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jackie 2011. 4. 22. 00:08

  내겐,

그 누가 언제라도 친구를 주제로 이야기를 하면

늘  떠오르는 친구가 있다.

 

그녀는 너무나 조용해서 내가 중학교때는 그녀의 존재조차도 몰랐고,

우린 같은반을 해보질 않아서 한번도 말을 해본적이 없는 관계였었다.

 

고등학생이 되고,

커트머리에 등치가 산 만하고 목소리조차 허스키한 나와,

양갈래 곱게 머리를 땋고 조신했던 예쁜 그녀는

특별하고 운명적인 기억도 없이 그렇게 친구가 되었고,

삼년을 줄창 붙어다니는 절친이 되었다.

 

얼굴도 예쁘고 글을 잘쓰던 그녀는

전형적인 상상속의 여고생 스타일이라,

난 <클래식>이라는 영화속의 주인공 손예진의 모습을 보면 그녀가 떠오른다.

그에반해 난 선머슴같고......  안문숙이처럼.

 

우린 서로 다른 반이 되어도 종례를 기다리고 꼭 같이 하교를 하는 사이라,

매일밤 열시반쯤, 서문부터 북문까지 걸어서 오는 사이였었다.

항상 장안공원이 우범지역이라,

그 반대편으로 걸어오면서 어찌나 할말이 많았는지........

주로,

우린 가족과 그밖의 인간관계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가끔은 야자를 땡땡이 치고 옥상에서 마음껏 수다를 떨다가,

동성애자라는 의심도 받았었고........

 

그친구는,

너무나 글을 잘 써서 매번 백일장의 단골 장원이 되었고,

그래서 난 친구앞에서 한줄의 글도 쓰질 않았었다.

이 카페에서 글을 쓰면서 사장되었던 나의 글발(?)에 대해

그녀에게 너의 탓이라고 원망을 늘어놓았더랬다.

 

7남매의 넷째였던 친구는

홀로되신 엄마에게 자기가 원하는 걸 말할줄 모르고,

참는게 당연한 인내의 세월을 살았고, 

집안의 기둥인 남동생을 떠받드는 누나였다.

그래서,

가끔 가게를 하는 친구의 집에 가면,

나도 그집의 딸처럼 가게보고 밥하고 방치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일찌기 큰언니는 암으로 세상을 등지고,

어느겨울날 친구와 난 김포 어드메에 사는 형부와 조카를 보러 논둑길을 걸었었다.

저녁놀과 초가집에서 나오는 저녁밥 짓는 연기로 감동도 먹은 기억이 또렷하다.

친구의 똑소리나는 둘째언니는 대학졸업과 동시에 결혼을 선언했다.

집안의 수재이며 생활에 보탬이 될거라 믿어의심치 않았던 

친구엄마의 기대는 물거품이 되었고,

얼굴이 퉁퉁 붓도록 분노와 배신을 삭히지못했던 엄마는

놀러간 딸의 친구인 내앞에서조차 두다리를 뻗고 대성통곡을 했었다.

친구와 난 언니의 결혼식이 끝나고 수원으로 내려오는 내내,

우시는 엄마를 양쪽에서 부축하고 신세한탄을 들으며 죄인처럼 수원에 도착했다.

 

아마 그 이후라고 기억된다.

친구엄마는 딸에게 투자를 절대로 안하셨다.

원래 혼자의 몸으로 유별난 아들사랑도 있었지만,

딸에게는 관심을 멀리 하고 정을 떼셨다.

 

그래서 나의 친구는 고딩을 졸업하고,

회사를 두어 군데 다니다가 만화가게를 했었다.

줄곧 그 만화방에 놀러가서 만화는 안읽고 라면을 끓여먹고

가겟방에서 배깔고 엎드려서 왕수다를 떨었던 생각이 난다.

그러다가 친구엄마가 가게에 뜨면,

책정리 하고 방치고 눈치보고 같이 혼나고....

친구집의 그간의 사정을 다아는 나는,

친구엄마의 컨디션에 따라 수다상대도 되고 구박떼기도 되었다.

 

그 반면에

우리학교 축제때는 항상  우리과 친구들과 같이  어울렸다.

그래서 나의 대딩친구들은 아직도 그녀의 이름을 대며 안부를 묻곤 한다.

우린,

각자의 길이 달라도

똑같은 마음으로 오해의 틈이 없었다.

지금서 생각하면 친구가 마음이 넓어서 였겠지.

아님 내가 무작정 친구에게 들이댓거나......

 

내가 결혼을 하던 해에 그녀는 드디어 문예창작과에 들어가서

늦깍이 공부를 했고,

아직까지도 글쟁이로 활동을 한다. 유명하지는 않아도.

언제나 나의 열렬한 응원을 받으며......

 

각자의 결혼과 육아의 고충도 서로 토로하고 위로하며

내가 이민을 떠났어도,

15년동안이나 변함없이 우리의 국제수다가 줄창 이어지는걸 보면,

질겨도 한참이나 질긴 인연인듯 싶다.

아마도

멀리 떨어져 있어서 더 할 말이 많은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기쁠때나

너무 슬플때나

마약과도 같이 엄마보다도 먼저 떠오르는 그녀는,

나에게 축복이다.

 

사실 우린,

친정엄마의 험담(?)을 많이 하였다.

고딩때부터 서로 고민하던 엄마에대한 문제도,

내나이 40에 친정엄마와  마음으로 화해를 했었고,

난 아직도 답보상태인 그녀에게 항상 채근을 했었다.

 

차일피일 미루기도 했지만,

그녀에게 엄마와의  화해란,

생활이라는 현실앞에서 사춘기소녀의 투정쯤으로 생각되어

아련히 언젠가의 미래의 일로 여겨져 언제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그런데,

한 20일쯤 전에 그녀의 엄마가 그녀를 방문해서

아이의 등록금을 주시더란다.

해주고 싶었노라고 하시면서 느닷없이 환하게 웃으시며.......

 

그리고 지금,

친구의 엄마는 코마상태 이시다.

몇십년을 산 집앞 현관의 단 두개의 계단에서 넘어지셔서

20일 사이에 대화가 영영 불가능한 상태가 되신거다.

어제도 ,

하염없이 우는 친구에게

난 이렇게 말했다.

" 친구야. 이미 20일전에 엄마랑 너랑은 사랑을 나눈거야. " 라고.

                                     .

                                     .

     

우리에게 화해의 시간은 무한한거 같으면서도 찰라인듯도  싶다.

오늘 유난히,

고딩때 악쓰고 구박하고 때론 호탕하게 웃으시던  그녀의 엄마가 생각난다.

 다신 볼수없는 모습이기에 더 그립다.

출처 : 연무초교11회동창회
글쓴이 : 오 복순 원글보기
메모 :
가슴이 먹먹해지는 글입니다
고등학교 때 우정이 그립고도 찡하게 그리고 주마등처럼 스칩니다
님의 글 읽으니 보스톤으로 이민을 가버린 친구가 갈색머리를 날리며
눈 앞에 섭니다 물론 하얀 칼라를 빳빳하게 세우고서
누구에게나 이런 갈색 풍경의 우정 하나쯤은 존재하겠죠.
오래 같이 하실 줄 알았던 엄마가
다시는 대화를 나눌수 없는 상태가 되셨다니
친구의 마음이 어떨까... 마음이 짜 합니다.

참으로 귀한 친구입니다.
이렇게 가까운 친구가 있다는건 큰 복이지요.
두분 우정 오래오래 간직 하시기를...
네..... 제가 참으로 복이 많아요.
아직도 일주일에 한번씩은 꼭 통화하고 서로 힘을 주는 친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