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고향이야기

一德 2016. 9. 12. 10:33

서애류성룡선생는 정류재란을 끝으로 일본군이 물러나자 고향 하회마을로 돌아온다.

서애선생의 조부 柳公綽(1481-1559)의 묘는 군위읍 외량리 솔티에 있는데 이때 자주 조부위 산소를 참배를 했던것으로, 산소에서 군위읍쪽으로 솔티고개만 지나면 남계서원이 있는데 그 왼쪽에

초은대가 있다..   西厓柳先生 杖屨之所라 쓰여 있다.

군위군지에 의하면

詠歸臺, 在郡北6里 南溪書院之在 麓巖壁斗絶處 俯臨湥潭平看長野 柳西厓命名 逍遙之所

영귀대는 남계서원이 있는 산기슭 바위벽두가 끊긴곳에 있다. 구부려 못이 흘러 임하고 긴평야를 볼수 있다

歎逝川, 在詠歸臺下 柳西厓命名

탄서천은 영귀대아래에 있고 류서애가 명명했다.

招隱臺, 在書院之右麓 亦柳西厓命名

초은대는 서원의 우측기슭에 있고 유서애가 명명했다

또한 1800년대 말의 군지고지도에도 영귀대가 분명히 있어, 영귀대를 찾으려 했으나 글씨를 찾지 못했다.

남계서원은 서애선생(1542-1607)과 李好閔(1553-1634)을 모신 서원인데 고종때 훼철되었다가 근래 다시 세웠다.   이호민은 류성룡의 진외가 당숙이다.   나이는 11살 어리나..  이호민 역시 임진왜란때 많은 공을 세운다.

이호민은 형 이우민(1515 ~ 1574)과 나이차이가 무려 38세나 나는데, 이는 이우민의 생모 민씨가 죽자. 李友閔이 아버지 李國柱에게 비안박씨를 중매하여 낳은 동생이다.

이국주는 일찍이 이곳 군위의 李亨禮:1448-1507)의 2자로 태어 났으나 경기도로 양자를 가서 군위에는 산소가 없다.

남계서원 1581년  참건하였다가, 고종때훼철 1990년 재건하였다. 1627년 서애선생위패를 모시고, 1787년 오봉 이호민선생을 모신다. 

풍산류씨문중이 돈을 가장 많이 냈다.

그때의 유물인듯한

서원안은 잘 관리되고 있으나 들어갈수가 없다.





남계서원의 우측바위 초은대..  바위의 오른쪽 서애류선생 장구지소(신발과 지방이를 놓고 쉬는곳)..  南溪洞天이라 쓰임

왼쪽바위 초은대..글씨

도로 건서서 찍은 초은대 전모




이제 서원의 왼쪽 바위로 추정되는 영귀대를 올라 글씨를 찿아 봤건만...


글씨의 흔적인듯한 이곳만 확인..


영귀대 옆의 간이 도로와 그 오른쪽의 탄서천... 

턴서천 지금의 이름은 신안천이다.

다리..  이걸 지나면 2-30m만 더가 위천을 만난다.

찾아도 찾아도 보이지 않는 영귀대..

                                                           오봉 이호민 선생의 초상화


남계서원에서 초은대와 영귀대로 갈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초은대는 남계서원에서 나와 소보 방면으로 걸어서 한 조끔 갖다 보면 오른쪽 바위에 적혀 있습니다.
영귀대는 발견 못했습니다.
탄서천은 군위음내를 관통하여 위천과 합류하는 신안천으로 추정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