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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탄신일 계룡산 제석사 방문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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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개인사

2017. 5. 3.



석가탄신일 계룡산 제석사(帝釋寺) 방문 -2017년-

-1984년 6.20 사업때 유일하게 철거되지 않은 사찰-


날짜: 2017년 5월 3일(수) 석가탄신일


코스: 구룡숙소(구룡관사) -> 제석사 -> 암용추 -> 구룡숙소(구룡관사)


산행 속도:

산행 날씨: 맑음



참가자: 풀때기 나홀로~



이동 수단: 풀때기 차




참가비:



주관자:


계룡산 제석사(帝釋寺)

 

계룡산 신도안은 1976년 박정희 대통령의 종교정화운동 사업의 일환과 1984년 6.20사업으로 3군사령부가 이전하면서 이곳에 200여곳이 넘던 유사종교 단체들을 포함한 모든 민간관련 시설을 강제로 헐리게 하고 쫓아냈다고 한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이곳에서 유일하게 헐리지 않은 사찰이 있으니 그 절이 암용추 폭포 근처에 있는 제석사 이다. 공식적으로는 제석사 주지스님의 완강한 거부로 유일하게 철거되지 않은 사찰이라 하고 비공식적으로는 여러가지 설이 나돌고 있다. 이곳은 우리나라 제일의 산신기도 도량으로 알려져 있으며 1년 중 석가탄신일에만 일반인이 들어갈 수 있도록 군부대에서 신분증 확인 후 철문을 열어 준다고 한다.

 

제석사 뒷편으로 바위동굴이 하나 있는데 용구추(龍口湫)라고 한다. 이곳에서 이성계가 계룡산에 도읍을 정하는 것을 허락해 달라고 산신기도를 올리던 장소라고 알려져 있다. 기도를 올리던 이성계는 계룡산은 미래의 정도령의 터이니 물러가라는 산신령의 호통을 듣고 이곳 신도안에 정하려던 수도를 한양으로 가게 되었다고 한다.

 

제석사를 창건한 주지스님은 서용준 스님이신데 2015년도에 99세의 나이로 입적하셨다고 한다.

 

출처

인터넷 여기저기 + 풀때기



2014년도에 계룡산 제석사 점심공양 사건 후 3년만에 다시 방문하는 계룡산 제석사...

(관련글: http://blog.daum.net/100san/8891402)


제석사는 군부대 관할 구역안에 있다.

 1년중에 석가탄신일 단 하루만 일반인들에게 공개한다.


군부대 철문 옆에 설치된 벨을 누르면 담당 군인이 확성기로 어떻게 오셨습니까? 물어본다.

방문사유를 말하면 군부대 철문이 열린다.



2014년도에는 여행과산행 회원 40명과 제석사를 방문하였다.


그 당시 본인이 올린 산행공지를 바탕으로 여러 산악회에서 그대로 배껴가 

제석사의 점심공양을 수십명씩 우루루 몰려다니며 다 먹어치우고 바람처럼 사라지는 바람에 정작

제석사에 부탁해 3주전 예약한 40명분의 점심공양을 여행과산행 회원들이 제대로 받지 못하는 사태가 일어났었다.


그 뒤로 시간이 흘러 작년에도 모 산악단체에서 수십명씩 몰려와 점심공양 때문에 언성을 높이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다행히 올해는 산악회에서 온듯한 사람이 1명도 없는 듯 하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석가탄신일날 제석사로 산행공지 올리지 마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오시고 싶은 분들은 산악회 단위가 아닌 가족 단위로 오시기 바랍니다.



















제석사 일주문
























제석사 안내석비

 

네마리의 용은 각자 동서남북을 수호하고 팔각등은 속세의 중생의 마음에 등불이 되니 어찌 자비를 따르지 않으리오

연화는 오랜 세월속에 불교의 상징이었으며 힘찬 호랑이의 모습은 동양의 상징이었다.

산은 산이요 라는 깊은 뜻을 중생은 마음에 등불 밣혀 부처와 함께 안식하여라.

 

을유년 4월 입


































제석사

 

앞으로 열릴 정도령의 시대라 칭하는 새시대는 신법까지도 아우르는 사람이 온다고 하는데 이곳 제석사는  

그 미래를 대비하는 사찰이라고 한다.






제석사의 대웅전인 각왕전

 

1976년 박정희 대통령의 종교정화운동 사업의 일환과 3군사령부가 신도안으로 이전하면서 제석사 부근 200여곳이 넘던

유사종교 단체들을 포함한 모든 민간관련 시설을 강제로 헐리게 하고 쫓아냈다고 한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이곳에서

유일하게 헐리지 않은 사찰이 있으니 그 절이 암용추 근처에 있는 제석사이다. 공식적으로는 제석사 주지스님의 완강한

거부로 유일하게 철거되지 않은 사찰이라 하는데 서슬퍼런 유신시절과 제5공화국을 어찌 버티었는지 궁금하다.



보편적으로 사찰의 중심인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을 봉인하지만 제석사는 대웅전 대신 각왕전이 있다.








각왕전 내부


계룡산 제석사는 제작년까지 주지스님이 서용준 스님이셨지만 2015년 10월에 99세의 나이로 입적을 하였다.


고 서용준 스님은 계룡산에 입적한지 70년 제석사에서 40년간 오직 국수로만 식사를 해결했다고 한다.












각왕전 옆 중앙계단을 따라 위로 올라가면 제석사의 동굴이 나온다.
















제석사의 동굴

 

제석사 위에는 바위동굴이 하나 있는데 용구추(龍口湫)라고 한다. 

이곳에서 이성계가 계룡산에 도읍을 정하는 것을 허락해 달라고 산신기도를 올리던 장소라고 알려져 있다.

기도를 올리던 이성계는 계룡산은 미래의 정도령의 터이니 물러가라는 산신령의 호통을 듣고 이곳 신도안에 정하려던

수도를 한양으로 가게 되었다고 한다.

 

도선국사와 무학대사가 다녀갔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곳은 국내 제일의 산신기도도량이라고 한다.



제석사의 산신
































산신각 주변의 조망
















점심공양을 위해 각왕전으로 내려가다.
















점심공양


올해는 산악회에서 단체로 수십명씩 안와서 다행이다...






















제석사에서 만난 여행과산행 회원이신 바그너님


3년 전 본인이 올렸던 계룡산 제석사 산행이 너무나 좋아서 그 이후로

매년 석가탄신일날 혼자서 제석사에 온다고 한다.


반갑습니다. ^^



후식
















































제석사를 충분히 둘러본 후 제석사 뒷문을 통해

암용추 폭포로 가다.























계룡산 암용추


계룡산 숫용추-암용추 전설

 

남선면 용동리와 부남리에 가보면 계룡산의 정기를 받은 바위로 된 못(웅덩이)이 있는데 용화사 앞산 계곡에 있는 못을 암용추라 하고 신도안에서 서문다리로 가는 계곡에 못이 또 하나 있는데 이를 숫용추라 한다.

옛날 계룡산 땅속에 암용과 숫용 두 마리가 사이좋게 살고 있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들은 때가 되면 하늘로 올라갈 것을 기대하면서 즐겁게 살아가고 있었다. 두 용은 계룡산 밑을 파서 산의 물을 금강으로 흐르게 하였고, 땅속으로는 신도안에서 갑사·동학사·마곡사 쪽으로 어디든지 다니면서 행복하게 살았다. 명산의 정기를 받아서인지 참으로 깨끗한 용들이었고 항상 하늘에 올라갈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당시 땅위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이무기들은 추잡하게 살면서 그들도 하늘의 부름을 기다렸다. 용들은 그런 이무기들을 가소롭게 여겨 추잡한 행동을 보지않으려고 몸을 땅위에 전혀 나타내지 않은 채 굴속과 물속에서만 지냈다. 용들은 몹시 비가 내릴 때나 천둥이 칠 때 혹시 하늘에서 자기들을 부르지나 않을까하고 굴속에서 눈을 내놓고 하늘을 바라봤다. 하루는 몹시 비가 내리는데 밖을 내다보는 것을 잊고 땅속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때 하늘에서 용들을 불렀지만 대답이 없어 더 큰 목소리로 부르자, 그때서야 알아 듣고 굴속에서 밖을 내다보았다. 「대체 너희들은 하늘의 부름을 거역하려는 것이냐」「너희들은 항상 땅에서만 살려느냐」하고 하늘에서 추상같은 호령이 떨어졌다. 용들은「잘못했습니다」「한번만 용서해 주십시오」하고 빌면서 애원했다. 그러자 「땅의 껍질을 벗겨라. 그리고 언제든지 하늘에 올라올 수 있도록 준비를 해놓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한가지 주위해야 할 것은 너희들의 정(情)이 너무 지나치니 따로 따로 자리를 정해 다시는 만나지 말아라」하는 소리가 하늘에서 들려오더니 날씨가 잠잠해졌다.

 

그들은 헤어지기가 아쉬웠지만 하늘의 뜻을 거역할 수 없어 작별을 고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서로 하늘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제각기 장소를 정해 땅을 파기 시작했다. 암용은 물이 꼬불꼬불 흘러 내리다가 맑은소(沼)를 이루는 장소를 택해 땅을 파기 시작했다. 숫용은 계룡산의 정기가 흐르듯 맑은 물이 흐르다가 폭포를 이루는 아래쪽 계곡에 자리를 잡고 땅을 파들어 갔다. 이제는 하늘에 올라갈 준비가 거의 다 되었다.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천둥 번개와 함께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용들은 이제는 하늘로 올라갈 수 있는가보다 생각하며 못에서 살그머니 머리를 내미니 하늘에서 「때가 되었으니 어서 올라오너라」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 후 두마리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본 이곳 사람들은 암용이 하늘로 올라간 자리를 암용추, 숫용이 올라간 자리를 숫용추로 불렀다. 또한 암용추와 숫용추는 옛날에는 땅속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어 두용이 땅속을 통해 서로 만났다고도 전해진다.

 

 

관련기사

계룡산이 감추어 놓고 싶은 신비 숫용추-암용추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776461


암용추 바로 아래에는 움푹 패인 듯한 구덩이가 있는데 용의 알이 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계룡건설 이00 회장이 이곳에서 용의 알 모양을 한 돌을 몰래 꺼내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용의 알이 있다는 곳 좌측 벽면에는

이용이란 글자가 음각되어 있다.




석가탄신일날 나홀로 다녀가는 계룡산 제석사...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