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이야기

아따맘마 2011. 2. 10. 10:12

 

출처: http://ms-food.com

 

어릴 적 코흘리개 시절에 즐겨 가던 집 앞의 구멍가게...

10원인지 50원인지 동전을 들고 가면

주인 아저씨가 한 줌 쥐어주셨었던 옛날 과자가 있었다.

여러가지가 과자통에 담겨 있었지만

내가 이거~~. 하고 고르면 그 큼직한 손으로 한 줌을 쥐어 주셨고...

작은 손으로 받기에 너무 많아 양손을 모아 가득 받아 왔었다.

그 과자를 쥘 때는 한 줌이라고 늘 쥔장이 외치기에 난 한 줌 과자라고 불렀다.

 

그렇게 늘 양손 가득 받아오던 어느날인가 부터

한 줌 가져가...하고는 마는 것이다...

그래서 코흘리개 어린 손으로 한 줌을 쥐었다...

그 양이 채 몇 개 되지 않았고...

왠지 참 억울한 느낌이 들었다...

 

동네 친구들과 모여 노는 자리...

그 애길 하니 한 친구가 자기는 쥔장이 손으로 퍼서 줄 때 까지 기다렸다가

양손 가득 받아온다며 그만의 노하우를 가르쳐 줬다.

 

그렇다...

그럼 되겠네...난 왜 그걸 몰랐지?

 

난 너무 신기한 비법에 쾌재를 부르며 과자집으로 가서는 그 뒤로

한 동안은 돈을 주고 쥔장의 큰 손으로 한 줌을 줄 때 까지 기다려서 받아 왔다.

 

그러길 몇 번... 그 뒤엔 한 줌 퍼가라~. 하시더니...

자기 할 일만 하신다...

서서 기다리다 지쳐 꼴랑 몇 개를 한 줌이라고 퍼와야 했다...

 

어리고 영리한 친구....

 

그 가게에는

커다란 원형 크래커도 낱개로 팔았다.

지름이 5센티 정도 되는 것도 있었고 10센티 정도인 것도 있었다.

 

나는 50원짜리 지름이 5센티 크래커를 자주 사먹었다...

그런데 같이 놀던 동네 여자친구는 100원짜리 10센티 크래커를 먹는게 아닌가?

그 비싼 돈 100원(아이들에겐 참 큰 돈이었는데)을 겁없이 쓰는 아이가 놀라워

100원에 차라리 작은 것  두 개나 많지 않냐고 했더니...

그 어린 여자 아이 입에서 나는 생각지도 못한 말이 나왔다.

크기를 대어 보며 이거 양이 네 배다....라고...

 

그렇다...

지름이 두 배인 것을 눈 대중으로 두 배라고 생각한 것은 착각이었다.

지름이 두 배인 것은 양이  두 배 이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어린 나이에 그 아이는 그리 현명한 지혜가 어떻게 나왔을까?

 

그 뒤 100원이라는 코흘리개로는 큰 돈으로 나는 과감히 100원짜리 크래커를 사먹었다.

영리한 아이들....

나는 생각하지 못한 꾀들이 참 총총하다...

 

조금 지나자 초코파이라는 맛난 빵? 쿠키? 그 중간쯤인 것이 나오자...

늘 밀가루를 튀겨 설탕시럽을 입힌 옛날 과자만 먹던 우리들은 열광을 했다...

부모님께 초코파이 먹고 싶다고 용돈을 받아 한 참을 입에 물고는

목으로 꿀꺽 넘기기 아까워 살짝살짝 조금씩 떼어 먹곤 했다.

50원이란 가격에 나오던 지금 크기 비슷한 초코파이...

조금 지나니 100원짜리 초코파이가 큰 게 또 나왔다.

와~~ 크다...

하며 동네 아이들과 몰려가서 100원짜리를 입에 물고는 무척 행복했었다.

한 동안 우리들의 멋진 간식이 되어 무척 사랑을 받았었다...

어쩜 부모님도 그렇게 좋아하시던지...

곧잘 심부름으로 사드리곤 같이 앉아 먹곤 했었다.

 

그렇게 초코파이로 행복한 시절도 잠시...

물가인상으로 초코파이도 가격이 올라서 큰 것은 없어지고 작은 것이 100원을 하게 되었다.

그런 불상사가...동네 아이들은 모여서 놀다가 출출해지면

과자집으로 몰려가서는 양이 줄어든 초코파이를 보며 참으로 비통해했다...

아마 지금 생각하면 초상집에 간 것과 같은 기분이 들었을 것 같다. ㅎ

 

그 섭섭함을 등뒤로 하고 그 과자가게 맞은 편 갑자기 생긴

분식점의 닭밝에 나는 금새 빠져들었다...

떢볶이와  함께 닭밝과 순대 같은 걸 팔았던 것 같다.

아이들은 자판대 앞에서 떢볶이를 주로 사먹었는데

저녁이 되면 가게 안엔 아저씨들이 앉아 닭발에 소주를 먹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언젠가 떡볶이를 사먹고 있는데 동네 친구가 닭발을 사먹는다...

평소에 닭발이 너무 징그러워 떡볶이 먹을 때도 닭발에서 멀리 떨어져 먹곤 했는데

맛있다며 50원에 닭발 한개인지 두개인지를 들고 먹으며 가는 모습을 보며

참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정말 맛있을까?...강력 추천하는 그 친구 말에 호기심이 생겨

나도 50원 어치를 사서 입에 살짝~~~...

닭 발의 오돌한 느낌...넘 좋다...큰데 갈라진 발가락을 씹어 먹는 것이

너무 징그러웠다...협오감...

 

그 뒤로 다시 떡볶이를 또 열심히 사먹었는데...

그 매콤하고 고소하던 닭발 맛이 떠오르며 다시 먹고 싶어져

몇 번의 도전을 한 후 열렬한 팬이 되어

그 뒤 몇 달은 용돈만 받으면 닭발을 사먹곤 했다...

 

어느 날 아버지가 그게 그렇게도 맛있니? 하시며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을 지으셨다...

응...나 100원만 더 줘...더 사먹고 싶어...하며 다 먹은 닭발 뼈를 보며

무척 아쉬워하니 1000원을 주시며 다 사와라. 같이 먹자...하신다.

 

거금 1000원....

가끔 서울서 고모가 내려오면 용돈으로 10000원을 주고 가신 걸 제외하면

아이들에게 1000원은 지금 어른들에게 100만원과 같은 느낌이었다.

 

닭발집에 가서는 하얀봉투에 1000원어치(아마 30개쯤 되었던 것 같다)를 사와서는

아버지와 함께 배가 부르도록 맛나게 먹었다...

그렇게 많이 먹은 적이 처음이라 나는 너무나 행복했다...

늘 한 두개를 사먹으며 안타까웠는데...

손...입가가 온통 뻘건 양념이 덕지덕지 발린 모습으로 맛있다는 말을

아버지에게 연발하고 있었다...

 

그 뒤로는 자주 1000원을 주셨고 나는  그 때 마다 한 봉투 가득 닭발을 사서는

아버지와 먹곤 했다...

 

그 후 언제부턴가 아버지께서 늘 퇴근할 때마다 손으로 만든 정통손만두를 한 봉지씩

사들고 오셨었다.

자식들이 먹는 모습만 봐도 즐겁다며 발품 팔아 중국인이 직접 손으로 만들어 파는

중국집을 물색해서 방금 만든 것을 기다려 받아오셨다.

늘 신선하고 따듯했던 만두...

 

닭발집이 분식을 정리하고 술집으로 바뀐 뒤 한 동안 허전했었던

나는 그렇게 이웃동네까지 가서 사오시는 만두에 다시 행복해 했다...

 

그 뒤 한 참을 나가야 있던 시장에 통닭집이 생겼다...

늘 기름 가득한 가마솥에 통으로 튀겨내던 통닭....

어느날 영양간식을 신경쓰던 아버지 눈에 띄어 통닭을

사오기 시작하셨다. 물론 매일은 아니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한 달에 한 번씩....그렇게...사오셔서는

온 가족이 둘러앉아 먹곤 했다.

이 때는 나도 좀더 커서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학생 쯤 되었으리라...

 

그 뒤...캔터키치킨이 나와 온 가족이 다시 행복해졌고...

조금 지나자 양념치킨이 나와서 육식을 싫어해 입에도 대지 않던

말라깽이 언니도 좋아라 하며 닭고기를 먹곤 했다.

양념치킨은 아직도 참 맛있는 먹거리이다...

 

그 뒤 성인이 된 뒤로 맛을 들인 피자는 치킨과 함께 우리 가족의

최고 간식이 된지 오래다.

 

지금 내 배 둘레의 두툼한 뱃살은 그 어린 시절 부터 길러진 것이리라...

늘 자식들 먹는 것만 보면 행복하다시던 아버지...

참 정성들여 자식들을 챙겨 먹이셨는데 나는 효도 한 번 제대로 한 적이 없다.

늘 받기만 했던 부모님 사랑...

좋은 간식 거리를 어렵사리 발품팔아 구해오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자식은 사랑으로 걷어먹여야 잘 큰다고 한다.

아버지가 먹이신 것은  간식이 아니라 사랑이리라.

 

코흘리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간식거리를 떠 올리니

참 많은 세월이 흐른 것 같다.

 

내게 원의 지름에 대해 생각하게 해 준 친구나 한 줌의 꾀를 가르쳐준 아이,

닭발을 맛있게 만들던 아주머니, 구멍가게 아저씨....다들 어떻게 살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