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근현대사와 장제스를 추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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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2021. 4. 4.

책 제목은 아니다. 여러 권의 책을 아우르는 제목을 정하다보니, 위와 같이 짓게 되었다.

 

최근 한국 근현대사 유튜브등을 보게 되면서 자연스레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해방기의 역사들이 중국과 깊은 연결고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임오군란, 갑신정변, 동학동민운동과 청일전쟁 등과 연결된 위안스카이 등의 인물에 대한 관심은 청나라 몰락과 신해혁명등으로 연결되었고, 해방 이후의 조선의 독립을 장제스가 지원했던 사실을 알게 되면서 장제스의 일대기에 등장하는 신해혁명, 만주사변, 공산당의 장정과 국공합작, 국공내전 등의 흥미로운 역사들을 접하게 되었다.

 

내가 이들 역사적 사실들을 조금이나마 잘 이해하기 위해서 학교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20세기 중국사, 알랭 루, 책과함께, 2007』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후원자 장제스, 김영신, 역사공간, 2019』

『중국근현대사 1 청조와 근대세계, 요시자와 세이이치로, 삼천리, 2013』

『중국근현대사 3, 이시카와 요시히로, 삼천리, 2013』

『장제스 일기를 읽다, 레이 황, 푸른역사, 2010』

『인민 3부작 1 해방의 비극, 프랑크 디쾨터, 열린책들, 2016』

 

이었다.

 

물론, 이 책들을 다 읽은 것은 아니다. 『20세기 중국사』와『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후원자 장제스』정도만 정독하였고, 『중국근현대사1,3』은 빠르게 훑어보며 통독했고,『장제스 일기를 읽다』와『인민 3부작』은 아주 일부분만 펼쳐보았다. 이번 기회를 통해서 중국의 청 왕조의 몰락과 새로운 세계를 꿈꿨던 쑨원과 그의 후계자 장제스가 걸어온 길, 그 여정에 상해 임시정부가 연계해 독립운동의 지원받은 사실들, 청제국 이후의 군벌세력들의 아편을 통한 이권 전쟁, 국민당의 위초를 피해 장정을 펼친 공산당과 국공합작 과정에서의 국민당과 공산당의 보이지 않은 대립들, 한국전쟁에서의 장제스의 수차례 파병 의사타진 등 새롭고도 흥미로운 사실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지은이 : 알랭 루 (Alain Roux)

출판사 : 책과함께

출판년 : 2007

 

목차

옮긴이 서문
서론

1장 중국사를 이해하기 위한 몇 가지 열쇠
2장 청 제국의 몰락: 1898~1911
3장 유구한 전통 중국의 질식 시대: 1912~1927
4장 중국 해안 지방의 발전: 1912~1927
5장 유산된 혁명: 1927~1937
6장 무력 항쟁: 1937~1949
7장 소련 모델을 추구한 시기: 1949~1957
8장 유토피아의 제국: 1958~1976
9장 마오쩌둥주의의 해체: 1976~2002
10장 21세기 벽두에 선 중국
에필로그 - 중국은 어디로 갈 것인가?

부록
연표 | 중국 주요 정치 지도자들의 약력 | 쑹(宋)씨 가문
참고문헌

 

 

북양군벌인 위안스카이의 등장과 청나라의 멸망을 시작으로 쑨원의 신해혁명과 계승자인 장제스의 국민당과 북벌, 만주사변과 공산당의 장정, 중일전쟁과 국공합작, 국공내전과 중화인민공화국의 탄생, 마오쩌둥의 시대와 이후 덩샤오핑의 개혁개방까지 파란 만장한 중국 근현대사들을 빠른 템포로 긴장감 있게 서술해 내고 있는 좋은 책이었다. 다만, 부족한 삽화의 질과 몇몇 오타가 보완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군벌들이 아편 이권에 개입하였다는 점, 90년대 당시의 중국 인당 소득으로 비춰봤을 때 실제 내수시장은 1억 2천만 정도였다는 점 ( 저소득층의 소비여력은 거의 없었다. ) 등은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지은이 : 김영신

출판사 : 역사공간

출판년 : 2019

 

목차

 

출생과 소년기 교육
일본 유학과 동맹회 가입
탈영 후 신해혁명 참가
타오청장 암살과 망명
호법운동 참가
소련 고찰, 황푸군관학교 교장 취임
국민혁명군(북벌군) 총사령
첫 번째 하야와 복직
국민정부 주석 취임과 군사 권력의 공고화
내우외환의 격화와 두 번째 하야
일본의 침략에 맞서는 자세
상하이사변 이전 한국에 대한 인식
윤봉길의거 후 한국에 대한 인식의 변화
김구와의 회동과 소극적 한국독립운동 지원
한국독립운동 진영의 통일 촉성
한국광복군 성립 비준
카이로회담과 전후 한국독립 보장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대한 재정 지원
미완성의 대한민국임시정부 승인
대한민국임시정부 환송과 주화대표단 설립 승인
해방기 한국 문제에 대한 관심
이승만과의 진해회담
한국전쟁에 대한 인식과 대응
말년까지 이어진 한국 문제에 대한 관심

장제스의 삶과 자취

 

 

 

장제스라는 인물을 이번기회에 서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 것은 큰 수확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순으로 상하이 사변까지의 중국와 장제스의 일대기를 서술하였고, 이후는 한국 임시정부 및 해방 후 남한과의 연관성을 보여준다. 장제스가 한국 독립과 직적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인물이라는 사실이 이 책을 통해서 알게된 점이다. 이 책은 크게 장제스의 성장기와 쑨원과의 인연을 맺게 된 시기를 1부, 국민당에서의 입지를 굳히고 북벌 추진과 공산당과 대적하고 중일전쟁으로 일본과 대적하는 시기를 2부, 임시정부 등의 지원과 해방 후 이승만과의 관계등을 다룬 3부 정도로 나눠볼 수 있을거 같다.

 

장제스는 저장성 펑화현 사람으로 닝보 등지에서 고등교육을 받고, 러일전쟁에서의 일본의 승리에 자극을 받아 일본 유학을 떠났다. 군사학교에 들어가고 싶었으나 사비 유학생 신분이라 1학기 동안 도쿄 청화학교에서 일본어를 공부해야 했다. 하지만 여기서 스승인 천치메이를 만나게 된다. 중국에서 신설된 통국육군속성학당에 입학하여 일본 유학생으로 선발될 수 있었으며 일본 진무학교에서 유학하게 된다. 1910년 진무학교를 졸업하고는 니가타현 다카다에 있는 육군 제13사단 야전포병 제 19연대 제2대대 제5중대에 배속되어 일본인 군영을 체험하게 된다. 그 해 10월에 우창봉기 등으로 신해혁명이 촉발되자 상하이로 무단 탈영하여 천치메이를 찾아가 혁명 활동을 하게 된다. 혁명 세력에 반하여 쑨원과 반목했던 타오를 암살하고 일본으로 망명했던 장제스는 1913년 10월 29일에 상하이에서 중화혁명당 입당 서약을 하게 된다.

 

쑨원의 아래에 있던 장제스는 생각지도 못할 만큼 여러번 사직과 복직을 반복한다. 그만큼 당내 정치적인 입지를 키우고 자기만의 신념을 지키려는 노력이 강했던 것 같다. 1차 국공합작은 사실 국공합작이라는 말이 궁색할 정도로 극소수인 공산당이 국민당의 세력으로 편입되었다. 이 시기에 소련 코민테른의 지도자들이 국민당 내부에서 활약하기도 한다. 이때 소련의 자금으로 설립된 황푸 군관학교의 초대 교장에 선임되기도 한다. 쑨원의 죽음이후 강력하게 여러차례 북벌론을 외치며 마침내 북벌을 시도한다. 베이징 입성 후 장쉐량과 협력하여 마침내 북벌을 완성하게 된다.

 

1928년 10월 8일 국민정부 주석에 추대된 장제스는 국민당 내부 반발을 잠재우고 공산당 토벌 작전을 감행한다. 한편, 동북3성에 대한 일본의 침략야욕으로 만주사변이 발생하고, 1932년 1월 20일 상하이에서는 일본 낭인이 자국 승려 피살을 이유로 중국인 공장을 습격하여 불사르는 일이 발생하였다. 이를 계기로 일본 군함과 해병대가 출동하고 1월 28일에는 일본군이 중국군을 습격하고 자베이를 강점한 상하이 사변이 발생한다.

 

이 책에서의 주장은 상하이 사변 이전에 장제스는 한국에 대해 피상적이고 제한적으로만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일례로 완바오산 사건의 보고를 받은 후에는, 일본의 의도적인 선동에 쉽게 넘어간 '한인들의 우매함' 을 개탄했다고 한다. 하지만 중일 정전회담이 지속되던 1932년 4월 윤봉길의 홍커우 공원 폭탄 투척사건을 계기로 한국 독립운동에 대한 인식에 변화가 생겼다고 한다. "백만 국군이 하지 못한 일을 조선 청년 한 사람이 해냈다." 라고 높게 평가했다고 항간에 알려진것과는 다르게 직접적인 반응은 없었다고 한다.

 

윤봉길 의거 이후에 한국 독립운동 지원은 두 갈래로 나누어 진행되었다고 한다. 한 계통은 국민당 조직부가 담당했고, 다른 갈래는 황푸 군관학교 출신이 주축이 된 비밀조직 삼민주의역행사가 담당했다고 한다. 아직까지 장제스의 한국 지원은 국민정부 차원의 공식적인 지원이 아닌 수면 아래에서 진행되었다. 따라서 국민당 조직부는 임정 계열을, 역행사는 황푸 군관학교 출신의 김원봉이 이끄는 조선의용대를 지원하였다.

 

1937년 루거우차오사건으로 중일전쟁이 본격화되자, 장제스도 한국의 독립운동을 공개적으로 지원하게 되었다. 다만 장제스는 이들 한국의 독립세력이 통합되지 못하고 별개로 활동하는 것을 계속 문제 삼았던거 같다. 1942년 12월 27일 장제스의 지시로 우톄청 등은 「조선복구운동 부조 지도방안」 을 마련하고, 자신과 허잉친, 주자화 3인이 한국 관련 업무를 전담하기로 했음을 보고하였다. 1943년 8월 10일 장제스는 한국 문제 처리의 기본 원칙 세 가지를 하달하였다. 이 지령에서 당파 문제 처리에 있어서는 "굳이 한국 각 당파의 통일을 강구할 필요는 없으나, 조직이 비교적 건전하고 유구한 역사를 지닌 한국독립당을 지지하고 원조하여 영도적 지위를 갖도록 해야 할 것" 이라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정치 문제 처리와 관련해서는 "내부 분쟁을 해소시키기 위해서라도 응당 임정을 중심 대상으로 삼아 진행해야 할 것" 이라고 했고, 군사 문제 처리와 관련해서는 "광복군 고위직에 대한 인사조정을 통해 임시정부 계통의 통일적 군사역량을 강화해야 할 것" 이라고 주문하였다.

 

한편, 잘 알려진 것과 같이 1943년 11월 26일 미국, 영국, 중국의 최종결정과 동의를 거쳐 "카이로선언" 이 확정되었다. 장제스의 강력한 주장과 루스벨트의 찬조로 전후 한국의 독립을 보장한다는 구절이 최종 선언문에 포함될 수 있었다. 다만 처칠의 의견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어 '적당한 시기 in due course' 라는 단서가 붙게 되었다. 김구등은 임시정부의 정식 승인을 장제스에서 여러 차례 요구했으나 연합국의 동의를 얻어야 되는 장제스의 입장에서는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는 문제였다. 일본 항복 이후의 충칭의 임시정부 인원을 귀국하는데도 장제스의 지원이 있었다. 다만, 충칭에서 상하이까지는 국민당 지원하에 수송기로 갈 수 있었으나 한국으로의 귀국은 미군정의 반대로 개인자격으로 입국은 11월 12일에서야 가능했다.

 

이승만 정부수립 이후의 한국전쟁과 박정희 독제체제에 대한 장제스의 반응은 노년의 권력욕을 잘 나타낸다. 한국전쟁 발발 시 끊임없이 미국에 대만 파병의사를 타진하기도 했고, 이승만과 협력하여 동아시아 반공연합세력을 형성하고자했다.


지은이 : 이시카와 요시히로

출판사 : 삼천리

출판년 : 2013

 

목차

 

서론

1장 국민혁명 시대
1. 쑨원의 뜻을 계승하는 자
2. 장제스의 대두와 공산당
3. 북벌과 베이징정부
4. 국공합작의 붕괴

2장 난징 국민정부
1. 난징 국민정부의 북벌 재개
2. 통일과 국가 건설
3. 만주사변
4. 국민 의식과 이데올로기

3장 공산당의 혁명운동
1. 중국공산당과 코민테른
2. 무장봉기와 혁명 근거지
3. 장정과 마오쩌둥

4장 제국주의 일본에 맞서
1. 일본의 화북 침략
2. 항일 민족통일전선
3. 시안사변

5장 항일전쟁에서 제2차 세계대전으로
1. 루거우차오 사건에서 전면전쟁으로
2. 전시하의 중국
3. 더 큰 전쟁으로
4. 항일전쟁의 종결

결론

 

 

쑨원 이후부터 일본 패망까지의 중국 근현대사를 잘 정리한 책이다. 일본인이 쓴 덕분에 일본의 저지른 사건들은 중화된 부분이 없지 않아 눈살이 찌푸려 지기도 했지만 이 책은 그래도 객관적 사실들을 종합적으로 정치, 사회, 경제 부분으로 잘 정리해 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삽화와 사진의 질이 좋아서 보는 맛도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20세기 중국사, 알랭 루, 책과함께, 2007』부록에 정리된 1898년부터 2005년까지의 중국 주요사건을 인용하고자 한다.

 

청 제국의 멸망 (1898~1911)

1898 6월 11일~9월 21일 광서제의 무술변법이 백일천하로 끝나다.

1900 6월 13일 의화단원이 베이징에 입성하다.

         6월 21일~8월 14일 의화단원이 베이징 외국 공사관을 점령하다.

1911 10월 10일 신군의 봉기로 혁명군이 우한 장악에 성공하다.

 

민국 초기 (1912~27)

1912 1월 1일 난징에서 쑨원이 중화민국 건국을 선언하다.

         2월 12일 마지막 황제 푸이가 폐위되다. 청 제국이 멸망하다.

         2월 15일 공화국 총통직에서 물러난 쑨원을 대신하여 위안스카이가 당선되다.

1915 6월 6일 위안스카이가 급작스럽게 사망하다.

1919 4월 30일 베르사유 회담에서 산둥 반도에 대한 독일의 권한을 일본에 양도하기로 결정하다.

         5월 4일 1,500여 명의 학생들이 베르사유 회담 결정과 친일본 내각 형성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다.

1921 7월 1일 상하이에서 중국공산당이 창립되다.

1924 1월 20일 광저우에서 국민당 재건회의가 개최되다.

1925 3월 12일 베이징에서 쑨원이 서거하다.

         5월 30일 상하이에서 5·30 운동이 일어나다.

1926 3월 20일 광저우에서 장제스가 쿠데타를 일으키다.

         7월 27일 북벌이 시작되다.

1927 3월 21일 상하이 중국 관할 지역에서 노동자들의 세 번째 시위가 성공하다.

         4월 12일 장제스가 공산주의자들과 상하이 노동조합원들을 대규모로 학살하다.

         7월 15일 우한 정부와 공산당이 결별하다.

         8월 1일 난창 공산주의자들의 봉기가 일어나다 (홍군 탄생).

 

국민당 정부 (1928~49년)

1928 10월 10일 장제스와 국민당이 중국을 재통일하다.

1931 9월 18일 '만주사변' 발발로 일본군이 만주 지역을 침략하다.

         11월 7일 마오쩌둥을 우두머리로 장시 성 루이진에서 소비에트 정부를 수립하다.

1932 1월 28일~3월 '상하이 전쟁'. 일본군이 상하이 중국 관할 지역을 공격하다.

         3월 9일 만주국이 세워져 푸이가 황제로 취임하다.

1934 여름 국민당이 장시 성 공산당 제5차 토벌 작전에 성공하다.

         10월 15일 대장정이 시작되다.

1935 1월 쭌이 회의. 마오쩌둥이 공산당 주석으로 선출되다.

1936 12월 7일~11일 장제스가 시안에서 장쉐량 등에게 체포된 시안 사건이 일어나다.

1937 2월 10일 내전 종식을 위한 국민당과 공산당 사이의 비밀협정이 체결되다.

         7월 7일 루거우차오 사건이 일어나다 (중일전쟁의 서막).

         12월 13일~1938년 2월 말 난징 대학살 사건이 일어나다.

1938 10월 우한과 광저우가 함락되다. 국민당 정부가 쓰촨으로 피신, 충친에 전시 수도를 마련하다.

1940 3월 20일 왕징웨이가 '순수 민족주의' 정부를 난징에 수립하다.

1941 1월 공산당 신4군 내부의 국민당 군대에 의해 안후이 사건이 일어나다.

         12월 7~8일 일본군이 진주만을 공격하다. 일본이 미국, 영국과 전쟁을 시작하다.

1942 2~6월 옌안에서 정풍 운동이 전개되다.

1944 4~12월 중부 중국에서 일본군 이치고 부대가 전격적인 승리를 거두다.

1945 4~6월 옌안에서 중국공산당 제7차 전국대표대회가 개최되다.

         8월 15일 일본이 항복하다.

         8월 28일, 10월 10일 충칭에서 마오쩌둥과 장제스가 협상하다.

1946 7월 내전이 확대되다. 인민해방군이 창설되다.

1948 3월 마오쩌둥이 "지금부터 우리의 활동 중심을 농촌에서 도시로 전환한다" 고 선언하다.

         9월~12월 선양에서 국민당 군이 패배하다.

         11월~1949년 1월 화이하이 전투에서 국민당 군이 패배하다.

 

마오쩌둥의 시대의 중국 (1949~78)

1949 10월 1일 톈안먼 광장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선언하다.

(중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