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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산 2012. 1. 25. 09:10

 

                           

          <오온(五蘊, 빠알리어 pañca-khandha, 산스크리트어 pañca-skandha)>

                             


                         

    ‘온(蘊)’이란 산스크리트어 스칸다(skandha)의 역어로서 덩어리, 무더기를 의미한다. 따라서 오온이란 색온(色蘊), 수온(受蘊), 상온(想蘊), 행온(行蘊), 식온(識蘊), 이렇게 다섯 가지 덩어리가 모인 것을 말한다.

   이런 5온의 좁은 의미는 인간존재(존재의식), 우리 몸을 가리킨다. 인간은 물질적인 요소인 색온(육체)과 정신적인 요소인 수온, 상온, 행온, 식온 등 5개의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는 말이다. 이와 같이 불교에서는 인간을 오온으로 관찰하므로 오온이 불교의 인간관인 셈이다.

   그리고 오온을 단순화시키면 몸과 마음이다. 색은 몸이고 수 ‧ 상 ․ 행 ․ 식은 마음인데, 결국 오온이란 인간의 육체와 정신이라는 구성요소를 말한다. 그러나 5온에서는 다른 종교에서 말하는 영혼 같은 것은 없다. 수, 상, 행, 식과 같은 정신현상은 영혼과는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오온이라는 말 자체는 ‘색, 수, 상, 행, 식’ 다섯 가지가 인연화합으로 조직돼서 쌓인 것, - 중연화합(衆緣和合)해 이루어졌으며, 오온가화합(五蘊假和合)한 것이라 한다. 그래서 개인적 존재는 오온이 임시로 모여 구성된 것이라 한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오온은 인간존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현상을 말하는 것임을 확실히 이해해야 한다.

오온은 현상적인 존재로서 끊임없이 생멸 변화하기 때문에, 언제나 머물러 있는 불변의 실체가 아니다. 따라서 오온의 그 어느 것도 ‘나’로 불릴 수 없다(오온무아)는 것이 불교의 입장이다.

     색(色)은 육신을 가리키는 물체이고, 수ㆍ상ㆍ행ㆍ식ㆍ은 정신을 이루는 요소이다.

그런데 수, 상, 행, 식, 사온(四蘊)은 경계만 쫓아다니는 나그네 같은 미혹한 마음임을 알아야 한다.  

     수(受)는 눈 귀 코 혀 몸으로 받아들인 것을 느끼는 감수작용이며,

     상(想)은 감수작용을 통해 인식된 것을 형상화하는 표상작용, 생각이며,

     행(行)은 하고자 하는 의지, 형성 결합작용이며,

     식(識)은 인식하고 분별하는 작용을 한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아래와 같다.

   

   1) 색온(色蘊, 산스크리트어 rupa-skandha)---색은 물질적인 형태로서 육체를 의미하는데, 인간의 몸은 지(地), 수(水), 화(火), 풍(風)의 4대(四大)로 이루어지고, 감각기관은 눈(眼), 귀(耳), 코(鼻), 혀(舌), 피부(身) 등 다섯 기관[오근(五根)]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위 5근(五根)의 대상이 되는 색 ․ 성 ․ 향 ․ 미 ․ 촉(色聲香味觸) 5경(五境)까지 색온에 포함한다. 이들 4대, 5근, 5경을 합친 색온을 한 마디로 말하면 물질이다.

이러한 색(色)의 개념을 좁은 의미와 넓은 의미로 나누기도 한다.

    • 좁은 의미의 색은 안근(眼根)의 대상인 색경(色境)을 말한다. 즉, 눈으로 볼 수 있는 구체적인 형체를 가진 객관적 대상인 물질적 존재를 말한다. 물질의 속성인, 빨강이니 파랑이니 하는 색깔과 형체를 가진 것들을 말한다.

    • 넓은 의미의 색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물질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들리는 소리, 냄새 나는 것, 혀끝의 맛, 만져지는 촉감까지도 다 포함된다.

   뿐만 아니라 안근(眼根)은 보이는 대상뿐만 아니라 밝음과 어둠까지 인식할 수 있는 도구인데, 빛과 어둠까지 포함해서 분별하고, 번뇌를 일으키는 마음작용, 관념의 의식작용까지 다 포함해서 색(色)이라 한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불교에서는 정신작용까지도 색에 포함시키므로 불교의 물질론은 물리학의 물질론과는 초점이 다르다. 물리학의 물질론은 물질이 무엇이며. 무엇으로 어떻게 구성돼 있는가라는 본질적인 규명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반면, 불교의 물질론은 해당 물질이 어떤 작용을 하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리고 소리, 냄새, 맛, 촉감, 나아가서 번뇌와 같은 정신작용조차도 색에 포함시키므로 불교에서의 색(色)은 물리학에서 생각하는 물질보다 더 광범위한 개념이다.

 

   2) 수온(受蘊, vedana-skandha)---수(受)란 감수작용(感受作用), 즉 느낌, 감정을 말한다. 색에 해당하는 안 ‧ 이 ‧ 비 ‧ 설 ‧ 신(眼耳鼻舌身) 오근이 색 ․ 성 ․ 향 ․ 미 ․ 촉(色聲香味觸) 5경(境)을 만나서 받아들이는 느낌, 감각, 감성, 영어로는 필링(feeling)이다. 이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감정이다.

   예를 들면, 눈(안근)이 좋은 그림(境)을 만나서 어떤 느낌(受)을 가지게 되는 것과 같다. 이때 색온인 눈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식온(識薀)도 작용을 해서 좋음(즐거움)이나 싫음(괴로움)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식온이 색온인 육체(눈)와 연결돼서 수(受)가 생긴다. 이렇게 해서 일어나는 곱다, 밉다, 시끄럽다, 비리다, 쿠리다, 달다, 쓰다, 매끄럽다, 거칠다, 좋다, 싫다, 즐겁다, 괴롭다 등 일차적 단순 감정의 느낌을 수(受)라고 한다. 수온이란 그런 느낌의 덩어리란 말이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어서 굉장히 민감하다. 자기감정에 대한 집착이 있기 때문인데, 이것이 수의 기능이다. 그래서 쉽게 상처를 받는다. 인간은 감정을 건드렸을 때, 불같이 화를 낸다. 누군가 남의 약점을 건드리는 것은 마치 촉수를 건드리는 것과 같다. 정확하게 말하면 독사의 대가리를 때리는 것과 같다. 그래서 수라고 하면 보통 느낌, 감수라고 하지만 우리가 더 본질적으로 들어가면 감성작용, 즉 감정을 말한다.

   수에서 느끼는 감성이란 성질상 세 가지가 있다. 고수(苦受-싫은 것), 낙수(樂受-좋은 것), 불고불락수(不苦不樂受-싫지도 좋지도 않는 것)인데 이것을 삼수(三受)라 한다.

 

   3) 상온(想蘊, samjna-skandha)---상(想)은 표상(表象)작용으로서 마음속에 어떤 것을 떠올려 어떤 개념을 형성하는 - 이름 짓는 작용을 의미한다. 이는 이미 축적돼있는 정보와 연관지어 느낌이나 감각의 인상을 머릿속에서 정리해 지각하고 이름 짓고 한다. 즉, 대상을 구체적인 형상을 인식하는 기능을 말한다. 어떤 대상을 상상을 해서 그 구체적인 모습을 그려내는 능력이다.

    상(想)이라고 하는 것은 과거의 기억이나 인식으로부터의 연상작용이다. 쉽게 말하면 생각이 곧 상이다. 그리고 사상, 주의(主義), 견해, 이념과 같은 지식이나 이지적 심리현상의 밑바탕이 된다. 즉, 지적(知的) 단초가 되는 심리현상을 말하고, 그 외에 명상, 감상, 공상, 상상, 망상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인간을 상상하는 동물이라 하는 것도 이 상(想) 때문이다. 따라서 축적된 정보가 없으면 멋대로 개념을 정립한다.

   예컨대, 영화 ‘부시맨’에서 아프리카 부시맨 마을 위를 날아가던 미국 비행기에서 실수로 콜라병 하나를 떨어뜨렸다. 이것을 주은 부시맨 족장은 ‘하느님이 내려주신 귀한 선물’이라 생각하고 제단 위에 콜라병을 올려놓고 매일 절을 한다. 이웃마을 족장은 이 귀한 하늘의 선물을 뺏으려고 전쟁을 일으킨다. 이때 ‘하느님의 선물’이라 규정한 것이 상(想)이다.

   또 여행을 가서 부처님 상(像)을 봤을 때, 불교신자의 반응과 기독교신자의 반응이 다를 것이다. 이것은 각자 가지고 있는 상(想)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상온(想蘊)은 우리가 어떤 대상을 인식해 받아들였을 때 그것을 이리저리 생각해서 언어적으로 표현하거나 의미를 부여하든지 이름을 짓는 것을 말한다.

   

   4) 행온(行蘊, samskara-skandha)---빠알리어로는 ‘상카라(sankhara)’라 하며, 행위를 낳는 의지작용을 말한다. 즉, 분별한 감정을 생각으로 굴려서 마음의 행위를 계속 이어나가는 의지와 행동작용이다. 행은 행위를 선택하고 결정하는 정신을 지칭한다. “착하게 살아야지. 절에 가야지. 부자가 되고 싶다. 출세하고 싶다.” 이것을 한 마디로 말하면 의지로서 행이다. 행위(行爲)가 아니라 의사(意思)의 작용이다. 이것은 다만 마음속을 말하는 것으로서 행하려고 하는 마음이다.

   ‘행(行)’이라는 한역 단어에는 여러 가지 쓰임이 있으므로 그 쓰임을 구분해야만 상카라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그 쓰임은 경전들에 나타나는 문맥을 통해서 파악할 수밖에 없는데, 크게 세 가지 문맥에서 행이 나타난다.

    • 오온(五蘊)---색ㆍ수ㆍ상ㆍ행ㆍ식에서 행으로 나타난다.

    • 제행무상(諸行無常)---이 문맥에서 ‘행’은 유위법(有爲法)을 뜻하며, ‘형성된 것들’에 가까운 뜻이다. 그리고 ‘제행’은 물질적 현상과 정신적 현상을 모두 포함하는 일체유위법, 중생이 살고 있는 세상의 모든 것을 뜻하는 가장 넓은 의미로 사용된다.

    • 12연기에서의 행(行)---12연기 두 번째 구성요소, 즉 무명(無明) 다음에 나타난다. 이 경우 행은 의도와 의지작용을 갖고 움직이는 것으로 업(業, karma)과 동의어이다. 그래서 신행(身行) ․ 구행(口行) ․ 의행(意行), 즉 몸으로 행동하고, 입으로 말하고, 마음의 움직임이 각각 신 ․ 구 ․ 의 삼업(三業)과 일치한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윤리생활을 할 수 있고 업(業)을 짓게 되는 것은 행의 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로봇은 기억력이 있다. 칩에 저장하기 때문에 함장식(含藏識)은 있는 셈이다. 그러나 로봇은 꿈을 꾸지 못한다. 그것은 행이 없기 때문이다. 의도 및 의지작용이 있어야 꿈을 꿀 수 있다.

   12연기에서 ‘행(行)’은 무명으로 인해서 형성되는 것이므로, 그릇된 행동, 그릇된 언어, 그릇된 마음으로 인해서 무엇인가가 이루어지는(형성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업(業)이라고 하는 말과 표리의 관계이다. 따라서 ‘행’은 불교 윤회설의 핵심이다.

   이상 같이 행(行)은 그 용처에 따라서 의미를 달리한다. 어떤 분은 행을 의도적 행위, 즉 업 형성 하나만으로 이해하려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제행의 행과 오온의 행온은 제대로 설명되지 못한다.

   행(行)에는 인간의 정신작용 중, 행동하게끔 해주는 능동성, 즉, 마음작용 이외에 마음을 작용시키는 힘(心不相應行)도 있다. 그래서 의지와 욕구, 그 이외에 감각, 접촉, 의도, 주의, 집중, 의욕, 선업의 마음(믿음, 양심, 수치심), 불선업의 마음(탐, 진, 치)을 모두 포함한다.

   그리고 행은 우리의 정신영역 가운데서 수 ‧ 상 ‧ 식 이외 모든 마음작용을 총칭할 만큼 심리현상을 포괄하고 있다. 그래서 아비담마에 나오는 52가지 심소(心所-마음부수) 대부분이 행에 속한다.

   이와 같이 행온은 넓은 의미로 사용되며, 우리의 정신적 삶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따라서 행을 다스리지 못하면 불교 수행의 바른 길로 가기 어렵다.

   

   5) 식온(識蘊, vijnana-skandha)---식은 수(受)ㆍ상(想)ㆍ행(行)과 같은 마음부수(心所=마음작용)들과 함께 해서 인식의 주체가 되는 마음작용을 이르는 말이다. 무엇인가 대상에 대해 구체적으로 종합적으로 사실 판단을 일으키는 것이다. 분별, 인식, 판단, 기억 및 그 작용을 말하는데, 수 ‧ 상 ‧ 행을 도와서 작용을 함께 해서 인식, 식별(識別, 了別)한다고 해서 ‘알음알이’라고도 한다.

   특히 부파불교의 아비달마(阿毘達磨) 교학에서 '식'은 마음의 주체(心王)라 하고, 수 ‧ 상 ‧ 행은 마음의 속성, 즉 마음작용(心所)이라고 했다.

   결국 식은 마음의 총체이고, 종합적인 판단을 말한다. 따라서 식은 널리 감각ㆍ지각ㆍ사고 작용을 포함한 인식작용을 말한다. 마음작용 전반을 총괄하는 주체적인 마음활동을 말한다.

   그리고 대상을 알고 판단하는 ‘식(識)’이 일어날 때는 반드시 수 ‧ 상 ‧ 행이 동시에 함께 일어난다.

   

   그런데 오온(五蘊)에서 색(色)을 제외한 수(受) ․ 상(想) ․ 행(行) ․ 식(識)은 지속적이고 복합적이며 통합적으로 일어난다. 즉, 수 ․ 상 ․ 행 ․ 식이 순서대로 줄줄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지만 그 중에서도 맨 먼저 강력히 작용하는 것이 수(受)이다.

   

    -------오온의 실제 사례-------

   

   오온은 색(色)과 감정적 느낌(受)과 이성적 인식(想)과 그에 바탕 해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마음(行), 그리고 이들 심리현상의 도움으로 대상을 판별하는 작용(識)으로 이루어진다.

    ① 색온인 눈(안근)이 꽃이라는 대상(경계)을 보면→ 그 꽃이 아름답다고 느끼고(수)→ 그 꽃이 장미꽃임을 지각하고(상)→ 그 꽃을 꺾고 싶다는 마음이 들고(행)→ 그 꽃을 내가 좋아는 꽃으로 기억에 저장(식)한다. 이러한 느낌이 감정적, 정서적 정신작용이 돼→ 예술적, 정서적 심리현상(행)의 단초가 되기도 한다.

    ② 색온인 눈(안근)이 눈앞에 한 여인이라는 대상(경계)을 만났다고 하자→ 그 여인을 보고 예쁘다고 느끼는 것(수)→ 그 여인이 여대생이구나, 아니면 회사원이구나 하고 지각하는 것(상)→ 여인을 가지고 싶어 하는 것(행)→ 그 여인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판단을 내리는 것, 즉 우리 집에 어울리지 않는 여인리라든지, 성격은 좋지 않겠다든지, 나한테는 과분하다든지(식).

    ③ 색온인 코(비근)가 냄새(경계)를 맡게 되면→ 일차적 느낌인 쿠리다(수)→ 똥 냄새다(상)→ 냄새 때문에 밥맛이 떨어졌다(행)→ 어디에서 나는 거야. 누구에게서 나는 거야, 왜 나는 거야라고 따진다(식).

    ④ 술을 마시기 위해 술잔을 입에 갖다 댔을 때, 색온인 설근이 발동을 해서→ 아! 술맛이 좋다고 느끼고(수)→ 이 술맛이 위스키구나 인식하고(상)→ 그러니 실컷 마셔야지(행)하다가→ 이게 몇 년 된 거야, 독한데 몇 도나 되지, 독해서 빨리 취하겠다고 하는 것은 식이다. 그리고 술에 취해 기분이 좋아지지만(수) 실수하면 안 되지 하는 것은 (식)이고 정신을 바짝 차리는 것은 (행)이다.

    ⑤ 색온인 눈(안근)이 꽃을 보고, 좋은 기분이 들었다고 하면, 그것은 수(受)이다. → ‘아! 귀한 노랑 장미꽃이구나.’라고 하는 건 개념작용이므로 상(想)이다. → ‘가지고 싶다’라고 했을 때 그것은 욕심이므로 행(行)이다. → 내 호주머니 사정과 장미꽃의 값을 따져서 살까? 말까? 아니면 나중에 사야겠다고 결정하는 것은 식(識)이다.

   

   이와 같이 오온은 현상적으로 끊임없이 생멸 변화하기 때문에, 언제나 머물러 있는 불변의 실체로서의 존재가 아니다. 따라서 불교에서는 개인적 존재인 오온은 임시로 모여 구성된 것(오온가화합/五蘊假和合)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므로 대승불교에서는 오온 그 자체도 또한 공(空)이고 실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즉, 5온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5개의 요소들은 모두 비실체(非實體)적인 것이므로, 이와 같은 요소들로 이루어진 인간존재 역시 비실체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무아(無我:anatman)라고 한다.

   

   ------오온(五蘊)이란 ‘나’라는 존재가 아니라 ‘나’라는 의식이다.-----

 

   깨달음의 종교인 불교는 인식론이지 존재론적인 종교가 아니다. 따라서 부처님은 오온(五蘊)을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존재론적 문제)로 본 것이 아니라, 어떻게 깨닫고 생각하느냐하는 인식론적인 방법으로 말씀하셨다.

   여기서 확실히 해 두어야 할 것은, 오온(五蘊)이란 ‘나’라는 존재가 아니라 ‘나’라는 의식이다. 즉, 오온은 '자아(我)'가 아니고 다만 '자아의식'이다. 그래서 불교는 존재론적인 접근이 아니라 인식론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오온은 나(자아의식, 에고)를 형성해가는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즉, 오온은 아(我)를 구성하는 5가지 구성요소가 아니라, 5가지 의식작용으로 봐야 한다. 오온이란 5가지 의식작용이 쌓이고 쌓여서 ‘나’라고 하는 의식(에고)으로 형성됐다. 그러므로 오온이란 존재가 아니라 5가지 의식작용이 쌓인 의식이다. 다시 말하면 오온이 바로 ‘나’가 아니고, ‘나’라고 하는 의식이다.

  

   ----------오온은 괴로움 덩어리(五取蘊苦)--------------

   

   오온은 무아(無我)이므로 나의 것이 아니고, 내가 아니고, 나의 자아가 아니다. 때문에 오온에 집착하지 말고, 버리고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 해탈할 수 있다. 우리 몸뚱이는 고통 덩어리이다. 인체를 구성하고 있는 오온(五蘊) 그 자체가 곧 괴로움이란 의미이고, 인간존재의식 자체가 곧 괴로움이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오음성고(五陰盛苦)라 한다. 오음(오온)이 치성(熾盛 ; 불길같이 성하게 일어남)해서 오는 고통이란 말이다. 팔고(八苦)의 하나로서 오취온고(五取蘊苦)라고도 한다. 인체를 구성하고 있는 오온(五蘊) 그 자체가 ‘나’인 줄만 알고 취착하는 데에서 생기는 고통을 말한다. 종래에는 오온이 치성하니 이것에서 오는 고통이라고 번역했으나 이것은 잘못이다. 오온 - 다섯 가지 존재현상을 ‘나’라고 취착하면 그것이 고(苦)가 된다는 뜻이다. 내 몸, 내 느낌, 내 생각, 나의 정신작용, 이런 것을 ‘나’라고 취착해서, 즉 오온이 나의 실체인 줄 잘못 알아서 ‘나’에 집착해 행위 할 때, 그런 행위는 고통을 양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고통을 여의고 안심입명(安心立命)을 얻기 위해서는 괴로움의 실체를 바로 알아야 한다. - 미산 스님

   여러 고통 중에서도 우리 인간을 가장 괴롭히는 것이 오음성고이다. 오음성고는 어떤 특정한 고통이 아니라 인간고의 총체적 모습을 말하고 있다. 오온(五蘊) 자체가 고(苦)라는 말이다.

   오온개공(五蘊皆空)이라, 오온(五蘊)이란 것도 다 실체가 없는 무상한 것이다. 그리하여 부처님은,

     색(色, 몸)은 물결이요,

     수(受, 느낌)은 물거품이요,

     상(想, 생각)은 아지랑이요,

     행(行, 의지)은 파초요,

     식(識, 인식)은 허깨비라고 했다.

   헌데 중생은 이를 무상하게 보지 못하고 내 몸과 마음(아상/我相)의 실체가 있는 것으로 착각해서 이에 집착함으로써 거기에서 오는 고통이 오음성고이다.

   그리고 오음성고라 하는 것은 생로병사 그 자체를 뜻한다. 따라서 오음성고를 육체적인 오욕락(五慾樂 - 식욕, 성욕, 수면욕, 재물욕, 명예욕)이 지배하는 아픔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오음성고를 인간의 오관인 안ㆍ이ㆍ비ㆍ설ㆍ신(眼.耳.鼻.舌.身)의 육체적 본능에 의한 욕망이 치성해서 오는 괴로움이라 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하여 오온이 치성하다는 것은 바로 번뇌 망상이 치성하다는 말인데, 번뇌 망상이 치성한 삶이야말로 괴로움일 수밖에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 오취온고(五取蘊苦)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늘 깨어 있어서, 오취온에 대한 마음이 일어날 때마다 이를 알아채고 놓아버리기를 계속해야 한다. 즉, 팔정도(八正道) 수행을 통해 오온개공(五蘊皆空)을 이해해야 하고, 방하착(放下着)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무아(無我)를 깨쳐야만 한다. 오온개공(五蘊皆空)이란 바로 무아를 설명한 말이다.

   

---------------------------------성불하십시오.  작성자  아미산(이덕호)

     

※이 글을 작성함에 많은 분의 글을 참조하고 인용했음을 밝혀둡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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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명쾌합니다.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