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줍기

해떴다 2011. 9. 25. 14:50

 

찬호한테서 전화가 왔다.

학교에 전화했더니 선생님 학교 그만두셨다고 해서 깜짝 놀랐어요!

찬호의 목소리에는 마치 네 멋대로 그런 짓을 하면 어떡하느냐?는 원망이 묻어있는 듯했다. 중학교 2학년 때 우리 반이었던 찬호와는 졸업한 지 15년이 지나도록 소식을 주고받으며 지냈는데 최근 한동안 소식을 듣지 못했던 참이었다.

당시의 찬호는 형과 함께 할아버지 손에서 어렵게 자라 먹는 것이 부실했던지 얼굴에는 늘 검버섯이 피어있었지만 공부도 잘 하고 기품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는 주말을 이용해 놀러 오곤 하다가 대학에 들어가서는 전화로만 근황을 들려주었다.

과외며 건설현장 일로 학비조달을 하고 있다는 소식, 아파서 휴학을 했다는 소식, 우여곡절 끝에 대학을 졸업했다는 소식, 여자 친구는 교사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자긴 공무원시험을 준비한다는 소식 등을 전해 듣는 동안 사립학교교사인 나는 언제나 그의 모교에 남아 있었다.

오랜만에 듣는 그의 목소리는 어렵던 고학시절보다 더 맥이 빠져 있었다.

‘그사이 카드회사에 취직을 했다, 여자는 떠났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는 얘기 끝에 그는, 아줌마! 왜 그 좋은 직장을 그만두셨어요? 뭘 해서 먹고살려고요? 하고 말했다. 그 좋은 직장이라니…. 이 녀석이 그 동안 일자리를 찾느라 많이 힘들었나 보구나 싶어서 마음이 아팠다. 아줌마라고 불러주어서 웃음을 터뜨리긴 했지만.

사실 그렇게 열심히 미래를 준비해온 찬호가 처한 현실에 비하면 찬호 또래시절의 나는 분수에 넘치게 운이 좋았다. 입시에 실패해 열등감에 허우적대느라 배움을 포기했던 고교시절을 보냈고, 대학에서 신입생을 많이 늘려 뽑던 해여서 점수에 맞춰 안전하게 대학에 갔다. 대학에선 그저 대학생이 된 것이 좋아(그… 80년대에) 캠퍼스를 휘젓고 다니며 놀기만 했다. 컨닝도 하고 과제도 베껴서 내고 공허한 말장난으로 청춘을 낭비했다. 그럼에도, 그런 제자를 위해 추천장을 써 주신 교수님 덕분에 그 좋은 직장을 얻었던 것이다.

 

 

낮에 시장을 보는데 휴대전화에 메시지가 왔다. , 딱 한 번만 더 아침산책 가요. 마지막인데…라는. 반 아이들과 했던 아침산책 시간에 한 번도 안 빠지고 꼬박꼬박 참여했던 영환이였다. 영환이는 혜성원 봉사활동이나 자연체험 캠프 등 내가 추천하거나 진행한 모든 활동에 빠짐없이 참여했고, 학급에서 자율적으로 보던 영화도 열심히 보았고 학급잔치나 모둠회의에도 잘 참여했다. 하지만 영환이가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처음 한두 달은 솔직히 하도 애를 먹여서 이번 활동에는 제발 좀 빠져주었으면 했을 정도였다. 친구를 잘 때리고 말도 험하게 하고 내 인내심을 시험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짓궂게 굴던 아이였다.

영환이가 손가락으로 또박또박 눌러 써 보냈을 메시지를 지우기로 단숨에 날리고는 고등어, 대파, 홍시, 마늘, 당근, 양배추랑 세제 없이 때가 잘 진다는 요술행주를 샀다. 그렇게 손가락마다 검은 비닐봉지를 주렁주렁 끼워들고 시장바닥을 돌아다니며 우리 교실을, 아이들을 찾아가고 있는 나를 보았다. 이대로 아이들에게 달려가 장난이었지롱! 하고 혀를 내밀면 아유~ 그럴 줄 알았지! 하고 깔깔 웃으며 반겨주지 않을까…. 마지막 인사를 하던 날, 놀란 토끼눈을 하고 어리둥절해하던 아이들 모습이 떠올라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 동안 고마웠다. 귀찮을 정도로 잔소리를 해도 군말 없이 잘 따라준 너희들이 있었기에 나의 마지막 학교생활은 무척 즐거웠다. 이렇게 중간에 학교를 그만두게 되어 참 아쉽다. 너희들과 보낸 시간이 행복했다는 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라 보고 잔소리를 좀 늘어놓겠다. 듣기 싫더라도 참고 들어주기 바란다. 물론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둥의 얘기는 하지 않겠다. 늘 말했듯 공부를 하고 안 하는 건 자기가 선택할 문제니까.

다만 남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 중 어렵지 않은 것, 너희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오늘도 난 누군가가 반쯤 먹다 남긴 오렌지주스 팩을 창틀에서 주워야 했다. 화장실에 가서 남은 음료수를 세면대에 버리면서 나는 펑펑 울고 싶었다. 왜 쓰레기를 창틀에 얹어두는 걸까….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버려야 한다는 걸 모르진 않을 거다. 어쩌면 우리 반 학생이 그런 게 아닌지도 모르지만 그 애가 명색이 중학생인 것은 분명하다. 방학식 하는 날 뒤처리를 잘 할 거라고 나름대로 완전점검까지 했건만 아무개 양은 종이봉투 가득 쓰레기를 담아 책상 옆에 걸어두고 가버렸다. 그걸 발견한 내가 야! 하고 소리를 지르는데 돌아보며 생긋 웃고 그대로 달아났지.

이런 일 말고도 너희들이 알고 있는 것을 지키지 않는 일은 많다. 자기 물건을 교실 아무 곳에나 얹어두는 일이나 선생님에 따라 태도를 달리하는 점 같은 거. 무서운 선생님 말씀은 잘 듣고 그렇지 않은 선생님 시간엔 함부로 하는 거. 니들은 국사 선생님이 그것 때문에 얼마나 괴로워하시는지 모르지? 또 내가 왜 속상했더라? 또… 음…, 그것 말고는 없구나. 어쨌건 이제 너희들과 싸우지 않아도 되니 나는 정말 좋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 하겠는데, 걸레 안 낸 사람 빨리 내라!

이렇게 생각나는 대로 잔소리를 늘어놓고는 자! 할 말 있는 사람? 하고 물었다. 아이들은 아무 말도 안 했고 나는 쌩~ 하고 찬바람을 일으키며 교실을 나왔다. 평소에도  비슷한 훈화를 늘어놓곤 해서 나 역시도 이게 진짜 마지막 종례인가 믿기지 않았다.

 

 

그 해엔 학교에서 교장선생님의 명령으로 아침 자율학습 시간에 EBS 교육방송을 보도록 했었다. 그러나 그건 단지 교장선생님의 생각이었기에 우리는 학급회의를 열어서 차라리 그 시간에 좋은 영화들을 골라보자는데 합의했다. 어느 날 아침, 우리는 ‘장이모’의 집으로 가는 길을 보고 있었다. 그때 복도를 순시하던 교장선생님이 들어오셔서 영화를 보고 있는 아이들과 나에게 화를 내셨고 나는 열심히 변명을 했다. 곧이어 교감 선생님도 순시를 하다가 들어와서 꾸짖었다. 나는 좋은 영화는 아이들이 영상매체를 바르게 인식하는 데도 도움이 되고 어쩌고저쩌고… 하며 교장선생님께 했던 대답을 되풀이했다. 아니, 애들이 보자고 해도 선생님이 말려야지, 그러니 무슨 교육이 되겠습니까? 하시며 내가 너무 답답한지 한숨을 쉬셨다. 한 번씩 이런 일이 생기면 나는 말한 사람이 본전도 못 찾게 말대꾸를 잘 하지만 종일 그 분들과 시선을 피할 만큼 소심하기도 하다. 사실 서로 의견만 다를 뿐 아이들을 위한다는 기본 생각은 같기 때문이다. 교사라면 누구나 해본 생각이겠지만 교육현장에서 웃어른을 잘 모시는 일이 아이들을 잘 보살피는 일과 하나로 통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예를 들면 이런 교장선생님.

‘아침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교실 바닥에 주저앉아 깔깔대며 살구놀이를 할 때 옆에 와서 응원을 해주신다.

때로 수업시간에 아이들을 모두 재워도, 우루루 몰고 다녀도 뭐 그럴 필요가 있어서겠지 하며 믿어주신다.

출석부, 학급일지가 숱한 조퇴나 결석으로 얼룩진다 해도 담임을 믿고 맡겨주신다.

몹시 추운 날, 반 아이들에게 내일은 수업에만 늦지 말고 오너라! 하고 내키는 대로 선심을 써도 좋을 자유를 허락하신다.

의자에 앉아 수업을 하면 오늘은 아픈 게로군 하고 걱정 어린 마음을 가져주신다.

공문은 관리자가 다 처리할 테니 수업과 아이들에만 신경 쓰시오 하고 진심으로 말한다.

교사들의 솔직한 의견과 충언을 언제든 기쁘게 받아들이고, 무엇보다 당신의 학교와 교사와 학생들을 상급기관보다 더 생각하고 돌봐주신다.’

하지만 오랜 세월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나름대로 길을 찾아온 교육제도를 탓하는 것이나, 그 속에서 많은 제자들을 길러낸 교육선배님들을 탓하는 것은 서로 상처만 내는 소모전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것은 누구의 잘잘못이기 이전에 국가제도가 가지는 극복하기 힘든 한계라 생각하기에. 왜냐하면 아무리 훌륭한 선생님들이, 아무리 좋은 환경에서, 아무리 열심히 아이들과 더불어 배우고 가르치려 해도, 몇 백 명이 함께 같은 일정을 꾸려가야 하는 제도권의 틀 안에서는 아이들이 제각각의 색깔과 목소리를 찾고 지켜가는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닭이 최신시설을 갖춘 대규모 농장에서 사육된다. 닭이 걸을 수도 없고 뛸 수도 없고 흙 속에서 먹이를 찾아먹지도 못하고 순전히 사람이 주는 모이만을 먹고 자란다. 늘 비좁은 우리에 갇혀있기 때문에 전혀 움직일 수도 없고, 밤이나 낮이나 늘 서 있어야 한다.

걷거나 뛸 자유가 없는 상태를 상상해보라. 밤낮없이 한곳에서 꼼짝도 못하고 지내야 하는 상태를 상상해 보라. 틀림없이 미쳐버릴 것이다. 그러므로 그렇게 사는 닭들도 당연히 미쳐버린다.

닭이 알을 더 많이 낳게 하기 위해서 농부는 인공적으로 밤과 낮을 만들어낸다. 조명등을 이용해서 낮을 짧게 만들고 밤을 길게 만들면 닭은 그 새 24시간이 지난 것으로 믿고 또다시 알을 낳는다. 그런 악순환을 반복하는 사이 닭은 결국 엄청난 화와 좌절과 고통을 안게 된다. 닭은 그 화와 좌절과 고통을 다른 닭을 공격함으로써 표현한다. 닭들은 부리로 서로를 쫀다. 그래서 피를 흘리며 죽는 닭이 수두룩하다. 극심한 좌절에 빠진 닭이 서로를 공격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농부는 닭의 부리를 잘라버린다.   

 이 글은 틱낫한 스님의 '화'라는 책 18쪽에 실려 있는 것이다. 그 같이 화를 품은 닭이 낳은 달걀은 우리에게 화와 좌절을 안겨주니 행복하게 자란 닭이 낳은 행복한 달걀을 먹으라는 뜻이다. 이런 양계방식에 대해서는 우리들 모두가 이미 우려를 하고 있다. 이 글을 읽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던 지.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 저 닭들과 흡사하지 않은가. 나는 당장 양계장으로 달려가 닭장 문을 열고 닭들을 해방시키고 싶다는 생각에 흥분이 되어 가슴이 다 두근거릴 지경이었다. 닭들의 귀여운 걸음걸이와 벌레사냥을 하는 예리한 부리의 빠른 움직임, 자유로운 날개 짓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자유에 익숙하지 못한 그 닭들이 곳곳에 똥을 싸고, 남의 밭을 짓밟고, 정숙하고 점잖은 동네를 시끄럽게 떠들며 돌아다닐 것을 생각해내고는…. 역시 그 닭들의 문제는 양계장 주인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결론을 내리는 수밖에 없었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양계장 주인은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 닭들을 대량사육 할 뿐이니까.

 

옳지 않은 길인 줄 뻔히 알면서도 ‘일단은 가자’고, 자신을 기만하고 타협하며 얻는 안락함이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생각을 했다.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이 부자연스러움을 벗어날 수 없으리란 사실이 두려웠다. 그리하여 나는 ‘그 좋은 직장’을 벗어버렸고 맨발의 자유를 누리기로 했다.

 

학교를 그만 둔 후 두 달쯤 되었을 때 민들레에 쓴 글. 몇 자 수정.

남의것이라면 남의 논에 있는 이삭도 주워면 안된다고 하신 우리 엄마가 생각나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