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雅田 2018. 3. 13. 17:07




길이로 보면 한반도 전체에서 네 번째(압록강, 두만강, 낙동강, 한강 순), 대한민국(남한) 한정으로도 두 번째로 길다. 유량으로 보면 한반도에서 가장 많고 유역면적(강줄기가 펼쳐진 면적)으로 봐도 한반도에서 가장 넓은[1][2] 매우 크고 아름다운 이다. 당연히 국가 1급 하천.

북한강(강원도 회양군)과 남한강(강원도 태백시)이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두물머리)에서 만나 서울특별시를 통과하여 김포 반도에서 황해와 만나는 대한민국의 강. (이때 거의 하구에서 임진강과 만난다.)[3] 북한강과 남한강의 폭이나 유역이 비등하지만 강의 원류는 언제까지나 가장 긴 흐름을 기준으로 하므로 일단 한강의 원류는 남한강이다. 한강 원류도 남한강의 원류로 잡는다. 이 때문에 발원지는 남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가 된다. (강원도 태백시 창죽동 소재)

수도권 지역 중에 한강 수계에서 미묘하게 벗어난 곳으로, 서해안 자체 유역인 인천광역시(단, 한강의 지류인 굴포천 유역인 부평구[4], 계양구는 제외)[5], 시흥시(한강-안양천의 지류인 목감천 유역인 과림동과 목감동 일부 제외), 안산시, 화성시 서부 등과, 안성천 유역인 수원시, 화성시 동부, 평택시, 안성시, 용인시 기흥구(한강-탄천 유역인 수지구 대부분[6], 기흥구 구 구성읍 일대[7] 제외) 등 경기도 서남부 지역 등이 있다.

한강 수계지역 중에서도 서울 근교인 부천시, 과천시, 광명시, 안양시, 군포시, 의왕시, 성남시, 용인시, 하남시, 구리시, 남양주시, 고양시, 의정부시, 양주시, 김포시는 수도권 중에서도 서울의 베드타운 성격이 상당히 강한 편이다.

안양천, 중랑천, 탄천 등의 다양한 지류가 있으며, 서울특별시 관할 한강변에 공원을 지은 한강시민공원이 유명하다.

한강 본류는 구간에 따라서 명칭이 달라진다. 경기도 양평군에서 충청북도 단양군에 이르는 구간은 남한강, 강원도 영월군의 구간은 동강, 강원도 정선군의 구간은 조양강, 그보다 상류의 태백시 구간은 골지천 등으로 불린다.

한강의 서울 통과 구간은 김포시에 설치된 신곡 수중보에 의해 항상 물이 찬 상태의 수위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된다. (이 때의 수위를 저수위, 물이 찬 구간을 저수로라고 한다. 저(貯)가 아니라 저(低)다.) 이는 미관상의 목적 외에도 유람선을 띄우기 위한 목적도 있다. 사실 한강종합개발사업 이후 오랜 기간 동안 골재 채취가 이루어져 한강 바닥이 워낙 깊게 파헤쳐진 상태이다 보니 수중보가 없어도 유람선을 띄우기 위한 수심이 확보되기는 한다. 하지만 유람선의 정박 등을 위해서는, 선착장 부근을 추가로 준설하지 않는 이상 아직 수중보가 필요하다고 한다.

한강이라는 명칭의 유래는 우리말에서 '큰 물줄기'를 의미하는 '한가람'에서 비롯하였다. '한'이란, 큰, 정확한, 한창인, 같은을 뜻하는 접두사이며, 가람은 강의 옛 말이다. 즉 '큰 강'이라는 뜻이다. 한강은 삼국시대 초기까지는 '대수(帶水)'[8]라 불리었고, 광개토대왕릉비에는 '아리수(阿利水)'라 기록되어 있다. 백제에서는 '욱리하(郁利河)'라 불렀다. 《삼국사기》 지리지에는 '한산하(漢山河)' 또는 '북독(北瀆)'이라 표기한 기록이 남아 있다. 한강이라는 명칭이 붙게 된 시점은 백제가 중국의 동진과 교류하기 시작한 즈음인데, 그 때부터 ‘한수(漢水)’ 또는 '한강(漢江)'이라 불렀다 전해진다.

삼국시대의 전성기는 누가 이 강의 중 ~ 하류를 차지했느냐에 따라 결정됐다.(단 근초고왕 이전 시기나 삼국시대 말기에는 그렇게 구분하지는 않는 게 대부분). 한강 유역의 농업 생산력과 수운으로 인한 교통로 확보, 중국과의 해상 교역로 확보 등 한강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 매우 컸기 때문이다. 대동강, 금강, 영산강, 낙동강 등 한반도를 흐르는 주요 하천과 서남해 해운을 한꺼번에 묶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 바로 한강 유역이었다. 수운이 중심이었던 조선시대까지 경기/충청/전라의 물물이 한양으로 유입되는 중요한 통로이기도 했다.

수도를 지나는 큰 강이기 때문에 삼국시대부터 현실적으로든 상징적으로든 중요한 곳이었다. 조선에서 기우제 등을 지내려고 명산대천에 제사를 지낼 때 한강은 꼭 포함되었다. 요즘도 한강에서 정월 대보름 등에 한강가에서 젯상을 차려놓고 기도하는 사람을 볼 수 있다.

1953년 이후의 대한민국 경제의 급속한 성장을 이르는 한강의 기적이라는 말도 이 강에서 나왔다.

북한 평양직할시에서는 대동강이 비슷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2. 교량 건설 문제[편집]

전세계적으로 강폭이 매우 넓고, 하상 계수가 심각하게 높으며, 유역은 지나치게 좁은(…) 강으로 유명하다. 쉬운 말로 설명하자면 세계지도에 짤막하게 나온 것은 페이크다! 할 정도로 강의 폭 자체가 넓은데다가 홍수 때 불어나는 물의 양도 매우 많아서 그 옆에 올림픽대로강변북로를 건설하고도 남을 엄청난 규모의 둔치가 존재한다.[9] 그 폭을 합치면 처음 방문한 사람들을 놀라게 할 정도라는 것이다. [10] 물론 조수간만의 차도 심해서 신곡 수중보를 건설하기 전에는 압구정에서도 밀물, 썰물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수위의 차이가 어느 정도 나타나기는 하나 수중보에 의해 썰물 때도 어느 정도 수위가 유지되는데다, 수중보가 올라오는 함수(소금물)를 완벽히 차단하므로 그 차이를 확실히 느끼기는 어렵다. 바닷물은 민물보다 비중이 높아 아래로 가라앉으므로 수중보에 의해 차단되는 원리다. 짠맛도 안 날 것이다 물론 한강물에는 엄청난 양의 대장균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맛보지는 말자. 1,000만 인구의 서울(+서울시에서 하수위탁처리하는 광명시 포함)과 한강 및 지류로 하수처리장의 물이 유입되는 인천 일부, 부천, 김포, 구리, 남양주, 과천, 안양, 군포, 의왕, 양주, 의정부, 성남, 하남, 고양, 광주, 여주, 이천, 춘천, 원주, 제천, 충주의 하수도 역할을 하는 것이 한강이다.[11][12] 대장균이 문제가 아니라 슈퍼박테리아를 마실 수도 있다. [13]

이런 특성으로 인해 전면적인 아치교 형태의 교량 건설은 어렵고, 한강 교량들의 경우에는 아치를 사용하더라도 중앙부 일부에만 아치 형태를 도입하는 경우가 많다. 특수 형태의 교량 또한 드물고, 그나마 1988 서울 올림픽을 기념해서 사장교올림픽대교를 세운 정도. 다만 기술의 발전과 아라뱃길 등 한강 수운을 염두에 둔 계획에 따라 새로 지어지는 교량들에는 교량 경간을 늘리기 위해 아치교현수교가 도입되는 추세이다. 월드컵대교가 특수 사장교 형태로 계획 중이다. 양화대교는 기존의 교량의 중간부분을 아치교로 바꾸었다.

3. 상수원보호[편집]

한강 상류는 서울특별시, 인천광역시, 경기도의 상수원이라 수질보호를 위해 한강 중류 지역인 북한강과 남한강 상류 일대는 개발이 금지되어 있으며, 경기도 대부분 지역은 광역상수도 설치 지역에 한하여 팔당호에 있는 팔당제1취수장, 팔당제2취수장 또는 팔당제3취수장의 물을 사용한다. 서울의 경우 팔당호와 잠실수중보의 사이에 있는 광암취수장, 강북취수장, 암사취수장, 풍납취수장 앞 한강물을 사용한다. 이 중 암사취수장과 풍납취수장은 구리시남양주시의 오/폐수가 유입되어 오염이 심각한 왕숙천보다 하류에 있기 때문에 이전 논의가 나오고 있다. 인천의 경우 풍납취수장, 팔당취수장의 물을, 성남시의 경우 풍납취수장 부근 성남 전용 취수장 앞 물을, 고양시의 경우 구 자양취수장의 약간 상류에 있는 취수장 앞 한강물을, 광명시의 경우 팔당취수장의 물을, 용인시광주시의 경우 경안천 하류의 용인/광주취수장 및 광주취수장 앞의 한강물을 정수하여 수돗물로 사용한다. 어쨌든 결론은 한강물 한강이라는 명칭이 정착하기 전에는 아리수, 아리물/아리내 등으로 칭했는데, 이는 현재 국내 최초 식용 수돗물인 서울특별시 수돗물의 이름이기도 하다. 여기서 '아리'는 크다는 뜻이다.

한때 인천광역시(당시 경기도 인천부)에서 노량진에 인천 관할의 노량진정수장, 취수장(1910년 건립)을 둔 적이 있었다. 인천시는 인천권이 아닌 동네인 광명시에도 노온정수장을 지은 분이기도 하다 영등포가 경성부로 편입된 이후에 그 시설이 서울특별시로 넘어간 적이 있다. 노량진정수장을 서울시한테 빼앗기자 인천시는 부평정수장을 자체 건립하였다.

4. 개발 문제[편집]

파일:attachment/03200882_1.jpg

산업화가 진행되고 한강 개발이 착수되기 전인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한강의 수질은 깨끗한 편이었다. 모래톱들도 엄청나게 많아 둔치가 모래사장이었던 지라 피서철에 한강에서 수영을 즐기는 모습은 매우 일반적이었다. 1960년대 초까지 한강대교 인근 모래사장에서 수영을 즐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인구 유입이 계속되면서 각종 산업시설도 우후죽순처럼 들어섰기에 각종 공장에서 흘러나온 오폐수와 생활하수가 한강으로 유입되며 한강의 수질이 나빠졌고, 수영도 금지되었다. 이후로 폐수처리시설을 건설하면서 수질은 이때보다 나아졌지만 여전히 물을 그대로 마시기에는 무리가 있는 수준이며[14] 하류지역으로 갈수록 수질이 영 좋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이다.

특이한 사실은 폭이 1km가 넘는 강이 도시 한가운데를 관통하고 있다는 점. 서울이 확장되면서 이런 구조가 만들어졌지만, 이런 구조의 도시는 찾아보기 드물다. 비슷한 구조의 도시로는 중국 무한을 들 수 있다. 그러나 무한은 무창, 한양, 한구 세 자연도시가 합쳐진 도시이며, 비슷한 형태의 도시들 역시 두세 개의 다른 도시가 합쳐진 경우가 많다. 강 이편에 형성된 도시와 강 저편에 형성된 도시를 합쳐져서 큰 강이 관통되는 형태가 되었다는 것이다. 단일시계로 큰 강을 끼고 있는 곳은 서울 외에는 예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강북과 강남의 지리적 차이를 명확하게 드러내는 데 한 몫 한다. 비슷하게 강이 관통하는 도시는 뉴욕, 방콕, 바그다드, 브리즈번등이 있다. 국내의 광역시대도시 중에서는 대구광역시부산광역시낙동강은 강이 외곽지역을 흐르므로 성격이 다소 다르고 그나마 울산광역시 시가지 중심부를 관통하는 태화강이 비슷하다. 광주광역시영산강이 시가지를 양분하지만 광주광역시는 다른 이유로 시가지가 분리된 쪽에 속한다. 북한에서는 평양직할시대동강이 서울의 한강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

엄밀히 말하면 서울 역시 큰 강을 끼고 형성된 자연도시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1963년의 시역 확장으로 현재 강남 지역 대부분이 서울 시계에 포함되기 이전까지 서울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강북 지역이었다. 그나마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반, 한남대교경부고속도로가 완성되기 이전까지 강남 지역의 개발은 지지부진했다. 즉, 서울 도심은 자연스럽게 강을 끼고 확장됐다기 보다는, 인구의 급속한 팽창으로 인하여 확장이 필요해진 상태에서 정책적으로 강남 지역을 개발하여 도시화한 것이다. 더 엄밀히 따지면 한강 이남에서도 구로나 영등포는 일제시대부터 도시화가 진행되었다는 점도 살펴야하지만, 이 지역은 서울의 외항 역할을 하는 인천과의 연계성 때문에 도시화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영등포가 1936년에 경성부로 편입된 이유는, 인천권의 경성부 편입을 (살짝) 염두에 둔 대경성부계획의 일환이다. 요컨데, 현재의 부유한 강남, 서초, 송파구나 금천[15], 관악구 지역은 정책적 의도에 의한 개발이 추진되기 이전까지는 딱히 도시화 동력이 없던 상태였다는 것.

이러한 개발정책이 추진된 가장 큰 이유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 때문이다. 서울이 현재보다 더 북쪽으로 확장된다면, 사실상 수도가 최전방과 밀착하는 형태가 된다.(...) 강남과 과천이 개발된 이유 중의 하나가 안보적 고려였다. 간단한 예시로, 동대문-성북구 부도심과 평탄한 지형으로 연결되어 개발에 유리한 입장인 의정부를 생각해 보자. 분단과 군사적 긴장 상황만 아니라면 충분히 서울에 편입될 만한 입지지만...[16] 실상은 휴전선 인근 부대에 병력을 공급하기 위한 군사적 거점인 306보충대가 있는 군사도시 역할에 그친다. 만약 현재 상황에서 의정부가 서울에 편입된다면? 최전방 군사도시인 포천이 서울과 인접하게 된다! 사실 서울 자체도 외국인 시선에서는 전방에 있는 대도시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만약 분단과 남북한 군사대치 상황이 아니었다면 현재의 서울의 한강 이남지역 중 강서구, 양천구, 구로구, 영등포구, 금천구 지역과 경기도의 부천시, 광명시, 시흥시 북부 일대가 인천광역시에 편입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17], 강남 지역 대신 의정부, 남양주, 구리, 고양시 지역이 서울시로 편입되었으리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이러한 입장의 주된 근거가 바로 한강이다. 사실 한강은 도시 내부를 흐르기에는 지나치게 폭이 넓은 강이다. 안양천, 탄천, 중랑천은 물론이고 영국의 템즈 강보다도 넓다. 넓은 정도가 아니라, 템즈강보다 평균 폭 2배이상, 3배까지도 이르며, 심지어 지류인 중랑천조차 파리시내를 흐르는 센강과 강폭이 큰 차이가 없다중랑강 센천 넓은 강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장강의 무한 시내구간과 비교해도 강폭이 비슷할 정도이다. 현재의 서울을 보더라도 강남 지역과 강북 지역을 같은 시역으로 유지하기 위해 서울 시계 내에만 20여개의 다리를 건설해야 했다! 세계적으로 드물다는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하는 이야기지만, 이렇게까지 고밀도로 다리를 박아넣은 경우 역시 세계적으로 드물다. 만약 강남 지역의 지형상 개발에 유리하다는 장점이 없었다면, 한강이라는 자연적 경계까지 무시하면서 서울로 편입시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 다른 가정도 가능하다. 남북 분단 이전인 일제강점기에 한강 건너편 영등포가 경성부에 편입된 것을 고려하자면 남북분단이 안 된 상황에서 서울 대확장이 지금의 고양, 의정부, 남양주, 구리쪽으로 이루어지는 시나리오 말고도 경인선 지역을 따라 인천시[18], 부천군 육지부(지금의 부천시, 시흥시 북부, 계양구 북부, 구로구 서부), 김포군 일부(지금의 강서구, 양천구), 시흥군 일부(지금의 금천구, 관악구, 광명시)가 서울특별시로 한꺼번에 편입경인통합되었을 것이라는 말.[19] 이들 지역은 실제로 일제강점기 당시에 경성부 추가 편입이 검토되기도 했었다. 1963년 서울 대확장 당시에 강남 방향으로 확장된 것과 이후에 강남(+과천)이 본격 개발된 것은 남북분단에 의한 안보적인 이유[20]가 고려되었기 때문인데, 남북 분단이 아니었으면 서울의 외항인 인천과의 연계를 강화하기 위해 경인선 방향으로 서울이 확장되었으리라는 논리다. 일제강점기 영등포가 경성부에 편입된 이유 중 하나가 서울-인천 간 연계 강화였다.

하지만 강남 지역이 개발된 이유가 오직 군사적 상황 때문만은 아니다. 서울의 중심인 사대문의 정북 방향은 거대한 북한산에 가로막혀 있다. 위성 지도 한 번만 들여다봐도 현재의 서울 강북 지역이 U자 형태로 존재함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러한 상태에서 더 북쪽 지역까지 서울시에 편입된다면 V자 형태의 독특한 모양을 띤 도시가 될 수도 있다. 이 경우 부도심 사이에는 서로 교류가 어려워지게 되고 비대한 도시의 기능이 분산되기는 커녕 사대문으로 쏠리게 될 것이다. 현재도 은평구와 도봉구는 거리가 가깝지만, 대중교통으로 이 둘 사이를 왕래하려면 도심을 거쳐가야 하며, 자동차로 가기도 꽤 불편하며 오래 걸린다[21]. 그런데 북쪽으로 도시를 확장하면 V자의 중심 축을 이루는 현 지하철 3, 4호선 구간과 양쪽을 이어주는 구기터널, 내부순환로, 그리고 일영-장흥 일대는 시시때때로 헬게이트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금정산 때문에 이와 비슷한 구조를 가지는 부산광역시의 교통 상황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지금도 악명이 높은데 서울(+위성도시)의 인구는 부산의 2배 이상인 점까지 고려하면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또한 상대적으로 평야지대인 서쪽과는 달리 동북쪽으로는 경원선이 지나는 추가령 구조곡의 좁은 지대를 제외하면 대부분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므로 확장에도 한계가 있다. 그리고 서울 동북쪽으로 갈수록 춥고 건조해진다 따라서 도시 기능의 확대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한강 이북 지역을 이상한 모양으로 편입시키면 비효율적일 수 있다. 그보다는 한강 이남, 관악산 이북 지역을 서울로 편입하는 편이 합리적이라는 판단을 내렸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사실 생활권 분절효과에는 강보다 산맥이 더 크다. 다리(교량)을 놓는 편이 터널을 뚫기보다 쉽기 때문이다. 아무튼 서울이 1963년에 한강 이남으로 대폭 확장되어 현재의 지리교과서는 서울을 분지형 도시로 소개한다.

5. 한강종합개발계획[편집]

지금의 서울특별시의 한강 및 주변 모습은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이 추진한 한강종합개발계획에 따른 것이 많다. 당시 한강은 박정희 정권 시절의 후유증인 난개발로 환경오염이 심해졌고, 1980년대가 되면서 서서히 수도의 환경을 신경을 쓸만한 경제적인 여력이 생기고 서울 올림픽 개최권을 얻으면서 더욱 환경 개선의 필요성이 커졌다. 또한 4대문을 중심으로 한 중심지에 몰린 위락 시설을 분산하고 확대하고 도로 등 도시 인프라 확충 역시 이 시기에 중요한 목표가 되었다.

단순한 환경 개선이라면 수질 개선 대책만으로 충분하지만, 여기에 도시 인프라의 확충이 끼면서 한강 주변의 둔치를 활용할 필요가 생기면서 한강종합개발계획이 태어났다. 이 계획은 크게 한강의 준설, 하수관 정비, 수중보의 건설, 한강 둔치의 정비, 한강 둔치의 강남 구간을 따라가는 고속화도로 건설로 나뉘는데 그 결과물의 상당수는 나름대로 서울을 상징하는 랜드마크가 되었다.

한강의 준설은 한강의 수심을 2.5m까지 깊게 파고, 파낸 모래를 팔아 한강종합개발 과정의 비용을 일부 충당하도록 했다. 명분은 홍수조절이지만, 실상은 이 구간에 유람선을 다닐 수 있게 하는 것이며 그 결과물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한강 유람선이다.1980년대판 한반도 대운하 여기에 더해 잠실수중보와 신곡수중보를 세워 유량을 일정하게 유지하게 하는 공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밀물과 썰물의 영향을 받던 한강 서울시 구간은 흐름이 매우 잔잔하게 바뀌게 되었다.

다른 강과 마찬가지로 모래톱이 그대로 남아 있던 한강 둔치는 생활하수와 산업폐수로 오염된 상태였는데, 오염을 눈에 띄지 않게 하고 강변의 높이를 높여 홍수 피해를 줄일 수 있도록 둔치에 제방을 쌓아 높이를 높이고 그 위에 공원을 조성했다. 그것이 일명 한강고수부지, 지금의 한강공원이다. 당시 서울에는 무료로 즐길 수 있는 공원형 위락시설이 많지 않아 시민의 여가생활은 주로 시내 중심부에서 이뤄졌는데, 그것을 분산하는 목적이 있었다.

강남지역의 한강 둔치를 활용한 도로는 바로 지금의 올림픽대로다. 당시 한강변을 따라가는 서울시의 도로는 강변북로 하나뿐이다. 당시에는 강변1로~강변5로 나뉜 것을 억지로 이어 붙인 형태였다. 왕복 2차로 구간도 있었으며 선형도 좋지 않아 완전한 고속화도로로 부르기는 어려운 수준이었다. 현재는 한강 북단 둔치를 활용하여 꾸준히 확장 공사를 하였으며, 지금의 강변북로는 과거의 강변1로~강변5로 시절과 많이 다르다. 올림픽대로의 개통은 서울의 교통에 지금까지도 큰 기여를 하고 있다.그 기여가 헬게이트라는 점은 슬픈 일이다.

사업은 1982년부터 시작하여 1986년에 끝났으며, 사업 종료를 기념하여 '한강시리즈' 공익광고가 여러 편 방영되었다. 한강시리즈 공익광고 1탄

한강종합개발계획은 지금의 서울에서 '한강'하면 떠오르는 많은 것을 만들어준 프로젝트였지만, 시간이 지나고 민주화가 이뤄지면서 당시 공론화가 어려웠던 여러 부작용에 대한 목소리가 나오게 되었다. 먼저 두 개의 한강 수중보는 서울시 한강 구간의 수량을 풍부하게 만들었지만, 강의 자연적인 흐름을 막아 토사나 모래의 퇴적을 막는 부작용을 낳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폭파당한 밤섬은 수십년이 지난 지금 크기가 더 늘었다. 놀라운 자연의 기적 또한 수중보는 물고기의 이동을 막아 정상적인 생태계 구축을 막는 원흉으로 환경보호론자들의 꾸준한 공격 대상이 되고 있다. 콘크리트 제방으로 도배한 한강변 역시 환경파괴라는 주장이 끊이지 않는다. 콘크리트 제방은 일부 구간에 대해 환경 복원 차원에서 습지 지대로 복원을 시도하였다.

6. 교통[편집]

6.25 전쟁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수운의 이용이 가능하였지만, 한국전쟁 이후 한강 하구 북단의 황해도 연백군, 경기도 개풍군 등을 북한에 내주게 되어 수운 기능을 이용하기 힘들어졌다.[22] 남북통일이 요원한 정황상 경인 아라뱃길이 만들어졌다. 다만 하구에 농업용수를 이용하기 위해 하구둑이 설치된 낙동강, 금강, 영산강이나, 하구에 대규모 공업 단지(광양제철소)가 있는 섬진강에 비하면 한강 하구는 오랫동안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채 방치되어 거대한 규모의 갯벌이 형성되고 해마다 철새가 찾아오는 생명의 보고가 되었다. 비무장지대와 함께 인간이 손을 대지 않으면 자연 스스로 회복되는 모습을 보여준 예이기도 하다.

물론 통일이 되어도 좁은 수로와 흘수의 제약으로 인해 대형 상선과 같은 크고 아름다운 물건들이 들어가기는 어렵기 때문에, 경인 아라뱃길을 포함한 한강 수운 기능의 부활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7. 기타 이야기거리[편집]

한강에서 한 해 발견되는 시체만 수백 구 된다고 한다. SBS스페셜에서 방영된 바에 따르면 1년에 전국적으로 2,400여구가 발견되며 3분의 1 정도는 너무 부패가 심해 신원확인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물론 다 자살은 아니다. 때문에 경찰과 119 구조대가 엄청나게 고생한다.
동방 프로젝트 갤러리에서는 간혹 농담삼아 환상들이가 가능한 후보 장소로 많이 거론된다. 사실 그런 거 없지만.

이계로 가는 입구가 주로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따지고 보면 한강을 통해 이계로 가는 이고깽 양판소는 이제 와선 찾기 어렵지만... 비슷한 의미로 한강 바닥에는 인생 리셋 버튼이 있어서 그걸 누르면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슬픈 농담이 있다.

한강 물 온도를 확인할 수 있는 퐁당이라는 이름의 어플리케이션이 존재한다. 용도는 주식 및 토토, 암호화폐에 빚내서 투자 한강에서 낚시나 수상스포트를 즐기는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서라고,

별 게 다 나오지만 당연히 괴물은 없다. 과거에는 철갑상어도 살았다고 하며, 지금도 철갑상어는 개체수가 많지 않지만 발견된다. 다만 이 철갑상어는 양식장에서 프리즌 브레이크를 찍은 녀석이거나 인위적으로 방류한 녀석일 가능성을 더 높게 보는 중이다.

흔히 경북대학교, 부산대학교와 같은 지방의 학교들이 즐겨 사용하는 '우리 학교는 한강 이남에서 가장 좋은 어쩌구저쩌구'라는 관용구가 있다. 그럼 서울의 강남은 한강 이남 아니냐? 이건 강남이 서울의 권역으로 편입되기 전에 생긴 관용구일 가능성이 크다. 즉 '서울을 제외하면 우리가 킹왕짱!'이라는 의미. 특히 지방에 소재한 대학교들이 이런 표현을 즐겨 쓰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서울대학교가 위치한 관악구중앙대학교가 위치한 동작구는 분명 한강 이남인 걸? 이 역시 서울대학교관악구로 이전하고 중앙대학교가 생기기 전에 생긴 관용구일 가능성이 없진 않지만 수도권에 있는 학교의 절대 다수가 서울대가 관악구로 이전한 이후에 생겼기 때문에 이 역시 옳은 추정은 아니다. 한강 이남 수도권에 대학이 몰리게 된 이유는 서울시계 안에 신규 대학 설립이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한강 자체가 서울특별시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하고, 서울 시내 유수 사립대 대부분이 강북 지역에 모여있는 점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의 인식으로서 군사적인 전방후방을 가르는 기준이 한강이다. 흔히 대한민국 육군 기준으로 전방부대를 한강 이북, 후방부대를 한강 이남이라고 일컫는 이유도 이 때문.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퇴소한 육군 신병들을 태운 열차가 한강철교를 지나가는 순간에 그들의 표정은 굳어가기 시작한다(...). 이와 같은 인식엔 6.25 전쟁 때 정부가 한강다리를 폭파하여 서울(강북)에 있던 주민들이 피난가지 못한 데서 비롯된 트라우마가 작용한 측면이 있을 것이다.

이 강의 하구는 강화도와 그 부속 도서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위의 이미지를 보다시피 북한과 매우 가깝다!!!!.전투수영으로 1시간도 안 돼서 북한에서 닿을 수 있는 지역도 있다. 한강 하구에서 강안경계를 하면서 TOD 등으로 관측을 하다 보면 둔전(..)을 하거나 야외에서 정신교육을 받는 조선인민군 육군 병력들을 볼 수 있다. 흠좀무.

삼국시대에는 한강을 어느 나라가 차지하느냐에 따라 그 나라의 강약이 결정되었다. 한강을 차지함에 따라 나라의 전성기가 정해질 정도. 처음에는 백제가, 그 다음에는 고구려가, 그리고 나중에는 신라가 차지하였다. 차례대로 전성기가 오는데 전성기인 나라 외 두 나라는 꼭 동맹을 맺어 세력의 균형을 맞췄다. 전성기인 나라가 바뀌어도 이 구도는 삼국시대 내내 계속된다.

현재도 한강이 보이는 집은 높은 가격을 자랑한다. 강남의 최고급 아파트, 주택들 중 매매가 상위권에 들어가는 곳은 한강(한남대교 등)이 잘 보이며 부동산에서도 이를 매우 강조한다. 강남의 한강 보이는 아파트들은 기본 수십억 이상이다. 특히 그 야경 덕분에 인기가 많은 듯. 밤에 다리가 빛나는 모습은 상당히 아름답다.

한강에 자살 기도자가 나올 경우 십중팔구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헌병이 뛰어간다. 2012년 기준 경찰과 같이 가는 것이 공식화되었지만, 검문소 인원이 인원인지라 거의 헌병이 달려가는게 일상이다. 참고로 자살기도자를 말려서 당시 대대장이 2박 3일 휴가증을 준 적이 있다. 그러니까 하지 말라면 좀 하지마라. 한강 다리가 짧으면 말도 안 하는데 길긴 더럽게 길다. 육군 헌병 근무복이나 전투복 입고 뛰어가다 보면 사람들이 신기해서 쳐다보게 된다.

물이 넘쳐서 바닥이 물 천지가 되었을 때, 바닥이 한강되었다는 표현을 종종 쓴다.

최근에는 1m짜리 초어가 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