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과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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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군의 작은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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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주의 이야기(책)/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연재)

2020. 8. 16.

오지마을 들꽃

 

청송 교회

 

주님과 함께하는 한국의 오지탐방 계획은

미국에서 수개월간 기도와 함께 인터넷을 통하여 이루어졌다.

계획을 세우던 중에 경상북도 청송에서 귀농인들을 도우며 목회하시는 목사님 한 분과

강원도 정선 오지 에서 오래전에 산과 밭을 넘나들며 오지 선교를 하다가

그곳에 작은 교회를 세우고 사역을 하시는 목사님을 만나기로 예약이 되었다.

 

참으로 마음이 든든하고 좋았다.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분들을 만나게 된다는 기쁨이 마음에 차올랐다.

한국에 살고 있는 누나에게 경북 청송으로 떠난다는 기별을 하고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하여 집을 떠나 LA공항으로 향하였다.

가족들의 배웅을 받으며 그저 담담한 마음으로 출국 수속과 탑승을 위하여 안으로 들어갔다.

수속을 마치고 탑승을 기다리는 동안 불편한 마음으로 나를 보내는 아내의 생각이 마음에 가득 차 오른다.

 

‘여보 미안합니다.

힘들 게 이민생활을 살아가는 당신을 놓아두고

훌쩍 떠나는 나를 용서하여 주기 바래요’

 

새벽 0시 전후에 비행기를 타고 열두 시간을 좀 넘게 날아가는 동안에

가족과 뜬금없이 헤어져 홀로 떠나가는 나의 마음을 짓누른다.

하지만 ‘네가 없는 동안 네 가정은 내가 지켜 주겠다’는 주님의 마음이

내게 다가와 평온을 회복하기를 반복하며 어느덧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기쁜 마음으로 마중 나온 누나와 조카를 만나 누님의 집으로 향하였다.

 

누님 집에서 하루를 묵으며 다음날 청송 교통편을 알아보고 있는데

차 관련 잡지사에서 바쁘게 일을 하는 조카가

나를 청송까지 자동차로 데려다 준다고 하였다.

너무 먼 길이라 거절하였지만 누님의 강권으로

흔쾌히 조카와 누님의 도움을 받으며

뜻하지 않은 가족 여행길에 올라 청송으로 향하였다.

 

청송은 한국의 오지중의 오지이기도 하다.

산간지역으로 들어선 후에도 끊임없이 산속으로, 산속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하나님을 많이 사랑하는 누님은 초로 길에 접어든 막내 동생이

느닷없이 한국에 와서 오지를 탐방한다고 하니

하나님의 일을 찾아 나선 동생이

감사하고 기쁘기도 하지만 걱정이 많이 되시나 보다.

 

청송군의 작은 마을에 있는 교회에 도착하여

목사님과 사모님과 함께 소찬을 나누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목사님 내외분도 늦은 나이에 주님의 일을 찾아

정처 없이 나선 나를 격려하며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누어 주셨다.

목사님의 도움으로 청송군에서 운영하는 잘 가꾸어진 숙소를 안내받아

할인된 가격으로 하루를 편히 묵을 수 있었다.

 

누님과 조카는 나를 숙소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되돌아갔다.

먼 길을 구비구비 달려와 싱글싱글 웃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조카와 누나가 무척이나 고마웠다.

 

다음날 목사님께서 차를 가지고 숙소로 찾아오셨다.

새벽예배 참석하는 교인들을 집집마다 들려

교회까지 태워가는 길에 나의 숙소에도 들르신 것이다.

새벽예배 후에 청송을 안내하여 주시겠다고 하신다.

허름한 교회 식당에서 아침으로 가벼운 국밥을 한 그릇씩 나누고 청송 탐방에 나섰다.

목사님과 함께한 청송은 산과 계곡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곳이었다.

청송은 사과 재배로 유명한 곳이라 수확기에는 일손이 바빠

사람들을 외지에서 구하여 함께 일을 한다고 한다.

이곳 사람들과 만남을 갖고 싶으면 그 시기에 2주에서 한 달간 합숙을 하며

함께 지낼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말씀도 하여주셨다.

 

청송의 마을들을 차로 오가며 마을 소개를 하여 주신다.

귀농과 귀촌에 대한 말씀도 곁들여가며 이것저것 참고될만한 말씀을 많이 하여 주셨다.

그리고 섬기는 교인들의 이야기도 나누어 주셨다.

 

이곳 귀농인들은 과일농사와 양봉 밭농사 등을 하며 살아간다고 한다.

돌아보는 길에 빈 농가 주택을 한 달 월세가 10만 원 정도라 하시며 보여 주셨다.

아주 낡고 허름하여 손보지 않고는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지만

나무를 때어 밥을 지을 수 있는 아궁이와 두 명이 등을 누일 수 있는 공간과

방문을 열고 나오면 발을 디딜 수 있는 공간이 길쭉하게 붙어 있었다.

옆에 별도로 조그마한 재래식 변소가 있었다.

 

자상하고 고마우신 목사님께서

내일은 이곳 과수원을 돌아보자고 친절하게 계획을 말씀하여 주셨다.

 

성수기에는 외국인 노동자들도 들어와 합숙을 하며 일함으로

그들과 삶을 나누며 그들의 한국 이주 생활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숙소로 돌아가는 중에 누나로부터 메시지가 날아왔다.

정선에서 우리 집안과 구면인 권사님 댁에서 정선에 꼭 들리라는 기별을 받았다는 소식이다.

누님은 멀리 미국 땅에 이주하여 살다가 온 초로의 동생이

전혀 생소한 오지에서 지내는 것이 마음이 노이지 않았나 보다.

강원도 정선의 잘 아는 권사님 댁으로 가면 누나의 마음이 훨씬 편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권사님은 나도 만나본 적은 없으나 누님들로부터 들어 익히 알고 있었다.

15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수원에서 기독교 중고등학교를 섬기실 때

그 학교에 다니며 학교일도 도왔던 아주 성실한 제자이었음을 들어 알고 있었다.

 

목사님께서 권하신 대로 과수원 일도 도우며

성수기에 찾아드는 외국인 노동자들과 어울리며 오지마을 생활을 하고

목사님께서 섬기시는 교회도 함께 섬기며 오지탐방을 시작해 보려는 마음을 접고

누님의 간곡한 권유를 따라 먼저 정선으로 가기로 마음을 바꾸게 되었다.

다정하신 목사님과 너무 이른 작별을 하게 되어 아쉬움이 많았지만

다음에 또 기회가 있으리라는 마음이 있었다.

목사님도 정선에 가 보고 한 달 후면 이곳 일손이 바빠질 때이니

그때와도 늦지 않겠다는 말씀을 하여주셨다.

다음날 새벽 이른 시간에 목사님께서 숙소로 오셔서

인근 해안 도시인 영덕의 시외버스 터미널로 배웅을 하여 주셨다.

 

‘목사님, 바쁘신 중에도 이 나그네와 같은 사람을 후대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어 다시 이곳으로 올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인사를 끝으로

준수하신 용모로 오지 산마을 교회를 섬기시는 귀하신 목사님과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