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강해

구름 나그네 2008. 9. 10. 10:46

짐승의 정체

다니엘8:1-27

3-4절을 보게 되면 길다란  두 뿔을 가진 수양이 나옵니다.

그런데 나중에 난 뿔이 먼저 난 뿔보다 더 큽니다.


이것의 힘은 굉장합니다.

서와 북, 남을 향하여 받으나 그것을 당할 짐승이 하나도 없습니다.

물론 이 짐승은 국가를 말합니다.


이 짐승의 손에서 능히 구할 이가 절대로 없습니다. 이 짐승은 마음대로 행하고 스스로 강하여집니다.  짐승이 마음대로 행한다고 하면 어떻습니까? 마음대로 날 띤다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하겠지요.

이렇게 보면 짐승이 행하는 꼴이란 우리들이 가히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그런데 이 짐승보다 더 강한 짐승이 등장합니다.

바로 한 수염소입니다.

이 수염소는 서편에서부터 왔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온 지면에 두루 다니되 땅에는 닿지 않습니다.  무엇이 땅에 닿지 않습니까? 발이 땅에 닿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발이 땅에 닿지 않을 정도로 빠르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그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알 수 짐작할 수 있습니다.

수염소에게도 여전히 뿔이 있는데 현저한 뿔이 두 눈 사이에 나 있습니다.


이 뿔은 수염소의 힘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수염소는  두 뿔가진 수양에게 분노한 힘으로 더욱 성내어 달려가서는 수 수양을 쳐서 두 뿔을 꺾어 버립니다.


처음 두 뿔가진 수양이 등장했을 때에는 그것을 당할 짐승이 하나도 없었고 지멋대로 행하며 스스로 강하여졌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을 가진 수염소가 등장했습니다. 수양은 수염소를 대적할 힘이 없습니다. 수양을 땅에 엎드러지고 짓밟힙니다. 그러나 이전에는 수양의 손에서 능히 구할 자가 없었는데 이제는 수염소의 손에서 수양을 구할 자가 없습니다.


이젠 수염소의 시대입니다.  그는 스스로 심히 강대하여 갑니다. 그런데 그렇게 강대해 갈 때에 그 뿔, 현저한 큰 뿔이 꺾입니다.  그리고는  또 다른 현저한 뿔 넷이  하늘 사방을 향하여 났습니다.


제 아무리 강력한 힘을 소유한 짐승, 나라라 하더라도 별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나라가 망하더라도 그와 같은 힘을 소유한 나라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하늘 사방을 향해 뿔이 났습니다.


하늘 사방을 향해 뿔이 났다는 것은 이 짐승이라는 것이 궁극적으로 싸우려는 대상이 하늘나라와 관련되어 있음을 우리들이 알 수 있습니다.


이마 다니엘을 통해 드러난 땅과 상관없는 영원한 나라를 떠올려 볼 때 우리는 짐승이 대적하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를 알 수 있습니다.


앞선 수양이나 수염소의 뿔이 비록 하늘을 향한 뿔을 가지고 있다는 표현을 하지 않았더라도 역시 짐승의 연장선이기 때문에 그들의 공격상대는 땅과 상관없는 영원한 나라, 뜨인 돌이 세우시는 영원한 나라임이 분명합니다.


9절부터 보게 되면 하늘을 향해 난 뿔 중 하나에게서 또 다른 작은 뿔 하나가 나옵니다.  이 뿔이 비록 작은 뿔이라고 표현되어지고 있지만 이 힘이 얼마나 강력해지는가를 우리들은 볼 수 있습니다.

남편, 동편, 그리고 영화로운 땅을 향해 심히 커질 뿐 아니라 이것이 하늘 군대에 미칠 만큼 그 힘이 커져서 그 군대와 별 중에 몇을 땅에 떨어뜨리고 그것을 짓밟습니다.


4절에서는  수양이 서, 북 남을 향해 공격을 하지만 지금은 동쪽 뿐 아니라 하늘군대와 싸움을 벌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힘은 하늘 군대를 이기는 모습을 보입니다.


하늘 군대라고 하면 우리는 무엇을 떠올립니까?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실 때 이들을 하나님의 군대라고 부릅니다. 어린양의 피로 싸신 하나님의 군대를 저 짐승이 무참히 짓밟는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11절에 보게 되면 스스로 높아져서, 즉 교만해져서  군대의 주재, 즉 하나님의 군대의 주재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께 드리는 상번제도 제하여 버립니다.


이뿐 아닙니다. 성소도 헐어버립니다.


이로써 우리는 짐승의 정체, 국가의 정체, 지금까지 나타난 느부갓네살이 다스리던 바벨론 나라나, 벨사살 왕의 나라나 다리오 왕의 나라의 정체를 완전히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이 짐승들이  어떻게 그렇게 강력한 힘을 갖고 교만하여져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하나님의 군대를 이길 수 있는가입니다.  그 이유를  12절에서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함께 읽어 봅시다.

“범죄함을 인하여 백성과 매일 드리는  제사가 그것에서 붙인바 되었고 그 것이 또 진리를 땅에 던지며 자의로 행하여 형통하였더라”

바로 범죄함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군대, 하나님의 백성의 죄로 인해 지금 포악하고 교만한, 강력한 힘을 가진 짐승이 세상에 등장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되면 수양, 수염소, 현저한 뿔 , 하늘 사방을 향한 뿔, 점점 강해져 가는 작은 뿔이라는 것의 존재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입니다.

범죄한 백성을 회개케 하기 위한 도구로써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내용은 너무나 짧게 표현되어 있고, 다시 그 짐승의 하나님을 대적함과 형통함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록함의 의도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 다음 구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성소와 백성이 내어준바 되며 짓밟힐 일은 이천 삼백 주야까지라고 합니다.

이 때에는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제 이 이상을 해석해 주십니다.


19절을 먼저 봅시다.

“가로되 진노하시는 때가 마친 후에 될 일을 내가 네게 알게 하리니 이 이상은  정한 때 끝에 관한 일임이니라”

이상을 주신 목적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분명하게 알려 주시고 계십니다.

그것은 끝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끝납니까?


이제부터 봅시다.

20절을 보게 되면 두뿔 가진 수양은 메대와 바사 왕들이라고 합니다.

21절에서는 털 많은 수염소는 헬라 왕이라고합니다. 큰 뿔은 그 첫째 왕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네 뿔은  네 나라가 일어날  것을 말하는데 그 권세는 처음권세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런 가운데 세상은 어떻게 됩니까?

네 나라 마지막 즈음에 패역자가 가득하게 됩니다.

물론 이전에도 패역자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네나라 마지막 즈음에는 패역 자들이 노골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런 가운데 한 왕이 일어납니다. 권모술수에 능한 왕이며 비상한 계략을 짜내는 왕입니다.

그래서 강한 나라들을 쳐 부수겠지만 그 권모술수와 계략은 궁극적으로 거룩한 백성을 멸하는데 사용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또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24절 상반 절에 보면 그 권세가 강할 것이나 자기의 힘으로 말이암은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니 그 권세의 사용은 무한정이 아니라 제한적임을 우리들이 알 수 있습니다.

25절을 함께 읽어 봅시다.

“그가 꾀를 베풀어 제 손으로 궤휼을  이루고 마음에 스스로 큰 체하며 또 평화한 때에 많은 무리를 멸하며 또 스스로  서서 만왕의 왕을 대적할 것이나 그가 사람의 손을 말미암지 않고 깨어지리라”

25절을 읽어 보니  다니엘2장에서 느부갓네살이 꾼 꿈과 그 해석이 생각나지 않습니까?


사실 다니엘서 2장에 나오는 느부갓네살 왕의 꿈의 구체적 내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만왕의 왕을 대적하는 짐승의 나라의 세움도 만유의 주님에 의해 세워졌고, 그 나라는  사람의 손을 말미암지 않고 깨어집니다. 그러나 그 나라의 세움과 멸망의 바탕에는 범죄한 주님의 백성들이 놓여 있다는 사실입니다.


짐승의 나라들이 세워지고, 다시 짐승에 의해 무너지고, 또 세워지던 것이 이제는 사람의 손이 아닌 주님의 손에 의해서 박살납니다.


자 이렇게 보게 되면 우리는 이제 다시 다니엘 8장을 해석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다 해석해 주셨다는 우리가 왜 또 해석해야 합니까?

그 이유가 27절에 나옵니다.

이미 다니엘을 통해 이상도 알려 주시고 해석도 해 주셨는데 그  뜻을 깨닫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본문과 해석을 본다고 해서 뜻을 아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8장을 어떻게 해석할 것입니까?

뜻을 깨달았습니까?


우리가 구약성경을 보면서 그 의미를 파악하는 방법은 한 가지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 한 가지 방법이 무엇입니까?

성령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는 어떻게 구약을 보게 하십니까?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구약을 보게 하십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구약 성경을 보면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보려고 하지 않고 자꾸 역사적으로 일어난 사건을 생각하면서 성경을 보려고 합니다.


그러니 그 뜻을 깨닫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입니다.

다니엘 8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놓여 있지요.

예수님이 십자가로 승리하셨음은 세상 나라가 끝장났다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그 권세는 지금도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어렵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으로 가보면 쉽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때 유대인들은 생각했습니다. 메시야가 오셨기 때문에 드디어 악한 로마황제를 멸하고 영원한 나라를 세울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다니엘의 예언대로 되어지는구나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더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나라를 향해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십자가를 향해, 죽음을 향해 달려가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니 유대인들은 실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조차 그 십자가의 길을 막으려고 합니다.

예수님이 죽으시면 다니엘의 예언대로 될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예수님의 죽으십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십자가로 다 이루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주님 되신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겠지요.

십자가로 다 이루셨으면 다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이루셨습니까?

여러분 다니엘서에 나오는 짐승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합니까?

마귀를 생각하게 되지요.


세상 나라의 지배자가 따로 있음을 우리들이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나라가 바뀌고 왕이 바뀌더라도 그 배후엔 마귀가 그들을 조종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의 궁극적 목적은 하나님의 군대를 대적하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데 있지요.


그래서 결국 하나님의 아들을 죽입니다.

시편2편을 보게 되면 하나님의 아들만 죽이면 자기들 세상이라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귀가 궁극적으로 노리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는데 있습니다.

물론 이것도 주님의 권세아래 있는 일입니다.


결국 세상 나라의 총화는 로마제국이었고, 본디오 빌라도로 대표됩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그런데 이 죽음은 자기 백성들의 죄를 담당하는 죽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십자가로 승리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승리는 당장 우리들이 다니엘서를 보듯이 눈에 보이는 승리가 아닙니다.


물론 이 승리는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온 천하에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주님은 마귀의 권세를 멸하셨습니다.  이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의 존재는 결국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즉 마귀의 권세와 주님의 권세의 싸움의 시현장이었고, 주님께서 승리하셨음을 보여주는 장소임이 드러난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린 다니엘서 8장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합니까?


주님의 말씀에 따라 그들의 권세는 끝장 난 것입니다.

우리의 눈에는 여전히 그 권세가 살아 있는 권세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는 그 시대를 사는 다니엘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왕이나 벨사살왕, 다리오 왕 의 지배아래 살았습니다.

그들의 말에 복종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들이 죽이면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님이 세상 왕들을 다스리시는 주님이심을 믿고 살았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들에게 하시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여전히 오늘날도 세상은 짐승의 나라에 의해 다스림을 받는 듯이 보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지신 예수님이 만유의 주님으로써 세상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이것을 믿고 사는 자가 성도입니다.

오늘날도 여전히 성도는 예수님이 십자가로 승리하신 만유의 주님이심을 증거하는 자로 이 땅에서 뽑힘을 받은 자로 살아갑니다.






 
 
 

다니엘 강해

구름 나그네 2008. 9. 10. 10:45

어디에 마음을 둡니까?

다니엘7:1-28

오늘 본문을 보면서 무슨 생각이 떠오릅니까?

먼저 2-8절을 보게 되면 다니엘이 본 이상에서 큰 짐승 넷을 볼 수 가 있습니다.


4절을 보게 되면 사자와 같은데 독수리의 날개가 있습니다.  사자와 같은데 그에게 독수리의 날개가 있다면 그 힘의 위력은 어느 정도 이겠습니까?


그러나 다니엘이 보는 가운데 두볼 사이에 그 날개가 뽑혔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처럼 두발로 서고 사람의 마음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강력한 힘을 소유한 짐승, 즉 왕이라도 사람처럼 유약한 존재로 됩니다.


5절에서는 곰과 같습니다. 이 곰도 여전히 강력한 힘을 소유합니다.


6절에서는  표범과 같은 짐승을 봅니다. 그런데 그 등에는 새의 날개 넷이 있고,  머리 넷이 있습니다. 여전히 강력한 힘을 소유하고, 무시무시한 모습을 가졌지만 머리가 넷이라고 하니 그 힘의 크기야 처음 짐승보다 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네 번째 짐승은 힘이 더 약할 수밖에 없겠지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비록 갈수록 힘이 약하게 보인다 할지라도 그 힘이라는 것은 너무나 강력합니다.


7,8절을 봅시다.

넷째 짐승은 무섭고 놀랍습니다.  이 짐승은 굉장히 강합니다. 뿐만 아니라 극히 강한 철이가 있어서 먹고 부서뜨리고 발로 밟습니다.

그런데 이 짐승은 전에 있던 세 짐승과는 다릅니다.

그리고 열 뿔이 있습니다.  그런데 뿔 사이에 작은 뿔이 나고 그런 가운데 먼저 뿔 열 중에 셋은 뿌리까지 뽑혀버립니다.

그런데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이 있고 입이 있어 큰 말을 합니다.


이것이 다니엘이 본 이상입니다.

여러분 보시기에 어떻습니까?


너무나 무시무시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2절부터 8절까지 자세히 읽어보면 결국 짐승으로 표현된 것들은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4절에서 사람으로 시작해서 8절에 사람의 눈과 입으로 끝나지 않습니까?


결국 사람이 왜 이렇게 짐승처럼 무섭고 악하게 행하느냐 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모습을 가인의 후손중 라멕에게서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가 행하는 모습이야 말로 하나님이 처음 만드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 짐승처럼 행세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행세는 자신을 하나님의 자리, 즉 하나님보다 더 높은 자리에 두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아벨과 같은 자는 죽임을 당하고 노아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는 무시를 당하며 살아갑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의 방식, 시집가고 먹고 마시고 장가가는 것에 푹 빠져 있을 때, 돈벌고, 자식 키우고, 취직하는 것에 목을 매고 있을 때 오직 무식한 자처럼 바보처럼 하나님의 약속 하나만을 붙들고 120년 동안에나 배를 만든 노아가 있었습니다.


그의 삶이 그 당시 주변 사람들로부터 어떤 대우를 받았겠습니까?


여러분 지금 다니엘이 본 이상이 의인 아벨이 살았던, 경험했던 그 시대의 악한 자들이나 별로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아셔야 합니다.


사실 다니엘의 이상을 보면서 사람들은 이런 유혹이 빠져듭니다.

첫째 짐승은 어느 나라이고 어떤 왕이냐? 그러면 둘째는, 셋째는, 넷째는, 열뿔은 , 뽑힌 세 뿔은, 그러면 작은 뿔은 어떤 나라인가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사실 다니엘서에서도 나라 이름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나라이름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고 하더라도 성경은 우리들의 호기심을 채워주는 책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성경은 관심이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아들되신 예수님이 주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천하에 드러내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아들되신 예수님의 주되심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범죄한 아담의 본성을 따라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그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내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에 관심을 둡니다.

쉽게 말하면 자신이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서를 읽으면서 장래의 예언에 대해서 나온다고 하니까 죄인들이 앞 다투어 장래사에 대해서 풀어 헤쳐 보입니다.

다 성경에 근거해 있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말하지 않습니다. 물론 말을 하기는 합니다. 양념정도로 말입니다.

9-12절을 함께 읽어 봅시다.

“내가 보았는데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그 옷은 희기가 눈같고  그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 보좌는 불꽃이요 그 바퀴는 붙는 불이며 불이 강처럼 흘러 그 앞에서 나오며 그에게 수종하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 시위한 자는 만만이며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 그 때에 나가 그 큰 말하는 작은 뿔의 목소리로 인하여 주목하여 보는 사이에 짐승이 죽임을 당하고 그 시체가 상한바 되어 붙는 불에 던진바 되었으며 그 남은 모든 짐승은 그 권세를  빼앗겼으나 그 생명은 보존되어  정한 시기가 이르기를 기다리게 되었더라”


짐승들이 발악을 해 보아도 심판주 되시는 인자 같은 분에게 불 심판을 받게 될 뿐입니다.

결국 13,14절에서 말씀하시듯이 인자 같은 분, 즉 예수님이 만유의 심판주이심을 증거하기 위해 짐승은 짐승의 역할을 열심히 수행한 것 뿐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너무 시시합니까?

너무 시시한 것이 아니라 사실이 그렇습니다.

짐승이 새끼를 낳아도 짐승입니다.

그래서 짐승에서 짐승으로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물론 이 짐승은 세상 나라를 말하며 왕을 말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마귀의 종인 인간입니다.


이들이 강력한 힘을 소유하여 세상이 주관자이냥 까불어 되지만 인자 같은 분이 오심으로 세상의 주인이 짐승이 아니라 인자 같은 분, 즉 예수님이심을 만 천하에 드러내십니다.


사실 느부갓네살 왕이나 벨사살 왕이나 다리오 왕들이 세상의 주관자이냥 행세해 보지만 그들은 결국 온 만유의 주님은 예수님, 인자되신 예수님밖에 없음을 잠시 등장해 사라짐으로 증거하는 증인들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우리들이 먼저 5장 6장을 보고 7장을 보니 얼마나 쉽게 7장이 이해가 됩니까?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이상의 해석을 주님께서 알려 주십니다.

15-27절입니다.


네 짐승은 네 왕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이 영원한 나라를 얻게 됩니다. 그 누림은 짐승들이 잠시 잠시 왕노릇 하는 그런 나라와는 완전히 다른 영원하고 영원한 누림입니다.


그런데 성도들이 영원한 나라를 얻기 전에 이 짐승들로부터 고난을 당합니다. 그런데 성도들의 힘으로는 이 짐승을 이길 힘이 없습니다.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가 오셔서, 즉 인자 같은 분이 오셔서, 예수님이 오셔서 성도들을 위해 신원하심으로 때가 이르러 성도가 나라를 얻게 됩니다.


여기에서 우리들은 좀 의아한 생각이 드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고 하면 성도들이 나라를 얻기 전에 짐승들로부터 고난을 당하고, 그 다음 인자가 오셔서 신원하심으로 성도가 나라를 얻는 것이 시간적 흐름이라고 들립니다.

그렇게 된다면 성도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이 없이도 존재 가능한가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 부분을 이렇게 보셔야 합니다.

다니엘과 같은 자가 고난을 받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증거하기 위해 고난을 받습니다.

다니엘이 어떻게 성도가 되었는가는 바로 예수님의 신원 때문입니다.

사실 짐승들의 공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인간입니다.

다니엘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때문에 그 고난 속에서도 예수님을 증거하며 살아갑니다.


자 이제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 봅시다.

성도가 나라를 얻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 성도는 넷째 짐승에 의해서, 나라에 의해서 괴롭힘을 당합니다.

이 나라는 하나님을 대적할 만한 위치에 있는 냥 행세를 합니다.

성도는 이런 짐승의 나라에서 한 때, 두때, 반때를 지냅니다.


그러나 짐승의 시기는 한 때, 두 때 반 때 뿐입니다.

이 때가 지나면 이들은 심판을 받습니다. 주님의 나라에 굴복하게 됩니다.


7장을 통해 우리들이 알 수 있는 것은, 짐승이 강력한 힘과 무서운 힘을 가진 나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나라는 인간의 나라입니다. 이들이 그 힘을 성도를 괴롭히는 데 사용하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성도는 고난을 당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신원으로 성도는 영원한 나라를 얻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으로부터 구원받는 자는 반드시 짐승들로부터 고난을 겪는다는 사실입니다.


고난이 없는 자는 성도가 아님을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시면서 지금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반드시 이 시기가 제한적이라는 사실입니다.

한때 두때 반 때 만이 짐승이 다스리는, 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시대라고 말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인자되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왜 아직도 성도는 고난을 받고 있고 짐승의 나라가 지속되는가입니다.


그 이유는 인자되신 분이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시어 주님이 되심으로 자신의 백성, 성도들의 죄를 대속하시고 구원하셨습니다.

이 이 시대는 누가 주님의 피로 구속받은 자들인가를 드러내는 시대 ,즉 심판의 시대입니다. 아직 불 심판이 일어나고 있지는 않지만 인자되신 주님이 이 땅에 초림 하시어 부활 승천하시어 주가 되셨기 때문에 이미 세상은 그 주님에 의해서 심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지금도 여전히 한 때 두때 반 때와 같은 상황 속에서 성도들은 고난 받으며 구원 얻은 자임을 증거하고 짐승들은 성도들을 핍박하면서 왜 불 심판을 받아야 하는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짐승, 열뿔, 작은 뿔의 해석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다니엘이 당한 고난이나 스데반이 당한 고난은 모두가 다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당하는 성도의 고난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느부갓네살의 꿈을 칠년이라 하지 않고 일곱 때라는 표현을 했고, 오늘 본문에서도 한 때 두때 반때라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9장에 가면 70이레라는 것으로 표현되어집니다.


그러니 우리의 관심을 주님되신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에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따른 곳에 마음을 두는 것은 짐승에게 오히려 속는 꼴입니다.

 







 
 
 

다니엘 강해

구름 나그네 2008. 9. 10. 10:45

다니엘의 고난

단6:1-28

오늘은 일곱 때를 지나는 가운데 일어나는 일의 좀더 구체적인 내용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니엘의 해석대로 메대사람 다리오가 나라를 얻었습니다.

이때 다니엘은 총리 세 사람 중 한 사람으로 뽑혔습니다.

다리오 왕이 다니엘을 총리로 세운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오늘 본문에서 읽었듯이 자신에게 손해가 없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다니엘은 다리오 왕의 일종의 소모품이라고 보입니다.


그런데 우리 같으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갑자기 무슨 말이냐고요?


다리오 왕과 같이 자신의 이익밖에 모르는 왕이 다스리는 곳의 관직을 맡겠느냐는 것입니다. 아마 신앙심이 아주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진짜 좋은지는 모르지만.


하나님도 모르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사는 다리오 왕을 위해 어떻게 총리직을 맡느냐?

결코 그럴 수 없다.

나 같으면 농사나 짓고 살겠다 라는 식의 말을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서 그 사람은 한 술 더 떠 이렇게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그 총리직에 있으니 결국 사자 굴에 던져지는 위기를 맡지 않았느냐고 말입니다.


말이 맞는 것 같지요. 그러나 이런 신앙관은 엉터리입니다.

그가 비록 농사를 짓는다 해도, 그 농기계나 옷 등은 어디로부터 나옵니까?


주님께서는 우리를 이 세상에 살게 하셔서 빛의 자녀로 살게 하셨습니다. 주님의 증인으로 살게 하셨습니다.


다니엘은 다리오 왕의 지시에 그대로 따릅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맡은 임무에 충실할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과연 다리오 왕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통치를 했느냐는 것입니다.

율법에 근거하여 나라를 다스렸는가 입니다.


분명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직 모든 일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느냐에 초점을 맞추어 나라를 다스렸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런 질문을 다시 던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니엘은 악에게 동참하지 않았느냐?

얼마든지 이런 말을 할 수 있겠지요?


그러면 우리는 요셉을 생각해 봅시다.

그도 역시 애굽의 총리대신으로 살았습니다.

그 당시 바로가 과연 하나님의 명대로 행했습니까?


이제 우리가 예수님 시대로 가 봅시다.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로마제국을 무너뜨리려고 하셨습니까?

잘못되었으면 바로 잡아야 하지 않습니까?


바울은 예수님과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바울도 결코 그 당시의 노예제도나 국가가 통치하는 것에 대해서는 별 말이 없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여러분이 괜히 믿음이 좋은 냥 뽐내려고 하지 마세요.

그러한  모습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모습이 아닙니다.


그냥 자신이 가진 직장에서, 가정에서 사시면 됩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주님만 믿으면서 말입니다.


직장이 나를 살리는 것이 아니고, 사장이 나를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성도는 오직 살아계신 주님만 믿고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다니엘을 보세요.

그는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자신의 자리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잘 먹고 잘살고, 오래 사는 것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주어진 일에 충실할 뿐입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 중심은 오직 주님께만 향해 있습니다.


왕이 비록 나를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고 하지만, 나는 그 일을 담당하면서도 주님만 믿고 살아가겠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왕을 어떻게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닙니다.

왕을 어떻게 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주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을 더욱더 총명한 자로 세우십니다.

그러는 가운데 다리오 왕은 그를 총리 중 으뜸으로 세우 나라를 다스리려고 합니다.

너무 이상하지 않습니까?

왜 하나님께서는 악한 왕을 돕도록 다니엘을 그렇게 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뒤로 가면 나옵니다.

다리오 왕이 다니엘을 총리들의 으뜸으로 세워 나라를 다스리려고 하니까 어떤 일이 펼쳐집니까?


총리들과 방백들이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보기에는 총리들과 방백들이 왜 가만히 있지 못할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이들이 왜 다니엘을 싫어할까요?

시기가 나서 일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요.


결국 이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준수하는 다니엘을 다리오에게 고소하기 위해 작전을 짭니다.

그 작전은 한 율법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 율법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삼십일 동안 왕외에 다른 어떤 신, 사람에게 무엇을 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는 것입니다.


여러분 총리들과 방백들이 만들어낸 율법이 너무나 의외의 것이 아닙니까?

이것을 통해 우리들은 총리들과 방백들, 그리고 이것을 허락하는 다리오 왕의 중심을 읽어 볼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율법이라는 것이 자신을 위할 때에만 허용하겠다는 것입니다.

다리오 왕은 다니엘을 이용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이 자신의 일에 간섭한다면 그는 하나님이라도 언제든지 무시하겠다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습니다.


총리들과 방백들이 다니엘을 고소할 조건을 찾는 그 마음속에는 근본적으로 살아계신 주님을 거절하는 마음에서 다니엘을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참 희한하지요?

총리들과 방백들은 어쩌면 다니엘이 시기 나서 다니엘을 죽이려고 했는지는 모릅니다마는 그 근본 바탕엔 주님을 대적하는 마음이 쫙 깔려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다리오 왕이 한 율법을 세워 삼십일 동안 아무 신이나 사람에게 구하는 것을 금하는 자는 사자 굴에 던져 넣는 것을 알고도 여기에 개의치 않습니다.

그는 늘상 행하던 대로 예루사렘을 향해 하루 세 번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이제까지는 총리의 일을 하면서도 주님을 믿는데는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없었지만 다니엘은 주님만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 중에 문제가 생겼지만 그는 여전히 주님만 믿고 있습니다.

결국 다니엘은 사자 굴에 던져짐을 당합니다.


이것이 끝이 아니지요.

다리오 왕은 금식까지 하고 그 다음날 다니엘을 찾습니다.


왜 다리오 왕이 이렇게까지 합니까?

그것은  다니엘이 있어야 자신에게 많은 이익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자 굴에서 다니엘은 구원을 받지만 다니엘을 모함한 자들은 사자들의 밥이 됩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들은 설교 서두에서 일곱 때가 지나는 동안 일어나는 일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한번 보자고 말씀드렸습니다.


일곱 때라는 것은 짐승이 다스리는 시대로서 성도는 그 가운데 밥을 먹고 살면서 오직 주님만을 믿는 삶 때문에 고난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죽음의 자리에 넘겨집니다.


그러나 주님의 약속대로 성도는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l

주님께서는 성도를 죽음에서 다시 살리시고, 그 악한 자들은 심판하십니다.


다니엘은 세상에서 떠나 따로 살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주는 그 관직을 그대로 갖고 삽니다.

이런 모습은 믿음 없는 자의 모습과 동일합니다.


그러나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은 철저히 그는 주님만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믿음 없는 자는 철저히 자신의 야망, 이익을 위해 살아갑니다.

이런 중에 주님만 의지하는 성도는 고난을 받게 됩니다.


어떤 식으로 고난을 받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 모습이야 얼마나 다양하겠습니까?

그러나 이것이 절망이 아닙니다.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은 오히려 성도이겐 기쁨이며 감사의 이유입니다.


성도가 이 땅을 살면서 고난 받고 그 고난 받고 죽음의 자리에 넘기우는 것이 성도에게 기쁨이고 감사의 이유인 것을 우리들은 오늘 본문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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