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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장작 2010. 3. 26. 01:21

  2010년 1월 6일 《추노》의 첫방송이 있었다. 총 24부의 시간을 숨가쁘게 내달아 3월 25일 드디어 주옥같은 대서사시를 마쳤다.

  그 첫방송을 기억하는 분들이라면 아마 《추노》가 황철웅의 나레이션[서술]으로 시작됐다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병자호란 후 청에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는 8년 만에 돌아와 한 달 만에 의문의 병을 얻어 숨을 거둔다.소현세자 사후 세자빈 강빈은 역모에 연루돼 사약을 받고, 제주도로 유배간 세 아들 중 둘은 병으로 사망, 막내 석견만 남는다. 독살로 의심되던 소현세자의 급사는 정치 세력간의 피비린내 나는 권력투쟁으로 이어졌다. 민간에서는 이미 백성의 절반이 노비 신세로 전락했다. 차별과 학대를 견디다 못해 도망하는 노비들이 속출하였고, 이러한 도망노비들을 추적하는 현상금 사냥꾼들 또한 성행하였으니, 이들을 추노꾼이라 불렀다.

  

  이 이야기를 전하는 황철웅의 목소리에는 아무런 감정이 담겨 있지 않았다. 마치 담담히 반추하며 서술한다는 느낌이었다.

  왜 그가, 그 누구도 아닌 그가 《추노》의 서장을 여는 나레이션을 맡았을까. 

 

  왜 그인가?

  황철웅이《추노》란 극에서 움직이는 동기는 사실 극히 개인적인 것이다. 그 어느 것이 개인적인 문제가 아닌 것이 있을까. 단지 그 뜻하는 바가 다수가 동참함으로써 대의가 될 수 있느냐, 개인사를 고집하는 문제일 뿐인가 하는 것이다. 

 

너는 항상 네가 나보다 낫다고 생각했겠지. 그게 바로 내가 지금 너를 죽이려는 이유다.

 

  그의 문제는 권력에 대한 욕망도 아니며 뚜렷한 대의가 있어서도 아니다.

  항상 송태하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2인자로의 열등감과 질투를 극복하기 위함이다. 송태하를 무너뜨리고 죽일 기회가 오자 거침없이 그 목적을 향해 질주하는 것 뿐이다. 살인은 그 과정에서 걸리적거리는 것들을 모두 베어넘기는 수단일 뿐이다.

 

   그에겐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나 만들고자 하는 것도 없다. 양반과 상놈이 구분이 없는 세상이니 그런 것은 상관없다. 누구처럼 마음대로 사랑할 수 있게 놔두는 세상에 대한 기대도 없다. 모두가 한 가지의 대의나 혹은 이타적인 면을 가지고 《추노》란 떠들썩한 난장판에 동참하지만 황철웅은 그러지 못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심정적으로 더욱더 난장에서 동떨어지는 인물이다. 그가 《추노》에서 벌이는 모든 살인에 직접적인 집행자임에도 말이다.

 

  따라서 업복이가 쏜 총에 이경식이 죽은 모습을 볼 때도 황철웅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게 된다. 그가 결국 추적하는 대상은 송태하이지 그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송태하가 빚어내는 그림자의 일부일 뿐이다. 황철웅은《추노》가 벌이는 모든 난장에서 이방인이다. 황철웅은 깊이 관여하는 듯하나 사실상은 그 밖에 있는 쓸쓸한 존재이다.

 

  그가 끝까지 살아남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최후의 순간, 변절자 조선비도  죽고 소위 그분으로 불리던 자도 죽고 음모의 주체였던 좌의정 이경식도 업복이 쏜 총에 죽는다. 주인공 이대길도 죽고 그 이듬해 《추노》의 거대한 뒷배였던 인조까지 죽는다. 그럼에도 황철웅은 끝까지 살아남아《추노》를 증언한다. 가장 많은 살인의 실행 주체였음에도 말이다.

 

  대의적인 면으로 봤을 때나 모두가 꿈을 꾸고 있었다는 면에서 봤을 때 오직 황철웅 그 만은 그 밖에서 겉돌았다.

  그가 마지막 순간 이 모든 것을 되돌아보고 자각하는 모습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이대길이 송태하를 도와 자꾸 자신을 훼방하는 그 마지막 순간 자신의 외골수적인 삶이 정지한다.

 

  『도대체 이렇게 까지 하는 이유가 뭐냐?』

  『바꾼데. 이 지랄같은 세상.』

  『너까지 날 비참하게 만드는구나.』

  『세상 원망해도 사람은 원망하지 말아야지.  우리같은 놈들만 없어도 세상 참 살맛날거야.』

 

    황철웅은 그 순간, 모두가 어떤 대승적인 목적을 가지고 움직일 때 자신만이 극히 개인적인 차원에 천착해 왔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것이 부질없다고 느끼는 순간 이 모든 《추노》의 난장은 또한 자신과 무관한 것이 된다.

 

  『다 끝났다. 돌아가자.』

 

  비로소 그는 송태하를 쫓으려는 수하들을 제지할 수 있게 된다. 

  그는 이경식의 딸인 이선영을 찾아가 그 손을 잡고 서럽게 운다. 그동안 자신이 저질렀던 모든 죄업과 죽임에 대한 통곡인지도 모른다.

 

  그는 추노의 마지막 장에서 다시 모든 것을 닫는 나레이션을 한다.

  어쩌면 이 장엄한 한편의 서사시는 모두 그의 기억 속에서 떠올려지는《추노》일지도 모른다.

  죽는 자는 모두 죽고 살아남은 자들은 모두 역사의 뒤로 숨은 마당에, 이 《추노》에 대한 기억을 세상에 전할 수 있는 현실적 인물이 황철웅 뿐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가 종극에 남기는 나레이션은 의미심장하다.

 

이듬해인 1649년 여름, 인조는 재위 27년  만에 승하한다. 세자 봉림이 왕을 이으니 이가 바로 효종이다. 효종 6년인 1655년을 끝으로 도망노비를 쫓는 노비추적은 중지되었고 다음해 석견은 귀양에서 풀려났다.

 

  《추노》의 문제였던 추노, 석견, 인조의 문제가 끝이 난다.

  그것을 말하는황철웅의 음성은 《추노》의 서문을 열었던 그 시점에서 그대로 연결되고 있다. 한없이 담담하고 무심하며 쓸쓸하다. 

 

 《추노》의 처음과 끝에 그가 있었다.

  그는 떠들썩한 《추노》판의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고, 결국 모든 것을 담담하게 내려다보고 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어쩌면 그는《추노》를 우리에게 전해주는 진짜 숨은 주인공인지도 모른다.

 

 

 

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