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의 이야기

도토리 깍지 2013. 12. 19. 11:07

 

 

 

 

 

 

너를 사랑한다 / 강은교
 
 
 

그땐 몰랐다

빈 의자는 누굴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의자의 이마가 저렇게 반들반들해진 것을 보게

의자의 다리가 저렇게 흠집 많아진 것을 보게
그땐 그걸 몰랐다

신발들이 저 길을 완성한다는 것을
저 신발의 속가슴을 보게

거무뎅뎅한 그림자 하나 이때껏 거기 쭈그리고 앉아
빛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게
그땐 몰랐다
 


사과의 뺨이 저렇게 빨간 것은
바람의 허벅지를 만졌기 때문이라는 것을
꽃 속에 꽃이 있는 줄은 몰랐다

일몰의 새떼들,
일출의 목덜미를 핥고 있는 줄을 몰랐다


꽃 밖에 꽃이 있는 줄 알았다
일출의 눈초리는
일몰의 눈초리를 흘기고 있는 줄 알았다


시계 속에 시간이 있는 줄 알았다
희망 속에 희망이 있는 줄 알았다


아, 그때는 그걸 몰랐다
희망은 절망의 희망인 것을
절망의 방에서 나간 희망의 어깻살은
한없이 통통하다는 것을

너를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