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달그리메 2009. 6. 12. 11:39
 

인간이 머리를 짜내서 만든 제도 중에 가장 실패한 것이 결혼이라고도 했습니다.

그 말이 맞는지 틀리는지는 개인에 따라 다르겠습니다만.

행복하고 싶어서 결혼을 하지만, 인간의 행복 허구증은 결혼으로도 채워질 수 없는 모양입니다.

결혼을 두고 인생의 무덤이라고 까지 하니 말입니다.

결혼이라는 틀 속으로 들어가 안정적인 생활을 하면서 인간은 더욱 애증결핍증에 시달립니다.

아니 무슨 그런 망발을 할 수도 있겠지만...


사랑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언제나 새로운 자극을 원하고, 유통기한이 지나면 시들해지고,

무엇보다 확실하다 싶은 것에는 흥미를 잃게 되는 게 사랑이 가지고 있는 속성이기도 하니까요.

사랑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면 구지 결혼이라는 것이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결혼은 사랑이 변할 수밖에 없다는 역설적인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가족을 만들어 사랑에 대해서 책임과 의무를 부여하는 것이 결혼이 가지고 있는 임무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실제로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아내가 결혼했다’라는 소설이 나왔을 때 사람들은 작가의 발칙한 상상에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기존의 인식에 도전하는 실험성과 도대체 뭔 이야긴가 하는 호기심,

거기에다 일부일처제라는 결혼관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일부일처제가 우리의 인식 속에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것은 그리 오래지 않습니다.

거창하게 역사를 거론하지 않아도 지금으로부터 한 세대만 거슬러 올라가보면

그 시절 아버지들은 어지간하면 두 집 살림을 차리거나 첩을 두었습니다.

남자들의 바람은 능력의 상징으로까지 생각했으니까요.


그것은 일부일처제 사회에서 본다면 엄연히 범죄 행위입니다.

그런 아버지들로 인해 가장 상처받고 힘들었을 사람은 어머니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아버지를 받아들이는 어머니들의 명분은 운명이나 팔자였지

불륜이나 간통 등 도덕적, 법률적 책임을 묻는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그것은 그 시대 어머니들이 특별히 관대했다기 보다는

사회적인 지위나 경제적인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리하나 저리하나 별 뽀족한 수가 없었다고 보면 맞을 겁니다.


일부일처제다 일부다처제다 하는 것은 사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남자와 여자의 힘의 균형에 의해 만들어지는 일종의 사회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자의 힘이 강한 모계사회에서는 일처다부제였던 것이

남자의 힘이 강해지기 시작하면서 점점 일부다처제로 변했습니다.

지금처럼 일부일처제가 가능한 것은 남자와 여자의 힘이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점점 여자의 지위가 향상됨으로서 결혼의 풍속도에도 새로운 변화가 일고 있습니다.


노홍철이 가수 장윤정과 사귄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두 사람의 이런저런 걸 다 접어두고라도 노홍철이‘횡재를 했다’는 분위기였습니다.

그것은 장윤정이 가지고 있는 경제적인 가치 때문에 그렇게들 이야기 했을 겁니다.

노홍철 뿐만이 무한도전 멤버들의 여친이나 배우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결혼에 대한 새로운 변화를 느낄 수가 있습니다.

자칭 우리나라 평균 이하라고 들이대는 남자들의 짝은

한결같이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의사, 아나운서, 작가, 스튜어디스, 그리고 톱 가수,

이것은 능력있는 연상녀와 젊은 연하남과의 결혼이 트랜드화되는 것과도 통하는 점이 있습니다.


여성의 지위가 아무리 향상되었다 하더라도

이성간의 관계에서는 여자가 본능적인 약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보다 능력있는 남자를 선택하는 것은 여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양면성이 있습니다.

신분상승을 하는 반면에 어느정도 자신의 삶을 남자에게 담보를 해야 하는 불이익을 감내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자들이 자신과 비슷하거나 조금 모자란 듯한 배우자를 선택하는 것은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살 수 있는 일종의 기득권을 유지하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먹고 살기 힘든 세상에서 남자들이 원하는 경제적인 여유와 조건이 맞아 떨어지기 때문에

하나의 유행처럼 새로운 결혼 풍속도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요즘 남자들은 치사하지만 아주 내놓고 여자 못생긴 건 용서해도 무능력한 건 용서못한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그랬습니다. 

"다 용서해도 여자 못생긴 건 용서 못한다"

그말보다 훨씬 비인간적이긴 합니다.

그러나 이제 아무리 부정을 해도 결혼은 사랑을 빙자한 비지니스입니다.

사랑이 결혼과 어떤 상관관계를 가질 지,

결혼이라는 것이 앞으로 어떻게 진화를 거듭할 지는 두고 볼 일입니다.


얼마 전 대학교에 다니는 딸이 남친이 생겼다고 소개를 했습니다.

참고로 딸은 지방에 있는 별로 유명하지 않은 학교에 다닙니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전도유망한 과도 아닌 것이 수수한 외모에 그러저런 아주 평범한 친구였습니다.

예전 엄마들 같으면 자기 자식 부족한 건 접어두고 이런 조건이면 아마도 펄쩍 뛰었을 겁니다.

그런데 저는 오히려 그 평범함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만약 헤어져도 상처도 덜 받을 것 같고, 결혼을 해도 휘둘리지 않을 것 같고 뭐 그래서입니다.

나의 반응에 딸은 흡족해 했습니다.

딸이 어찌 제 속을 알겠습니까. 그래저래 세상은 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처다부제도 있죠,..

어떤 분이 그러더군요 일부일처제가 되면서 짝없는 사람들도 짝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고.
동물의 서계에서 보명 짝이 없는 숫놈이 많습니다.
그것은 우수한 종자를 남기기 위한 자연의 법칙이죠.

인간도 동물에서 분리되어 나왔고 종을 보존하기 위한 생존 활동을 해왔고
자연계에서 살아남기위한 성역할 분담을 오랫동안 했습니다.
그것이 유전인자로 남아있다고도 합니다.
예를 들면, 아주 오랜시간 남자는 사냥을 합니다.(장거리 활동), 여자는 육아와 채집, 관리(터전 주변활동) 그로인해 형성되는 유전인자는 달라진다는 겁니다. 또 여자는 우수한 유전인자를 가진 2세를 가질길 원하므로 누가 우수한지을 고르게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인간이 문명세계를 만들면서 의식이나 체제 제도가 유전자의 변이보다 훨씬 앞서게 되는 거죠
특히 현대사회를 거치면서 그 속도의 차이는 더 크게 벌어집니다.

사랑과 종의번식은 다른 개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종의 번식을 사랑으로 간주한다면 그것은 아직 동물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니 좀 비참해 지나요.

이제 자의적인 선택에 의해서 짝을 만들지 않는 정도에 이르게 되었고, 그로인해 의지와 무관하게 짝을 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고 돈을 들여 수입(?)까지 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으니 현재의 결혼 제도라는 것도 변화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도 하게됩니다.

사랑의 유통기한은 공장에서 제품찍어 내듯 정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유통기한이 없다고도 봅니다.
어쩌면 유통기한이 지났음에도 폐기처분 하지 못해 유지하는 것일지도 모르겠고요..
그러나 많은 분들이 보존 방식을 달리해서 유통기한을 연장하는 것을 보면 유통기한이 없다는 것이라 봅니다.
유통기한이 있다면 색다른 맛을 접하고 입맛이 변해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때문이겠죠,,
그건 한쪽의 노력만으로는 되지 않는 것이라 봅니다.
사랑만큼 할 말이 많은 게 없을 듯 합니다.
사랑은 흐르는 물과 같아서 담아내는 그룻에 따라 모양과 크기 용도와 느낌이 달라지죠.
본질은 같다고 하더라도 담아내는 시대라는 그릇에 따라
사랑이 어떤 사회적인 현상을 만들어내는지 생각해보고 싶었습니다.






두줄 읽고 글씁니다. 인간이 만든 제도 중 가장 훌륭한 것이 결혼이라고 배웠습니다. 이는 한 개인의 주관적 의견이 아니라 학계에서 주류로 통하는 정설입니다. 제가 착각을 했나요?
그건 정답이 있는게 아니겠죠
그러고 보면 제가 인간이 만든 제도 중에 가장 실패한 제도가 결혼이라는 말도 지극히 주관적일 수가 있겠네요.
장윤정 어머니관련글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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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정 어머니글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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