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 東.西洋 歷史

메주 2011. 6. 17. 18:01

 

폼베이<Pompeii'>

 

-A computer-generated depiction of the eruption of Vesuvius in 79 which buried Pompeii (from BBC's Pompeii: The Last Day).

The depiction of the Temple of Jupiter, facing the forum, and the Temple of Apollo,

across the portico to the left, are nonetheless inaccurate,

and the shown state of the porticoes around the forum is also at least questionable,

 as they all appear intact during this recreation of the 79 eruption;

it is widely known that at least the Temples of Jupiter and Apollo had been destroyed 17 years before, during the 62 earthquake,

and that they had not been rebuilt by the time the city was finally destroyed in the 79 eruption-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든 화산폭발의 순간처럼

폼페이의 최후의 순간은
서기 79년 8월24일 아침이었다.

 

 

 

 

 

 

 

지체 높은 로마 시민들의 여름철 휴양 도시인 폼페이는 바쁘고 활기에 넘쳐 있었다.

나폴리로부터 12㎞ 떨어진 베수비오산 기슭에서

사루누스강 어귀에 세워진 항구 도시 폼페이는

 

로마제국'의 화려함'을 잘 나타내 주는 사치스러운 도시였었다.

 

 

 

 

 

Bryullov Karl <1799-1852> - The Last Day of Pompeii <1830-33>

 

 

 

 

베수비오山<Mount Vesuvius>'은 이따금 연기를 내뿜었지만,

16年 前 폭팔한 뒤로는 그 때까지 아무 일도 없었다.

사람들은 가끔 연기를 뿜는 모습이

오히려 폼베이'의 경관을 더욱 멋지게 꾸며 주고 있다고 말했다.

 

 

몇일째 계속되던 땅의 흔들림이 갑자기 거세지더니

곧 베수비오'로 부터 하늘을 뒤덮는 버섯구름이 솟아 올랐다.

그리고 사람들이 미쳐 몸을 피할 사이도 없이

엄청난 폭팔음과 함게 산꼭대기가 갈라지면서

뜨거운 화산재;와 용암'이 비 오듯 쏟아졌다.

 

 

새들은 날다가 낙엽처럼 떨어졌으며,

사람들은 혼비백산'하여 이리 뛰고,저리 뛰었다.

짐승들도 숨을 곳을 찿아 갈팡질팡했다.

 

화산은 쉴새없이 터졌고,

검은 연기와 불꽃'은 하늘을 완전히 가렸다.

4시간 쯤 경과하자 인구 2만명 가운데 2,000명'이 목숨을 앗아갔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죽을 힘'을 다해 바닷가'로 달아났다.

베수비오화산재'는 30km'나 떨어진 미세눔'에 까지도 날아오고 있었다.

 

 

 

 

Pompeii and other cities affected by the eruption of Mount Vesuvius.

 The black cloud represents the general distribution of ash and cinder. Modern coast lines are shown.



 

이 참사의 목격담은 大 플리니우스<aius Plinius Secundus Major>'의 조카

 小플리니우스<Gaius Plinius Caecilius Secundus, 기원후 61년 - 112년>'가

미네눔<Misenum> 로마 함대 사령관이었던 대 플리니우스'의 죽음에 대해서 묻고 있는

고대의 로마 역사가'인

타키투스<Publius (or Gaius) Cornelius Tacitus (ca. 56 – ca. 117)'에게 쓴

2통'의 서신에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Tacitus-

 

 

 

 

 

대 플리니우스'는 이탈리아 캄파니아<Campania> 지방에 있던 고대 도시

스타비아이<Stabiae>'에서 친구들을 구조하려고 애쓰다가 죽었다.

이틑날 화산폭팔이 멈추었을 때

폼페이'는 깊이 6~7 m'의 용암l과 화산재'로 덮어 있었다.

헤르쿨라네움<Herculaneum>'에서는

격류와 함께 떠밀려온 화산물질 더미 20 m'두께로

도시 곳곳을 뒤덮으면서 일종의 진흙 용암'으로 굳어졌다.

 

 

 

 

 

Outbreak of the Vesuvius. Painting by Norwegian painter I.C. Dahl (1826)

 

 

 

 

 

로마제국의 미세눔 해군사령관'이였던 대 플리니우스'는

함대에 출동 명령을 내렸다.

"모든 배'는 폼페이'로 가서 바닷가로 탈출한 시민들을 구하라!!!"


 

 

 

An aerial photo of Vesuvius <베수비우스의 항공사진>

 

 

 

 

 

함대가 폼페이 항구에 다다르니

배 위로 화산재와 경석이 마구 쏟아졌다.

바닷가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검은 연기에 휩쌓여 있었다.

프리니우스'는 이탈리아 남부 캄파니아 지방 나폴리 주에 있는 도시이자 주교관구'인

카스텔라마레<Castellamare di Stabia>'로 뱃머리를 돌렸다.

 

그는 폼페이 시민들이 바닷가를 따라 그리로 가리라고 예상한 것이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정신없이 바닷가를 달려가고 있었다.

함대는 서둘러 카스텔라마레 해안에 배를 대고

사람들을 구조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 때 믿어지지 않는 최악의 사태가 일어났다.

바람이 돌연 낮게 깔리며 바닷가로 들이 닥쳤다.

 

 

 

 

 

The skeleton called the "Ring Lady" unearthed in Herculaneum.

 

 

 

 


숨을 못 쉬도록 뜨거운 불기운'과 독한 가스'가 순식간에 함대를 덮쳤다.

구조작업을 지휘하던 대 프리니우스,로마 병사들,

그리고 막 구조돼 한숨을 돌리던 폼페이 시민들은 독가스에 질식돼 모두 죽고 말았다.

 

 

 

 

 

An eruption of Vesuvius seen from Portici, by Joseph Wright (ca. 1774-6)

 

 

 

 

소 프리니우스'와 몇몇 병사만이 간신히 그 곳을 벗어나 이 기록을 남긴다.

 

 

 

 

 

The Circumvesuviana stop at Pompeii, a popular tourist destination.

 

 

 

 

 

사흘이 지나자

 분화'가 멈추고

눈부신 태양이 다시 떠 올랐다.

그러나 폼페이 市'는 한 채의 건물, 한 사람의 자취도 없이

모든 것이 화산재와 용암 아래 파 묻히고 말았다.

 

 

 

 

 

 

 

 

 

 

 

폼페이 유적'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Porta Marina"에 있는 이 문을 따라

둘레가 약 3 Km'에 이르는 방벽이 둘러져 있고,

지역의 넓이'는 약 63 ha'에 달한다.

 

 

 

 

 

 

이 門'을 통해 언덕길'을 올라 서면,

폼페이'의 가장 중심인 포로<foro>'이다.

 

각종 행정기관과 주피터 신전,공회당 사회생활'의 중심쎈터'이다.

2000 年 前'의 건축문화'를 오늘의 것과 비교해 보면

지금의 도시인 프라와 그리 큰차'가 없을 정도로 완벽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포룸<Forum>'남쪽 끝에는 시 의회'와 행정관청 관리들이 모여서 회의하던 장소가 있다.

 

지붕이 있는 이 건물은 상품거래'와 재판의 장소로 사용되었다.

 

서쪽으로는 폼페이'의 수호신'인 베누스 폼페이아나'의 신전<temple of Venus Pompeii>이 있다.

 

 

 

 

 

The Forum seen from inside the basilica

 

 

 

 

1861年 통일 이탈리아 왕국이 고고학자

주제페 피오렐리<Giuseppe Fiorelli>'로 하여금

폼페이'를 과학적으로 발굴하게 한 것은

 

 

 

 

The man known by many as Giuseppe Fiorelli

 

 

 

근대 고고학'의 아버지'인 독일'의

 

빙켈만<Winckelmann, Johann Joachim : Dember 9, 1717 – June 8, 1768>'이

죽은 지 거의 100年'이 다 돼서였다.

 

 

 

 

 

Portrait by Raphael Mengs, after 1755

 

 

 

 

1709年 수도원 우물을 파던 인부에 의해 단서가 잡혔던

폼페이 유적 발굴은 피오렐리'에 의해 빙켈만'의 뜻을 이어

오늘날과 같은 발굴방식'을 처음 시도했다.

 

 

 

Mt. Vesuvius as seen from the ruins of Pompeii,

which was destroyed in the eruption of AD 79.

The active cone is the high peak on the left side; the smaller one on the right is part of the Somma caldera wall.

 

 


그 것은 가재도구,집,거리 무엇 하나 빠짐없이 차근 차근 드러내는 작업이다.

이 일은 지금껏 140年'이 넘도록 계속되어 오고 있는데,

약 4/5'쯤 발굴되었다.

 

지금까지 드러난 바'로는 폼페이는 약 3 km' 둘레의 타원형 도시이다.

도시 전체를 성벽으로 둘러 쌌으며, 성문은 모두 8개,

길'은 바둑판처럼 곧게 뻗어 잇다.

길 모퉁이'마다 공동 수도전'이 세워져 있고,

수도를 사용했음을 알 수가 있다.

 

 

오늘, 현재의 세상모습'이나 별 다름이 없는

완벽한 인프라<infrastructure : 기반시설>'을 갖춘 도시였던 것이다.

 

 

 

 

- paved street-

 

 

당시 마차가 다니던 길이다.

길들은 7 m'너비로 모두 돌'로 포장되었고,

인도가 마찻길 양 옆으로 나 있다.

지금의 철로 폭'과 같다.

인도에는 현재와 같은 아연도관'의 수도관'이 매설되어 있다.

이 도로는 하수도 기능을 겸했다고 한다.

 

 

 

 

-Archaeological Areas of Pompeii, Herculaneum, and Torre Annunziata-

 

 

 

길'을 가다보면 길바닥에

남자의 성기를 새겨 놓은 표지석을 볼 수 있다.

성기'가 가르티는 방향으로 가면

바로 유곽이 있는 골목으로 들어 서게 된다.

 

 

 

Wall mural of Mercury/Priapus

 

 

 

벽에 포르노 그림과 침실등이 갖춰져 있어

창녀의 집'이라는 설명이다.

 

 

 

 

 

 

-Wall Painting of Priapus, House of the Vetti-

 

 

 

 

 

침대의 규모'로 보아

당시 이태리 사람들의 체격을 유추해 볼 수 있었는데

신장이 150 cm'전후였을 것으로 보여진다.

당시 이 들의 평균수명은 35세 정도...

 

 

 

 

 

 

 

 

발굴괸 유물 보관소'- 당시 화산재'를 덮어쓰고 죽은 시체모습에서

죽는 순간까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리얼'하게 보여주고 있다.

 

 

1,700 年'이나 흐른뒤,

사람들은 그 옛날의 모습이 하나씩 드러날 때마다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얼마나 갑작스레 닥친 재앙'이었던지,

 새끼돼지'가 오븐'에 넣어지려 한 채로 발견되었고,

반쯤 구워진 빵'이 발굴되기도 했다.

 

 

 

 

 

  

사람들은 너무나 불쌍한 모습으로 굳어져 있었다.

 

 

Garden of the Fugitives".

Some plaster casts of victims of the eruption still in actual Pompeii; many are in the Archaeological Museum of Naples.

 (Casts can also be found, amongst other places, near the forum, inside the baths, and at the Villa of the Mysteries.)

 

 

어머니들은 숨이 막히기 前'에 힘껏 아기를 감쌓아 안고 있었고,

어떤이'는 금붙이'를 꽉 움켜쥔 채' 돌더미'에 깔려 있었다.

 

 

 

 

 

어느 집 문턱에서는 젊은 여자 둘이

집안으로 들어가 귀중품을 꺼내려고 망설이는 몸짓으로 굳어 있었고,

 

 

 

 

 

  모든집이 1,700年 前 8月' 어느날 한때의 모습을

"동작 그만!"인 채'로 간직하고 있었다.

  

-남녀의 교합상태 유골-

 

 

도서실에는 두루마리 종이가,

작업장'에는 연장이,

  

A wall of the triclinium, traditionally interpreted to represent the stages of initiation to the cult.

 

 

목욕탕에는 수세미'가

여인숙 탁자에는 손님들이 서둘러 계산한 돈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로마인 이야기 中'에서-


 

Inside the crater of Vesuvius.

 

 

앞으로 10년 안에 발굴이 끝나면,

                                                 마 제국의 문화와 헬레니즘 문화의 눈부신 유산'이 더 많이 공개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Residential water pipe made of lead in Herculaneum-

 

 

한편 폼페이'의 모습을 보며

현재의 인류는 2천년 前'의 폼페이'의 생활 환경에서

별로 발전한 것이 없는 비슷한 수준에 머물고 있는 느낌이다.

 


 

 The March 1944 eruption of Vesuvius, by Jack Reinhardt, B24 tailgunner in the USAAF during WWII 

 

  

 

페이 市'는

선사시대의 용암이 흘러나온 자리에 건설되었기 때문에 불규칙한 형태를 이루었다.

발굴 결과는 남서부지역이 가장 오래되었음을 시사하지만

방벽이 확장된 단계나

누구에 의해 확장되었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간에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둘레가 3km인 방벽은 면적이 약 63㏊인 지역을 둘러싸고 있다.

 

이 방벽의 최종 경계선은

삼니움족이 폼페이를 장악한 뒤에 정해진 것이라고 추측되나

그리스 양식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있다.

도시로 들어오는 7개의 문이 발굴되었다.

남동-북서 방향으로 뻗어 있는 중심도로인 스타비아나

가도는 도시에서 가장 높은 지점에 있는 베수비오 문(해발 44m)

가장 낮은 지점에 있는 스타비아 문(해발 8m)을 잇고 있다.

 

스타비아 문을 통해 사르누스 강과 스타비아이와의 교통이 이루어졌다.

 이 중심도로에는 다른 2개의 간선도로인 아본단차 가도와 놀라 가도가 교차하고 있다.

 공공건물들은 대부분 3개 지역으로 나누어져서

남서쪽의 거대한 평지에 있는 포룸(광장, 해발 34m),

남쪽 방벽 가장자리의 만이 내려다보이는 높이에 있는 삼각 포룸(해발 25m),

동쪽에 있는 원형투기장 및 체육훈련장 등으로 분류된다.

 

종교·경제·시민생활의 중심이었던 포룸은

2층의 열주가 있는 현관(포티코)에 의해 둘러싸인 커다란 4각형 지역이었다.

카피톨리누스 구릉의 3대 신인 주피터·주노·미네르바에게 봉헌된 신전이

북쪽에서 포룸을 내려다보며 우뚝 서 있다.

 

동쪽에는 큰 식료품 시장인 마켈룸이 있었고,

남쪽에는 62년의 지진 후 세워졌던 라르 신(도시 수호신)의 작은 신전, 베스파시아누스 신전,

그리고 부유한 후원자인 유마키아가 세운 인상적인 모직물 제조공장이 있었다.

 

포룸의 남쪽 끝에 있는 카피톨리움 반대쪽에는

시 의회와 행정관청 관리들이 모여서 회의하던 장소가 있었다.

중심 방의 사면이 복도로 둘러싸인 거대한 바실리카이 도시에서 건축학적으로 가장 중요한 건물이며,

바실리카 양식의 그리스도교 교회당의 기원과 발달을 연구하는 데 상당히 중요하다.

지붕이 있는 이 건물은 상품거래와 재판의 장소로 사용되었다.

 

서쪽으로는 폼페이의 수호신인 베누스 폼페이아나의 신전이 있다.

바실리카 옆에 있는 아폴론 신전은 이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에 속한다.

이곳의 하층토 발굴은 그리스와 에트루리아의 영향을 받았다는 증거를 보여준다.

삼각 포룸은 폼페이에서 가장 오래된 신전인 도리아 양식의 신전이 있는 곳이다.

 

 삼각 포룸 동쪽에 있는 극장·체육훈련장·소극장은 BC 3~1세기에 세워졌다.

제우스 메일리키오스 신전, 이시스 신전, 삼니움족의 옛 체육훈련장이 근처에 있다.

폼페이의 동쪽 가장자리에 있는 원형투기장은

지금까지 알려진 원형투기장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로마 식민지가 폼페이에 건설된 후에 세워졌다.

 

서쪽에는 커다란 체육훈련장이 세워져서 삼니움족의 옛 체육훈련장 대신 사용되었다.

로마 시대 이전부터 있었던 스타비아 욕장, 포룸 욕장,

화산폭발 당시 공사가 진행중이었던 중앙욕장,

 호화스런 개인 주택들의 욕장 등 도시 전역에 욕장이 산재해 있다.


 

 

그러나 공공 건물들은

다른 지역에서도 발굴되었던 것이기 때문에 수백 채의 민간 주택들이 더 중요시되고 있다.

특히 이 민간 주택들이 독보적인 이유는

적어도 400년에 걸친 가정용 주택건축의 역사를 추적하는 일이 오직 폼페이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가장 초기 주택들은 제1차 삼니움 점령기(BC 4~3세기)에 세워졌다.

 

특히 '외과의사의 집'은 이 기간 동안 세워진 초기 아트리움(중정) 주택의 예로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가장 호화로운 주택들은 교역과 문화적 접촉의 증대로

세련된 헬레니즘 문화가 유입되었던 제2차 삼니움 점령기(BC 200~80)에 지어졌다.

구역의 한 가구 전부를 차지하는 파우노의 집에는 2개의 아트리움과 4개의 트리클리니아(식당),

그리고 열주로 둘러싸인 2개의 큰 안뜰이 있다.

 이 집의 정면은 당시의 주요건축자재인 곱게 간 누케리아산 회색 석회화(石灰華)로 되어 있다.

 벽은 폼페이 제1양식(구조적 양식이라고도 함)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이는 회반죽에 채색을 하여 대리석으로 겉치장한 효과를 노린 것이다.

 

이 집에서 발견된 유명한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모자이크는

분실된 그리스의 그림을 본떠서 그린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의 많은 주택들은 정교한 모자이크 바닥으로 장식되었다.

높은 기둥으로 받친 으리으리한 아트리움이 있는

은혼식의 집도 이 시기에 지어졌으나 後日 개조되었다.

 

멋있는 연회장과 자녀들의 교실로 사용되었던 엑세드라(벽감)

BC 80~AD 14년에 유행했던 폼페이 제2양식(건축적 양식이라고도 함)으로 장식되었다.

삼니움 시대 동안 많은 주택이 건설되었기 때문에

로마 시대에는 그렇게 많은 집을 지을 필요가 없었다.

이 시기에 지은 집들은 대체로 낮은 아트리움을 갖는 등 규모는 더 작았으나 장식은 보다 정교했다.

로마 제국시대에 지은 루크레티우스 프론토의 집은 자그마하지만 우아한 주택이다

. 타블리눔(응접실)은 BC 15~AD 62년경에 흔하던

섬세한 폼페이 제3양식(장식적 양식이라고도 함)으로 장식되어 있다.

베티 저택은 로마 시대에 번영을 누렸던 상인 계층의 전형적인 주택으로

몇몇 방은 폼페이 제4양식(환상적 양식이라고도 함)으로 꾸며져 있다.

분수와 청동·대리석 조각들이 있는 아름다운 정원, 훌륭한 그림들,

우아한 가구가 있는 아트리움-열주식 집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전형적인 형태가 아니다.

 도시 전역에는 수많은 작은 주택들도 있으며, 그가운데 많은 것이 상점이다.

발굴자들은 고대생활의 모든 면을 가능한 한 완벽하게 보존하고 있다.

서민의 집들도 부유층의 집들만큼이나 귀중한 자료이다.

지붕·2층·발코니 등이 현재 복원되어 있다.

 

 

 

Roman theatre in ancient Pompei.



폼페이'는 이탈리아 캄파니아 지방에 있는 고대도시'로 이태리 남부에 위치

Pompei is a city and comune in the province of Naples in Campania


southern Italy


반가워요. 자주놀러올께요.s
반갑습니다. 전장이님!
고운 일요일이 되여지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