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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장작 2010. 3. 29. 23:17

 

  <지난 2008년 10월 2일 자살로 생을 마감한 故최진실씨의 동생 최진영씨가 약 1년 6개월 만인 오늘 3월 29일 또다시 자살로써 생을 마감하는 충격을 주었다.>

 

  소식을 듣는 마음이 답답합니다.

 

  삶이 오죽이나 힘겨우면 죽을 결심을 했을까요. 워낙 각별했던 누나의 자살 이후 끝내 그 상처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럴 때마다 필시 몇 번이고 마음을 부여잡고 살리라 다짐도 했겠지요. 그럼에도 끝내 자살할 수 밖에 없었던 삶에 대한 피로와 사람에 대한 시니컬(cynical)한 실망이 온통 심장을 짓눌렀나 봅니다. .

 

'우울(depression)'

"지친다...사람이란 것에 지치고, 살아온 것들에 지치고,...이런 나 때문에 지친다..."

   <당신이 3월 16일 미니홈피에 남긴 짤막한 글입니다>

 

  당신은 더 이상 이 삶에 발견할 희망이 없었던 싶습니다.  당신이 그동안 겪었던 일들을 보면 참 지칠만도 합니다. 연기자로 데뷔한 후 한 때 가수이기도 했고, 슬럼프에 빠지기도 하고 다시 재기하기도 했죠. 누나의 자살과 조성민과의 양육권 분쟁,  故최진실의 유골도난 사건을 감당하며 마지막 2년은 더욱 힘겨웠으리라 여겨집니다. 누나의 후광을 고마와했듯이 이젠 사람들의 동정어린 시선을 감당하며 따갑기도 했을 겁니다.

  누나가 남긴 두 아이, 환희와 준희를 생각하면 억지로라도 힘을 내고 삶에 대한 희망을 일으켜야 했겠죠. 슬픔일랑 일에 파묻혀 지내는 중에 잊고 싶었을 겁니다 .

 

 

"연기로 활동을 재기하겠다. 드라마 봄 개편이 끝나 가을쯤 작품에 들어가지 않을까 싶다. 조카들과 같이 지내다보니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촌이 원래 뭘 하던 사람인지도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고 싶다. 또 내가 TV에 나오면 아이들이 좋아한다."

 <당신이 2010년 3월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입니다>

 

  당신의 이런 희망은 그러나 연기를 하고 싶어도 일이 없어 더욱 슬프고 괴로운 현실에서 였습니다.

 

 

  당신 가시니 편합니까? 그렇게 가시니 모든 속박에서 벗어난 듯이 이제 홀가분합니까?

  기왕 가신 바에야 모든 것을 잊고 편히 쉬십시요. 살아있는 자들의 슬픔이나 어떤 비평들일랑 상관치 마십시요.

 

  <나는 당신을 욕하고 싶다. >

 

  요즘 너무도 많은 연예인들의 자살이 줄을 잇기 때문이다. 잊을 만하면 터지고 잊혀질 만하며 다시 일어나고 있다.

 

2005년 영화배우 이은주 자살.  2007년 가수 유니와 탤런트 정다빈 자살.  2008년 배우 안재환과 탤런트 최진실 자살. 2009년 탤런트 장자연 자살. 그리고 2010년 당신의 자살.

 

  심각한 사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번 물꼬가 터져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듯하다.

  <베르테르 효과>란 말이 있다. 유명인의 자살이 있으면 유사한 방식으로 잇달아 자살이 일어나는 현상을 말한다. 연예계에서는 실제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연예인들은 엄밀히 말해 공인의 신분이다. 이들이 자살하면 온통 언론매체들에 도배가 된다. 이 비극적인 삶의 종극에 온 국민이 노출되고 있다. 수 많은 동료 연예인들이 문상을 가서 죽음을 애도하고 국민들 또한 추모의 분위기이다. 살아생전 못다준 정과 안타까운 사랑을 보내주고 삶과 죽음을 불쌍히 여겨주며 죽어서 행복하길 기원해 준다. 이런 마당이 한동안 온통 떠들썩하게 벌어진다.

 

  연예인들은 매해 되풀이되는 이런 현상을 보면서 무의식적으로 무슨 생각을 마음에 담게 될까. 삶이 힘겹거나 일이 뜻대로 안 되고 자신이 잊혀진다고 느낄 때 무엇을 떠올리게 될까. 혹시 자살로써 자신 또한 최후를 장식하자는 생각은 안 할까. 만분의 1일 망정. 

  일반 대중들에게 또한 연예인의 자살이 던지는 파급효과는 상상할 수 없이 심각한 일이다. 죽음이 이렇게 쉽다는 것을 던져준다. 매년 되풀이 되는 이 악순환은 점점 자살의 심각함을 인지하지 못하게 만든다. 이젠 누구라도 삶이 힘겨울 땐 알게 모르게 그의 의식과 무의식에 기억된 자살의 기억에 좀 더 쉽게 굴복한 가능성이 있게 된다.

 

  <부모가 죽으면 땅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마음에 묻는다>

  마음이란 영원한 존재이다.

  이 말은 자식은 부모의 죽음을 세월과 함께 잊을 수 있으되 부모는 자식이 죽으면 살아서도 죽어서도 영원히 잊지 못한다는 말이다. 자식을 먼저 보내면 부모는 스스로 죄인처럼 여기고 남은 세월 고개를 들지 못한다. 최진실과 최진영의 연이은 자살은 확실히 너무하다. 천 날을 통곡해도 그 부모가 느낄 배신감과 상실감은 줄어들 것 같지 않다.  

   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생각하지 않았는가 절실히 묻고 싶은 심정이다.

   환희와 준희가 겪게될 평생의 상처는 또 어떠한가. 엄마나 삼촌이나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 점을 생각하면 또 참을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결국은 죽는 존재이다. 죽음이란 분명 불쌍하고 슬픈 것이다. 그럼에도 자살은 설령 동정은 받을 수 있을 지라도 사실상은 참을 수 없는 폭력 행위라고 본다. 살아남은 자에 대한 삶의 훼방이다.

  나는 분명히 故최진영의 죽음을 마냥 추도할 수 만은 없다. 

  삶이란 한번 태어나기도 힘든 것이다. 삶은 살아야 할 때 사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故 최진영님의 영전에 삼가 조의를 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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