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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외적 인격으로서의 가면(Persona)과 그림자(Shad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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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융

2016. 6. 15.

분석심리학(Analytical Psychology)

외적 인격으로서의 가면(Persona)과 그림자(Shadow)

 

 


1.외적 인격으로서의 가면(Persona)-집단의식

 

1)페르조나(가면)의 정의

- 자아(나)가 성장하면서 형성하고 소유하게 되는 집단사회의 행동규범 또는 역할 다시 말해 집단정신에서 빌려온 판단과 행동의 틀이다.

내가 어떤 조직에 당연히 요구하는 일들을 효과적으로 일들을 하는 것이다. 목사로써,아버지로써,

 

2)페르조나의 의미와 구체적인 예

페르조나(persona)란 고대 그리스의 연극에서 배우들이 쓰던 ‘가면’을 말한다.  그리스의 연극배우의 가면, 각시탈을 썼다면 탈춤, 양반탈을 썼다면 그기에 알맞은 역할을 해야한다.

 

(1)사회적 역할의 의미로서의 페르조나

우리나라의 탈춤처럼 어떤 사람이 각시의 탈을 쓰면 각시가 되고, 양반의 탈을 쓰면 양반이 되는 것처럼 인간이 집단 속에서 살아가는데 있어서도 여러 개의 탈을 썼다가 벗었다가 하면서 살고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

(예를 들어 한 주부의 경우, 누구네 집 딸의 역할, 누구네 집 며느리의 역할, 누구의 이내의 역할, 누구의 엄마의 역할, 직장여성으로서의 역할, 직급에 따른 역할 등등 개인이 사회 속에서 살아가면서 지니게 되는 가면의 수는 매우 많다).


(2)집단정신의 의미로서의 페르조나

여기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탈이나 가면의 의미가 "도덕적인 위선"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를 뜻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페르조나"는 집단정신의 한 단면인데 사람들이 곧잘 나의 생각, 나의 신념, 나의 가치관, 나의 것이라고 하는 것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은 결코 자기의 생각이 아니라 남들의 생각, 즉 부모의 생각, 선생의 생각, 다른 친구들의 생각들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집단적으로 주입된 생각이나 가치관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페르조나"인 것이다.

그러므로 "페르조나"는 진정한 자신의 모습(진상, 개성)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가짜의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모습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모습(가면/가상)을 의미하는 것이다.


- 페르조나는 내가 나로서가 아니라 “남과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나”를 더 크게 생각하는 특징(주위의 일반적인 기대에 맞추어진 나)을 지닌다.


(3)한국문화와 페르조나

 (a)우리나라 말 가운데 '페르조나"에 해당되는 말은 '체면', '얼굴', '낯'과 같은 것이다.

어른의 체면, 남편의 체면, 교육자의 체면, 선생의 체면, 숙녀의 체면 등 그것은 모두 어떤 사회집단이 그 집단의 성원들에게 한결같이 요구하는 일정한 행동상의 규범이며 마치 의복과도 같은 것이다(ex. 옷차림과 사회적 평가).


 (b)또한 체면이라는 말은 '사명', '역할', '본분', '도리'라는 의미와 유사하다. 종교인의 사명, 교육자의 본분, 아들된 도리, 주부의 역할이라고 할 때 바로 이것은 한정된 집단적 직업상과 기대되는 규범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감히 뵐 낯이 없다", "얼굴을 들 수 없다", 어디다 낯을 들고 다니느냐" 등의 표현은 기대되는 사회적 역할 및 체면(페르조나)의 상실감을 표현하는 것이다.


(c)한국사회는 특히 페르조나가 강조되는 사회이며 개인이 싫든 좋든 그것과 동일시하도록(따르도록) 강요하거나 어느 틈엔가 동일시되어 있어 "진정으로 자신의 모습"을 잊게 만든다.

(예를 들어 "여자는 시집가서 아이나 낳을 일이다", "염색한 머리는 부도덕하다"라는 말이나 누구네 집 딸, 누구네 아들, 누구의 아내, 누구의 아버지, 어디 출신, 무슨 대학, 무슨 직위 등이 개인의 개성과 능력을 판단할 때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한국사회이다. ex. 사모님-아줌마 그리고 자동차)


(d)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페르조나와 같은 집단적 규범을 벗어나 조금이라고 개성을 발휘하려고 하면 "모난 돌이 정받는다"는 속담처럼 즉각 이런 행동을 위험시하고 아들된 도리, 며느리된 도리, 교사로서의 본분 등을 내세우고, 집단으로부터의 이탈을 "이기적, 독선적, 비인간적 몰인정" 등으로 규탄함으로써 사회규범의 와해를 막고 개인을 일정한 틀에서 못 벗어나게 한다.


(e)집단이 그 구성원들에게 요구하는 도리, 본분, 역할, 사회적 의무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그 집단에서는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해야 할 여러 유형을 말한다.

 

(4)페르조나의 제한성과 페르조나에 대한 지나친 동일시의 문제점

 (a)페르조나의 제한성

‘나(자아)’는 ‘페르조나’를 배우고 여러 종류의 '페르조나'를 바꾸어가면서 사회 속에 적응을 한다. 그러나 그 '페르조나 '는 어떤 특정한 사회집단에만 통용되는 화폐나 지폐와 같은 것으로서 그 집단 밖에서는 인정될 수 없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인간의 보편적 ·원초적 행동유형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b)페르조나와의 지나친 동일시의 문제점

 *페르조나는 사회생활을 위해서 삶을 위해서 중요한 역할(수단)을 하지만, 나(자아)가 자신의 내면(무의식)세계를 무시하고, 이런 집단정신에 지나치게 동일시하게 되면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내적인 정신세계와의 관계를 상실하게 된다. 다시 말해 자기 자신을 돌보지 못하게 되고 그 존재조차도 잊어버린다.


(c)페르조나와 지나친 동일시가 일어난 경우의 2가지 사례   

 

 

첫 번째 사례 - “융이 치료했던 한 중년여성환자의 갱년기 우울증”

 

융에 따르면 갱년기 우울증에는 인간정신으로 하여금 전체가 되고자 하는 무의식의 작용이 나(자아)의 의식의 외부세계에 대한 경직되고 일방적인 태도(페르조나)를 수정시키기 위해 우울증상을 일으키고, 그 결과 개인은 밖으로만 향해있던 나(자아)의 시선을 안(자기내부)으로 돌리도록 하는 목적이 담겨 있다.

갱년기 우울증에 걸리는 사람이 흔히 꼼꼼하고, 보수적이고, 지나치게 양심적이고 강박적이며, 규칙을 잘 지키는 성격의 사람이라는 점은 이런 설명을 뒷받침해준다. 비단 우울증만 아니라 다른 종류의 정신장애나 신체장애의 경우에도 이런 의미라 담겨있다.

융이 만났던 실제 한 여성의 실례이다.

이 여성은 결혼이후 30년 동안 성실하게 집안 일을 돌보아 온 주부로서 남편의 외도를 발견하고, 갑자기 히스테리성발작(예를 들면 신체화장애나 홧병)을 일으켜서 입원한 환자이다. 그 부인은 융에게 이렇게 물었다.

[나는 교회목사님이 하라는 대로 좋은 일을 도맡아 해왔습니다. 아이들 시중도 열심히 했고, 남편뒷바라지도 성실하게 해왔습니다. 누구에게나 친절했고, 모든 사람들이 나를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나쁜 짓을 한 내 남편은 뻔뻔스럽게 돌아다니고 있는데 왜 나는 이런 병에 걸려 병원에 들어와 있어야 하는 겁니까?]

융에 따르면 그녀의 말은 옳다. 그녀는 모범적인 주부이며 좋은 어머니였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녀는 집단사회가 좋다는 것만 따랐고, 그녀 자신의 마음을 소홀히 하였다. 어머니로서의 페르조나, 아내로서, 건전한 시민으로서의 페르조나에 자신의 자아를 완전히 일치시키며 사라온 것이다. 그리고 이제 가족관계의 장애나 그녀의 장애는 그녀로 하여금 그녀 자신을 찾도록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 이런 예는 융의 다음과 같은 말의 의미와 상통한다. "우울이나 고통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줄수 있는 가장 위대한 축복이다"

 

 

두 번째 사례 - 해리증상(우리가 일반적으로 이중인격자라고 부를 수 있게 되는 증상)

 

소위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가정적이지 못하고, 가정적인 사람이 사회적으로 출세하지 못한다는 속설과 유사한 예이다.

[직장에서는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활달하고 인정많은 사람으로 통하지만, 집에 돌아오면 밖에서의 모습과는 정반대로 흔히 무뚝뚝하고, 때로는 소심하고, 잔소리가 많고, 짜증내고 작은 일에 집착하는 소인이 되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여기서도 직장에서의 페르조나에 의해 행동을 하다가 집에 오면 자신도 모르게(무의식적으로) 정반대의 내적 인격에 의해 행동하게 되는 예이다(상보성의 원리).

 

   

위의 페르조나와의 지나친 동일시에 대한 2가지 예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무의식은 개인(자아)으로 하여금 외적 인격(페르조나)와 내적인격(내면정신세계)와의 균형을 이루게끔 한다. 이를 통해서 진정한 자신으로 살아가게끔 한다.

 

페르조나에 대한 건강한 태도 - 페르조나는 없애야 할 것이 아니라 “구별”되어야 할 것이다. 페르조나가 나(자아)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라는 것에 대한 자각은 페르조나를 사회생활에서 필요한 수단이라고 보고, 거기에 절대적인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 페르조나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cf. 도덕적 위기나 문화변화에 따른 가치관의 혼란 등). 페르조나와의 맹목적인 동일시가 문제되는 것이다. 즉, 사회적 역할, 의무, 도덕규범, 예의규범, 이런 것들을 없애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세상의 것을 맹신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2. 무의식의 의식화과정 중에서 처음 만나는 무의식 - 그림자(shadow)

 

1)그림자는 무엇인가? - 그림자의 의미

 

(1)나(자아)의 어두운 면, 즉 무의식적 측면에 있는 나의 분신

 - '그림자'는 의식에 가장 가까이 있는 무의식의 내용이다. 무의식의 의식화과정에서 제일 먼저 만나는 것이 그림자라고 부르는 심리적 내용들이다.


- 그림자란 무의식 속에 있는 열등한 성격이다. 그것은 나(자아)와 페르조나의 의식 반대편에 있는 무의식의 어두운 면이다. 다시 말해 자아로부터 배척되어 무의식에 억압된 성격측면이다

빛을 받는 부분이 있는 반면 어두운 면인 그림자에 대해 말하고 있다. 빛은 의식이고, 어두운면은 무의식이다.

- ‘등잔불 밑이 어둡다’는 말처럼 자아의식이 강하게 조명될수록 그림자의 어둠은 짙어진다. 다시 말해 “나는 다 잘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이 나를 못살게 군다”라고 생각하거나 주장할수록 나의 약점을 못 보게 된다. 무의식 속에는 나(자아)도 모르는 또 ‘하나의 내가(그림자)’ 있어 나로 모르게(무의식적으로) 나(자아)로 하여금 실수를 하게 해서 내가 주장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순된 행동을 하게 한다(ex. 반성과 부끄러움의 의미/ 겸손의 의미)

 -선한 나를 주장하면서 ‘좋은 것’만을 하고자 하고 자기는 옳다고만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자기 마음속의 검은 그림자를 의식하지 못하게 되고, 이로 인해 오히려 ‘나쁜 것’에 대한 유혹에 빠져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기 쉽다(cf. 무의식의 대상작용 - 위선자나 이중인격자)

(ex. 지킬박사와 하이드/ 흥부와 놀부/ 콩쥐와 팥쥐/가짜와 진짜 등)

외부세계만이 신뢰하는 것은 오만한 것이다. 너의 단점과 약점을 알아야 한다. 회개,회심을 통하여 자신을 봄으로 변화시키는 강조하게 된다. 부끄러움을 아는 것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것이다.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남을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나도 신이 아니기 때문에 잘 못을 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느낄 때 겸손할 수 있다.


2)그림자 자체가 부정적인 것인가? - 그림자의 본질과 의의

- 그림자는 본래부터 악하고 부정적이고 열등한 것은 아니다.

마치 어두운 창고에 내버려진 곡식이나 연장과 같다. 즉 의식될 기회를 잃어 미분화된 채(발달되지 못한 채)로 남아있는 원시적인 심리적 경향이나 특징들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그림자를 처음으로 의식할 때 미숙하고 열등하고 부도덕하다는 등 부정적인 인상을 주는 것들이어서 좀처럼 자아가 자신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심리적 내용들이다(ex. 부정적 특성의 투사).

그러나 그림자가 원래부터 그렇게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 버려져 있어 발달될 기회를 잃었을 뿐이며, 그것이 의식되어 햇볕을 보는 순간, 그 내용들은 곧 창조적이며 긍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cf. 그림자가 긍정적인 측면을 띠는 경우

이런 경우 스스로를 지나치게 열등하다고 생각하고, ‘좋은 것’은 남에게만 있다고 믿는다(ex. 지나친 겸손과 강한 시기심).


3)그림자는 어떻게 나타나며 알 수 있는가? - 그림자의 무의식적 투사(projection)와 감정적 집착

- 자아는 단지 투사된 대상에 강렬하게 감정적으로 집착하게 됨(긍정적인 매혹이나 감동의 느낌(사랑) 또는 극도의 혐오감이나 불쾌감(미움)으로써 어떤 무의식적 내용(그림자)가 투사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전혀 그런 사실을 모르는 것이 보통이다(ex. 티와 들보).


- 어떤 사람에게 투사되는가? : 그림자가 바로 자신의 자아의 열등한 측면이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투사될 때는 나와 비슷한 부류의, 나와 같은 성별의 대상에 투사되며, 거기서 그는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들”을 본다 . 아울러 그 대상들에 감정적으로 집착하나, 그 이유에 대해 적절한 설명을 하지 못한다.

(ex. 같은 성별의 친구사이, 형제간, 자매간, 직장동료사이, 상사와의 관계, 같은 성별의 가족사이, 예를 들면 시누이와 올케사이 등에서 "웬지 모르게(괜히) 그 사람만 보면 싫다, 거북하다, 긴장이 된다, 화가 난다"고 할 때 여기에는 그림자의 투사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 물론 "왜 싫은가"를 설명하려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정확한 이유여서라기보다는 대개 "공연히 잘난 체 하니까", "덮어놓고 저속하고 째째하니까", "뭔가 비굴하고 천해 보이니까", "미욱하고 돼지같이 욕심많아 보이니까", "영악스럽고 교만해서", "너무 쌀쌀맞아서" 하는 등 우선 "부정적인 감정이 앞선 다음에 합리화를 위해 붙여놓은 이유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ex. "똥묻은 개가 겨묻은 개 나무란다", "두손이 맞닿아야 소리가 난다", "끼리끼리 싸운다")


4)그림자와 꿈

무의식의 그림자는 꿈을 통해 나타나기도 하며, 이를 통해 의식의 일방성을 줄이고 자신의 본성(자기)에 맞게끔 인격적 균형을 추구하게 한다.

융의 꿈의 사례 중에서 그림자는 일차적으로 무의식의 상(像)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그 존재를 명확히 알려면 꿈의 해석을 통해야한다. 그림자의 상이 어떻게 꿈에 나타나며 어떤 방식으로 자아와 의식을 일방성을 줄이는지 다음 사례들을 살펴보자.

 

 

사례 1

 

미련한 편견을 고집하여 이성적인 토론에 완강하게 저항하는 것으로 유명한 부인.

(어느 날 그녀는 중요한사교모임에 참석하고 있는 꿈올 꾸었다. 여주인이 인사하며 말했다.“이렇게 와주시다니 너무나 반갑군요. 친한 분들이 모두 오셔서 당신을 기다리고 계십니다.”여주인은 그녀를 어떤 문 쪽으로 안내하여 그것을 열었다. 꿈 꾼 사람이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곳은 외양간이었다)

그 파티의 여주인은 일종의 ‘인도자’이다. 꿈꾼 사람으로 하여금 그녀의 옹고집을 소외양간이라는 충격적인 이미지로서 지적하고 가리켜준 존재이다. 무의식은 이렇게 해서 꿈을 꾼 사람이 자기를 더 잘 인식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여기서 꿈꾼 사람의 그림자는 ‘외양간’이었다. 그녀가 결코 자기속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융에 의하면 이 여자는 ‘그녀의 자부심을 그렇게도 직접적으로 강타한 꿈의 요점’을 처음에는 인정하려 하지 않았지만 결국 ‘자기가 자신에게 가한 핀잔’을 외면할 수 없어 그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례2

 

자신을 매우 높이 평가하고 고상한 척하는 사람.

그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이 고상한 척하는데 짜증을 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시궁창에서 구르는 술 취한 부랑자를 본 꿈]을 융에게 가져왔다. 그는 이 꿈에 대해 “인간이 저토록 타락할 수 있는 것을 보게 되다니 끔찍한 일이다!”라는 오만한 한마디를 뱉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 꿈은 자신의 장점을 과장하고 있는 그의 생각을 적어도 얼마간은 상쇄하려는 시도임에 틀림없다”고 융은 말했다. 다시 말해 꿈은 그가 지나치게 고상한 척하는 것이 그의 본성(자기)에서 너무나 벗어나있으므로 수정되어야함을 가리키고 있었다. 꿈은 의식의 일방성을 지양(어떤것을 막는것)하여 의식과 무의식이 합쳐진 전체성에 가까운 자세를 갖도록 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의식의 일방성을 지양하고 자기의 전체성을 추구하는 기능).

 


 

사례3

 

평소에 허영심 많고 불성실한 모사꾼으로 여기고 싫어했던 여자를 꿈에서 반복적으로 보게 된 한 여자.

[자신이 싫어하는 여자를 꿈속에서 마치 자매처럼 다정하게 대했다]. 꿈꾼 사람은 스스로 심리학에 대하여 지적 이해를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던 여자였고 자기의 인격에 대해 매우 명확한 확신을 갖고 있던 사람이었다. 이 꿈은 그녀에게 자신의 권력 콤플렉스와 그녀의 숨은 동기들을 가리켜주며 그녀 자신이 그 다른 여자와 닮은 무의식적인 성격의 ‘그늘 안’ 에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자 하였다고 융은 말한다. ‘그늘진 측면’, 즉 무의식의 그림를 자기의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 이 여성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녀는 언제나 이런 경우에 자신보다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였다(투사와 그림자 인식 및 수용의 어려움)

 

 

특정한 교수를 미워하였다. 심각하게 그를 비난 하였다. 권력콤플렉스가 투사해서 비난하였다. 언젠가 부총장으로 출마하겠다. 자신의 그림자 측면을 찾아가게 된다.


5)일상적인 삶에서 나타나는 그림자의 투사의 예

 - 그림자의 투사는 상호간의 불신과 반목, 증오와 갈등을 일으키는 계기가 된다. "그는 틀림없이 그런 나쁜 의도를 가지고 있을 거야"라는 터무니없는 선입견을 서로 상대방에게 가지고 있으면 그림자의 상호투사는 두 사람사이의 오해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들고,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투사된 그림자의 내용과 비슷한 행동을 보이면 "그것 봐, 내말이 틀림없잖아. 그는 그런 사람이야"라고 단정지음으로써 투사를 강화시킨다(사회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자기충족적 예언"이라고 한다).

 - 그림자의 투사는 직장동료, 선후배, 청소년친구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서 크던 작던 자주 일어난다. 형제자매는 물론 시누이 올케사이, 또는 세대간, 아버지와 아들, 어머니와 딸, 시어머니와 며느리 등 권위적 존재와의 관계에서도 그림자의 상호투사는 일어날 수 있다.

아들이 실제 이상으로 아버지를 무서워하고,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필요 이상으로 거북하게 느끼거나 어려워하고, 시누이 올케사이에도 서로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경우 우리는 그림자의 투사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사람들 사이의 "오해"는 항상 그림자의 무의식적 투사에 의해서 비롯된다.


(1)가족 중의 “미운오리새끼”

가족 중에 온 가족이 미워하는 구박둥이이며 '미운오리새끼'를 만들어 내는 것도 가족성원의 그림자의 투사에서 비롯된다. 이 경우에는 그림자의 개인적인 투사라기보다는 집단적인 투사의 결과이다

(가족구성원 중에서 독특한 성격을 지닌 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나머지 가족구성원들의 그림자가 무의식적으로 투사되고, 그가 그 역할을 무의식적으로 수용하게 되면 가족의 희생양이 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제 때문에 되는 일이 없어", "저 애는 도대체 누굴 닮아서 저 모양이지?" 등의 표현에 바로 가족그림자의 투사로 인한 '희생양'의 의미가 담겨 있다)


(2)부모-자녀, 부부간에 나타날 수 있는 그림자의 전이와 투사

  A. 부모-자녀관계

딸이 어머니의 그림자를 의식 또는 무의식 중에 자신의 삶 속에 받아들임으로써 어머니의 무의식의 그림자를 자극하는 경우가 있다. 기겁을 한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자기의 그림자를 보지 못하고 딸에게 투사하여 딸의 잘못된 행동만을 야단치거나 몹시 걱정하고 통제하려 든다. 그것은 둘 사이의 관계를 더욱 악화시키다가 결국 둘다 불행해진다.

그림자란 대개 모든 면에서 열등한(그래서 무의식에 억압하려 했던) 성격측면이므로 도덕적으로도 열등한 경향을 지니고 있다.

"도덕적으로 완벽하며 이성관계에 대해서도 매우 엄격하고 모든 면에서 금욕적인 생활을 지향"하는 어머니의 무의식에는 정반대로 "억압된 자유로운 사랑에의 욕구, 육체적 감각적 쾌락, 물질적 탐욕, 사치하고 싶은 마음" 등 여러특징을 가진 그림자가 우연히 딸에 의해 계승되어 실천에 옮겨지는 경우가 있다.

이를 발견한 어머니는 딸의 '방종한' 행동을 비난함으로써 더욱 그런 행동을 부채질하기도 한다. 이 경우에는 딸의 '부도덕한 행동'을 고치기 전에 어머니 자신의 '부도덕한' 그림자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이와 유사한 현상으로 자타가 공인하고 존경받는 교수나 성직자의 ‘망나니 아들’도 이와 같은 그림자의 무의식의 배열 또는 옮김의 결과일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청소년의 문제를 다룰 때 부모들의 의식뿐만 아니라 무의식의 그림자 또한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주제통각검사(TAT)의 12번 카드 -

딸의 어머니에 대한 무의식적 태도를 파악할 때 주로 사용한다>

 

B. 부부관계

 또한 그림자로 인해 사회적 관계에서 사회적으로 선한 사람이 악한 반려자를 거느리는 경우 가 있다. 그는 괜찮은 사람이지만 참모나 비서는 고약한 사람이라든가, 청렴결백한 가난한 학자

나 공무원 남편과 유능한 투기꾼 마누라와 같은 결합을 우리는 현실에서 드물지 않게 발견한다.


(3)그림자가 없는 사람, 그림자가 없는 가족

사람에게 그림자가 없다면 그는 "죽은 사람"이거나 "신"이다. 그림자(열등한 성격의 측면)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장담하거나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사회집단이 요구하는 선한 마음과 행위를 몸소 실천하고 있다고 굳게 믿으면서 온갖 사회악에 대하여 연민의 정을 가지거나 혹은 멸시하는 사람 - 그런 사람은 이른바 '그림자 없는 사람'이다.

스스로 '인격자'임을 자처하고 확신하며 인격자인 양 행동하는 사람이 있다. 이들 그림자가 없는 사람은 위선자이거나 이중인격자, 또는 각종 신경증을 일으킬 조건아래 있는 사람이다. 즉 무의식적 그림자에서 단절되어 의식의 분리가 일어나고 있다.

인간은 신이 아니므로 누구나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그림자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노이로제가 되지는 않는다. 자기에게 그림자 따위는 없다고 자처할 때 그림자가 자신 속에 있는데 보지 않으려 할 때 그것이 바로 신경증의 온상이 된다.


'그림자가 없는 사람'은 자기의 그림자를 무의식간에 크게는 사회, 작게는 가족 중의 누군가에게 옮겨놓는다.

(ex1. 부모가 아이에게 자신의 그림자를 옮기면 그 아이는 부모의 그림자가 되어 부모대신에 가족 내에서 악역을 맡는 속죄양의 역할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의식화나 인식되지 못한 부모의 그림자는 생물학적 의미로서가 아니라 심리학적으로 자식들에게 유전된다. 가정의 평화를 글자그대로 강조하여 모든 가족성원들이 겉으로는 평화롭게 협동하면서 무의식 속에 적개심을 억압하고 있는 가족의 가짜-협동성(pseudo-community)을 개인의 정신건강을 해치는 좋지 않은 가족관계로 알려져 있다).


(ex.2 대학에 가고 싶어 했으나 경제 등 여러가지 사정으로 대학에 갈 수 없었던 어머니가 공부를 못한, 영어를 못한 '한'을 오랫동안 억압하여 마음속에 품고 있을 때 가족 중의 누군가를 대상으로 삼아 '한풀이'의 희생물로 삼는다. 그리하여 결국 자식의 정신장애라는 댓가를 치르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한'의 이름으로 표현되는 그림자에는 공부 못한 것 말고도  여러가지가 있다. 가난에 대한 한, 빽없고 힘없는 것에 대한 한 - 부모가 스스로 그 한을 풀거나 수용하지 않을 경우, 부모의 한을 채워주려는 아이가 생기게 된다. 그것이 요행히도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지만 때때로 아이 자신의 길과는 다른 길을 택하게도 만든다. 그리하여 일확천금을 노리다 실패하거나, 사법고시를 쳐서 수없이 떨어져서 만성적인 신경쇠약증에 걸려 시달리는 사람이 생기게 된다.).


(4)집단그림자의 형성과 투사로 인한 갈등과 편견

:특별한 편견없이 순수한 동기에 의해 만들어진 집단도 일단 만들어지면 다른 집단의 그림자의 집단적 투사를 받아서 좋지 않은 위험한 존재가 될 수 있다. 집단활동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나, 그것이 편견에 의해 형성되거나 배타성, 독선을 바탕으로 이루어질 때 여기에는 언제나 집단적 그림자의 형성이 가능해지고 그 투사로 말미암은 집단간 불필요한 갈등이 생긴다.

 

cf. 그림자투사를 받기 쉬운 대상인 정치지도자나 유명인

- 집단은 지도자 개인의 인격을 보기 보다는 투사된 그들의 그림자를 보고 있다. 투사된 그림자의 부합되는 경우 신격화되나 그렇지 못할 때 집단은 실망과 충격을 받으며 때로는 무자비하게 그 권위자를 매장시켜 ‘나쁜 사람’으로 만들고 만다.

 

<중세독일에서의 마녀사냥 - 마녀는 대부분 정신질환자였는데 중세의 수도승들은 이들에게 마녀라는 낙인을 찍어 온갖 잔인한 방법으로 고문하고 불태워 죽였다. 마녀는 중세 서양인들의 무의식에 억압되었던 색정적 그림자였으며, 이들은 자신의 그림자를 이들에게 뒤집어 씌었다>


3. 그림자에 대한 바람직한 태도

 - 그림자 그 자체는 추악하고 열등하고 부정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살아있는 인간에게 ‘인간다움’이나 ‘인간의 실체성’(실수도 할 수있고, 잘못도 할 수 있는)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 그림자가 원래부터 그렇게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 버려져 있어 발달될 기회를 잃었을 뿐이며, 그것이 의식되어 햇볕을 보는 순간, 그 내용들은 곧 창조적이며 긍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바로 자신의 그림자를 인식하느냐 하지 못하느냐 하는 것이다”.


● 그러면 어떻게 해서 겉으로 보아 파괴적이고 위험하며, 부정적인 작용을 나타내는 그림자를 창조적으로 전환시킬 것인가?

 : 그 열쇠는 “자아의식이 무의식에 대하여 어느 만큼 관심을 가지고 그림자의 존재를 깨닫고자 노력하느냐”에 달려있다. 그것이 깨달아질 때 의식의 변화가 생기며 그림자의 부정적 작용이 해소된다. 우리가 우리의 마음속의 그림자들을 하나씩 소화시켜 나갈 때 우리의 의식은 그만큼 넓어지며 자기 자신의 통찰은 그만큼 깊어진다.


自己反省을 통해 다른 사람이나 대상에게 투사된 자신의 무의식적 그림자를 다시금 나(자아)에게 되돌려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작업을 하여 자신의 그림자가 깨달아질 때 의식의 변화가 생기고, 그 결과 그림자의 부정적인 작용은 해소되어, 자아의 삶을 돕는 건설적이고 창조적인 기능으로 바뀐다.

- 인간의 마음 속에 얼마나 무서운 그림자가 있을 수 있는가를 직시하는 것이 “심리학적인 의미에서의 성숙의 첫단계”라고 할 수 있다. 

출처 : 어둠 속에 갇힌 불꽃
글쓴이 : 정중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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