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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장작 2010. 3. 10. 19:40

  유재석은 어떻게 케릭터를 부여하는 놀라운 신공을 발휘할 수 있나요?

  지난 3월 6일 방송된 『무한도전』외박 특집<오 마이 텐트>를 보다 아주 기막힌 장면을 보게 됐습니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보셨는지 몰라도.

  유재석 등 무한도전팀은 '1일 피싱라이센스'를 구입해서 핑거 레이크(finger lake)란 강에 도착해 베이스캠프를 설치합니다. 알래스카의 강은 온통 60cm이상의 얼음으로 덮혀 있었습니다. 강가에서 200m 안쪽에서 들어가 얼음낚시를 해볼 요량으로 핸들링으로 구멍을 뚫고 낚시줄을 드리웁니다. [이때 미끼는 새우네요.]

  이 때 정형돈이 [추를 두 개 씩이나 단 채] 얼음 구멍 속에 낚시줄을 내린 후, 릴을 들어올렸다 내렸다 들어올렸다 내렸다 합니다. 저는 낚시 전문가가 아니라 왜 그러는지는 몰라도. 다만 아마 미끼가 살아있는 것처럼 위 아래로 움직이게 해서 물고기를 유인할 생각이었나 봅니다.

   

사실. 저는 작년 11월에 친한 지인 4명과 함께 서해안으로 배낚시를 갔습니다. 별다른 낚시가 아니라 쭈꾸미와 갑오징어 낚시입니다. 임대한 배의 선장이 가까운 바다로 배를 몰고나가 포인트를 잡아 정박하면 바늘이 잔뜩 달린 가짜 미끼를 단 낚시줄을 바닥까지 내린 후 규칙적으로 릴대를 들었다 내렸다 하는 겁니다. 그러다가 묵직한 손맛이 느껴지면 재빨리 낚시대를 올리며 릴을 감습니다. 가짜 물고기 미끼에는 쭈구미가 달라 붙은 채 딸려 올라오는 겁니다. 한 마리에서 많을 땐 두세 마리까지 붙어 올라오고 또 손바닥만한 갑오징어도 걸려 올라오는데, 하여튼 낚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잡히는 게 뜸해지면 선장이 "낚시대 올리세요." 합니다. 다시 새로운 포인트로 배를 이동한 후 "낚시대 내리세요."하는 겁니다. 한 네 시간 잡으니 큰 아이스 박스에 쭈꾸미와 갑오징어가 가득찼습니다. 초보자는 이런 낚시가 참 재밌습니다.

 

  하여튼 정형돈이 릴(reel)을 올렸다 내렸다 하는 걸 보니 저는 문득 그런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유재석은 그런 정형돈을 보고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유재석은 릴을 올렸다 내렸다 하는 정형돈을 한동안 웃으며 가만히 지켜보더니 입을 열었습니다.

 

"형돈아. 너. 물속에다 연날리는 줄 알았어."

 

  그 순간 저는 진짜 감탄했네요. 어떻게 이런 생각을 다 했을까?

  유재석은 푸른 하늘 높이 연을 드리우고 실을 감았다 풀었다 하는 얼레질을 떠올렸던 겁니다. 여러분 혹시 물 속에다 연날려본 분 계신가요? 이 놀라운 상상력과 기발함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그래서 그는 아무것도 아닌 순간을 특별한 순간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예능프로나 토크쇼에 처음 출현하는 사람도 유재석만 있으면 그는 특별한 색깔을 지닌 사람으로 탈바꿈합니다. 때로는 이것이 케릭터를 부여하는 힘으로 작용합니다. 출연자의 말투하나 눈짓하나, 심지어 침묵하는 순간에도 유재석은 특별함을 발견하고 그를 부각시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유재석이 진행하는 프로를 보면 대부분 소외받는 사람이 없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방송을 좋아합니다.

 

과연 누가 <물 속에다 연 날린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요? 시인의 시어(詩語)만큼이나 멋진 말입니다. 유재석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 평생 내 머리 속에서 이런 구절을 떠올릴 수 없었을 겁니다. 너무 기막힌 생각이라 나는 자꾸 이 생각을 하게 되는 겁니다.

 

 

또 이런 생각도 해 봅니다. [뛰어난 세일즈맨은 북극에 냉장고를 판다.] 국민 MC 유재석은 물 속에다 연을 날릴 수 있다. 그의 유쾌한 상상이 가는 만큼 우리의 즐거움도 한계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