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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숭산 수덕여관과 나혜석,김일엽,이응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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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 기행

2008.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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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내리는 수덕여관 <_FONT><_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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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사 환희대(歡喜臺)는 "청춘을 불사르고"의 저자 김일엽의 흔적이 남아 있는곳이고 매표소앞을 지
나 왼쪽에 자리잡은 수덕여관은 한국 최초의 여류 서양화가였던 나혜석의 흔적이 서려있는곳입니다
 
나혜석과 김일엽은 1896년생으로 같은 시대에 태어났고 또 김일엽이 출가 했을 당시 수덕여관에 머물
면서 이혼의 상흔를 달래고 있었던 시기였죠. 그럼 수덕여관에 한 번 들어가 보겠습니다  

 

 최근에 새로 조성된 덕숭산 수덕여관

 
수덕여관에 들어섰을때도 비는 꾸준하게 내리고 있었으며 여관의 모습은 이미 옛 모습이 아니었죠
허물어져 가던 예전의 수덕여관을 걷어내고 새로운 수덕여관이 조성 되었는데 그래도 모양은 예전의
모습과 비슷하게 만들어 놓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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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내리는 수덕여관 <_FONT><_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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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새로 조성된 덕숭산 수덕여관 <_FONT><_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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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바로 고암(顧菴) 이응로(李應魯) 화백이 1944년에 구입하여 1959년 프랑스로 가기 전까지 작
품 활동을 했던곳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여류화가 나혜석은 이응로 화백이 이 여관을 구입하기 전부
터 잠시 머물다 간 곳이기라고도 하네요  
 
작품활동을 하려고 머물다 간 것이 아니라 당시 수덕사로 출가한 친구인 김일엽을 �아 들어왔던 것
이고 또 이혼의 상흔을 달래며 수년간 머물렀던 곳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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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여관 뒷 부분에 세워져 있는 이응로 화백 안내문판 <_FONT><_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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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는 수덕여관 <_FONT><_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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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평안남도 용강에서 태어난 김일엽은 이화여전에서 공부한 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 신여성이
었고 그도 나혜석과 같이 자유분방하고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가 33세때인 1928년에 불가에 들었습니
다  
 
그후, 1933년 만공스님을 만나 38세의 나이로 수덕사의 견성암(지금의 환희대)에서 머리를 깍고 여승
이 되었죠
 
그 당시 이곳에서 여승이 된 친구 일엽을 찾아온 신여성 서양화가 나혜석은 일본 유학후 부유한 집안
의 남편과 세계여행을 떠났었다고 합니다. 그 후 파리에 머물며 그림 공부를 하던 중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빠지게 되고 결국 파경을 맞게 되었죠
 
이 후 수도승이 되려고 수덕사를 찾았으나 만공선사로부터 중이 될 재목이 되지 못한다 하여 허락을
얻지 못하고 일주문옆 수덕여관에 수년간 머물며 떠돌아 다니다 결국, 무연고자 병동에서 숨을 거두
고 말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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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숭산 수덕여관 우물터 <_FONT><_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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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는 수덕여관 <_FONT><_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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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는 수덕여관 <_FONT><_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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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는 수덕여관 <_FONT><_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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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껴 무엇하리 이 청춘을" 이란 에세이집 목차 - 1980년 문학 창조사에서 초판 발행 <_FONT><_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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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암선생이 쓰던 방 - 덕숭산 수덕사 <_FONT><_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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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청년화가였던 고암(顧菴) 이응로(李應魯) 화백은 선배화가를 만나기 위해 수덕여관을 드나들면
서 나혜석과도 우정을 쌓았다고 합니다. 이응로 화백은 1904년생이니 나혜석 보다는 8년 후배였죠
 
그후, 이응로 화백은 해방이 되기 바로전 해인 1944년에 이 수덕여관을 구입하여 이곳에 살면서 작품
활동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응로 화백은 본 부인 박귀희를 두고 젊은 후배화가와 파리로 유학을 떠
게 되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 이응로 화백은 65세가 되던해인 1969년에 동백림 사건에 휘말려 2년간
교도소 수감생활 했다고 합니다. 그때 본 부인 박귀희는 감옥에서 고생하는 남편의 모든 뒷 바라지를
해 주었다고 하죠
 
하지만 이응로 화백은 또 다시 파리로 떠났는데 그것이 마지막 모습이었다고 하네요. 아내인 박귀희
이제나 저제나 남편 오기를 학수고대하다 그만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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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암선생이 쓰던 방 앞에 전시된 묵화와 미술 소품 판매대 <_FONT><_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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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 합니다.....라는 글씨만 붙여 놓고 판매 하는 사람은 어디에 있는지 그 흔적 또한 오리무중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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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숭산 수덕여관 <_FONT><_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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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낡은 수덕여관을 몽땅 헐어 버리고 새로 단장을 하더니 이제 스님들 작품 전시실로도 이용되
고 있었습니다. 이곳 스님들 작품 전시실은 "촬영을 금 합니다" 라는 문구가 붙어 있어 촬영을 하지는
못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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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숭산 수덕여관 <_FONT><_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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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문 쪽에서 바라 본 수덕 여관 <_FONT><_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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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문 쪽에서 바라 본 수덕여관 <_FONT><_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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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숭산 수덕사 일주문 <_FONT><_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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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주문을 지나자마자 왼쪽으로 들어가면 이응로 화백이 작품활동을 했었다는
수덕여관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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