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감옥

갇히고 싶다 시의 감옥에 영혼의 자유를 보장하는 그 곳에

[스크랩] 인디언 벽화에 대해

댓글 0

불멸의 음악, 영화. 그림

2015. 2. 9.

 

인디언 벽화에 대해

 

콜럼버스 이전 시대의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석류석·터키옥·진주모와 같은 준보석 모자이크를 특히 좋아했고 이것들은 보통 방패·가면·신상(神像)과 같은 작은 물건의 표면장식에 이용했던 것들을 보다시피 인디언들들에 문화 예술성 역시 대단했음을 우리는 모르고 있던 것이 현실이다.

 

그들은 결코 백인들이 이야기해온 야만과 원시성을 가진 악마의 자식들은 아니였다. 지금 이시대에 돌아보아도 그들은 우리가 그 깊이을 알 수 없는 위대한 정신문화의 소유자들이였다.


 

인디언이 많은 나라에서는 그들의 미술에서 ‘인디헤니스모’(Indigenismo; 수 세기 동안 유럽인들에 의한 식민지 정책으로 잃어버린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우수했던 문화의 부흥을 꾀하는 사상)를 발견 할 수 있다. 비록 전부는 아니지만 인디언 문화 고유의 뿌리를 찾는 운동이 많은 라틴 아메리카의 모더니스트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흑자는 이러한 움직임을 일명 "튀기" 문화의 일종이라며 백인들과 인디언 인디오들의 혼혈종에 탄생한 문화운동으로 곡해들 하는데 이건 어차피 그들을 점령해온 백인들의 인디언 고유문화 찾기운동에 대한 비아냥 일뿐이다라고 필자역시 몫을 밖는다.

 

계속되어온 백인들의 인디언들에 대한 점령처럼 문화적 정신적 점령에 대한 현대적 정신적 침략의 당위성을 주는 행위이며 이는 계속되는 그들에 대한 현대적 침략이라 규정한다. 

 

20세기 라틴 아메리카 미술은 미국이나 유럽의 평론가들에 의해 과소평가 되어왔다. 그리고 20세기 라틴 아메리카 미술은 미국과 서유럽의 모더니즘에서 파생되었거나 그것을 모방한 것으로 치부되는 모욕적인 대접을 받아왔다

 

이유는 20세기 라틴 북미 아메리카 인디언 미술은 미국이나 유럽의 평론가들에 의해 과소평가 되어왔다. 그리고 20세기 라틴 아메리카 미술은 미국과 서유럽의 모더니즘에서 파생되었거나 그것을 모방한 것으로 치부되는 모욕적인 대접을 하며 협소화 시켜내는 역사에서 잘보여진다.


 

20세기 초반 라틴 북 아메리카와 유럽 미술 사이의 가장 눈에 띄는 문화적 업적은 멕시코 벽화운동이었으며, 벽화운동의 의미는 국가적, 문화적 동질성을 찾는 한편,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전달이라는 새로운 역할이 주어진 공공미술을 계속 활성화시키는 데 있었다. 그와 함께 인디오 인디언들의 자신들의 뿌리을 찾기위한 미술적 교두보을 확보하였다.


라틴 북 아메리카 미술이 역사적으로 백인들에 의해 수세기 동안 지배를 받으면서 그들의 미술까지도 유럽의 영향 아래 있었다는 사실은 근거가 있는 말이다. 하지만 백인들도 역시 자기 우월주의에서 나온 발상에 사로잡혀 멕시코 벽화운동을 인정하려 하지 않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일방적인

 

서양의 논평이나 의견에 무조건 따라가며 인디오 인디언들의 미술에 대한 시각을 서구 백인들만의 논리을 확대하는 점을 반성할 문제다.

 
그러나 라틴 북아메리카 미술은 유럽의 미술이 흉내 낼 수 없는 점이 있어, 세계 미술의 흐름을 조절하는 유럽 미술에 동승하지 않고 멸시 속에서도 그들만의 세계를 발전시켜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낸, 그들은 오히려 미술 사대주의에 젖지 않는 어느 면에서 보면 용감한 예술 혼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게다가 그들은 역사의 흐름 속에 혼혈 인종으로 변하면서 다양한 혼혈문화를 만들어 왔다. 서구인들이 혼혈인을 멸시하는 것에 대한 대응으로 그들은 혼혈의 특색을 살려 독특한 문화를 창출해 좋은 것이다.

 

그것은 백인들에 침략과 점령으로 얼룩진 그들 조상의 한과 그들의 정서을 찾기위한 그들의 저 깊은 내면에 흐르는 그들만의 정서적 밑바탕일 것이다.

 

그것은 인디언 인디오들이 지닌 자연과 인간에 대한 내면적 정서에 대한 뿌리찾기 이기 때문이다.



출처 : 어둠 속에 갇힌 불꽃
글쓴이 : 정중규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