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사랑♡사랑

생선주세요 2018. 4. 23. 16:51


http://v.media.daum.net/v/20180423130613076



[애니멀피플] 김하연의 묻지 않는 고양이
어느해 봄, 박스 안에서 태어났다 
제 몸 가누는 순간 독립하는 거친 삶 
버티던 아이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한겨레]

추울 때도 더울 때도, 서로에게 의지하며 생을 버텨내던 두 마리 고양이가 어느날 연기처럼 사라졌다.

벚꽃이 핀 어느해 봄이었다. 4마리가 한 몸처럼 뒤엉켜서 조용한 골목으로 나왔다. 새끼를 낳은 곳은 어느 빌라 뒤편 작은 박스. 엄마 고양이의 지극한 보살핌과 빌라 101호에 살던 신혼부부의 고마운 배려로 4마리 모두 꼬물이 시절을 무사히 보냈고, 마침내 똥꼬발랄 ‘아깽이’들이 되었다.

장난이 한창 심해지고 꼬리로 다리를 감기 시작할 때(생후 3~4개월 무렵 고양이가 꼬리로 의사를 표시하는 등 제 몸을 자유자재로 쓰거나 통제할 수 있는 시기에 하는 행동, 엄마 품에서 독립할 수 있는 때이기도 하다), 늦은 장마가 잠시 성질을 부리며 정신없이 비를 퍼붓던 날로 기억한다. 엄마는 미련 없이 아이들을 두고 아래 골목으로 영역을 옮겼다. 엄마로부터 아이들이 독립당한 것이다. 빌라는 재건축을 위해 빛바랜 노란 천막으로 둘러싸였다. 안내문을 붙이면서 아깽이들의 가족을 찾아주려고 했던 신혼부부의 노력은 아무 성과가 없었다. 신혼부부도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을 남겨 놓고 떠났다.

공사장 옆에 마련된 ‘길고양이집’ 위에서 쉬고 있는 고양이. 아직 아기 티를 벗지 못했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마련된 ‘길고양이집’에서 두 마리는 서로 의지하며 지냈다.
마련해 둔 길고양이집을 치우지 말아달라고 메시지를 남겨둔 주민.

남겨진 아이들은 공사장 천막이 둘러쳐진 옆 주차장을 하루 종일 서성였다. 그 곳이 집이었으니까. 떠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떠날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차츰 천진난만한 그 눈빛을 잃어버렸다. 잃어버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길 위의 삶이란 그런 거니까. 이제부터의 삶은 온전히 저 아이들 몫이다. 넷 중에서 삼색이가 먼저 그 자리를 떠났고 다음으로 노랑이도 떠났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떠났을 뿐 사라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둘이 남았다. 그나마 도움을 주는 사람들에게 의지하고 있어서 두 마리는 떠나지 않을 수 있었다.

남은 둘은 매일 새벽 같은 자리에서 기다리곤 했다. 오래도록 만나기를 바랐다. 하지만 나와 만나는 시간은 하루에 고작 2~3분. 하루 24시간 중에서 23시간 57분 이상 저 아이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다. 점차 나와 멀어지며 머뭇거리는 아이들 눈빛과 골목 전봇대에 붙어 있는 고양이 밥 주지 말라는 경고문으로 짐작할 뿐이다. 덥고 습한 여름을 견디고 서늘해진 바람을 서로의 체온으로 막아주다가 낙엽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할 무렵, 둘도 골목을 떠났다. 아니 사라졌다. 연기처럼. 며칠을 찾아도 찾을 수 없었다.

매일 새벽, 같은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던 두 마리 고양이는 어디로 갔을까.
쌍둥이처럼 닮은 삼색이 한 마리가 떠나기 전, 세 마리가 뭉쳐다녔다.
‘아깽이’ 시절 주민들의 도움으로 밥을 얻어먹으며 지내던 두 마리 고양이.

서울시에서 2017년 조사한 ‘길고양이 서식 환경 모니터링’에 따르면 어미에게서 태어난 길고양이 새끼들의 생존율은 25%라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25%의 생존율도 높은 것 같다. 여름과 겨울 기온차가 55도 이상 나는 환경에서 태어나 3~4개월 엄마의 보호를 받다가 독립해서, 알아서 먹을 것을 구하고, 알아서 아프지 않고, 알아서 차를 피하고, 알아서 사람들의 해코지를 피해서 살아남은 일은 불가능한 미션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뿔뿔이 흩어진 아이들의 삶은 어찌 되었을까. 과연 저들의 삶을 저들에게만 맡겨두는 것이 옳은 일일까.

글·사진 김하연 길고양이 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