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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아솔아 2011. 6. 12.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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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몬시대 기원전8000 ~기원300년 

수렵과 고기잡이 생활

 

야요이시대 기원전 300 ~기원300년 

기원전 400년 - 한반도에서 벼농사가 전해지고 야요이 시대가 시작됨

   147~189년 - 왜, 내란으로 혼란, 야마타이코국에서 무당인 히미코가 여왕이 됨.

          372년 - 백제가 왜왕에게 칠지도를 내림.

 

야마토시대 400~710

552 백제가 일본에게 불교 전파, 성덕태자가 헌법 17조를 제정

630 제 1회 견당사 파견. 고대 동아시아적인 중앙 집권국가 성림의 출발점.

668 대형 왕자가 즉위, 데지왕이 됨.

672 임신의 난

 

나라시대 710~793

710 나라 천도.

712 일본 최초의 역사 '고사기' 만듦.

720 일본서기가 이루어짐. 동대사의 대불 완성

 

헤이안시대 794-1185

794 산무천왕, 헤이안으로 천도

858 후지와라노 요후사가 섭정

894 견당사 폐지

935 가나 문자를 사용하기 시작

935 다이라노 마사카도의 난

996 후지와라노 미치나가, 좌대신이 됨. 후지아라씨의 전성기, 무사가 힘을 가지게 됨.

1156 호겐의 난

1159 평치의 난

1167 다이라노 기요모리, 태정대신이 됨.

1185 다이라노가 망함.

1192 가마쿠마 막부 시작

 

가마쿠라시대 1185~1333

1192 가마쿠라 막부 시작(초대장군 : 미나모토 요시토모)

1274 몽골군이 북 규슈 공격, 태풍으로 저지당하고 철수

1281 재차 몽골이 공격

1331 고다이고 천황에 의한 가마쿠라막부 토벌, 쿠테타발발

1333 가마쿠라 막부 망함.

 

남북조 시대 1334~1392 : 남조와 북조로 서로 대립

 

무로마치시대 1334~1573

1336 아시카가 다카우지, 무로마치에 막부를 열다

1338 아시카가 다카우지, 정이대장군 됨. 남북조 통일

1467~1477 오닌의 난

1549 스페인의 자비엘, 카고시마에 와서 기독교를 전함.

1558 포르투갈인 루이스 후로이스 저 '일서구문화비교' 내용중 유럽사람들은 단맛을 좋아한다. 일본인은 짠맛을 좋아한다고 기재

1560 오케하자마 전투(오다 노부나가가 이마가와 요리기토 물리침)

1573 무로마치 막부 멸망

 

전국시대 1573~1603

무모마치 시대의 '오닌의 난' 수습에서 무로마치의 마지막 장군 아시카가 요시아카 경도에서 추망되고 노무나가의 패권이 확고해진 시기를 가리킴

아즈찌모모야마시대 1573~1600 - 노부나가와 히데요시가 실권을 잡았던 시대

1583 오사카 성의 축성 공사 시작

1592 도요토미 히데요시, 조선을 침략(임진왜란)

1597 도요토미 히데요시, 재차 조선을 침략(정유재란)

1600 세키가하라 전투(히데요시와 도쿠가와이 전투)

 

에도시대 1603~1867

1603 도쿠가와 이에야스, 에도에 막부를 설치

1613 전국에 기독교 금지령

1615 오사카 여름 지진

1629 막부, 여자에게 가부키 금지시킴

1702 아코낭인의 복수 : 추신구라를 탄생시킨 역사적 사건, 후지산 폭발

1700중반 일본에서 설탕을 만들기 시작

1853 미국 동인도 함대가 개항을 요구

1860 요코하마 개항

1867 도쿠가와 요시노부, 대정봉환(大政奉還), 막부정치 종료, 정치권력 황실에 돌려줌

히라도를 지배한 마츠우라가문의 전통과자. 밖으로 내는 것을 금지. '햐쿠노즈(百菓之圖)'문헌에 카스도스의 이름이 기재.

 

메이지(明治) 시대 1868~1912

1868 메이지천왕, 교토 → 도쿄로 천도

1894 청일전쟁

1902 영일동맹

1904 러일전쟁

1909 이토 히로부미, 하얼빈에서 암살

1910 대한제국 병합

 

다이쇼(大正) 시대 1912~1926 

1914 세계1차대전 시작, 일본이 독일에 선전포고

1923 관동 대지진 발생

 

쇼와(昭和,히로히토) 시대 1926~1989

1931 만주사변, 후만주국 건설

1941 일본군 진주만 공습, 태평양 전쟁 발발

1945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원자폭탄 투하, 포츠담선언을 수락하고 일본 무조건 항복

1946 천황 인간선언, 일본 헌법 공포

1964 도쿄 올림픽 개최

1982 역사 교과서 문제로 중국 한국등 아시아 제국으로부터 비판을 받음

1989 쇼와 천황 사망

 

헤이세이(明仁,아키히토) 시대 1989~

1995 고베 대지진

2002 월드컵 한.일 공동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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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4500 조몬[繩文]문화(~BC 2세기)
BC 2세기 야요이[彌生]문화(~AD 3세기)
AD 57 왜국왕, 후한(後漢)에 조공(朝貢), 광무제(光武帝)로부터 인수(印綬)를 받음
107 왜국왕, 후한의 안제(安帝)에게 조공
239 왜의 야마타이국[邪馬臺國]여왕 히미코[卑彌呼], 위(魏)나라의 명제(明帝)에게 사절 파견
266 왜의 여왕 도요[臺與], 서진(西晉)에 조공
4세기 야마토[大和]조정 통일
5세기 왜의 5왕(讚·珍·濟·興·武), 중국 동진(東晉)·송(宋)에 사절 파견(조공)
538 백제로부터 불교 유입
593 쇼토쿠[聖德]태자 섭정(~622)
604 쇼토쿠태자, 헌법17조 제정
607 오노노 이모코[小野妹子], 수(隋)나라에 사신으로 파견
630 견당사(遣唐使), 처음으로 파견
645 다이카개신[大化改新]
663 백제부흥운동 구원군, 백강(白江)에서 대패. 반전수수법(班田收受法)시행
701 다이호[大寶]율령 성립
710 나라 헤이조쿄[平城京]로 천도
712 오노 야스마로[太安麻呂] 《고사기(古事記)》
720 도네리친왕[舍人親王] 등, 《일본서기》
723 삼세일신법(三世一身法)
794 헤이안쿄[平安京]로 천도
805 사이초[最澄], 당(唐)나라에서 귀국, 일본 천태종 창시
806 구카이[空海], 일본 진언종 창시
858 후지와라 요시후사[藤原良房], 섭정이 됨
894 견당사 폐지
935 쇼헤이[承平]·덴교[天慶]의 난(~941)
967 섭관정치(攝關政治) (~1068)
1017 후지와라 미치나가[藤原道長], 태정대신(太政大臣)이 됨
1086 시라카와 상황[白河上皇], 원정(院政) 시작
1167 다이라노 기요모리[平淸盛], 태정대신(太政大臣)이 됨
1175 호넨[法然], 정토종 창시
1185 헤이지[平氏] 멸망
1192 미나모토 요리모토[源賴朝], 세이타이쇼군[征夷大將軍]이 됨, 가마쿠라바쿠후[鎌倉幕府] 시작
1221 쇼쿠[承久]의 난
1227 도겐[道元], 일본 조동종(曹洞宗) 창시
1232 조에이시키모쿠[貞永式目] 제정
1253 니치렌[日蓮], 일련종(日蓮宗) 창시
1274 중국 원(元)나라, 일본 침공(文永의 役)
1281 중국 원(元)나라, 일본 다시 침공(弘安의 役)
1333 가마쿠라바쿠후 멸망
1334 고다이고천황, 겐무[建武] 중흥
1336 남북조 대립
1338 아시카가 다카우지[足利尊氏], 세이타이쇼군이 됨, 무로마치바쿠후[室町幕府] 시작. 왜구의 활발화
1392 남북조 통합, 왕위는 북조계통으로 세습
1397 아시카가 요시미쓰[足利義滿], 금각사 축조
1404 아시카가 요시미쓰, 중국 명(明)나라와 통상조약
1467 오닌[應仁]의 난(~1477)전국시대 시작(~1568)
1497 렌뇨[蓮如], 오사카[大阪]에 이시야마본원사[石山本願寺] 축조
1543 포르투갈인, 다네가섬[種子島]에 표착, 철포·화약 전래
1549 프란치스코 사비에르, 그리스도교 전래
1568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교토 입경
1573 무로마치바쿠후 멸망
1590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전국 통일
1592 도요토미 히데요시, 조선 침략(文祿의 役;임진왜란)
1597 도요토미 히데요시, 조선 다시 침략(文祿의 役;정유재란)
1600 세키가하라[關原]의 싸움
1603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에도바쿠후[江戶幕府] 시작
1609 네덜란드, 히라도[平戶]에 상관(商館) 설치
1613 영국선박 입항, 통상 시작. 하세쿠라 쓰네나가[支倉常長] 유럽 방문
1616 나가사키[長崎]·히라도로 외국무역 한정
1623 히라도의 영국상관(英國商館) 폐쇄
1630 금서령(禁書令:그리스도교 관계서적 수입 금지)
1637 시마하라[島原]의 난
1639 쇄국령
1641 네덜란드상관, 나가사키 데지마[出島]로 이주
1657 에도[江戶] 대화재
1688 문화의 전성기 겐로쿠[元祿]시대 시작(~1703)
1716 교호[享保]의 개혁(~45)
1720 금서령 완화
1744 아오키 곤요[靑木昆陽], 난학(蘭學) 강의
1774 스기타 겐파쿠[杉田玄白] 《해체신서(解體新書)》 간행
1787 간세이[寬政]의 개혁
1792 러시아사절 K. 락스만, 북해도 네무로[根室]로 일본 방문
1804 러시아사절 N. 레자노프, 나가사키로 일본 방문
1833 덴포[天保]의 대기근(~38)
1841 미즈노 다다쿠니[水野忠邦], 덴포의 개혁 시작(~43)
1854 미·일 화친조약 조인(開國)
1858 미·일 수호통상조약 조인. 네덜란드·러시아·영국·프랑스와 수호통상조약 조인
1860 사쿠라다몬가이[櫻田門外]의 변
1862 나마무기[生麥] 사건
1864 하마구리 고몬[蛤御門]의 변. 4개국(미·영·프·네) 연합함대, 시모노세키[下關] 포격
1867 에도바쿠후 멸망. 왕정복고
1868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천황정권 성립
1872 태양력 채용
1875 일본·러시아 쿠릴열도[千島列島]·사할린 교환조약 조인
1876 한·일 수호조약(강화도조약) 조인
1877 세이난[西南]전쟁
1885 톈진조약[天津條約]. 내각제도 창시
1889 일본제국 헌법 공포
1890 제1회 제국의회 개회
1894

청일전쟁 

영·일 통상항해조약

1895

시모노세키[下關]조약(청·일 강화조약).

삼국(러시아·프랑스·독일)간섭. 제1·2차 러·일의정서. 청일통상항해조약 조인

1902 영·일동맹체결
1904

러·일 전쟁(~1905).

포츠머스조약(러·일강화조약) 체결

1910

대한제국 병합,

조선총독부 설치(~45)

1912 헌법옹호운동 시작
1914

제1차세계대전 시작(~18)

독일에 선전 포고

1918

시베리아에 출병

 

1925

치안유지법·보통선거법 성립

 

  1926    12. 다이쇼(大正)천왕 사망, 

              쇼오와(昭和) 천왕즉위   

 

1927 금융공황. 제1차 산둥[山東] 출병
1928 소·일어업조약. 제1회 보통선거 실시. 제2차 산둥 출병
1931 만주(滿州)사변 → 만주국(푸이)
1933 국제연맹 탈퇴
1934 워싱턴·런던 양(兩)조약 파기
1936 런던군축회의 탈퇴. 독·일 방공협정(防共協定) 체결
1937 중일전쟁(~45). 독·이·일 방공협정
1938 국가총동원법 발령. 장고봉(張鼓奉)사건(소·일 국경분쟁)
1939

노몬한사건(만주·몽골국경에서 소·일 충돌).

제2차세계대전

1940 독·이·일 삼국 군사동맹 체결
1941

소·일 중립조약 체결. 미·일교섭 시작.

일본군 진주만 공격. 태평양전쟁 시작

1942 미드웨이해전, 일본 참패
1945

미국, 히로시마[廣島]·나가사키[長岐]에 원자폭탄 투하.

일본, 포츠담선언 수락, 제2차세계대전 종결

1946 일본헌법 제정·공포
1949 유카와 히데키[湯川秀俊], 노벨물리학상 수상
1951 미·일강화(샌프란시스코)조약. 미·일안전보장조약 조인
1954 자위대 발족
1955 미·일 원자력협정
1956 소·일 공동선언, 국교회복. 국제연합 가입
1960 미·일 신안전보장조약 체결
1964 도쿄올림픽 개최
1965

한일협정 (한·일 기본조약조인)

도모나가 신이치로(朝永振-郞), 노벨물리학상 수상

1968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 노벨문학상 수상
1970 일본세계박람회(大阪) 개최
1972 오키나와 반환. 중·일 국교정상화(田中총리 방중)
1973 석유파동·물가폭등 일어남
1974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노벨평화상 수상
1976 록히드의옥(疑獄)사건
1978 중·일 평화우호조약 조인
1979 제5차 선진국수뇌회의, 도쿄 개최
1985 남녀고용 기회균등법
1986 리쿠르트 스캔들
1988 쇠고기·오렌지 수입자유화(미·일합의)
1989 쇼오와 (昭和 -히로히토) 사망, 소비세 실시
1990 아키히토[明仁] 즉위
1992 유엔평화유지활동(PKO)협력법안 성립. 캄보디아 평화유지군 파견. 사카와큐빈 사건
1993 호소카와 총리, B. 클린턴 미대통령과 첫 정상회담
1994

러시아와 사상 처음으로 동해에서 합동 군사훈련 실시

1995 고베[神戶]·오사카[大阪]에서 발생한 한신[阪神]대지진으로 6000여명 사망. 옴진리교의 지하철 독가스 살포로 12명 사망
1996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총리 취임
1997 도카이 촌[東海村]에서 제2차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핵사고 발생
1998 오부치 게이조 총리 취임. 김대중 대통령 국빈 방문
1999 미·일 방위협력지침, 법안으로 최종 성립
2000 중·참의원 양원에 헌법조사회 설치. 모리 요시로[森喜郞] 총리 취임
2001 고이즈미 총리 취임
2002 한국과 월드컵 공동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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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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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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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초

무로
마치

센고쿠
제1소씨
제2소씨 아즈치
모모
야마
제2소씨
(사쓰마)
에도
메이지
다이쇼
쇼와
헤이세이

일본의 역사 또는 일본사는, 일본 또는 일본열도역사이다. 이에 더하여 류큐 제도도호쿠 지방홋카이도와 관련해서는 오키나와의 역사아이누의 역사를 참조하십시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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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편집]

구석기 시대 [편집]

일본의 구석기 시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일본열도에서 확인된 인류의 역사는 약 10만년이 채 안되며, 약 3만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약 3만 4천년 전에 화북지방에서 나이프형 석기로 불리는 격지석기가 전해져, 일본열도 전 지역에 널리 사용되었으나, 약 2만년 전에 시베리아에서 새로운 세석인(細石刃)이라고 불리는 세석기가 주로 동일본에 확산되었다. 잠시 동안 동일본의 세석인문화와 서일본의 나이프형 석기문화가 병존하였으나, 곧 세석인문화가 서일본에도 확대되어, 약 1만 5천년 무렵에는 나이프형 석기가 일본열도에서 사라지게 된다.

약 1만 2천년전,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고 온난화에 의해 대륙과 단절된 현재의 일본열도의 모습로 변하였다. 이후 사람들의 문화와 생활이 크게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조몬 시대 [편집]

조몬 시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약 1만 2천 년 전경부터는 조몬 시대라고 한다. 조몬 시대의 명칭은 이 시대의 토기에서 볼 수 있는 새끼줄 문양의 한자어 승문(繩文) 에 기인한 것이다. 조몬 시대는 초창기·조기·전기·중기·후기·만기의 6개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이 무렵 사람들은 조몬식 토기를 제작하였고, 조몬 시대 조기 이후 정착생활이 진행되어 수혈주거에 살았다. 화살을 이용하여 수렵하였고, 패총을 토대로 알 수 있는 어로, 식물의 채집 등으로 생활을 하였고, 타제석기, 마제석기, 골각기 등을 사용했다. 또, 여성을 본뜬 토우와 남성을 본뜬 남근석 등을 통해 원시신앙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작물의 재배도 행해져, 후기부터 만기에 이르는 시기에 벼농사가 시작되었다.

야요이 시대 [편집]

야요이 시대, 사마대국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나라 현 야마토코리야마 시 히에다 정에 현존하는 환호집락〈일본국토교통성〉

기원전 400년경부터 3세기경까지는 야요이 시대라고 한다. 시대구분 명칭은, 이 시기에 특징적으로 발굴되는 야요이식 토기에서 유래하였다. 덧붙여 야요이식 토기라는 명칭은 토기가 발견된 지역명칭이다. 벼농사를 중심으로 하는 농경사회가 정착되어, 규슈 북부에서 일본열도 각지로 급속히 퍼졌다. 농경사회로의 이행으로 각 지역에서는 지역집단이 출현하였고, 농경사회의 발전과 더불어 지역집단의 규모가 점차 커져갔다. 그 중심부에 환호집락을 조성하였다. 그 당시 건조된 많은 수의 분구묘는 대형지역집단의 수장묘인 것으로 보이며, 이는 집단내에서 신분의 차이가 생겨났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중국에서 일본열도를 왜, 왜국이라고 불렀다. 대형지역집단 중에는 중국과 교류를 하였던 지역집단도 있었고, 이로 인해 중국에서는 나라로 인식했다. 기원전후를 기준으로 100년을 전후하여 중국과 교류하고 있었다고 생각된다.《후한서》에 후한광무제노국왕에게 인수(印綬)를 주었다는 기록이 있고, 그때의 것으로 추정되는 금인(金印)이 발견되었다.[1] 대형지역집단은 점차 정치적으로 통합하였고, 왜국연합이라고 불리는 정치연합체가 2세기 초에 형성되었다. 연합체의 맹주는 왜국왕이라고 했으며, 초기 왜국왕으로는 기록된 인물이 스이쇼이다. 잠시 동안 왜국은 정치적으로 안정되었지만, 2세기 후반 소위 왜국대란이라 불리는 내란이 발생하였고, 그 후 사마대국히미코가 왜국왕의 자리에 올랐다. 히미코는 위나라와 교류하여 왜국연합의 안정을 꾀했다.

고훈 시대 [편집]

고훈 시대, 야마토 정권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세기 중엽에서 7세기까지는 고훈 시대라 한다. 3세기 중엽에 나타난 전방후원분야마토를 중심으로 일본 열도 각지에 확산되었다. 기나이, 산요, 규슈 북부에 병립했던 지역정치집단이 규합하여 야마토 정권을 형성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 다만, 초기국가 단계가 아닌, 연맹왕국에 불과하다는 견해도 있다.

4세기 후반부터 야마토 정권은 무기, 농기구의 원료인 철을 구하기 위해 한반도 남부와 교류를 시작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한반도와 중국의 문물이 왜국(倭?)에 대량으로 유입되게 되었다.[2] 5세기에 들어서 야마토 정권은 본거지를 가와치로 옮겨 중국의 남조와 활발히 교류하였다.

중국 사서에는 이 시기 야마토 정권의 수장을 왜의 오왕(五王)이라 하였다. 왜의 오왕은 국내에서 치천하대왕(治天下大王)이라고 칭했다. 이는 중국과 다른 별개의 천하관를 가졌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또, 이 시기 전방후원분인 오진 천황릉닌토쿠 천황릉 등이 조성되었다. 그 규모로 볼때 강력한 왕권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5세기 후반부터 6세기 전반에는 야마토 왕권 내부의 정치혼란이 있었으나, 게이타이 천황의 등장으로 야마토 정권에 의한 지배가 서서히 강화되었고, 한반도와의 교류는 크게 후퇴하였다.

아스카 시대 [편집]

아스카 시대, 다이카 개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세기 말에서 8세기 초까지를 아스카 시대라고 한다. 아스카 지방이 정치중심지이었기 때문에 이런 명칭이 붙었다. 6세기 후반 야마토 정권이 국내를 안정적으로 지배하였고, 오히려 정권내부의 왕위를 둘러싼 다툼이 벌어졌다. 이 시기 백제에서 불교가 전래되었고, 이후 아스카 문화, 하쿠호 문화 등의 불교문화로 발전하였다. 6세기 말 중국을 통일한 수나라의 등장으로 동아시아의 여러 나라는 이에 대응하기 위하여 정치권력를 한곳으로 모았다. 왜국에서도 7세기 전반에 걸쳐 쇼토쿠 태자와 소가 가문에 의해 견수사가 파견되었고, 관위 12계의 제정과 헌법 17조 도입 등의 국정개혁을 단행하였다. 그러나, 호족들의 저항도 강해 중앙권력화는 벽에 부딪쳤고, 그 후에도 좀처럼 진전되지 않았다.

7세기 중엽 다이카 개신으로 중앙권력화 움직임에 일정의 진전이 있었다. 그러나, 중앙권력화 움직임이 일어난 최대 계기는 7세기 후반 백강 전투의 패배였고, 이로 인해 국내는 국가체제 정비로 일치되어, 중앙권력화가 급진전되었다. 더욱이 진신의 난에서 승리한 덴무 천황은 왕권강화를 철저히 하였고, 천황의 신격화를 꾀했다. 천황의 명칭도 이 시기에 했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천황의 실질적 지배를 구현하기위해 율령제 도입을 서둘렀고, 8세기 초 다이호 율령이 제정되었다. 일본이란 국호도 다이호 율령의 제정 전후로 보고 있다.

나라 시대 [편집]

나라 시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도다이지의 금당

8세기 초에서 말까지를 나라 시대라고 한다. 나라에 도읍인 헤이조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는 율령국가체제가 형성 및 심화되었다. 왕토왕민사상을 토대한 율령제는 천황과 관료에 의한 일원적 지배를 지향하였고, 편호제, 반전제, 조용조 등으로 백성을 다스렸다. 8세기 전반에 결처 율령제 체제를 강화하여 삼세일신법, 간전영년사재법 등의 농지정책도 율령체제 강화의 일환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8세기 후반에 들어서면, 농민계층의 분화가 시작되었고, 백성들의 도주가 증가하는 등, 율령에 의한 지배에 반발하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또, 신라를 제후국으로 보았으며, 도호쿠에미시규슈 남부의 하야토를 화외민으로 보는 중화의식이 있었다. 일본은 신라에 조공을 요구하는 한편, 에미시와 하야토인들은 교화의 대상으로 보아 정벌하였다.

문화면에서는《일본서기》,《만엽집》,《풍토기》등이 편찬되는 것 외에도 견당사가 가져온 중국문화를 받아들였고, 귀족중심의 덴표 문화가 꽃을 피웠다. 불교에서는 진호국가사상이 강하여, 도다이지고쿠분지가 호국사찰로 건립되었다.

헤이안 시대 [편집]

헤이안 시대, 장원·공령제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겐지 이야기의 아사가오

8세기 말경부터 12세기 말경까지는 헤이안 시대라고 한다. 간무 천황이 조성한 헤이안쿄를 도읍으로 했다. 헤이안 전기에서는 농민의 계층분화가 한층 진행되어 전 시대부터 계속되어온 율령국가체제의 한계가 나타났다. 이에 조정은 11세기 초엽 무렵 지방분권적 국가체제로의 개혁에 착수하여 지방의 통치권한을 지방관인 즈료(受領)에게 주고 지방관청인 고쿠가(?衙)를 통해 지방을 통치하였다. 이 즈료·고쿠가 지배체제 아래 수취제인 후묘 체계(負名?制)가 형성되었고, 군사에 있어서도 고쿠가 군제(?衙軍制)로 전환되어 무사계층이 등장하였다. 또, 중앙정치에 있어서 후지와라 가문은 천황의 외척임를 이용해 정계를 장악했으며, 11세기에는 섭관정치를 하기에 이른다.

12세기에 들어서자 국가체계가 변화하기 시작하여 12세기말부터 13세기에 걸쳐 장원이 눈에 띄게 증가하였고, 장원·공령제라고 하는 중세적 지배체제가 확립되었다. 이 시기에 어린 천황을 대신하여 상황이 정무를 보는 인세이가 시작되었고, 이원정치의 시작이었다. 이로 인해 헤이안 시대 말기 호겐의 난헤이지의 난이 일어났으며 무사가 정치에 관여하게 되었고, 무가정권의 시작으로 볼 수 있는 헤이씨 정권이 탄생하였다.

헤이안 중기에 들어서 면 중국의 영향에서 벗어나 나라 시대에서 보이기 시작한 독자적 일본문화가 전면에 나타난다. 이를 국풍문화라고 한다. 이 시기 히라가나·가타카나가 사용되기 시작했어며,《겐지 이야기》,《침초자》로 대표되는 모노가타리 문학(物語文?) 등이 융성하였고, 밀교말법사상이 널리 퍼졌다. 또, 토착신앙불교가 융화되기 시작하여 사원이 많이 건립되었다.

가마쿠라 시대 [편집]

가마쿠라 시대, 가마쿠라 막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겐페이 전쟁을 그린 병풍

12세기 무렵부터 14세기 무렵까지를 가마쿠라 시대라고 한다. 가마쿠라 시대의 가마쿠라라는 명칭은 간토 가마쿠라막부를 두었기 때문이다. 중앙의 공가정권과 간토의 무가정권이 병립된 시기이다. 미나모토노 요리토모를 주축으로한 가마쿠라 막부는 겐페이 전쟁으로 잘 알려진 지쇼·주에이의 난에서 승리하여 헤이씨 정권을 무너뜨렸고, 이 과정에서 슈고, 지토 임명권을 가지게 되어 중앙의 조정과 자웅을 겨룰 수 있는 위치에 오르게 된다. 이후 조큐의 난에서 천황가가 가마쿠라 막부에 패배한 후 공가 정권은 유명무실화 되었다. 미나모토 가문의 쇼군은 3대에서 단절되었고, 이후 쇼군은 천황가에서 취임하지만, 명목상일뿐 실권은 싯켄인 호조 가문이 장악하였다. 이를 싯켄 정치라고 한다.

13세기 중기부터 화폐경제의 침투와 상품유통이 발달, 촌락의 형성, 지토들에 의한 장원·공령의 관리 등 사회변동이 일어나기 시작했으며 기존의 사회체제에 반발하는 무사와 농민집단인 악당과 자치권을 가진 총촌(?村)이 생겨났다. 이 움직임은 13세기 후반 일어난 두 번의 원나라의 침략으로 더욱 가속화되고, 지지기반이었던 무사들이 막부를 이탈하게 되어 이후 가마쿠라 막부가 붕괴되는 한 요인이 되었다. 이에 막부는 대응책으로 덕정령을 반포하였고, 막부의 실권은 싯켄 호조 가문내의 도쿠소의 무사들의 장악하였다. 또, 조큐의 난이후 황위계승문제에 본의 아니게 막부가 개입하였고, 불만을 품은 고다이고 천황도막운동을 일으켰다. 이에 고다이고 천황을 지지하는 공가와 막부에 불만을 품은 무사들이 동조하여 막부를 멸하였다.

문화에서는 운케이가이케이의 금강력사상 등 사실적 미술이 전개되었다. 또, 종교면에서도 가마쿠라 신불교가 성립되어 민간에 불교가 보급되었다.

남북조 시대 [편집]

남북조 시대 (일본), 겐무 신정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남조가 있었던 요시노 산

14세기경을 남북조 시대라고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아시카가 다카우지가 새로이 천황을 옹립하여 기존의 천황과 대립한 1336년부터 남조와 북조가 통합한 1392년까지를 남북조 시대라고 한다. 무로마치 시대 초기의 내란이다. 고다이고 천황가마쿠라 막부를 멸하고, 친정을 펼치지만, 이에 무신인 무사의 불만이 증폭되었고, 이를 배경으로 아시카가 다카우지가 고다이고 천황으로부터 이반하였다. 그리고, 고다이고 천황을 요시노로 추방했다. 이로 인해 일본 전국은 북조와 남조를 지지하는 파로 갈려 대립이 심화되었고, 그 뒤 남조는 북조에 통합되었다.

문화면에서는 신분질서를 경시하고 화려한 복장을 입고 이상한 행동을 하는 바사라가 유행하였다. 또, 렌카가 유행하였고 격문니조가와라 낙서 등에서 볼 수 있듯 문화의 서민화 움직임을 볼 수 있다.

무로마치 시대 [편집]

무로마치 시대, 무로마치 막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로쿠온지의 금각

14세기 무렵에서 16세기 무렵까지를 무로마치 시대라고 한다. 무로마치라고 불린 연유는 교토의 무로마치에 막부를 두었기 때문이다. 아시카가 다카우지가 남조에 대항에 새로이 천황을 옹립해 북조를 열었으며 교토 무로마치에 막부를 열었다. 각 구니에 두었던 슈고에게 경제적 특권을 주어 무로마치 막부의 지배력을 강화했다. 또, 구니의 행정과 사법권 담당했던 고쿠가의 기능도 점차 슈고의 권한으로 흡수되었고, 슈고 다이묘로 성장하였다. 이를 슈고 영국제라고 부른다. 이렇게 구축된 지배체제를 무로마치 막부-슈고체제라고 한다.

3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쓰는 남북조를 통일하였고, 명나라와의 무역을 하여 명황제로부터 일본국왕에 책봉되었다. 또, 슈고 다이묘의 세력을 억제하는데 노력하였다. 하지만, 슈고 다이묘의 반발도 있어 막부와 슈고의 다툼이 많이 발생하였다. 15세기 중엽에 와서 쇼군의 후계문제로 촉발된 오닌의 난이 발생하여 막부의 힘은 약해져 갔고, 메이오 정변을 계기로 막부-슈고체제는 붕괴되었다. 이후 전국의 하극상의 기조가 팽배해졌으며 슈고를 밀어내고 슈고다이 또는 지역호족인 고쿠진 등이 지역을 지배하는 센고쿠 시대가 도래하게 된다.

이 시대의 사회원칙은 자력구제였으며, 각계층 안에서 연대를 해 행동하였다. 즉 잇키가 발생하였고, 촌락에 있어서도 자치권을 가진 총촌(?村)이 전국 각지에 생겨났다. 서일본에서는 교역이 활발하였고, 그에 따른 부작용으로 한반도와 중국대륙에서는 왜구가 출몰하였다. 문화면에서도 렌카사루가쿠, 다도무로마치 문화가 꽃을 피웠다. 이 문화는 선종의 영향을 받아 간소한 것이 특징이다.

센고쿠 · 아즈치모모야마 시대 [편집]

센고쿠 시대,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무로마치 시대 중 15세기후기부터 16세기후기까지의 시기를 센고쿠 시대라고 한다. 이 시대에는 슈고슈고다이, 지역호족인 고쿠진 등의 출신들이 센고쿠 다이묘 거듭나 이 시대를 호령하게 된다. 센고쿠 다이묘는 중세적 지배체계를 점차 붕괴시키고, 분국법 등을 제정하여 자신의 권력을 강화했다. 이들 다이묘는 영국 일원을 통일하여 자신의 영국을 지역국가로 발전시켰다. 이를 다이묘 영국제라고 한다. 이들 지역국가는 일본 각지에 병립하였고, 지역국가간에서 발생한 정치적, 경제적 문제는 무력으로 해결하였다. 이러한 흐름속에 16세기 중반 등장한 오다 노부나가병농분리 등에 의한 부국강병책으로 급속히 지배지역을 넓혀갔다.

이 시대에 농업생산력은 향상되었으며, 지역국가내의 유통이 발달하였고, 각지에 도시가 형성되었다. 또, 유럽과의 교역이 시작되었고, 화승총그리스도 교 등이 전래되어 기존의 전술과 종교관념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점차 세력을 신장한 오다 노부나가는 무로마치 막부 15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위시하여 정권을 장악하였고, 마침내 반목해온 쇼군 요시아키를 교토에서 추방하였다. 사실상 무로마치 시대는 끝이 나고, 아즈치모모야마 시대가 도래하였다. 이후 오다 노부나가는 거처를 기후 성에서 아즈치 성으로 옮겼으며 본격적인 천하통일 사업을 진행하였다. 그러나, 가신 아케치 미쓰히데의 모반으로 오다 노부나가가 죽자, 전일본 통일 사업은 오다 가문의 실권을 장악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추진되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오사카를 중심으로 도호쿠규슈에 이르는 지역을 평정하였고, 천하통일을 완수하였다. 그리고, 히데요시는 중세적 지배체계·지배세력을 배제·억제하는 데 노력하였고, 태합검지를 통하여 기존의 토지제도인 장원·공령제를 없앴다. 또, 전국이 통일되면서 정치와 경제는 안정되었고, 다이묘와 무사가 중심이 된 모모야마 문화가 꽃을 피우게 된다.

이러한 중 도요토미 히에요시는 영토확장에 꿈을 두어 임진왜란을 일으키지만, 전쟁기간 중 생을 마감하였고, 일본군은 조선에서 철퇴하였다. 이후 도요토미 정권내의 실권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장악하였고, 이에 이시다 미쓰나리를 중심으로한 반이에야스 세력과 이에야스 세력간의 세키가하라 전투가 벌어진다. 이 전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승리하였고, 도요토미 가문의 점차 쇠퇴하였다.

에도 시대 [편집]

에도 시대, 에도 막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요코하마의 미함대와 미군

1603년부터 1867년까지의 시기를 에도 시대라고 한다. 정이대장군직에 오른 도쿠가와 이에야스에도막부를 열어 정권을 잡았다. 두 번의 오사카 전투에서 정적 도요토이 가문을 멸문한 이에야스는 금중병공가제법도무가제법도로 조정과 다이묘를 통제하였다. 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쓰 때에 막부의 체제가 확립되었고, 참근교대란 제도를 통해 지방 다이묘세력을 약화시켰다. 시마바라의 난이후 막부는 그리스도 교의 탄압과 쇄국정책을 펴면서도 네델란드청나라와는 나가사키데지마에서 무역을 하였다. 또, 조선과는 조선통신사의 왕래 및 쓰시마 번을 통하여 무역을 하였으며, 류큐왕국에조치에서는 사쓰마 번마쓰마에 번을 통하여 무역을 하였다.

에도 중기에 일어난 메이레키 대화재 이후, 에도를 수복하기 위해 막부는 과다한 지출을 하였고, 재정이 악화되었다. 5대 쇼군 도쿠가와 쓰나요시 때에는 막정개혁을 단행하였다. 이 시기 상업의 발달과 사회의 안정을 배경으로 겐로쿠 문화가 꽃을 피우게 된다. 또, 번교서당과 같은 데라코야에서 교육이 이루어졌다.

8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무네교호의 개혁으로 막부의 재정을 근실히 하였지만, 다시금 재정은 악화되자 막부는 마쓰다이라 사다노부간세이의 개혁, 미즈노 다다쿠니덴보의 개혁을 하여보지만, 성공하지는 못하였고, 점차 막부의 권위는 실추되었다. 겐로쿠 문화와 같이 상공인이 중심이 된 가세이 문화가 꽃을 피웠고, 가부키, 하이카이, 우키요에 등이 유행하였다.

화폐상품 경제가 발달하자, 예부터 쌀을 기반으로 연공수입을 가졌던 다이묘와 하타모토의 재정은 악화되었고, 막부와 같이 번정개혁을 단행하였다. 조슈 번사쓰마 번은 이 개혁이 성공하였고, 막부 말기의 중심세력으로 부상하게 된다.

에도 말기 구미제국은 일본에 문호개방을 요구하였고, 막부는 미국과 미일화친조약을 시작으로 유럽 여러나라와 불평등 조약을 채결하게 된다. 이에 존왕양이 사상이 고추되어 갔고, 막부의 고위관료 이이 나오스케가 암살된 후 정국은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이후 15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대정봉환을 단행하였고, 정권은 조정에 이양되었다. 가마쿠라 막부부터 700년 가까이 이어온 무가 정권 시대는 막을 내렸다.

메이지 시대 [편집]

메이지 시대, 메이지 유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일본 역사에서는 메이지 시대 이후부터 연호로 그 시대를 구분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천황의 재위기간이 시대구분 기준이다.

메이지 연간(1868년 ~ 1912년)을 메이지 시대라고 한다. 대정봉환후 조정과 도막파의 여러 번들이 왕정복고보신 전쟁 등을 통해 구 막부세력을 축출하고 메이지 신정부를 수립하였다. 신정부에서는 천황이 대권을 가지며, 구미제국의 제도를 적극 도입하였다. 폐번치현메이지 유신이라고 불리는 여러 개혁도 이 때 행해졌으며, 오키나와, 홋카이도, 쿠릴열도, 오가사와라 제도를 편입하여 일본국 영토를 확정했다. 그리고 1871년 일본 정부는 특명 전권대신인 이와쿠라 토모미를 단장으로 하는 이와쿠라 사절단을 구성하여 정부의 젊은 고관들을 구미에 파견해 발전된 서구 사회를 배워오게 하였다.

문화면에서는 구미제국의 새로운 학문·기술·음식 등이 전래되었고, 서양의 문학 사조를 받아들여 그때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개인주의적 소설과 문학이 등장하였다. 식생활에서도 일식뿐만 아니라 양식이 널리 퍼졌으며, 기존의 문화와 다른 이색문화가 전개되었다. 이를 문명개화라고 한다. 종교면에서는 종래의 신사불교가 혼재되어 있던 것을 분리시켰으며, 이로 인해 불교탄압 등의 과격한 움직임도 일어났다.

신정부는 불평등조약의 개정과 국회 설치, 헌법제정 등, 국가체제정비에 힘쓰는 한편, 산업화와 군사력강화를 국책으로 추진하여 근대국가로의 초석을 쌓았다. 청일전쟁러일전쟁을 통해 세계열강의 대열에 합류했으며, 국제적 지위 확보와 조약개정에 성공하였다. 또, 대한제국을 강제 병합하여 구미제국과 같은 식민지정책을 폈다.

다이쇼 시대 [편집]

다이쇼 시대, 다이쇼 데모크라시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다이쇼 연간(1912년 ~ 1926년)을 다이쇼 시대라고 한다. 다이쇼 시대는 정치, 사회, 문화 각 방면에서 민주주의, 자유주의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난 시대다. 이를 다이쇼 데모크라시라고 한다. 이 다이쇼 데모크라시는 태평양전쟁이 끝난 후 민주주의를 형성하는 데 귀중한 유산이 되었다.

다이쇼 시대 초기 비교적 개방적인 제2차 사이온지 긴모치 내각이 사퇴하고 번벌[3]세력에 기반을 둔 제3차 가쓰라 다로 내각이 들어서자, 이에 반발하여 오자키 유키오이누카이 쓰요시를 중심으로 한 제1차 호헌운동이 일어나 이를 저지하였다. 이후 일본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국제 사회에 발언권을 강화하였다.

하지만, 전후 불황으로 도야마 현에서 쌀 소동이 일어났고, 곧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이를 계기로 사회운동도 활발히 일어나 농촌에서는 소작쟁의가 일어났으며, 전국수평사가 조직되어 차별철폐운동이 본격화 되었다. 식민지 조선에서는 쌀 소동의 영향으로 산미증식계획이 세워졌으며, 수평사운동의 영향으로 형평운동이 일어났다.

또, 정치에서는 정당내각이 본격적으로 조직되었으며, 제2차 호헌운동으로 국민에게는 보통선거권이 주어졌다. 하지만, 이 무렵 러시아소비에트 연방 정부가 수립되었기 때문에 사회운동을 경계하여 치안유지법을 제정하였다.

이런 정치적 사회적 혼란기에 더해 간토 대지진이 일어나 더더욱 일본 사회를 궁지로 몰았다.

문화에서는 인도주의 문학이 대두하였고, 프롤레타리아 문학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또, 종합잡지, 문학전집등이 대량 출판되었으며, 더욱이 대도시를 중심으로 라디오 방송이 시작되어 문화의 대중화가 이루어지던 시기이다.

쇼와 시대 [편집]

쇼와 시대, 제2차 세계대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945년 8월 6일 원자폭탄 투하 후 히로시마 시
고도성장의 상징인 신칸센

쇼와 연간(1926년 ~ 1989년)은 쇼와 시대라 한다. 쇼와 시대 초기 불경기에서 회복되지 않은 채로 금융공황을 맞이하였고, 더욱이 세계 대공황이 일어나 사회는 더욱 불안해졌다. 구미제국들은 식민지를 포함한 블록경제를 구축하여 난황을 타계하였지만, 식민지가 열악한 일본은 할 수 없었다. 이에 파시즘이 대두되었고, 일본은 만주로 눈을 돌렸다. 일본군부는 만주사변을 일으켰고, 국제사회에서는 비난이 일어났다. 정치계일각에선 비난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묵인되었다. 이후 군부와 마찰을 빚어온 이누카이 쓰요시 수상이 해군장교에 암살되었고, 일본은 국제연맹에서 탈퇴하였다. 총리암살사건 이후에도 젊은 장교가 주축이 된 2·26 사건이 일어났고, 더 이상 정당내각을 유지 할 수 없었다. 이로써 정계는 군부가 장악하였고, 사회 전반에 걸쳐 군국주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만주국 수립이후 전역은 확대되었고, 일본은 중일전쟁을 일으킨다. 이후 중국을 지원하는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되어, 미국을 견제할 목적으로 독일, 이탈리아삼국동맹을 맺게 된다. 이후 미국은 일본에 석유금수조치를 내렸고, 이에 대항하여 일본은 진주만을 공습하여, 태평양전쟁의 서막을 열었다.

점차 전세는 일본에 불리하였고, 본토마져 위협받게 된다. 이후 히로시마나가사키원자폭탄 투하되었고, 쇼와 천황옥음방송을 통해 대내외에 항복을 알렸다. 패전 후에는 연합군 최고사령부의 점령하에, 일본 헌법이 제정되었고, 천황은 나라의 상징이자 국민통합의 상징적 존재이며, 국정관여가 금지되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의해 주권을 회복하였고, 미일안전보장조약이 체결되어, 동서냉전하에 서방진영에 속하게 되었다. 정치에서는 자민당사회당의 양당 체제가 지속되었고, 경제에서는 고도성장을 통해 경제대국의 대열에 합류하였다.

석유파동 이후 일본의 경제는 안정성장기로 들어섰고, 일본의 산업은 중화학공업에서 자동차, 전기기기, 반도체로 산업구조가 전환되었으며, 서비스업을 비롯한 제3차산업이 크게 성장하였다. 쇼와 말기에는 엔고와 무역흑자를 배경으로 투기열이 과열되었고, 이로 인한 거품경제로 경제적 호황을 누렸다.

헤이세이 시대 [편집]

헤이세이 시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자위대 해외파병에 사용된 수송기 C-130H
도쿄의 야경

헤이세이 연간(1989년 ~ )는 헤이세이 시대라고 한다. 쇼와 말기의 거품경제 붕괴로 인해 장기간 불경기에 고통 받았으며, 많은 기업들은 구조조정을 시작하였다. 정치에서는 구조개혁 노선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걸프 전쟁 후 제정된 국제평화협력법을 계기로 제2차 세계대전 패전이후 금기시 되었던 자위대의 해외파견이 실행되었다. 또, 2001년 일어난 미국9·11 테러로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였고, 일본은 이를 지지하여 아프가니스탄이라크에 자위대를 파견하였다.

정치적면에서는 일본국 헌법교육기본법의 개정을 논의하는 것 이외에도 우정민영화 등 구조개혁을 본격화 하였다. 하지만, 2007년 정권여당이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하면서 구조개혁 현안들에서의 여당의 입김은 힘을 잃게 되었다.

경제면에서는 거품경제의 붕괴이후 기업들의 자구책이 결실을 보아 2006년 호경기를 맞이하였다. 하지만, 2007년부터 표면화된 세계금융위기 등으로 경기는 후퇴하기 시작하였고, 2008년 주가의 하락과 상장기업의 도산이 증가하였다.

사회면에서는 취직을 하지 못한 청년층이 증가하였고, 불법체류 외국인에 의한 범죄가 증가하였다. 일명 묻지마 범죄와 같은 흉악범죄가 다수 발생하는 등 사회불안이 가증되고 있다.

문화면에서는 축구야구 등에서 일본인 프로선수의 해외 이적이 두드러졌다. 또, 일본의 애니메이션만화가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인정되었으며《오타쿠 문화》로 불리는 문화가 일본의 서브컬처로서 주목받고 있다.

시대 구분 [편집]

일본 역사에 있어서 시대구분에는 다양하여 정설이라고 딱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러면서도 (원시), 고대, 중세, 근세, 근대, (현대)라는 시대구분법이 역사연구에서 널리 받아 들려지고 있다. 이 경우에도 각 시대를 어떻게 나누어야 하는지에 대해 사람마다 큰 차이가 있다.

고대의 시작에 관해서는 고대국가의 형성시기를 둘러싼 견해차가 있어 3세기 설, 5세기 설, 7세기 설로 갈려있다. 연구자 사이에서는 칠오삼논쟁이라고 부르고 있다. 중세에 관해서는 중세시대의 대표되는 사회경제체제인 장원·공령제가 시대의 지표로 되어, 중세의 시작은 장원·공령제 형성기인 11세기후반 ~ 12세기로 보았으며, 그 끝은 장원·공령제가 소멸한 16세기후반으로 태합검지가 시행되기까지로 보았다. 근세에 관해서는 태합검지를 전후로 시작되어 메이지 유신을 전후하여 끝이난다. 근대의 시작은 일반적으로 에도 시대 말기 ~ 메이지 유신기로 보았지만, 18세기 전반의 가내수공업의 발흥을 근대의 시작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더욱이 태평양전쟁에서의 패전을 근대와 현대로 구분하기도 한다.

위에서 서술한 것과 같이 시대구분론은 발전단계사관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아 역사의 중층성·연속성에는 주의를 두지 않는데 그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시대를 구분하는 대상이 아니라 이행하는 것에 초점을 둔〈시대이행론〉를 제기하는 연구자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반에 잘 알려져 있는 시대구분은 주로 정치섹터에 초점을 두어 시대구분을 하였다. 이 시대구분은 명확한 구분기준을 가질 턱이 없고, 역사연구상 시대구분으로써는 적당치 않다. 단순히 편의상 사용되고 있는 것이 불과하다. 문헌사료 없이 고고학적 사료가 남아 있는 시대는 고고학상의 시대구분에 따라 구석기 시대, 조몬 시대, 야요이 시대, 고훈 시대로 구분되며, 문헌사료가 어느 정도 남아 있는 시대는 정치섹터에 초점을 두어 아스카 시대, 나라 시대, 헤이안 시대, 가마쿠라 시대, 무로마치 시대, 아즈치모모야마 시대, 에도 시대로 구분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치 않기 때문에 남북조 시대, 센고쿠 시대라는 구분을 더하였고, 이는 중국사의 시대구분을 차용한 것이다. 에도 시대 다음은 본래〈도쿄 시대〉라는 호칭을 사용해야 되지만, 천황의 재위에 따라 메이지 시대, 다이쇼 시대, 쇼와 시대, 헤이세이 시대라고 불리고 있다. 또, 홋카이도, 도호쿠 북부, 류큐 제도 등은 다른 시대구분으로 구분한다.

또, 문화면에 초점을 두어, 조몬 문화, 야요이 문화, 고훈 문화, 아스카 문화, 하쿠호 문화, 덴표 문화, 고닌·조간 문화, 국풍문화, 인세이키 문화, 가마쿠라 문화, 기타야마 문화, 히가시야마 문화, 모모야마 문화, 겐로쿠 문화, 가세이 문화, 메이지 문화, 대중문화 ~ 등으로 하는 구분도 있다.

역사인식·역사서술 [편집]

일본에 있어서 근대적 역사사상의 도입은 19세기 후반의 메이지 유신이후의 일이지만, 그 이전에도 역사인식 및 역사서술이 있었다.

고대 [편집]

야마토 정권이 통일국가를 형성한 6세기에는 왜왕가의 계보를 기록한《제기》, 왜국의 신화를 기록한《구사》가 편찬되었어며, 7세기 전반에는 쇼토쿠 태자에 의한《천황기》가 편찬되었다. 이러한 역사서술의 전통을 계승해 율령통일국가가 성립한 8세기 전반에는 일본 첫 정사(正史)인《일본서기》가 완성되었다.《일본서기》는 중국의 정사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천황지배의 전통성을 강하게 피력했으며, 황위계승의 경위에 관한 기술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한 가지 집고가야 할 점은 중국와 한국에 대한 일본의 독자성을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천황의 정통성〉,〈일본의 독자성〉주장은《일본서기》를 포함한 그 후의 정사《속일본기》,《일본후기》,《속일본후기》,《일본문덕천황실록》,《일본삼대실록》, 소위 육국사의 주요 주제가 되어 이후 에도 시대 말기까지 그 영향을 미친다.

정사인 육국사 편찬은 찬국사소(撰?史所) 등으로 불린 기관을 중심으로 편찬사업을 하였다. 하지만,《일본삼대신록》에 이어 《신국사》편찬 중 사업이 중지되어 더 이상 정사의 편찬을 하지 못했고, 헤이안 중기이후 관인들이 전례를 참조하여 정무를 보다 신속히 처리하기위해 만든《유취국사》,《일본기략》,《백동초》와 그 밖의 각종 연대기를 편찬하였다. 이상의 역사서술은 모두 한문체로 편찬된 것이지만, 헤이안 후기가 되면 국풍의 영향으로 역사물, 군기물, 설화집이 한문체 보다 표현력이 풍부한 가나로 간행되었고, 종전의 정사적 역사관과는 다른 새로운 역사적 의미를 더해 역사를 해석하였다. 대표적인 역사물로는《에이가 이야기》,《대경》,《증경》등이 있으며, 군기물로는《헤이케 이야기》,《태평기》등이 있고, 설화집으로《금석물어집》등이 있다. 이러한 서적들은 무사와 서민들에게도 역사인식을 심어주었다.

중세 [편집]

가마쿠라 시대 이후 무가의 대두에 위기감을 느낀 공가계층은 새로운 역사인식을 갖게 되었고, 이를 대표하는 역사서가 지엔의《우관초》이다. 지엔은 말법사상과〈도리〉를 주제로 역사를 서술하였고, 무가가 정치권력을 장악하자 이를 도리관념으로 이해하려 하였다. 이 역사서가 처음으로 역사인식을 명확히 나타냈다는 견해도 있다. 중세에는 불교적 역사인식이 널려 퍼져있었다. 이에 대응하여 신관(神官)들 사이에서는《일본서기》의 신화를 강독하는 것이 성행했고, 신사를 중심으로 신화와 역사를 결합시키려고 하는 움직임도 있었다. 이를 배경으로 중세 중기에는 신국사상(神國思想)을 주제로 한 기타바타케 지카후사의《신황정통기》가 간행되었다. 또, 중세의 또 하나의 특징은 연중행사유직고실[4] 등의 의례를 통해 역사를 인식하였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기와 각종기록문서가 많이 작성되어왔다. 이 같은 영향으로 가마쿠라 막부정사인《오처경》은 일기체로 적혀있다.

근세 [편집]

에도 시대에 들어서면, 쇼군 가문과 다이묘 가문은 권력를 정당화하기 위해 유교사상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 역사의 편찬을 통해 정당성을 주장하였다. 대표적 역사서로는《무덕대성기》,《본조통감》,《대일본사》등이 있다. 유교는 본래 합리적 사고를 가지고 있어, 유교사상이 융성할 무렵에는 합리주의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하였다. 이 무렵 역사서로는 아라이 하쿠세키의《독사서론》,《고사통》등이 있다. 이러한 움직임 속에 실증적 역사연구는 18세기오규 소라이이토 도가이에 의한 정치제도사 연구로 이어졌고, 아울러 국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근세의 합리적, 실증적 역사인식이 하나의 정점에 도달하는 데 이를 논한 인물이 도미나가 나가모토였다. 도미나가 나가모토는 불교, 유교, 신토라는 종교, 사상도 역사적으로 변화해 오고있고, 이를 절대시 보지 말고 객관적으로 관점에서 봐야 된다고 설파했다. 이러한 상황은 이미 일본의 역사연구가 근대역사학을 수용하기에 충분한 기반을 쌓았다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편 에도 시대 후기에는 막번체제의 모순과 대외긴장의 고조 속에 서민들 사이에서도 역사의 대한 관심이 싹트기 시작했고,《일본외사》,《황조사략》등 통속적인 역사서가 많이 출판되었다.

근대 [편집]

에도 시대 말기부터 메이지 유신기를 걸쳐 문명사 등 서구의 근대역사학이 물밀 듯이 밀려온다. 그 중 진보사관, 진화사관이 일본에 급속히 퍼졌다. 이는 종래의 일본에는 없는 새로운 역사관으로 역사 안에서 보편적 법칙성을 발견해내는 역사관이다. 이를 토대로 다구치 우키치의《일본개화소사》와 후쿠자와 유키치의《문명론의 개략》등이 저술되었다. 이는 일본사와 서양사의 공통점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고, 탈아론과 연결되었다.

한편, 메이지 정부의 입장은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국민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국가주의적 역사서술이 구축하였다. 대정봉환왕정복고를 정당화하는 역사관으로 다이카 개신, 겐무 신정, 메이지 유신이 가장 중요한 개혁으로 위치했으며, 이러한 국가주의적 역사관은 특히 역사교육현장에 적극 도입되었다. 이는 전시대의 국학과 존왕사상을 배경으로 한 것으로 그 뿌리 밑바닥에는《일본서기》로부터 이어온 일본역사의 독자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이와 같이 메이지 시대 이후 역사인식·역사서술에는 두 조류가 있었다. 그 하나는 역사의 보편성을 찾는 것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일본역사의 독자성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1888년 실정주의 사학의 시조 랑케의 제자에 해당하는 루드비히 리즈가 제국대학에 초빙되었다. 리즈는 엄격히 실증사학을 지도하였고, 소위 관학 아카데미가 형성되었지만, 사료고증을 너무 중시해 유감을 샀다. 메이지 말기에는 독일 역사학파의 영향으로 발전단계설이 대두되었고, 막스주의유물사관이 소개되었다. 다이쇼 시대에 들어서면, 역사법칙성을 강하게 부정하는 역사이론이 소개되어, 역사철학으로의 관심이 높아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 시기는 사회경제사, 문화사, 사상사 등 폭넓은 분야로 관심이 퍼졌다. 이러한 역사학의 발전속에서 한편으로는 역사학과 국가주의적 역사관과의 충돌이 생겨났다. 역사학이 실증주의를 너무 중시하고 역사인식과 사학방법론을 경시한 것도 국가주의적 역사관의 대두를 허용한 한 원인이 되었다. 쇼와 시대에 들어서면, 국수주의로 회기하여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역사관인 황국사관과 권선징악사관이 융성하게 된다.

현대 [편집]

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역사의 독자성 주장은 크게 후퇴하였고, 역사의 보편성에 중점을 둔 사회과학적 입장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 중에서도 실증주의사학과 유물사관사학이 대세를 이루었다. 국가주의적 역사관의 멍에로부터 벗어난 전후 사학은 중요한 실적을 많이 남겼지만, 실증주의에는 역사철학을 경시한다는 약점과 유물사관에는 교조적인 경향이 강하다는 약점이 있다. 1960년대 후반 무렵부터 그런 한계를 지적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는 전후역사학에 대한 반성과 자기성찰이 시작되었고, 1980년대에는 점차 속도를 내어 종래에는 그다지 빛을 보지 못했던 민속학문화인류학 등의 성과를 역사학에 반영하는 시도가 있었다. 이와 같은 역사연구의 결과, 인구에 회자되었던 많은 역사상을 크게 뒤엎는 성과가 다수 발표되었다. 아미노 요시히코 등이 대표로 거론된다. 반면, 일반인들 사이의 역사상과 근년의 연구 성과에는 큰 괴리가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지적이 있다.

다른 방면에서는 역사의 대중화가 진행되어 가이온지 조고로시바 료타로 등의 역사소설이 유행하였고, 사마대국 논쟁을 통해 역사 붐이 일어났다. 사마대국에 관해서는 학술적 신뢰성이 없는 설도 일정부분 널리 퍼졌다는 점을 눈여겨 볼 필요도 있다. 더욱이 전후 크게 퇴보한 일본역사의 독자성을 강조하는 입장이 헤이세이 초기부터 자유주의사관으로 불리며 그 주장을 전개하고 있다. 이를 역사학의 수준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인 역사에 대한 관심의 반영으로 인식할 수 있다.

참고 문헌 [편집]

  • 《朝日百科 日本の?史(아사히 백과 일본의 역사)》 전12권 아사히 신문사
  • 《岩波講座 日本通史(이와나미 강좌 일본통사)》 전21권·별권4권 이와나미 쇼텐 1993년 ~ 1996년
  • 《日本の?史(일본의 역사)》 전26권 고단샤 2000년 ~ 2003년
  • 《日本の?史(일본의 역사)》 전32권 쇼가쿠칸 1973년 ~ 1976년
  • 《大系日本の?史(대계 일본의 역사)》 전15권 쇼가쿠칸 1987년 ~ 1989년
  • 《日本の?史(일본의 역사)》 전26권·별권5권 주오 고론샤 1965년 ~ 1967년
  • 《講座日本?史(강좌 일본역사》 전13권 도쿄 대학출판회 1984년 ~ 1985년
  • 《日本?史大系(일본역사 대계》 전6권 야마카와 출판사 1984년 ~ 1990년
  • 《日本の時代史(일본의 시대사)》 전30권 요시카와 고분칸 2002년 ~ 2004년
  • 《?史大?典(국사대사전)》 전15권 요시카와 고분칸 1979년 ~ 1993년
  • 《日本史大事典(일본사대사전)》 전7권 헤이본샤 1992년 ~ 1994년
  • 《日本?史大事典(일본역사대사전)》 전3권 쇼가쿠칸 2000년 ~ 2001년

주석 [편집]

  1. 두산백과사전의 노국에 대한 서술
  2. 임나일본부’가 이 시기와 관련된 주장이며, 이에 대하여 한국과 일본의 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있다.
  3. 일본 정부와 군 요직을 점한 옛 사쓰마 번, 조슈 번, 도사 번, 히젠 번 출신자들 그룹에 대한 비판적 호칭
  4. 조정이나 무가에서 행하는 의례, 관직, 제도, 복식, 법령 등을 예부터 내려오는 전통을 토대로 연구하는 학식

같이 보기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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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자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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