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빈 집에 깃들다' 관련글

해떴다 2012. 8. 13. 13:13

.... 가게는 도서관과 이어진 초등학교의 담벼락을 마주보고 있다. 이제 도서관의 책들은 모두 내 것이나 다름없다. 가게를 낸 것이라기보다 도서관 앞에 방을 하나 얻었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 일 런지도. 올해는, 이른 아침에 일어나 텃밭을 가꾸고, 도서관이 문을 여는 시간에 책을 빌려서 가게에 앉아 책을 실컷 읽겠다. 운영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세우지 못했지만 단순히 옷가게이기만 하진 않을 것이다.

 

이 글은 귀농한 지 만 26개월이 되던 20051월의 기록이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텃밭을 가꾸겠다는 생각이나 책을 실컷 읽으리라는 결심은 지키지 못했다. 그러나 단순히 옷가게이지만은 않으리라는 문장은 현실이 되었다. 도서관의 책들 운운하며 다소 한가해 보이는 표현 뒤에 숨어있는 당시의 현실은 지금도 내 코끝을 알싸하게 만든다. 그 며칠 전에 나는 마루 끝에 서서 흰 눈에 덮여가는 마을을 바라보며 괜찮아, 어떻게든 될 거야라고 소리 내어 중얼거렸지만 솔직히 조금도 괜찮지 않았다. 통장의 잔고는 이제 더 이상의 휴식은 없다는 것을 예고했고 그동안의 농사 체험은 말 그대로 체험으로만 그쳐야 했다. 암담한 마음에 눈이 영원히 그치지 않고 내려 세상을 모두 덮어버리기를 바랐지만, 머지않아 눈은 그쳤고 현실을 직시하라는 듯 햇살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날 나는 마루 책장에 차곡차곡 쌓아둔 염색 천들을 밑천삼아 장사를 해 볼 생각을 했고 가게를 구하러 나섰던 것이다. 그 와중에도 돈을 벌겠다는 표현은 한 마디도 없는 걸 보면 완전히 벼랑 끝에 서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지금은 기억에도 희미한 이름을 중얼거려 본다. 반딧불이천지삐까리. 그 해 여름에 함께 어린이 캠프를 진행한 인연으로 뭉친 여인들의 모임이다. 그녀들은 모두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엄마들이어서 학교 앞에 위치해 있는 우리 가게에서 차를 마시며 아이를 기다리곤 했다. 그러다보니 주로 자녀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나는 직업정신이 발휘되어 나름의 훈수를 두곤 했다. 단순한 옷가게가 아닐 것이란 막연한 표현은 그들로 하여 현실이 되고 있었다. 그들 중 선배 귀농자인 선우엄마는 선구적이고 헌신적인 사람으로 어린이 캠프 진행이며 노인대학을 세우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녀는 초등학교의 운영위원이기도 해서 학교 쪽에 줄을 놓아 나에게 방과 후 강사 자리를 주선해 주었고, 지금까지 지역의 여러 학교에 방과 후 강사로 자리를 잡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들은 이 작은 마을에서 아이들이 다양한 문화를 접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였고 자기 자녀뿐 아니라 지역 청소년들의 쉼터가 없음을 아쉬워하였다. 내 눈에는, 철길을 느릿느릿 걸어 등하교를 하거나 도서관 벤치며 박물관 공터에서 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더없이 행복해 보였지만, 막상 그들에겐 이 작은 마을이 심심하고 답답하리란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사이 귀농자도 점점 늘어서 우리가게를 아지트 삼아 모이는 일이 잦았다. 귀농을 했다고 하여 모두 농사에 뜻을 두고 온 것은 아니었다. 경제활동보다 교육이나 문화 활동에 능력과 관심을 가진 이도 있었다. 거기에 착안하여 나는, 가르치는 일의 즐거움을 실현하자는 생각을 했다. 자신이 가진 만큼의 능력으로 충분히 가르칠 수 있는 대상에게 가르치고 싶은 것을 가르치는 일. 그리하여 그런 계획을 제안하였고 여러 사람의 의견을 보태 더 근사한 출발을 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탄생한 것이 교육문화공간인 작은방이다. 나는 작은방의 모토로 처음에만허접함을 꼽았다. 끝까지 잘하지 못하더라도 우리가 잘할 수 있을 때까지만 하자, 멋지게 수준 높게 못하더라도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는 의도였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 중 누구도, 나 역시도 시작하는 일을 주저하였을 게 분명하다. 대부분은 유사한 활동으로 보람과 동시에 상처를 경험 해 본 사람들이었으니 어떤 갈등과 어려움을 만날지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우리는 좀 더 가벼워지고 싶어서 많은 걸 내려놓은 사람들이니.

20073, 작은방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고사를 지내는 자리에서 나는 들뜬 목소리로 우리들의 꿈을 낭송했다.

 

어릴 때 우리는,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습니다. 큰물에서 놀아야 큰 사람이 된다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지금 꾹 참고 고생을 해서 큰물에 가면 쨘~, 하고 성공할 날이 오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깊고 넓어서 마음껏 헤엄칠 수 있는 큰물은 힘들고 위험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니 햇살이 바닥의 모래알까지 비춰주고 어린물고기들이 한가로이 헤엄치는 개울에서 사는 것도 좋았을 것입니다. 험한 세상을 온몸으로 겪어낸 지혜로운 어른들은 알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울음소리와 어른들의 기침소리가 함께 들리는 세상이 진정 큰 세상이며, 이름을 얻은 이 보다 너른 가슴을 가진 이가 더 큰 사람임을. 온 마을 어른들이 아이들의 가족이 되고 그 아이들이 어른들의 꿈이 되는 세상, 우리가 사는 바로 이곳에서 그렇게 살고 싶다는 사람들이 작은방에 모였습니다. 각자가 가진 경험이나 지혜를 나눌 수 있는, 누군가의 경험이나 지혜를 배울 수 있는, 내가 가진 풍요로움의 한 조각을 나눌 수 있는, 나의 허기진 마음을 위로받을 수 있는, 작은 방은 우리들 모두의 것입니다.”

 

그렇게 시작한 작은방은 훌륭하거나 허접하거나를 반복하며 만 3년 동안 운영되었고 처음에만 이라는 모토에 맞게 열정이 식은 후에는 문을 닫았다. 성공을 바라고 시작한 일이 아니기에 실패라는 이름을 달 필요는 없었다. 시작이 있었고 끝이 있었을 뿐이다. 누군가에겐 삶의 의욕을 지펴주는 불씨가 되기도 했고 누군가에겐 쓴 기억으로 남기도 했겠지만, 이익에 눈멀거나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아름다운 사람들의 시간이었음은 분명하다. 어쩌면, 문을 닫았다고 해서 방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밖에선 보기엔 닫힌 방이지만, 그 속에서 여전히 배움을 주고받는 그들도 있으므로. 또 누군가는 그 문을 고쳐달고 다시 사용할 수도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