비가(悲歌)이며 희망과 미래를 꿈꾸는 자가 왜 과거를 다시 기억하는 의지적 행위를 경유해야 하는가를 말하는 윤리적 호소문이기도 하다.


  재기억으로서의 문학이 과거에 다가가는 데 있어서 역사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사건은 너무 복잡하고 우연적이고 순간적이어서 그것을 기록하는 행위가 포착하기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기록된 것은 지나간 사건들을 선별적으로 분류하고 일반화하고 정리해서 이해하기 쉽게 만든다. 그 과정에서 사라지는 것들, 즉 기록될 기회를 얻지 못한 것들은 없었던 것,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잊혀진다. 그렇게 해서 기록으로서의 역사-역사가 개인의 주관적 선택으로서건 객관적 사실로의 기술로서건-는 그때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 몸의 아픔, 슬픔, 사랑, 죽음을 기록하지 못하게 된다. 문학은 바로 그런 역사적 글쓰기에서 누실된 것, 소실된 것인 바 삶의 현장에서 울고 울었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복원해내 쓰여진 것의 무의미함, 모든 죽어간 것들의 아름다움을 증명한다.

  작가는 역사적 기록 속에 단 한 줄로 남아 있는 사람들, 무시해도 좋을 문장 속의 이름에 살과 영혼을 붙여 넣고 그들이 어디서 어떻게 태어나 살고 사랑하다 죽어갔는지를 다시 기억하게 만든다. 역사는 승리자의 관점에서 쓰여진 것이라는 일반론을 받아들인다면 문학은 패배자, 억눌린 자의 관점에서 역사를 다시 쓰는 행위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역사와 문학을 함께 읽는 것이, 미래를 건설하는 일은 과거를 다시 기억하는 일이라는 역설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읽기의 윤리임을 기억해야 한다. 문학(소설)을 왜 읽는가? 바로 반성하기 위한 작업인 것이다.

 

 


 
Mozart / Flute Quartet No. 3 in C major, K. Anh. 171 (258b)  To. 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