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트레킹)

가을하늘 2020. 12. 21. 03:18

장성호 수변길

 

여행일 : ‘19. 12. 1(일)

소재지 : 전남 장성군 장성읍

코 스 : 장성호 입구→댐 관리소→출렁다리→장성호 입구(소요시간 : 3km/ 1시간 남짓)

 

함께한 산악회 : 가족나들이

 

특징 : 벌써 1년 전이다. 광주에서 살고 있는 남동생으로부터 딸을 결혼시킨다는 연락이 왔다. 당일치기로 다녀오기에는 다소 무리인 거리이다. 그래서 하룻밤을 광주에서 머물 수밖에 없었고, 이왕에 내려갔으니 일정을 더 추가해 주변 관광지 몇 곳을 둘러보자는 의견이 여동생들로부터 나왔다. 2박3일의 여행은 그렇게 해서 시작됐다. 하지만 느닷없이 내린 가을비로 인해 일정은 뒤죽박죽이 되어버렸고, 그게 마땅찮아 나들이 결과의 정리를 내팽개쳐왔다. 그렇게 방치된 지 벌써 1년, 코로나로 인해 발이 묶여 소일거리가 없어지다 보니 옛 자투리들까지 끄집어내게 됐고, 거기다 당시 다녀왔던 ‘장성호 수변공원’이 그동안 많이 변했다는 지인의 귀띔까지 전해졌다. 그가 찍은 최근의 사진 두어 장을 덧붙여가며 옛 생각들을 끄적거려나가는 이유이다.

 

▼ 결혼식장이 ‘김대중 컨벤션센터’ 근처라기에 결혼식보타 1시간30분 먼저 광주에 도착했다. 그리고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컨벤션센터를 둘러보기로 했다. ‘김대중 컨벤션센터’는 광주광역시(서구 치평동)에 들어서 있는 국제 전시 및 회의용 편의시설로 2005년 9월 6일 문을 열었다. 당시 규모는 지상 4층(지하 1층)에 연면적 11,966평. 2013년 3,000석 규모의 다목적홀과 19개의 중소회의실을 증축한 제2센터를 개관하여 현재는 전시면적 12,027㎡에 회의실면적 4,313㎡의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 원래 이름은 ‘광주전시컨벤션센터(Gwangju Exhibition and Convention Center, GEXCO)’이었으나 개관이전 국제적인 전시회 또는 컨벤션을 주관·개최하거나 컨벤션을 유치하기 위한 마케팅활동의 파급력을 높이기 위하여 '김대중'이란 인명을 활용하는 것이 유익할 것이란 판단 아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전허락을 받고, 광주 시민의 여론수렴 절차를 거쳐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

▼ ‘김대중 컨벤션센터’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김대중 전 대통령과 관련이 있는 공공시설이다. 그래선지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김대중 홀’이 손님을 맞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온 일생을 어떻게 살았으며 또 어떤 업적들을 남겼는지를 만나볼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러니 우리 부부의 관심도 오로지 이곳뿐이다.

▼ 2006년에 문을 연바있는 이 홀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애와 흔적을 알려주는 기념공간이다. 그러니 중앙은 오로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몫. 중심에 그의 흉상을 배치했다. ‘인동초(忍冬草)’ 또는 ‘한국의 넬슨 만델라’로도 불리는 김대중은 제15대 대통령을 지낸 한국의 정치가이다.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을 조직하여 이사장으로 활동했다. 1999년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 50인 중 공동 1위에 선정되었으며, 2000년에는 노벨평화상을 받기도 했다.

▼ 좌우로는 정치가 김대중/ 인간 김대중/ 노벨평화상 및 남북정상회담/ 국민의 정부/ 동영상 및 각종 기록물/ 소장품 및 기념물 등의 관련 자료들을 전시해놓았다. 아래 사진에서 우측 하단에 살짝 보이는 도자기의 ‘관인후덕(寬仁厚德)’이란 글씨는 ‘이희호 여사’가 직접 썼다고 한다. 이는 ‘어질고 너그럽고 온후하며 덕이 두터운 사람이 되자’는 뜻. 가슴에 담아둘만한 사자성어라 하겠다. 예로부터 관인후덕한 군자들에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사람이 곧 자산인데 그런 이들이 어찌 성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서울 김대중도서관에서 기증했다는 ‘평화의 나무(높이 3m, 너비 2m)’가 눈길을 끈다. 노벨평화상 메달 홀로그램과 동영상 모니터가 부착된 월계수 모양의 구조물인데, 2002년 8월 스웨덴 노벨재단과 노벨박물관, 한국의 호암재단이 공동으로 개최한 ‘노벨상 100주년 기념’의 서울전시회(주제: 창조성의 문화-개인과 환경)에 전시되었던 것을 김대중도서관이 기증받아 전시해오다가 2006년 ‘김대중 컨벤션센터’에 다시 기증한 것이라고 한다.

▼ 전시품 중에는 ‘IOC 올림픽 금장’도 있었다. 이밖에도 그가 찼던 시계와 남북정상회담 관련 자료, 노벨평화상 증서 및 메달의 복제품, 분노의 메아리 등 서적, 옥중 작사한 시조 CD와 악보, 시사 잡지, 목판 어록, 핸드 프린팅, 친필휘호 등이 진열되어 있다. 특히 1980년 7월 사형선고를 받은 그가 청주 교도소에서 1982년 12월까지 입었다는 수의가 눈길을 끌었다. 수의번호는 ‘9번’이었단다.

▼ 대통령으로 재임하고 있을 때 사용하던 식기 세트도 전시되어 있다. 전체적으로는 하얀색 톤. 대통령 휘장을 중심으로 단순하게 처리된 문양이 담백하면서도 고급스러워 보인다. 그 오른편에는 교황 요한바오로2세의 강복장(강복을 했다는 증서)도 전시되어 있다.

▼ 예식장에서 피로연 겸 이른 저녁을 마치고 숙소로 향했다. 혼주 측에서 예약해놓은 숙소는 나주시에 있는 ‘중흥 골드 스파&리조트’. 나주호의 수려한 경관을 배경으로 삼은 물놀이장(스파) 겸 리조트이다. 토네이도, 워터롤러코스터를 비롯한 각종 테마 물놀이시설과 수상레포츠, 36홀 규모의 명문 골프클럽을 부대시설로 갖고 있다. 나주시에 위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근 광주광역시 사람들이 더 많이 찾는 이유이다. 리조트의 규모도 크다. ‘스파동’과 ‘골드동’으로 나누어지는데, 19평에서 57평까지 다양한 평수의 방들을 199개나 보유하고 있다.

▼ 물놀이 공간은 텅 비어있다. 워터롤러코스터와 패밀리슬라이드. 아마존리버로 이루어져 있는데 여름철에만 문을 연다고 한다. 파도풀과 아쿠아플레이어, 토네이도, 레이싱슬라이드 등은 겨울철에도 운영한다고 했는데 들러보지는 않았다. 아니 여행지를 급히 바꾸느라 찾아가 볼만한 여유도 없었다.

▼ 리조트 앞에는 ‘2천년 시간여행, 나주’라는 제목의 관광안내도가 세워져 있었다. 여행지를 나주 읍성권과 영산포 근대문화권, 나주호·다도권역으로 나누었는가 하면, 나주 영상테마파크와 반남 고분군도 따로 표시해 놓았다. 그만큼 볼거리가 많다는 얘기일 것이다. 하지만 길을 나서기가 무서울 정도로 늦가을 빗줄기가 거세다. 나주에서의 일정을 포기하고 장성으로 발길을 돌린 이유이다. 조금이라도 더 늦게 투어를 시작해보기 위해서이다. 거기다 ‘방장산 자연휴양림’이라는 멋진 숙소가 여행지를 변경하는데 크게 한 몫 했음은 물론이다.

▼ 그렇게 해서 찾아간 곳은 ‘장성호(長城湖)’. 옮기려는 숙소의 예약 등을 챙기느라 출발이 늦어진 덕분인지 빗줄기는 많이 가늘어졌다. 장성호는 1976년 영산강유역 종합개발계획의 일환으로 건설된 댐이다. 장성읍 용강리에 높이 36m, 길이 603m의 댐이 건설되면서 넓은 호수가 그 위용을 드러냈다. 그동안 생활용수와 농업용수, 내수면 양식 등으로 지역민에게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왔지만, 지금은 호수 가장자리를 따라 조성된 수변길과 출렁다리가 지역의 새로운 명물이자 장성에 오면 반드시 들러야 할 명소로 자리 잡았다.

▼ 호수 면적만 1만2천㏊로 내륙의 바다로도 불리는 장성호에 수변길이 만들어진 것은 지난 2017년. 폭 1.8m 남짓의 목재 데크가 드넓게 펼쳐진 호수의 풍광과 시원하게 드리운 나무 그늘을 따라 걸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 아름다운 풍광과 스릴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함께 잡을 수 있도록 출렁다리도 두 개나 놓았다. 이 아름다운 수변길은 한국관광공사가 2018년 선정한 대한민국 대표 걷기 길에 선정되기도 했다.

▼ 수변길 탐방의 시작은 장성호 입구의 주차장이다. 그러나 본격적인 걷기는 장성호의 제방(堤防)으로 올라서면서 부터다. 제방은 긴 계단을 힘들여 오르거나, 에둘러 올라가는 길을 따르거나 해야 한다. 참! 직선으로 된 계단의 왼편에 무장애 탐방로 공사가 한창이었다. 계단이 없는 데크길을 별도로 만들어 휠체어나 유모차를 타고서도 수변길을 돌아볼 수 있게 하려는 배려일 것이다.

▼ 장성호의 제방 위로도 길이 나있었다. 추가로 건설하고 있다는 ‘황금빛 출렁다리’와 연결시킬 새로운 탐방로이자 기존의 ‘출렁길(제방 좌측의 탐방로)’과 더불어 새로운 명품 길로 탄생하게 될 ‘숲속길(3.7㎞)’이기도 하다. 나무와 물이 조화를 이룬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는데, 탐방로에서 바라보는 장성호 풍경이 두 개의 출렁다리와 어우러져 색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한단다.

▼ 탐방로는 ‘장성호 관리소’의 뒤로 열린다. 제방의 왼편, 그러니까 관리소에서 시작해 북이면 수성마을에서 끝나는 이십 리의 이 길은 최근 ‘출렁길’로 이름 붙여졌다. '출렁다리로 향하는 길'을 뜻한단다. 그래선지 들머리의 이정표에도 출렁다리까지의 거리를 표시해 놓았다. 아무튼 이 길은 장성호의 굴곡을 따라 유순하게 흐르는 아주 편안한 길이라서 가족과 함께 걷기에 그만으로 알려져 있다. 음이온이 풍부한 길을 걷다보면 시원한 산바람과 바다를 닮은 광활한 호수 덕에 지루함을 느낄 틈도 없단다.

▼ 제방에 올라서자 ‘영산강유역 농업개발 기념탑’이 위용을 자랑한다. 장성댐은 1973년에 시작돼 1976년에 준공됐다. 백암산과 입암산 계곡을 따라 흘러온 물을 담은 농업용 댐으로 영산강 유역의 홍수 피해를 막고, 농업용 물을 원활하게 공급하는 데 목적을 뒀다.

▼ 농어촌공사의 로고로 보이는 조형물도 세워져 있었다. ‘농어촌과 백년, 물 관리로 천년’이라는 캐치 프레이즈가 눈길을 끈다.

▼ 관리소의 뒤. 호수 가장자리에는 ‘취수탑’이 들어섰다. 장성호는 호남의 젓줄인 영산강에서 가장 긴 지류인 황룡강의 물길을 막아 생긴 인공호수이다. 1976년에 완공 되었으니 44년이 되었다. 맑은 물과 지천으로 잡히던 물고기는 옛 이야기가 되었다지만, 대신 생긴 장성호는 수상관광지로 발돋움을 하고 있는 중이다.

▼ 관리소를 지나자마자 길은 ‘수변길’과 ‘임도’로 나뉜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중간 중간에서 서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참! ‘제2 출렁다리’가 완공되지 않은 지금 수변길은 편도이다. 장성호 관리소부터 수성마을 버스종점까지는 7.5km. 수변길 보다 조금 안쪽으로 임도와 등산로가 있어서 겹치지 않는 노선으로 왕복할 수도 있지만 임도나 등산로는 수변길 보다 오르내림이 있어 조금 힘이 든다.

▼ 수변길 입구 오른편에는 ‘장성호 선착장’이 들어서 있었다. 하지만 입구가 막혀있을 뿐만 아니라 정박하고 있는 배도 보이지 않는다. 요트라도 두어 척 정박되어있으면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경이 될 터인데 아쉬운 일이다.

▼ 탐방로는 호수를 둘러싼 산 안쪽 벼랑을 따라 놓여 있다. 산에서 뻗어 기울어진 나무가 데크길 위를 덮어 호수와 함께 수변길 특유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지금은 비록 빈 가지 사이로 하늘이 내다보이지만, 철따라 색깔을 바꾸며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멋진 파노라마를 연출해왔을 것이다. 새싹이 피는 봄은 물론이고, 여름에는 나무들이 데크 길 위로 시원한 그늘을 만들었을 게 분명하다. 지금은 겨울의 초입, 잎이 진 나뭇가지 사이로 겨울햇살이 가득 들어올 텐데 빗줄기가 이를 막고 있다. 집사람의 손길이 옷깃을 여미기에 바쁜 이유이다.

▼ 늦가을에 내리는 비는 기온까지도 크게 떨어뜨렸다. 그래선지 탐방로는 텅 비어있다. 하긴 소름이 돋을 정도로 날씨가 쌀쌀한데 이를 말이겠는가. 하지만 비어있는 길이 우리에겐 오히려 득이 된다. 호젓하게 거닐며 맑은 호수가 빚어내는 잔잔한 물결소리로 일상의 스트레스를 확 날려버릴 수 있으니까 말이다.

▼ 탐방로 군데군데 쉼터도 만들었다. 벤치 서너 개에다 식탁까지 배치했는데 하나같이 호수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곳이다. 또 어떤 곳에는 긴급 구호장비도 비치해 두었다. 참! 두 번째 쉼터는 임도(이정표 : 출렁다리 0.6㎞/ 임도/ 장성호 입구 0.6㎞)와 연결되고 있었다. 초입에서 갈려나가는 임도를 따랐다면 이쯤에서 만나지 않았을까 싶다.

▼ 수변길이 모두 데크로 된 것은 아니다. 맞다. 고즈넉한 숲길로 이루어진 수변길은 댐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마을 주민들이 오가던 길이었다고 한다. 한동안 사람의 발자취가 사라졌지만 최근 끊겨 있던 길을 나무 데크로 잇고 쉼터를 만들어 걷기 좋은 길로 다듬었다. 그 결과 자연 그대로의 경치를 간직한 아름다운 길로 다시 태어났다.

▼ 호숫가의 가파른 벼랑을 따라 내놓은 데크로드는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장성호의 경관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다리 한쪽에선 숲의 나뭇잎끼리 스치는 소리를, 다른 한쪽에선 호수의 물이 벼랑을 때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힐링의 최적지이다.

▼ 수변길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장성호를 한바퀴 도는 34km 길이의 ‘장성호 100리길’이 원래 계획. 이 가운데 장성호 제방에서부터 북이면 수성리까지 나무데크길과 기존 임도가 섞인 7.5km 구간이 조성되자 이곳을 관광객에게 먼저 개방했다. 그래선지 탐방로 주변은 아직도 공사 현장이나 마찬가지다. 심지어는 필수시설이라 할 수 있는 매점까지도 시설공사가 절반도 끝나지 않았다.

▼ 아래 사진은 최근에 다녀온 지인이 찍은 매점(편의점)의 사진이다. 공사를 마치고 ‘출렁정’이란 이름으로 문을 열었단다. 비치파라솔을 배치해 경관 좋은 곳에서 음료를 마실 수 있게 했음은 물론이다.

▼ 휴게소에서 우린 ‘옐로우 출렁다리’와 마주하게 된다. 작년 6월에 개통한 옐로우 출렁다리는 장성호 여행의 ‘핫플레이스’로 통한다. 많은 방문객들이 SNS를 통해 사진과 후기를 공유하면서 입소문이 인기를 더했다. 다리 앞에 서면 먼저 두 마리 황룡의 모습을 형상화한 높이 21미터의 주탑부터 보는 이를 압도시킨다. 강물 속에 숨어 살던 용이 마을 사람들을 몰래 도왔다는 황룡강의 전설이 모티브다.

▼ 다리 앞에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길이 154미터에 폭은 1.5미터라고 한다. 다리 상판을 들어 올리는 역할을 하는 주탑의 높이도 21미터나 된단다. 참! 명색이 출렁다리인데 주의사항 하나쯤 없겠는가. 뜀박질 금지는 물론이고, 사진을 찍는답시고 너무 오래 머물지는 말아달란다. 그리곤 강풍이나 강우시에는 통행을 제한할 수도 있다는 말로 끝을 맺는다. 그렇다면 강한 바람에도 끄떡없으며 동시에 1,000명이 통과해도 이상이 없다던 기사는 뭐란 말인가.

▼ 아래는 ‘옐로우 출렁다리’의 전경으로 홍보용 사진을 빌려왔다. 출렁다리는 수변길 시작점에서 1.2km 지점과 2.7km 지점을 연결한 다리다. 다리 양 끝에서 비상하는 황룡(黃龍) 두 마리를 형상화한 21m 높이의 주탑(柱塔)이 우뚝 솟아오르는 모양새의 현수교(懸垂橋)이다. 장성의 젓줄인 황룡강의 설화 속에 등장하는 황룡을 '옐로우시티(Yellow-City)'로 힘차게 도약하는 장성군의 이미지로 잘 표현했다 하겠다.

▼ 호수는 추위가 더해질수록 물빛은 맑고 더 깊어지는 게 특징이다. 또 겨울바람이 일으키는 잔잔한 물결 소리를 더 선명하게 들을 수 있어 매력적이다. 하지만 집사람에게는 남의 집 얘기일 따름이다. 늦가을 차가운 비로 인해 기온이 뚝 떨어졌는데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어디 있겠는가. 모자까지 푹 뒤집어썼음에도 연신 옷깃을 여미고 있다.

▼ 출렁다리는 수변길에다 걷는 재미를 더했다는 호평을 받는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장점은 호수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 위에서 장성호의 수려한 경관을 바라보고, 호수도 한층 가까이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다리 위에 서면 장성호의 수려한 경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름철이면 저 풍경화에는 제트스키 등 수상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덧칠해 질 것이다. 그런 빼어난 점을 인정받아 지난해 한국관광공사로부터 ‘대한민국 대표 걷기길’로 선정되었는가 하면, 최근에는 전라남도가 추천하는 대표 관광지에도 이름을 올렸다.

▼ 아래는 날씨가 좋았을 때 찍은 다른 이의 사진을 빌려왔다. 누군가 그랬다. 극한의 아름다움은 서러움으로까지 연결된다고. 맞다. 눈물 한 방울 떨구어도 될 만큼 아름다운 풍경이 아닌가.

▼ 출렁다리는 수변길에서 느끼는 백미 중 단연 으뜸이다. 다리를 건널 때 위·아래, 옆으로 흔들리는 느낌과 장성군을 상징하는 노란색을 결합해 옐로우 출렁다리로 이름 지었다. 다리의 넓이는 1.5미터, 좁은 듯 보이지만 진행 방향이 다른 두 성인이 겹쳐 지나가더라도 불편하지 않다. 다리 한가운데는 탁 트인 호수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최고의 감상 포인트이기도 하다.

▼ 다리의 양쪽. 주탑의 와이어를 고정시키는 핀 역할을 하는 곳에는 작은 전망대를 만들어놓았다. 앞에는 ‘yellow city 장성’이란 문구가 적혀있다. 수변길, 아니 수변길 말고도 장성 땅 곳곳에서 이 표어는 눈에 띈다. 무슨 뜻인지 무척 궁금했다. ‘노란색 꽃과 나무가 가득하고 물과 사람이 공존하는 자연친화적 도시’라는 뜻이라고 한다. 황색은 황제의 색이기에 최고를 의미하며, 우리의 전통 색인 오방색 중에서 가운데의 색이라서 지리적으로 호남의 중심에 있는 장성을 잘 표현하는 색이고, 부를 상징하며, 장성을 수호하는 황룡(黃龍, 장성은 영산강의 가장 긴 지류인 黃龍江이 흐르는 지역이기도 하다)의 색이기도 하단다.

▼ 출렁다리의 북단도 편의시설 공사가 한창이었다. 매점과 카페, 분식점에 화장실까지 들어설 예정이란다.

▼ 아래 사진은 시설공사가 끝난 후의 북단 풍경이다. 다리 건너의 ‘출렁정’과 함께 이곳 ‘옐로우 출렁다리’를 풍요롭게 만드는 휴게소, 즉 ‘넘실정’이다. 로컬브랜드로 보이는 ‘여우愛김밥’과 라면, 떡복이 등을 파는 곳이니 편의점보다는 간이음식점에 가깝다 하겠다. 그 옆에는 카페도 들어서 있다.

▼ 출렁다리를 지나자 임도와 데크가 나란히 뻗어있다. 데크의 끝 오른쪽으로 수변길이 이어지는데, 걷기에 편한 황토길이 좌우로 꿈틀대며 뻗어 나간다. 이런 풍경은 ‘출렁길’이 끝나는 수성마을까지 계속해서 이어진다.

▼ 길가에 매어놓은 밧줄에는 오색의 리본들이 한 가득이다. 이곳을 다녀간 기념으로 매달아놓은 모양인데 흡사 무당집 처마를 연상시킬 정도다. 출렁다리의 개통과 더불어 엄청난 인파가 몰린다더니 사실이었나 보다. 1년 동안의 방문객수가 30만 명을 넘겼고, 주말이면 5천명 이상 찾는 핫플레이스라는 기사 말이다.

▼ 길가 조그만 공터에는 식탁형 벤치를 놓아 쉼터를 겸하도록 했다. 안내도에 이 부근을 ‘피크닉장’으로 표기했었는데 이를 가리키는 모양이다. 아무튼 우리 일행은 이곳에서 발길을 돌리기로 했다. ‘제2 출렁다리’가 완성되지 않은 시점에서의 추가 탐방은 무의미하다 여겨졌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수변길이 편도형 노선이었으니 종점까지 가지 않을 바에는 그만 출발지로 되돌아가는 게 낫지 않겠는가. 왔던 길을 다시 되짚어 갈 때는 임도를 따라보고 싶었지만 땅이 질어 이 또한 그만두기로 했다. 갈 때와 올 때의 시야가 달라지기에 길은 같아도 새로운 맛이 난다는데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 아무튼 우리 일행은 출렁다리를 마지막으로 원점회귀를 했다. 이후의 사진은 지인이 촬영했다는 최근 사진이다. 장성군에서 올해 '황금빛 출렁다리'를 건설했다는 것이다. 이 다리는 첫 번째 출렁다리에서 20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단다.

▼ 용곡리에 세워진 이 다리의 길이는 154미터. ‘옐로우 출렁다리’와 똑 같은 길이이나 폭은 30센티가 더 넓다. 아니 더 큰 차이점도 있다. 현수교(懸垂橋). 즉 양쪽에 주탑(柱塔)을 세운 뒤 케이블을 이용하여 도로 상판을 지탱하고 있는 첫 번째 다리와는 달리, 다리를 지탱하는 케이블을 주탑 대신 육상 구조물에 연결했다는 것이다. 덕분에 중앙부로 갈수록 수면에 닿을 듯 내려가는 짜릿함을 선사한단다.

▼ 다리를 건너기 시작하면 마치 경사가 완만한 내리막길을 걷는 것 같다고 했다. 차이가 있다면 주위가 온통 호수로 둘러싸여 있다는 점이란다. 하긴 주탑이 없는 저런 ‘U’자 형 다리는 다리 중심부로 향할수록 수면과 가까워지는 게 특징이다. 특히 이곳 ‘황금빛 출렁다리’는 한가운데 도달하면 물 위에서 불과 2∼3m 밖에 떨어지지 않는단다. 중앙부로 다가갈수록 위아래는 물론이고 옆으로도 흔들거리는 느낌을 더욱 강하게 맛볼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단지 다리를 건너는 것만으로도 큰 짜릿함을 맛볼 수 있을 게 분명하다.

▼ 다리 끝에는 황룡강의 용(龍) '가온'의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빨간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려는 모습이다. 조형물 뒤로는 3층짜리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참고로 가온은 황용강에서 산다는 용이다. 낮에는 강물 속에서 숨어살다가 밤이 되면 뭍으로 올라와 사람으로 둔갑해 마을 사람들을 몰래 도왔다고 한다.

▼ 다시 돌아온 제방. 댐 아래에는 행사용 몽골텐트가 여러 동 처져있다. 이곳을 찾는 여행객들을 위한 간이휴게소 겸 지역에서 생산되는 특산물을 판매하는 직거래 장터이다. 특히 요기를 할 수 있는 포장마차도 들어서있어 가을비의 쌀쌀함으로 인해 가뜩이나 허기졌던 속을 따끈하게 풀어줄 수 있었다. 물론 막걸리와 함께이다. 참! 2020년 7월부터는 수변길의 입장료(3,000원)를 받고 있다는 지인의 얘기를 깜빡 잊을 뻔했다. 하지만 무료나 마찬가지라는 귀띔도 있었다. 주말과 공휴일에 한해서 받는데다, 탐방을 마치고 나면 이마저도 상품권으로 되돌려준다는 것이다.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위한 아이디어이지 싶다.

▼ 이왕에 장성에 왔다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필암서원(사적 제242호, 筆巖書院)도 꼭 둘러볼 것을 권해본다. 서원이란 조선시대, 선비들이 모여 학문을 강론하거나 석학이나 충절로 죽은 사람을 제사하던 곳이다. 교육과 사회적 관습 형태로 지속되어온 성리학과 관련된 문화적 전통의 증거이며 성리학 개념이 여건에 맞게 바뀌는 역사적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 '한국의 서원(Seowon, Korean Neo-Confucian Academies)'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의 14번째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이곳 ‘필암서원’이니 어찌 들러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참고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9개 서원은 소수서원(1543년 건립)과 남계서원(1552년 건립), 옥산서원(1573년 건립), 도산서원(1574년 건립), 필암서원(1590년 건립), 도동서원(1605년 건립), 병산서원(1613년 건립), 무성서원(1615년 건립), 돈암서원(1634년 건립) 등이다.

▼ 필암서원(筆巖書院)은 호남에서 유일하게 문묘에 배향된 하서 김인후(金麟厚, 1510-1560) 선생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서원이다. 1590년(선조 23) 김인후의 문인 변성온 등이 주도하여 기산리에 세웠는데, 이 서원은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 1624년(인조 4) 복원되었다. 1662년(현종 3) '필암'으로 사액(賜額)되었으며 1672년 지금의 위치로 이전했다. 고종 5년(1868년) 흥선대원군의 대대적인 서원 철폐령 속에 살아남았던 전국 47개 서원 중 하나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건축물인 '확연루(아래 사진)'의 현판은 당대 최고의 성리학자인 우암 송시열의 글씨며, 서원에서 보기 힘든 화려함을 지닌 경장각에는 인종의 묵죽도 판각과 정조의 편액 등 소중한 사료들이 소장돼 있다.

▼ 장성은 풍천장어로 유명한 ‘고창’의 옆 고을이다. 그러니 맛보러가지 않고 어찌 배길 수 있겠는가. 지인에게 연락해서 찾아낸 곳은 고창산 풍천장어만 취급한다는 ‘금단양만’이다. 1층에서 장어를 구입한 뒤 2층으로 올라가 무료로 구워먹는 시스템이다. 이때 2층에서는 불과 석쇠판만 제공해주고 나머지 양념이나 반찬 등은 셀프로 먹을 수 있다. 가격은 1킬로그램에 6만8천원으로 저렴한 편이며, 식사는 공기밥 1개에 1천원으로 된장국과 함께 제공된다.

▼ 저녁은 ‘국립방장산자연휴양림’에서 머물기로 했다. 나주의 숙소를 나서기 전에 미리 예약을 해두었기 때문에 따로 할 일은 없었다. 그저 공실이 없기로 유명한 국립휴양림인데도 불구하고 빈 방이 생겼음에 감사만 하면 된다. 그건 그렇고 1999년에 개장했다는 방장산자연휴양림은 다양한 수종의 활엽수와 편백나무 등이 자생하여 아름다운 경치와 신선한 피톤치드가 넘실대 가족 단위로 휴식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라고 알려져 있다. 또한 최근에는 청·장년층 이상이 즐겨하는‘아로마 천연테라피 체험’과 ‘편백 건강 베개 만들기 체험’, 청소년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에코어드벤처 체험’등 세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산림문화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 방장산의 품에 안겼지만 정상을 오르는 것까지는 않기로 했다. 대신 12년 전. 이곳 방장산의 자랑거리인 심설 산행 때 찍은 사진을 올려본다. 전라 남·북도의 경계지역에 걸터앉은 방장산(743m)은 주변 평야지대에 우뚝 솟아 신비한 구름속에 가려져 있다해 예부터 지리·무등산과 함께 호남의 '삼신산'이라 불렸다. 또한 조선 문종(1451년)때 편찬된 '고려사 악지'에 도적떼들에게 잡혀간 한 여인이 남편이 구해주러 오지 않자 이를 애통해하며 부른 노래인 '방등산가'의 유래지기도 하다. 참고로 ‘방장산’이란 지명은 청나라에 멸망한 명나라를 숭상하던 조선조의 선비들이 중국의 삼신산 중의 하나인 방장산과 비슷하게 생겼다며 같은 이름을 붙인데서 유래한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모화사상’을 내 고향 근처에서 접하게 되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하지만 예로부터 전해져오는 얘기라니 어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