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강해

구름 나그네 2015. 2. 8. 23:10

매와 사랑

고린도전서421

창세기 4장에서 라멕만이 하나님 행세를 했다면 지금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노골적으로 라멕 행세를 합니다.

사사기2125절을 보면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사람이 각각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다가 힘이 없으니 왕을 요구했습니다. 소견에 옳은 대로 하고 싶은데 좀 더 강한 힘을 갖고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고 싶은 겁니다.

 

요한복음6장에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임금으로 세우려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공짜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입니다. 제발 내가 편한 세상을 만들어 달라는 겁니다. 제발 내 욕구를 채워 달라는 거지요. 내 욕구를 채워주는 자야 말로 나의 왕이 될 만한 자격이 있다는 겁니다.

 

누가복음1614절을 보면 바리새인들이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고 하십니다. 이들이 왜 돈을 좋아하겠습니까? 돈이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돈만 있으면 권력은 얼마든지 살수가 있습니다. 돈이 나의 마음가짐, 자세, 다른 사람이 나를 대하는 태도 모든 것들을 결정짓기 때문이지요.

 

돈을 좋아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웃음거리입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이 돈이 안 됩니다. 나의 욕구를 채워줄 수 없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나의 욕구를 문제 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가는 길에 방해가 되는 걸림돌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게 되면 매라는 것이 나오고 사랑과 온유한 마음이 나옵니다.

이미 나 자신이 왕의 자리에 있는 상황에서 매라든지 사랑과 온유한 마음이라는 것은 어떤 식으로 들릴까요?

 

네가 뭔데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네가 뭔데 매를 갖고 온다고 하고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온다고 하느냐고 하지 않겠습니까?

 

기원전551년에 조로아스터교가 만들어졌는데 이 종교의 특징은 유일신인 빛의 신 아후라 마즈다를 섬기는데 천국과 지옥은 인간이 무엇을 선택하는가에 따라 달렸다는 겁니다.

유일신이지만 내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선을 택하느냐, 악을 택하는가가 된다는 겁니다.

 

조로아스터교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오늘날 교회도 그렇습니다. 천국과 지옥은 내가 어떻게 행하느냐에 따라 달렸다고 가르칩니다. 즉 내가 믿으면 천국가고 믿지 않으면 지옥가며, 내가 봉사와 헌금, 전도를 많이 하면 복을 받고, 그렇지 않으면 저주 받는다고 설교하지요. 인간의 행함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된다고 가르치는 것을 보면 조로아스터교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에 대해서도 내가 듣고 싶은 것은 듣고 듣기 싫은 것은 듣지 않겠다는 겁니다. 주도권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매를 갖고 갈까 아니면 사랑으로 갈까라고 말하면 니가 뭔데 매를 갖고 오고 니가 뭔데 사랑으로 오겠다는 건가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내가 알아서 나의 신앙을 지키고, 내가 알아서 신앙생활 잘하는데 네가 왜 나의 신앙생활에 감놔라 콩놔라 하느냐고 하지 않겠습니까?

 

나도 나름대로 믿음이 있고, 수준 높은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데 내가 당신의 매나 사랑이 왜 필요한가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이 정도 되면 누구의 잔소리 듣지 않아도 된다고 합니다.

 

출애굽기5장을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을 바로 왕에게 보내어 내 백성을 보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바로 왕이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여호와를 보내겠느냐라고 하지요. 그러면서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을 보내지 않겠다고 합니다.

 

자신이 강력한 힘을 소유한 왕 즉 신의 자리에 앉아 있는데 내가 누구 말을 들어야 할 처지에 있지 않다는 겁니다.

 

어차피 주님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 누구든지 바로 왕처럼 말할 수 있겠지요.

 

복음을 전해 보면 이런 반응이 나옵니다. 네 말이 진리라는 증거가 어디 있느냐고 말입니다. 세상에 수많은 목사들이 있는데 그들의 전하는 복음이 다 잘못 되었느냐고 말합니다. 즉 우리가 주님의 피를 전하기 위해 사용되어진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겁니다.

 

나름대로 자신도 가치가 있다는 겁니다.

 

오늘 설교 제목을 네가 뭔데라고 할까도 생각해보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무엇인데 매를 이야기 하고 사랑과 온유함을 말합니까? 사도바울이 주님이라도 됩니까? 이렇게 반박할 수 있잖아요. 아담안에 있는 자들은 성령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도바울의 말을 사도바울 개인의 말로 받아요.

 

사도바울이 말씀에 사용되어지고 있음을 알아야 하는데 그 생각은 하지 않고 네가 그렇게 잘났느냐라는 식으로 봅니다. 그러다 보니 말씀이 주님의 말씀이 아니라 사람의 말로 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십자가의 피가 들려지면 그 말씀이 주님의 음성으로 들려야 하는데 그렇게 들리지 않고 너만 잘났느냐? 네가 뭔데? 네가 전하는 것만 복음이냐라는 식이 되어 버립니다.

 

주님은 십자가의 피로 우리에게 다가 오신다는 것을 모릅니다. 저들은 주님을 어떤 존재로 생각합니다. 존재는 항상 보이지 않잖아요. 그러니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실 때 성령께서 하실 일을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책망하시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책망 받는 것 즉, 매를 맞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매를 갖고 온다면 기분 나쁘고 사랑을 갖고 온다면 기분 좋고 이런 것이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성도는 항상 주님의 피로 만나야 합니다. 주님의 피와 만나려면 항상 매를 맞아야 합니다. 매를 맞지 않으면 주님의 피와 만날 수가 없어요.

 

자기 잘났는데 무슨 주님의 피가 필요하겠습니까? 매 맞을 일이 없다는 것은 곧 자신의 행위가 항상 옳다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사랑과 온유는 어떻게 됩니까?

매가 곧 사랑과 온유의 모습입니다. 사랑과 온유가 곧 매를 들고 혼내는 겁니다.

 

사무엘하24장을 보게 되면 다윗이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 조사를 명하는 사건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인구조사의 출발지가 여호와라는 사실에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원인이 여호와시고 인구조사를 명한 자는 다윗 왕이고 벌을 받은 자는 다윗 왕이 아니라 칠만 명의 백성들이었습니다.

 

이 사건을 보면 우리들이 이해할 수 있습니까? 납득이 됩니까?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향해 진노하사 이스라엘을 치시려고 다윗 왕을 격동시켰다면 원인 제공자가 모든 책임을 져야 하지요. 그런데 그 책임을 지는 과정에서 다윗 왕이 사용되어지고 백성들 칠만명이 죽는 일이 발생합니다. 이게 무슨 사랑입니까? 이게 무슨 매입니까?

 

매를 때리려면 책임을 져야 할 자가 다윗 왕이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다윗 왕이 아니에요.

칠만 명의 백성은 누구 때문에 죽습니까? 다윗 왕, 다윗왕 때문에 죽지요. 그런데 다윗 왕을 격동케 한 분이 여호와라면 결국 여호와 때문에 칠만 명의 백성이 죽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우린 우리의 손가락을 누구에게로 향하게 되겠습니까? 여호와 하나님께로 향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다윗은 그 배경을 모릅니다. 단지 그는 인구 조사를 시켰을 뿐이요 그 결과로 칠만 명이 죽었고 그래서 그는 아라우나타작마당에서 값을 주고 산 것으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재앙이 그쳤습니다.

 

땅에서 드러나는 것은 이것이 전부입니다. 그런데 그 배후를 모르잖아요. 만일 그 배후를 알게 되었어요. 그러면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결국 하나님께서 죄짓게 만들어 놓고 책임은 인간에게 지우시네요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비웃지 않겠습니까?

 

선악과를 따먹고 아담이나 하와가 한 행동과 똑 같습니다. 실제로 그렇지요. 그런데 문제는 여호와께서 이렇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다윗은 무엇을 보여주는 역할을 합니까? 이스라엘이 재앙에서 살아남는 것은 화목제물 되신 예수님 때문임을 증거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겁니다.

 

결국 칠만 명의 죽음이나 다윗왕의 인구조사가 일어난 이유는 화목제물이 누구신지를 증거하기 위해 일어난 사건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주님께서 일으키신 사건이지요.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그러합니다. 어느 사건치고 인간의 손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없습니다. 믿음이 없는 자들은 항상 모든 일이 인간의 손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로마서에서 말씀하셨듯이 모든 것이 주로 인하고 주로 말미암고 주께로 돌아갑니다.

 

매를 맞는다는 것은 무엇을 잘못했기 때문에 매를 맞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히브리서에 의하면 아들이기 때문에 매를 맞는다고 합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참된 아들을 전하기 위해 매를 맞는다는 겁니다. 사랑이 되었든 매가 되었든 이 모든 것들은 곧 십자가의 피만을 드러내기 위한 조치들입니다.

 

이것도 모르고 인간들은 나 매 안 맞을래, 나 깨끗해 라고 우깁니다. 그렇게 되면 자랑할 것은 자기 자신 밖에 없습니다.

 

성도에겐 항상 매와 사랑이 있습니다.

 

우린 분류하고 싶어 하지요. 매는 어떨 때 맞는지, 사랑은 어떨 때 받는지.

이렇게 분류하면 내가 기분이 좋아요. 그리고 어떻게 하면 매 맞을 짓 하지 않을까를 연구하고 어떻게 하면 사랑 받을 지를 연구합니다.

 

이렇게 되면 결국 삶은 율법으로 가득찰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사랑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말씀을 통해 인간에게 남는 것은 법밖에 없는 겁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십자가 달리실 때 어떻게 행동했습니까?

모른다 하지요. 저주 맹세하잖아요. 다른 제자들을 대표해서 행동에 옮기잖아요.

 

그렇다면 우린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까?

처음부터 제대로 주님의 영을 주셔서 일을 시켰으면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 아니냐 할 겁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것이 그런 겁니다.

 

왜 실패라는 것을 사복음서에 담았느냐가 불만이 됩니다. 그런데 반드시 실패를 담아야 피를 증거할 수 있기 때문에 주님께서 그렇게 하신 겁니다.

 

고린도전서를 읽으면서 좀 이상한 점이 있지요.

왜 교회가 이 모양이 꼴이냐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했다면 뭔가 깔끔하게 제대로 된 교회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기대를 갖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지 주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이유와 우리가 기대하는 교회가 다른 겁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교회는 이데아입니다. 이상적인 교회. 내가 꿈꾸는 천국의 삶을 이 땅에 재현하는 교회를 생각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세우신 교회는 주님의 몸을 전하는 교회입니다. 즉 주님의 죽으심을 끊임없이 전하는 그런 교회로 주님께서 세우신 겁니다. 그래서 주님의 피가 철철 흘러넘치는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러니 서로 맞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교회를 사랑이 넘치는 교회로 만들려고 합니다. 책망받지 않는 교회로 만들려고 해요.

그래서 교회 이름을 서머나 교회라고 짓잖아요.

 

우리 교회는 책망 받을 것이 없는 교회로 만들겠다는 의도로 그렇게 짓습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된 교회 하나 밖에 없어요. 이렇게 말하니 또 주님의 몸된 교회라고 이름을 짓고. 이름을 어떻게 짓는 가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 이름을 지을 때 그가 어떠한 믿음을 갖고 있는지가 드러납니다.

 

그러니 주님의 피만을 전하는 교회가 되겠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우르러 보는 그런 교회, 칭찬받는 그런 교회가 되겠다는 그런 욕망으로 교회이름을 짓고 설교하고 교회에 다니는 겁니다.

 

아름다운교회를 싫어할 사람이 없지요. 그런데 주님은 아름다운 교회가 되지 말라고 합니다. 무슨 말인고 하면 십자가의 피만을 자랑하는 교회가 되라고 하세요.

 

주님의 피만을 자랑하려면 죄가 나와야 됩니다. 죄가 흘려 나오지 않으면 주님의 피가 증거될 수 없습니다.

 

레위기를 보게 되면 인간 자체가 더러움을 쏟아내는 자로 규정합니다. 그런 인간이 죄를 범하지 않을 방법이 어디 있습니까? 걸어 다니는 죄를 쏟아내는 기계인데 이 기계를 누가 말릴 수 있습니까?

 

그런데 인간들은 자신이 죄를 쏟아내는 기계라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얼마든지 말씀대로 살 수 있는 존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얼마든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이들에게 주님의 십자가는 지나간 아련한 추억거리일 뿐입니다.

매를 맞는 것이 사랑 받는다는 증거입니다. 십자가 앞에 늘 죄인으로 드러나는 것이 주님의 사랑을 받는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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