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과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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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의 오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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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주의 이야기(책)/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연재)

2020. 8. 12.

일몰, 캘리포니아

 

주님과 함께 고국의 오지로

 

주님께서 내게 보여주실 땅을 찾아

나의 마음은 한국의 오지를 향하여 가고 있었다.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이민을 온 지가 15년을 훌쩍 넘었을 때이다.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는데 한국의 오지가 어디인지 나는 알 길이 없다.

예수님의 사랑을 나누고파 함께 호흡하며 지낼 소외된 자들을 찾아,

주님께서 나에게 보여줄 땅을 찾아 나아갔다.

 

한국에서 사는 동안, 젊은 청년시절부터 여행을 많이 다니며 즐겼다.

결혼 전에는 무궁화와 비둘기호를 이용하여 경부선 호남선 동해남부선을 따라

정처 없는 나그네의 길에 오르기도 하였다.

늘 마음 한 구석이 외로움과 고독함으로 차올라 훌쩍 길을 나서곤 하였다.

기차에 오르면 주기적으로 덜컹 거리며 삐그덕 거리는 쇠들의 마찰음과 경적소리

그리고 이따금씩 교차하는 하행선 상행선의 긴박한 소리들이 나의 벗이 되어 주었다.

도회지를 벗어나면 녹색의 물결이, 황금의 들판이,

또한 도도히 흐르는 강물들이, 나의 마음을 위로하여 주었다.

 

결혼 후에는 주말이면 가족과 주로 등산을 즐기었고

나에게 휴식을 안겨 주는 바다와 들과 계곡을 찾아 나아갔다.

뚫려 있는 길은 안 다녀본 데가 없을 정도로 구석구석 훑고 다녔다.

지도를 보며 인적이 드문 비포장 길과 소로들을 즐겨 찾아다녔다.

 

지도를 보고 유튜브 등을 보며 한국의 오지를 탐색을 하던 중에

한국에서의 여행 기억이 떠올랐다.

강원도 산길을 차로 넘나들 때

깊고 깊은 산골짜기로 기억되는 곳이 있었는데

바로 강원도 정선과 경상북도 청송이었다.

구글 맵을 통하여 산속 깊은 마을들을 탐색하고

가옥이 드문 지역을 집중적으로 찾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오지 탐방을 하는 중 알게 된

남해 낙도 오지 마을도 집중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하였다.

인적이 드문 깊은 산골이나 낙도에 사는 분들은

사랑의 예수님에 대하여 들을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그들의 삶이 궁금하여졌다.

그곳에 가면 주님께서 이 미천한 자를 통하여

그분의 사랑을 전하고자 하는 자들을 보여주실 것 같았다.

 

얼마나 깊숙히 오지로 나아 가야 주님께서 보여주실

그들과 만나 삶을 나눌 수 있을 것인가를 마음에 두고

세밀하게 인터넷을 돌며 찾아 나아갔다.

 

나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나의 길을 인도해 주실 것을 믿으며 한국행을 준비하였다.

기간은 무비자로 체류할 수 있는 3개월 정도로 잡았다.

미국 시민권자는 3개월 이상 체류할 수 없는 것으로 알고

3개월가량 그곳에서 오지탐방을 하리라 하며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였다.

어쩌다 내 나라를 가는데 비자 없이는 3개월만 있어야 하는

신세가 되었는지 참으로 야릇한 마음이 들었다.

 

성경책과 찬송가 그리고 누군가에게 주게 될지 모를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과 사랑에 관한 소 책자와 잠자리를 대비한 침낭과 담요,

간단한 캠 핑용 취사도구 그리고 다가올 겨울철에 대비하여 옷가지 등을 챙겼다.

준비를 하는 동안에 아내와 딸과 아들은 초로에 접어든 남편과 아빠가

홀로 나그네 길을 떠나는 것이 염려되어 걱정을 많이 하였다.

딸과 아들은 아빠가 주님의 일을 하러 가니 말리지는 않겠는데

몸조심하고 건강 하게 돌아오기를 바랐다.

하지만 아내는 여러 가지로 마음이 많이 불편하였다.

사랑하는 아내는 내가 미국으로 이민을 온 후에 일은 계속 하지만

수입도 변변치 못하고 어려운 일들을 겪어가며 한국에 두고 온

아파트와 퇴직금등 손에 쥔 목돈마저 다 날린 상태에서

그 달 벌어서 그 달에 쓰며 살아가는 처지가 되어 늘 근심과 걱정이 많았다.

한국에서는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돈 걱정 없이 편히 살다가 미국에 와서 힘든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화가 많은 남편과 살아오며 불안한 이민생활로 심신이 지쳐 있을 터인데

남편은 우울증이 와서 돈벌이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으니 그 고충이 매우 컷을 것이다.

시원치 않아도 남편이 계속 일을 하며 보탬이 되어 주기를 바라고 있었을 것이다.

 

딸이 대학원을 마치고 사회에 나아가 일을 하기 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에 보답하고자 6개월간 선교를 가겠다고 떠난 직후

딸의 안위를 걱정한 남편이 오랜만에 교회를 찾아

새벽 집회에서 참회의 눈물을 쏟아 내고 교회 문을 나서면서

‘여보 세상이 달라졌네!’하며 변화의 신호탄을 보낸 것이

아내에게는 기쁨과 아울러 한 가지 근심이 더하여진 계기가 되었다.

 

갑자기 딴 사람으로 변해버린 남편으로 인하여 암울하던 가정의 분위기가 확 바꾸어졌다.

아내는 ‘여보 내가 다른 사람하고 살고 있는 것 같아요’ 하며

몰라보게 변한 나를 대변하여 주었다.

 

나에게는 화가 많았다.

나는 화에 약하여 청소년 사춘기에는 말끝마다 화가 담겨 있곤 하였다.

나는 보통의 대화였는데 말에 화가 담겨 나오는 것이다.

듣는 사람으로서는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

 

나의 분노의 문제가,

예수님을 만나 그분의 놀라운 십자가의 사랑을 체험한 후에는,

그분의 사랑에 덮여 봄의 햇살에 눈이 녹듯이 사라져 버렸다.

나와 다른 점들로 나를 수시로 화나게 하였던 나의 아내는

하나님께서 지어 주시고 보내 주신 사랑스러운 돕는 배필로 다가와 있었다.

자녀들과의 막혀있던 담도 허물어져 사랑스러운 자녀의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 내가 변하니 가정이 살아나는구나! -

예수님의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회복과 치유를 주시는구나!

이후 나의 삶은 이 놀라운 은혜 안에 나를 가두어 두신

예수 그리스도를 간증하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깨우쳐진 말씀을 증거 하는 일로 가득하게 되었다.

또한 예수님의 사랑을 소외된 자들과 나누며 누리고 싶어

주님께서 내게 보여주실 그곳을 찾아서 오지탐방에 나서게 된 것이다.

 

주님께서는 부족하고 연약한 나를 통하여하실 일이 있으셨나 보다.

 

나는 심장병으로 몇 번의 어려운 일을 겪은 후에

5년 동안 힘겹게 끌어온 대형트럭 일을 그만두고 몇 달을 쉬다가

나의 건강 조건에 맞는 손쉬운 일을 찾아 덴탈 랩에서 하루 6시간 정도의 파트타임 일을 하게 되었다.

일 년간 일을 하다가 아내가 다니는 대형 덴탈랩 회사로 옮기게 되었다.

아내의 권유로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회사로 옮긴 것이다.

이곳에서 3년간 일하다가 퇴직을 하였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나를 더 이상 기다리실 수 없어서 그만두게 하셨다고 믿고 있다.

나의 일은 컴퓨터로 하는 난이도가 높지 않은 덴탈 테크니션 일이었다.

하지만 반복적으로 하는 어렵지 않은 일이

다음 과정이 생각이 나지 않는 등 일하기 어려운 상태가 빈번하게 일어나

하던 일을 멈추고 집에 일찍 가는 일이 종종 일어났다.

매니저에게 일하기 힘든 사정을 이야기하고

파트타임으로 일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주문을 하였다.

파트타임 일을 못 찾으면 2주 후에 일을 그 만두겠다고 하였다.

두 주 후에 매니저로부터 다른 파트에서 일을 해보겠냐고 응답이 왔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아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아내의 걱정이 많았다.

그 나이에 어디에 가서 이만한 일을 구하겠냐고 하며

그만두지 말고 잘 견디어 보라고 말하였다.

하지만 나는 이 일이 주님께서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시고

이제 풀타임으로 나를 쓰려고 하시는구나 하는 믿음이 있었다.

 

여러 날을 두고 사랑하는 아내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설득을 하여 동의를 구하였다.

평생 온유와 믿음으로 나를 도와준 아내는 걱정을 뒤로하고 주님의 뜻에 순종하여 주었다.

이후 주님께서 지역사회에서 고난과 절망에 처한 다민족 형제자매들을 섬기게 하시며

그들에게 예수님의 사랑과 빛을 공급하여 주셨다.

그리고 나를 이모저모로 훈련시키시고 단련시키셨다.

내 가정에 처한 모든 궁핍함도 주님의 방법으로

삶에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여 주실 줄로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