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15번째로 큰 섬 여행! <카리브해의 누에, 쿠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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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책 후기♡

2020. 12. 18.

 

세계지도를 펼치면 늘 나의 미답지에 가장 먼저 눈이 간다. 해외여행을 많이 했다고 자부하면서도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대륙이 남미인데, 그중에서도 카리브해의 섬나라 '쿠바'는 오랫동안 나의 여행지 버킷리스트에 담겨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세계에서 15번째로 큰 섬 쿠바! 사실 쿠바가 섬나라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태반일 것이다. 여행지로는 주목을 못 받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나에게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코로나가 우리 삶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면서 해외여행이 어려워진 지금, 이 책 <카리브해의 누에, 쿠바>는 간접 체험을 통해 여행에 대한 갈증을 해소시켜준다.

 

쿠바는 일반인들에겐 여행지라기 보다는 혁명의 역사가 먼저 생각나는 나라이다. 쿠바인들이 국부라고 생각하는 호세 마르티, 혁명 이후 50년 가까이 쿠바를 통치한 피델 카스트로, 아르헨티나 출신이면서도 쿠바 혁명에 함께 했던 체 게바라. 그런 굵직한 인물들의 흔적이 이 책 쿠바 여행기 속에도 거부감 없이 녹아있다. 세계사 책이 아닌 여행서를 통해 접하는 역사는 훨씬 쉽고 실감 나게 다가오는 법이다. 이 책 또한 그러했다. 다음에 쿠바 여행을 하게 된다면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의 흔적을 찾아다녀보는 것도 재미있고 의미 있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여행의 목적은 숱하게 돌아다니며 낯섦과 맞닥뜨리기 위함이라는 저자의 여행 철학이 나의 여행 철학과 맥이 닿아 있어 반가웠다. 편하고 럭셔리한 걸 추구하는 여행자라면 결코 여행지로 삼지 않을 것 같은 쿠바, 그 속살을 저자는 화려한 필체로 거침없이 담아내고 있다. 유기농이라는 프리미엄을 달고 있지만 맛은 포기한 음식들, 뒷처리를 수동으로 해야 하는 화장실, 속도계가 고장 난 택시, 일회용품이 귀해 요구르트병을 반영구적으로 돌려쓰는 모습 등도 그 배경이 '쿠바'라면 한 번쯤 경험해도 좋을 추억이 되는 것 같다. 일상에서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누리는 것들이 여행지에서는 불편함으로 다가올 수도 있지만 그런 불편함과 생경함을 겪기 위해 고생스러운 여행길로 떠나는 거라는 저자의 철학이 매 페이지마다 담겨 있다. 쿠바인들의 삶 깊숙이 침투해 돋보기를 대고 보여주는 쿠바노(쿠바 사람)의 삶은 매우 흥미로웠다.

 

남미라는 지리적 위치만으로 쿠바를 후진국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쿠바는 충분히 선진국의 면모를 갖춘 나라라는 것을 알게 된 건 기대이상의 수확이었다. 무엇보다 영아 사망률이 제로에 가깝고, 무상의료, 예방의료, 가족주치의제도 등을 갖춰 신(新)장수국가로 나아가고 있는 쿠바의 의료시스템에 놀랐고, 1959년 쿠바 혁명 직후 가장 먼저 창설한 게 쿠바도서협회일정도로 정부에서 독서를 장려하고 국민들도 책을 가까이하고 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게다가 남미 여행의 가장 큰 복병이었던 '치안' 문제도 쿠바는 예외라 하니,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이미지변신을 한 쿠바로의 여행에 제대로 시동이 걸린다.

 

작가는 쿠바에 '카리브해의 누에' 라는 별칭을 붙였다. 아직 번데기조차 되지 못한 쿠바의 무한한 가능성을 표현하고 싶었던 걸까? 틈만 나면 쿠바로 날아가 지칠 때까지 쿠바의 구석구석을 누볐다는 저자의 이력만 봐도 그의 쿠바 사랑을 알 것 같다. 저자의 눈을 통해 흡수돼 글로 풀어지는 쿠바는 계단 하나, 공기 한 모금도 특별하다. 사진이 많이 담겨 있어 글을 통해서만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는 독자의 피곤함을 덜어줬는데, 쿠바를 신기를 넘어 신비한 나라였다고 표현한 만큼 사진 한 컷 한 컷에 담겨 있는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엔 묘한 끌림이 있었다.

 

예술혼의 갑옷을 걸친 쿠바노의 행위예술이 즐비한 쿠바의 골목골목을 거닐어보고 싶어진다. 헤어젤 통에 담긴 뭔가를 발라 내놓는 요상하지만 맛있는 햄버거도 먹어보고 싶고, 빈대떡과 인절미를 섞은 맛이 난다는 피자도 맛보고 싶어 진다. 백팩 크기임에도 우리 돈으로 600원밖에 안 한다는 케이크로는 날마다 나의 하루를 축하하는 파티를 하고 싶고, 대문호 헤밍웨이가 쿠바에 머물 때 즐겨 마셨다는 칵테일 '다이끼리'도 꼭 한잔 마셔봐야 할 것 같다. 그땐 헤밍웨이가 쿠바에서 집필했다는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를 꼭 챙겨가리. 아, 작가로 하여금 쿠바 여행의 동기를 제공했던 유기농 커피도 잊지 말아야 할 텐데...

 

<카리브해의 누에, 쿠바>를 다 읽고 나니 이미 쿠바를 한 번 다녀온 것 같다. 쿠바 여행을 갈 계획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는 좋은 가이드북이 되어줄 것 같고, 굳이 중남미까지 여행하는 수고로움을 감수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이들에겐 방 안에 앉아서도 실제 여행 이상의 즐거움을 느끼는 한 편의 다큐멘터리가 되어줄 것이며,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 여행하는 인간)에게 진한 자극을 주는 책임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