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설교/최일환목사

V-maker 2016. 2. 26. 00:51
내 한계를 극복하는 믿음
마가복음 2:1-12
2007년 3월 18일 주일낮 예배 최일환 목사 설교
1수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신 소문이 들린지라
2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에라도 용신할 수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저희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3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4무리를 인하여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의 누운 상을 달아내리니
5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6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의논하기를
7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참람하도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8저희가 속으로 이렇게 의논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의논하느냐
9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10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11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12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저희가 다 놀라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가로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설교: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누구나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어려운 일을 몇 번씩 당하게 됩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는 성도라고 해서 예외는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도에게는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놀라운 무기를 선물로 주셨는데 그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그렇다면 그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간 저는 본문을 근거로 우리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 믿음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고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는 것이 바로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가복음9장 23절에서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절망하고 낙심하는 것은 우리 성도가 취해야 할 자세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도우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고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무기인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보면 극도의 절망 가운데 있던 한 사람이 모든 불가능의 한계를 극복하고 승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사람은 중풍병자였습니다. 중풍병이란 병이 어떤 병입니까? 뇌출혈이나 뇌경색이 이루어져 뇌기능이 정상적인 역할을 못하게 되어 몸을 자기 맘대로 움직일 수 없는 병입니다. 현대 의학으로도 해결이 잘 안 되는 병입니다.
그런 병자가 자신과 친구들의 믿음으로 우리 예수님을 만나 깨끗이 치료 받고 일어나 침상을 들고 나가는 기적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한계를 극복하는 믿음이 여러분에게도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한계를 극복하는 참된 믿음이란 어떤 것일까요?

1. 참된 믿음은 내 생각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면서 고향땅 나사렛을 떠나 갈릴리 가버나움 해변으로 이사를 하셨습니다. (마4:13)
어느 날 모처럼 주님이 집에 계시는 그날 집 문 앞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병자들도 많았고 예수님의 가르침과 기적을 보고 들으려는 사람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1절 말씀을 다 같이 읽습니다.
“수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신 소문이 들린지라
이 평범하고 짧은 구절 속에 제 눈에 버쩍 띄는 구절이 있습니다.
“소문이 들린지라”입니다. 예수님이 집에 계신다는 소문이 들린 것입니다. 누구에게 그 소문이 들렸을까요? 그 소문은 가버나움 동네 전체 사람에게  들렸을 것이고 그 인근 동네 사람들에게도 들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소문이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있었을 터이나 그 소문에 예민하게 반응을 보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누구일까요?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이름 모를 한 중풍병자였습니다. 그에게는 그게 소문이 아니고 복음이었습니다. 똑같은 소리를 들어도 흘러 지나가면 소문이지만 내 귀에 들어와 박히면 그것은 복음이 됩니다. 

그 중풍병자는 자기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몸을 가졌고 그로 자기  뿐만 아니라 가족 식구들까지 힘들게 했고 그 친구들도 안타깝게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각종의 병을 치료비도 받지 않고 기적적으로 고친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아마도 이 중풍병자는 이 방법 저 방법 다 동원하여 치료해 보았을 것입니다. 이약 저약 다 먹어 보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도 해보지 않은 나름대로의 처방을 이야기 해줍니다. 아마도 지푸라기 잡는 심정인 이 환자는 다 해 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차도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중풍병자는 어느 정도 포기 단계에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라는 분은 그 보다 더한 문등병도 고치시고 어떤 병이든지 나오기만 하면 다 고친다는 소문이 들렸습니다. 그러니 그게 복음입니다.
그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그 소문을 전해 주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이 중풍병자는 혹시나 하는 작은 믿음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자신도 예수님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란다. 그가 메시야라면 내병을 고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은 믿음은 대단한 결과를 가져 왔습니다.
내 능력, 내 경험, 그리고 당대의 의술로는 불가능하나 예수님이라는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메시야이기에 고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이것이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믿음은 우리의 한계를 뛰어 넘습니다.
예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라는 생각, 그분은 우리 인간의 한계 속에 갇혀 있는 분이 아니라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전능자이시기에 그분에게는 불가능이 없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나는 연약하나 그분은 강하시고 나는 한계가 많으나 그분은 전능하시다는 의식의 변화가 있을 때 이것이 믿음입니다.

참 신앙은 우리의 옛 생각, 내 경험과 내 능력, 내지식의 울타리를 무너트려야 합니다. 그리고 내속의 고정관념을 깨야 합니다.
“다른 것은 다되어도 이것은 안 돼,” 라는 고정 관념, 이것을 버려야만 그때부터 믿음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은 태양이 지구를 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는 아무리 연구해도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주장했습니다. 그 당시 그들은 그 주장 때문에 많은 곤욕을 치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그 주장을 미친 소리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이 생각하던 그 고정 관념을 깨고 연구했습니다. 

이처럼 우리 성도도 오래 동안 가져오던 고정관념을 깨야 합니다.
“내 경험으로, 내가 아는 지식으로는 불가능 하다.”라고 검증된 사실일지라도 하나님의 진리와 맞지 않으면 그것을 접어야 합니다.
그것이 내 믿음의 성장 시키지 못하는, 그리고 내 삶의 복을 가져오는 일에 가장 무서운 범인임을 생각하고 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생각을 바꾸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것이 성경공부입니다. 진리를 배우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것이 내 생각을 바꾸고 내 한계를 무너트리는 도구가 됩니다. 그 때 내가 우물 안의 개구리인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중풍병자는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나는 나을 수 없다는 그 생각의 틀을 깼기에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2. 참된 믿음은 나를 넘어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중풍병자는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도 예수님께만 나아가면 살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 가고자 할지라도 혼자서는 도저히 갈 수 없는 능력의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는 홀로 일어나 걸을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얼마나 답답한 일입니까? 그러나 중풍병자는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믿음이 좋고 건강한  네 명의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들도 중풍병을 가지고 있는 자기 친구가 예수님께 나가면 고침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만약 그 친구들이 “말도 안 된다. 괜히 쓸데없는 짓 하지 말자” 하고 말했다면 그는 영원히 중풍병자로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그는 좋은 믿음의 친구들이 있었고 그 친구들의 도움을 받고 예수님께 나올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런 믿음이 있습니다.
내 믿음이 좋으면 내 주변에도 믿음 좋은 친구가 붙는다는 것입니다. 내 믿음이 시원찮으면 내 주변에는 늘 시원찮은 믿음의 사람들이 모여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늘 내 믿음을 잘 키워 가기를 축원합니다.
내가 내 믿음을 키우려면 믿음의 공동체 속에 나를 집어넣어야 합니다. 그게 바로 교회 공동체입니다. 내 시간을, 내 정성을, 내 마음을 교회 공동체 안에 집어넣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믿음이 커지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교회가 답답하고 성경대로 사는 것이 답답하다고 세상 공동체 속에 여러분을 집어 놓으면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모여들게 되고 결국 한계상황이 닥치면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내 주변에 믿음이 좋은 사람 몰려오기를 기다리지 마세요. 내 믿음을 키워 가면 자동으로 몰려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 믿음을 스스로 키우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면 어찌해야 합니까?
편승(便乘)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믿음의 공동체에 여러분을 집어넣고 함께 가시면, 편승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나는 힘이 없으나 지나가는 차에 올라타면 빨리 갈수 있습니다.
저 북한이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빨리 한국호(號)라는 비행기에 편승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50년 걸쳐 이룩한 열매를 함께 먹으며 몇 년 사이에 같이 갈 수 있습니다. 이 방송을 김정일이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내 믿음 내 혼자 키워 가려면 무척 힘이 듭니다. 그러기에 믿음 좋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동체 속에 빨리 올라타야 합니다. 성경 공부하는 팀에, 그리고 구역예배 팀에, 그리고 믿음좋은 사람들이 모이는 중보 기도 팀에 빨리 올라타 편승하면 그들과 함께 가게 되고 결국 함께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더 나아가 그들과 함께 내 한계를 극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교회 공동체에 실망하신 분이 계십니까?
그래서 교회를 멀리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교회를 안 나가면 지옥 갈 것 같고 그렇다고 가자니 꼴 보기 싫은 사람이 있고……. 그래도 나와야 합니다. 그 교회를 주님이 세우셨고 그 교회를 위해 피를 흘리셨고 그 교회를  지금도 사랑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교회 공동체 사람들이 겉보기에는 좀 그래도 예수를 구주로 믿어 죄 사함 받은 백성들이고 주님은 그들을 생명처럼 귀하게 사랑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누가 여러분을 도울 수 있나요?
여러분 주변에 누가 여러분의 한계상황에서 함께 갈수 있습니까? 세상 친구들입니까? 가족일까요? 부모님과 자식일까요? 그렇습니다. 일정한 기간 까지는 같이 갈수 있겠지요. 그러나 그들은 한계가 있습니다. 오래 못갑니다.
우리를 도울 자는 오직 주님이시고 오직 에벤에셀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여기까지 도우셨습니다. 그분이 교회를 세우시고 그 안에 믿음의 동역자들을 모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 도울 자를 붙여 주셨습니다.

조금만 생각하면 길이 보입니다.
하나님은 이상한 방법으로 우리를 도우십니다. 지금도 여러분을 여러분이 예상치 못했던 방법으로 도우시기를 원하십니다. 문제는 내가 그것을 바라보지 못하고 내 자신만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나는 돈이 없어, 나는 배운 것도 없어, 나는 안 돼!, 나는 못해!”
이것은 불신앙이고 이것은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믿음의 반대는 염려입니다. 그것은 마귀가 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나는 안 돼, 나는 못해” 하는 생각이 들 때 벗어나는 한 가지 방법, 우리를 형통케 하는 비밀을 말씀드릴까요?
그것은 “그래 나는 못하나 하나님께서는 나를 도우실 것이다.”라고 믿고 외치고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모든 방법이 다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불가능은 없습니다. 불치의 병도 없습니다.
돈이 필요하다면 하나님이 어떤 방법으로든 내실 것입니다.
기술이 필요하면 하나님께서 어떻게든 알게 하실 것입니다.
사람이 필요하면 만나게 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에게는 요나단이 있었고, 바울에게는 누가와 바나바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같은 사람이 있었고,
모세에게는 미리암과 아론이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홀로 싸우는 줄 알았지만 하나님은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는 자 칠천 명을 두셔서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참 믿음은 현재의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그분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3. 참된 믿음은 막힌 길을 여는 것입니다.
중풍병자는 생각도 바뀌었고 도와 줄 믿음의 동지도 생겼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장벽은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람 장애물이었습니다.
2절을 보세요.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에라도 용신할 수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저희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사람들이 너무 많아 예수님께 가까이 갈 수 없었습니다. 장애물 중에 가장 넘기 힘든 장애물은 사람 장애물입니다. 그들이 여러분의 길을 막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막습니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막습니다. 내 친구라고 여긴 사람, 내 동지라고 여긴 사람이 내 길을 막습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울 때 가장 큰 장애물은 무기가 아니었습니다. 사람이었습니다. 그것도 자기의 형들이었습니다.

본문의 그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모여든 병자들입니다. 서로 먼저 낫고자 모여들어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늦게 도착한 환자로서 도저히 주님 앞에 갈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중풍병자를 데려온 친구들은 거기서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그들도 이 중풍병 친구가 예수님 앞에 가기만 하면 낫는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았고 지붕 위로 올라가 지붕을 뜯고 그 중풍병자 침상을 예수님 앞에 내릴 구멍을 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가옥은 덤불이나 갈대를 덮거나 진흙을 이겨서 평평하게 만든 집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지붕에 올라가 그 지붕을 뜯습니다. 자기 집도 아닌 남의 집입니다. 잘못하면 왕창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먼지도 떨어질 것이고 설교시간인데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참으로 신기한 일은 그런 상황을 보고 계신 예수님이 화를 내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들의 믿음을 보셨다는 것입니다.
5절 보세요.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여러분이 그 자리에 계신 예수님이었다면 어찌 행동했을까요? 그들의 무례함과 재물 손상에 대해 격분하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왜요? 그들의 믿음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아무나 그렇게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 이 환자를 데려가면 반드시 주님은 이 중풍병자를 낫게 하실 것이라는 확신, 그 믿음이 그들의 무례를 덮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이란 길이 막혔을 때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길이 막혔으면 위로 올라가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세요.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는데 꼭 칼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물매 돌로도 되는 것입니다.
혹은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는데 꼭 배가 있어야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팡이 하나면 충분했습니다.
혹은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는데 꼭 성을 부술 대포가 있어야 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혹은 38년 된 베데스다 연못에 있던 환자가 꼭 그 연못에 들어가야만 낫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포도주를 꼭 포도로만 만들지 않았습니다. 물로도 만들었습니다.

길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자신의 방법으로 안 된다고 절망하지 마세요.
속히 내 방법을 고집하는 사고에서 벗어야 합니다.
이 중풍병자와 그 친구들은 믿음이라는 것을 가졌기에 없는 길을 만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11절“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치료해 주셨습니다.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5절을 보니까 주님께서는 그의 병만이 아니라 그의 죄를 사하심으로 영혼까지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12절을 보니까 하나님께 크게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기독교는 기적의 종교입니다. 성 어거스틴은 “기적이 없다면 나는 크리스천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미국의 프린스턴 여론조사 연구협회가 미국인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는데 미국인 84%가 기적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은 사람을 평가할 때 다면(多面)평가(評價)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을 뽑을 때도 어느 하나만 보지 않고 전체를 보고 평가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은 어느 하나를 보고 전체를 평가합니다.
특별히 부정적인 면 하나가 그 사람 전체를 평가하는 것이 인간 사회의 평가입니다.
“그 사람 서울대 출신이야. 그 사람 미스코리아야, 그 사람 대단한 집안사람이야, 그런데 그 사람 어릴 때부터 손버릇이 나쁘데”하면 그 하나로 다른 모든 것이 다 평가절하 됩니다. 이것이 인간의 평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다른 것은 다 부족하고 엄청난 허물이 있고 형편없어도 오직 하나를 보십니다. 그것은 그의 영혼입니다. 그리고 그 영혼속의 믿음입니다.

그 믿음 하나 때문에 우리는 주님 앞에 쓰임 받습니다.
창녀 막달라 마리아를 사람으로 대하신 예수님,
세리 마태를 제자로 삼으신 예수님,
세 번씩이나 주님을 부인한 베드로를 찾아오셔서 세 번씩 사랑하느냐 물으심으로 상처를 치유하여 쓰신 주님입니다. 그러기에 그 믿음이라는 주님 앞에 나오면 우리의 최악은 다 감추어지고 결국 사라집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떤 상황에 계십니까? 최악입니까? 중풍병자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입니까?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계시니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여러분의 환경과 한계를 바꾸어 놓을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놀라운 선물입니다.
그 믿음으로 생각을 바꾸시고 그 믿음으로 나를 넘어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길을 만들어 주님께 나가면 하나님은 우리의 한계를 넘어 서게 만들어 줍니다.
여러분의 한계는 무엇입니까? 그것을 무엇으로 넘을 것입니까?

기도합시다. 
출처 : 최일환 목사(장안중앙교회)설교 카페
글쓴이 : 최일환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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