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jackie 2011. 4. 22. 00:06

   이민온지 몇해동안은

짧은 가을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고 지나가 버려서

기나긴 겨울을 견뎌내기가 상당히 어려웠었다.

이젠 나름 익숙한 방법으로 겨울을 대비하곤 하는데

그건 다름아닌 햇볕쪼이기.

 

그래서 주말마다 교외로 산책을 하거나 드라이브를 나가서

커피마시고 책읽고 수다를 떨면서

햇빛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데 심혈(?)을 기울이지.

물론 항상 남편과 하는 일정이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같이 공유할 시간이 있음에 감사를 해야할만큼 수수해졌다.

같이 가게를 꾸려나가느라

부부가 같이 보낼 시간조차도 없는 이민자들이 부지기수이니........!

 

지난 토요일에도

딸을 도서관에 내려주고 하루종일 햇볕쪼이기를 끝내고,

간만에 강연이 있었던 성당으로 갔다.

감성치유전문가 김반아박사의 강연을 들으러.

 

김반아 박사는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이시다.

외조부 <거부 이종만>사업가가 부의 균등분배의 꿈을 실현코저

월북을 감행한 후,

그의 막내딸인 김박사의 어머니는 그 남편과 아이들을 이끌고

제재가 가해졌던 조국을 등지고 브라질이민을 가셨고,

거기서 봉제사를 하면서,

미국으로 케나다로 나라를 바꾸는 모진 삶을 사셨고,

당시 인텔리여성이였지만 어머니라는 멍에에 자신의 꿈을 접고

자식에게 엄한  어미의 모습으로 사셨던 분이다.

1977년에 이념의 칼이 퍼렇던 시절인데도 불구하고 케나다시민권자로

이북에 가서 친정아버지도 살아생전에 뵙고,

또 그로인해 교민사회에 왕따를 당하셔서 반년을 식물인간으로 사셨던 분이다.

 

고등학교 2학년때 부모의 뜻에따라 브라질행 배에 올랐던 김반아씨는

낯선 포르투갈어나 영어를 익히면서,

당신의 이루지 못한 꿈을 강요하는 엄한 엄마와의 소통의 부재로

그리고 이방인으로 살아야하는 자신의 정체성의 부재로 항상 마음의 병이 있었고......

항상 긴장과 명령과 일방적인 강요만이 유일했던 가정에 대한 기억을 안고

그녀는 상담심리치료를 공부한 분이시다.

 

공부하면 할수록 다시 회귀되는 해결할수 없는 문제가

엄마와 자신의 문제라는 인식에 귀착한  그분은 

오랜 갈등에도 포기않고 엄마와의 마음의 소통을 통해서 치유를 맛보신 분이다.

 

   그분의 강연요지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문제의 생성은 그 타인이 아니라

만족못한 가정의 가족과의 사랑결핍이라는 거지.

 

<수신제가치국평천하> <가화만사성>이 진리라는거.

엄마나 아버지 그리고 형제들과의 관계개선이 우선이라는거.

참고참았던 모든 문제는,

중년에 자기자식과 남편과 아내와의 문제로 대물림된다는거.........!

그 박사도 중년에서야 진정한 엄마와의 마음의 소통을 시작했다는거.

 

바로 우리나이인거 같다.

늙어버린 부모님이아니고,

사춘기인 우리의 자식이 아니고,

우리 중년이

사춘기 소년소녀처럼 뜨거운 가슴으로 가족의 소통을 주관할수 있는 힘이라는거.

공감이 많이 갔다.

나만 그런가?

 

우린,

40대인 우린......

여자는 대화로 분을 삭히고,남자는 음식으로 보상받아야한다고

신부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이 난다.

그런데 아이러니는,

보양식을 만들어야하는 아내들은 밥하기 싫은 나이고,

아내의 과거의 응어리는 죽기보다 듣기싫은 남편이 우리라는데 있지.

그래도 결국은 둘뿐.

하기싫은 공부를 아이들에게 강요하듯이

우리에게  하기싫은 요리나 듣기를 일상적으로 다짐해 보자.

행복해지기 위하여!

 

 

출처 : 연무초교11회동창회
글쓴이 : 오 복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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