엣세이

구름 나그네 2020. 2. 28. 10:34

말의 지혜와 십자가의 도(말씀)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을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왜냐하면 십자가의 말씀이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7-18).”

 

이 본문에 말씀이 나옵니다. 개역성경에는 라고 번역된 단어입니다. 이 두 단어가 동일한 단어 로고스(lovgo")입니다. 앞에 나온 것은 소유격이고, 뒤에 나온 것은 주격이라는 차이 뿐입니다.

 

말의 지혜는 십자가를 헛되게 합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말씀은 멸망과 구원을 발생시킵니다. 달리 표현하면 심판 주께서 친히 천국과 지옥을 보내신다는 말입니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십자가의 말씀()을 말의 지혜로 만들어 버립니다. 말의 지혜란 것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말의 지혜를 말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십자가의 말씀을 전하면 구원과 멸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전도를 들으면 구원이며 자신의 전도를 듣지 않으면 멸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은 자신이 누구 소속인지 모릅니다. 자신이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릅니다. 이와 달리 악마는 자신이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 지를 알고 있습니다.

 

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4:34).”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마귀와 관계를 회복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마귀가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고 하는 겁니다. 당신과 우리가 좋은 관계 맺을 리 없다는 겁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끊어진 것을 죽음이라 합니다. 그 사실을 마귀는 알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들을 멸망하러 온 것도 압니다. 또한 하나님의 거룩한 자라는 사실도 압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이러한 사실을 아무것도 모릅니다. 인간들이 모르는 것을 마귀는 예수님 앞에서 큰 소리로 말합니다.

 

우리들 같으면 계속 소리 질러라 할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전도해야 상급을 많이 받고 전도 많이 하면 천국을 확실히 확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말하는 마귀를 꾸짖으시면서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합니다.

 

마귀는 자신의 실상을 제대로 알고 있습니다. 이와달리 이 세상에 사는 인간들은 자신의 실상을 모릅니다. 마귀는 예수님이 누군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예수님이 누군지 모릅니다. 마귀들은 자신들이 거룩한 자에 의해 멸망 당할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자신이 예수님에 의해 멸망당함을 모릅니다. 아니 인간들은 영원히 몰라야 합니다. 그래서 꾸짖으시고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하신 겁니다.

 

사람들은 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는지 그 이유를 몰아요. 왜 모를까요? 인간들은 말의 지혜를 갖고 접근하기 때문입니다. 선악을 아는 지식으로 접근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수집하여 구원 얻는 길을 만듭니다. 이것이 바로 말의 지혜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말씀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심판 주되신 분이 살아계셔서 친히 자기 백성을 구원하고 그렇지 않는 자는 강력하게 밀쳐버립니다. 악마에게 속한 자는 이것을 모릅니다.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후 4:4).”

 

마귀는 자신의 일을 해야 합니다. 이 세상 신이 눈을 어둡게 했기 때문에 복음이 가려진 겁니다. 그러니 이 세상 신이 눈을 가렸다고 생각지도 못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자들이 전하는 복음이 말의 지혜로 전하는 복음이 때문입니다. 도리어 눈이 밝아졌다는 겁니다.

 

말의 지혜로 전하는 복음의 특징은 역사에 기대를 겁니다. 역사에 기대를 걸겠다는 것은 여전히 미완료라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믿음으로 구원 얻기를 내세웁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습니다. 이 세상은 다 이루심이 드러나는 현장일 뿐입니다. 현장검증하는 장소가 지금 우리들이 살아가는 곳입니다.

 

말의 지혜로 복음이라 말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모두 이 세상 신에게 사로잡힌 자들입니다. 이들은 주의 자리에 앉아서 천국과 멸망에 대한 결정권을 행세합니다. 이들로부터 말의 지혜를 듣는 자들도 동일합니다.

 

십자가의 말씀은 비밀입니다. 이 비밀은 비밀을 안 자들에게만 비밀이 됩니다.

 

 

 

 


 
 
 

엣세이

구름 나그네 2018. 3. 26. 00:17

요 1:8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자라."

빛을 증거하는 자는 반드시 자신이 빛이 아님을 말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증거한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을 빛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기에 자신들은 빛이라는 겁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너희'를 자신으로 곧장 적용합니다.
그래서 자신들을 빛이라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이런 자들이 마귀를 아비로 둔 바리새인과 같은 자들입니다.

그들이 자신을 빛이라고 하는 이유는 자신들이 예수님을 믿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살기 때문에 빛이라고 합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 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엡 5:8-9)."

이 말씀에 근거하여 그렇게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의 의미는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예수님 앞에서 세리와 창기는 곧 빛 앞에 선 세리와 창기입니다. 이들을 두고 빛의 자녀들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들의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은 십자가의 피 공로를 제대로 드러내는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바리새인이 주장하는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은 자기가 의롭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빛되신 예수님 앞에 빛으로 드러난 빛의 자녀들은 죄의 중의 괴수임을 고백합니다.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자녀들보다 더 지혜로우니라(눅 16:8)."

책망 받을 거리가 있는 자만이 빛의 자녀입니다. 이들은 십자가만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책방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나니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이니라(엡 5:13)."

 
 
 

엣세이

구름 나그네 2017. 12. 22. 10:12

인간들은 자기를 공격하면 참지 못한다. 너희 아비가 마귀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잠자고 있던 그들의 본심은 들켜 버렸다.

하나님 한분 만 믿는다고 하는 자들의 본심은 하나님 한 분을 죽여야만 자기 가치가 인정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다.


 생존세계에서 생명 세계로 넘어오지 못한 자들은 생존 세계가 마치 천국이냥 말한다. 예수님은 분명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하지 않았다고 하셨는데 저들은 그 나라를 이 땅의나라로 바꿔치기 한다. 물론 그 최종 목적은 돈을 바치게 해서 자신의 왕국, 즉 천국을 만드는데 그 목적이 있다. 천국의 주인되는 자신을 섬기는 자들을 만들기 위해 그들은 말씀해석이라는 명분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간다.


어차피 이들과 한 통속인 인간들은 이들의 요청에 부응할 수 밖에 없다. 믿음의 출발이 자신이기에 그 출발점을 인정해 주는 곳은 그 어디든지 따라 나선다.


기존 교회는 너무 무식하다. 성경을 너무 추상적으로 푼다. 성경에 대해 질문하면 목사는 믿으라고 윽박지른다. 궁금증을 해소해 주지 못한다. 여기에 구원의 확신을, 말씀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제공해 주는 집단이 있다. 끌린다. 모든 질문을 다 들어 준다. 사실 그 질문을 받는 쪽은 이미 그들의 상태를 다 알 고 있다. 그 지식에 대한 갈구를 해소해 주면 저 사람은 내 사람이 된다는 사실을.


교인들이 질문 해 봤자 그 수준은 이미 정해져 있다. 논리와 합리적 사고방식으로 답변해 주면 이들은 믿는다.

새언약을 마음에 생각에 새긴다고 하셨다.  현재 한국 교인들은 모두 이렇게 생각한다. 말씀의 체질화.


실제로 모든 교회가 이것을 부르짖는다. 그런데 어느 누구하나 성경 말씀을 말씀대로 가르쳐 주는 곳이 없다. 그러니 말씀의 체질화는 공허한 외침으로 들릴 뿐이다. 그런데 여기에 바리새인들이 등장한다. 말씀을 완벽하게 풀어준다. 그 풀어준 말씀을 완벽하게 외우고 익혀서 시험에 통과하게 되면 천국 백성이란다.


참 쉽다. 그런데 이런 짓을 이미 바리새인들이 다 했는데 교인들은 모른다. 그것도 모르고 성경공부하고 성경 시험쳐서 합격하면 천국백성이다. 사실 이런 짓은 한국교회 전체가 이미 유치원수준에서 다루었던 문제다. 학습 세례를 좀더 심오하게 만든 체계가  바로 이런 것들이다.


그러니 기존교인들 목사들은 아무 저항없이 여기에 합류한다.


모든 이단들은 이미 믿음을 자신으로부터 시작했기에 그 모양은 다르지만 동일하다.


사람을 좋게 하는 것은 복음이 아니라고 했는데.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단에 빠지는가?

그들은 이단이 아니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참 진리요 생명의 길로 간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자신은 죄인 중의 괴수라고 한다. 자신이 십자가의 원수라는 말이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 아닌가?


예수님 앞에 구원받은 자들은 모두 다 죄인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예수님앞에 의롭다하고 하는 자들, 나는 이단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자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다.


자신의 가치를 조금이라고 손상시키는 자가 있다면 가차없이 죽인다.


이들이 바로 처음부터 살인한 자다.

이들은 예수님의 피에 경련을 일으킨다.


예수님의 피를 말씀으로 대체함으로 그들은 자신이 헛됫 자들이 아니라 참으로 가치 있는 자라고 선언한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예수님의 피는 아무른 도움이 되지 못한다. 위로도 되지 못한다. 능력도 안된다. 그러니 예수님의 피를 버리자.


우리에게 힘이 되고 도움이 되고 위로가 되고 능력이 되는 말씀으로 무장하자.


오늘도  주님은 말씀에 무장한 저들에 의해 무참히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