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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장작 2010. 3. 1. 11:37

  이 글을 쓰는 목적은 오직 박재범ㆍ그 팬들이 보여주는 안타까운 사랑과 보듬기의 정성 때문이다. 대개 어떤 이의 팬이 되는 이라면 반드시 겪게 되는 고초가 있다. 그것은 <사랑과 두려움ㆍ저항>이다. 이것은 어쩌면 가장 강렬한 감정이며 반드시 경험해봐야 할 순간이다. 설령 이것이 영원히 갈 순 없을지라도 그 인간적 정리는 폭발할 것 같은 옹호와 분노의 감정을 동시에 동반한다. 이것은 곧 정치와 같다.

  좋아하는 대상의 명예를 훼손하고 그의 지위를 추락시키고자 하는 모든 세상의 적ㆍ불순한 시도에 서슴지 않고 싸우는 것. 팬들의 그런 방식은 <옹호ㆍ호소ㆍ청원ㆍ저항> 등으로 이루어진다. 이것이 곧 <사랑ㆍ두려움ㆍ저항>이란 속성 안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과정이다. 소속사ㆍ기자ㆍ안티ㆍ고의적 악플러에 저항하고 심지어 정부와도 싸운다. 누구도 이 격렬한 심성을 꺾어서는 안 된다. 혹자는 <~빠>니 뭐니 하며 비웃고 비난하지만 이는 잘못된 일이다. 왜냐하면 그 팬층이 아직 젊은 세대라면 젊은 세대일수록 이것이 곧 그들이 배우는 최초의 정치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각자의 팬들은 그들이 좋아하는 대상을 그 방면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고 싶어 한다. 또 설령 최고가 아니라도 좋아하는 이가 그 타고난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그 위치에서 혹 추락할까봐 두려워한다. 만일 그 대상이 영영 그 자라에서 사라진다면 팬들이 겪는 상실감과 아픔은 얼마나 클 것인가.

  어쩌면 빛과 그늘이 명멸하는 이 세상의 쏜살같은 흐름 속에 점차 팬들이 사랑했던 그 사랑도 퇴색하고 혹은 분노했던 그 분노의 강렬함도 동기 부여할 만한 새로운 존재로 대체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어떤 분의 돌아가심에 대해 불현듯 때때로 하염없이 아쉬운 정이 떠오르는 것처럼, 그 깊은 마음속에서 사랑했던 대상에 대한 그리움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영웅이 부재하는 시대에 각자의 마음속에 영웅을 그리워하고 싶은 뜨거운 피 때문이다. 모든 팬들은 이 과정에서 누구를 어떻게 좋아해야 하는지 알게 되며, 어떻게 그 적이 되는 모든 것들에 저항해야 하는지 배워나가게 된다. 젊은 세대는 이 과정을 통해 너무도 빨리 정치와 참여의 중요성을 깨우친다. 한때는 정부-그 정부의 실책에 대한 저항은 대학교ㆍ소위 운동권이라는 이들의 사상교육을 통해, 그들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요즘은 <촛불시위>등을 통해 보더라도 그 보다 더 어린 세대들의 참여가 더 적극적으로 이루어진다. 나는 이것이 모든 팬들이 이미 뭉치고 저항하고 옹호하는 힘을 배웠기 때문이라고 본다. 젊은 세대의 이 사랑과 두려움ㆍ저항은 늙은 정치인과 구세대들의 사욕에 따라 반응하는 정치색과는 그 격을 달리한다. 이 젊은 세대들의 팬心은 늙은 세대보다 더욱 순수하고 강렬하다. 

 

  나는 그 팬들이 박재범에게 보내는 하염없는 응원과 사랑 또 분노와 저항하는 모습을 보면 그들이 느낄 하염없는 두려움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나 또한 어떤 이의 팬으로서 때때로 두려움과 고통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들은 너무 이른 때에 박재범을 잃는 두려움과 싸우고 있다. 오래도록 그들은 싸우고 있다. 그들의 사랑과 그 열정에 한편 부러움을 느끼는 것이다. 이를 비난하는 자가 있다면 나는 그가 그 누군가를 사랑해보지 않은 자라고 말하고 싶다. 만일 사랑해보고도 그런다면 그는 너무 이기적이고 차가운 사람이라 말하고 싶다.


  【추신】나는 박재범의 잘못이니 뭐니 그런 것은 결코 언급하고 싶지 않다. 이 글에서 내가 언급하고 싶은 것은 그 팬들의 사랑과 열정이다. 또 불타오르는 젊은 피가 피워 올리는 저항의 힘이다. 나는 박재범에 관한 문제가 처음 불거졌을 때 JYP가 자기 그늘에 있던 한 사람의 운명을 보듬어주지 못하고 내쳤던 그 냉정한 사업가적 마인드에 반대한다. 나는 외람되지만 조심스레 말해주고 싶은 것이 하나 있다. 혹시라도 그 팬들이 끝내 박재범을 영원히 상실하는 현실적 순간에 직면하더라도[왜냐하면 때때로 우리는 기득권과 조그만 권력이라도 지닌 자들의 고집을 이기지 못할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너무 아파하지 않길 바란다. 진심으로. 이런 성급한 염려를 전하는 것이 혹 내 분수에 어긋나는 것이 아닌지 염려스러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