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경제/사상과 성찰

cahiergris 2013. 12. 24. 01:13

전세계 어느 나라건 공통의 과제는 사회불평등해소와 사회통합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통합이라는 것은 단지 일부 사회정책을 통해 되는 것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일상의 삶이 공동으로 조직되는 것을 경험하며 살아감으로써 공적인 것에 대한 개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어 그러한 사회를 만드는 국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누가 네게 급여를 주는지 말해주면 니가 누군지 말해줄게"라는 프랑스 속담이 있다. 그만큼 어떤 돈으로 자신의 삶을 유지하는가 하는 문제는 어떤 삶을 사는가 하는 문제와 맞닿아있다. 우리사회의 많은 이들이 공개념이 부족한 이유 중 하나는 특히 자신의 생계와 생활을 정부, 혹은 지역사회공동체를 통해 해결한 경험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부모가 뼈빠지게 일해서 어마무시한 금액의 등록금을 내고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 취업한 후 사회를 위해 살고자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될까? 누가 고생해서 한 공분데 그 성과를 사회에 줄려고 하겠는가? 부모님 고생 그만하게 돈많이 벌어드리고, 나는 부모님처럼 고생하며 살지 않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반대로 내 학비를 나라가 대고, 내 연구비를 나라가 대고, 내 아이와 늙은 부모님의 돌봄을 지역사회가 함께 책임져주는 삶을 산 사람은 공부의 결과를 사회에 주고, 연구의 목적이 사회를 더 윤택하게 하는 데 쓰이도록 살게 될 가능성이 많다. 지금의 내가 이런 부분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연구하고 사람을 양성하게 된 건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내가 외국에서 공부할 때 내게 먹을 거 보내주고 없는 돈 쪼개서 후원금을 준 많은 지역사회활동가들이 있었고, 연구과제를 주었던 선배연구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를 이렇게 살도록 만든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나라는 내게 아무 것도 해주지 않았다.

교통, 의료, 교육, 돌봄, 먹거리 등 이 모든 영역이 어떤 방식으로 조달되는가는 어떤 국민을 만들것인가의 문제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사회복지정책이 된다. 그런면에서 지금 사회문제가 되는 철도민영화에 대한 논의는 보다 확장될 필요가 있다. 지하철에 노약자들을 위한 좌석을 배려해줌으로써 사회가 그들을 배려하는 것을 보여주어 사람들이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습관을 자연스럽게 가지게 되듯, 교통낙후지역에 교통서비스를 제공하여 사람이 섞이게 하고, 서로 왕래하게 하여 각기 다른 삶을 보고 배울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런 분야는 수도없이 많다. 돈이 급한 사람들 은행에서 대출받을 수 없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결혼반지 저당잡히고, 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는 물건을 저당잡혀 급전을 구하는 사람이 허다하다. 그 이유는 단지 지금 당장 먹을게 없어서, 혹은 월세를 못내서, 또는 병원비가 없어서이다. 우리나라에서 이 영역은 다 민간전당포가 담당해 서민의 삶을 더 궁핍하게 만들고 비참하게 만든다. 왜 시립은행을 만들지 못하는가? 거기서 저리로 저당잡아주고, 돈을 갚지 못하는 이들의 물건은 공정한 경매에 붙여 팔아 채무를 상환하게 해주며 지자체 수입도 확보할 수 있다.

복지정책하는데 돈이 없다고? 모든 지자체나 관공서는 이윤추구가 목적인 사기업 은행에 자리를 내주고 있지 않은가? 시립은행을 만들거나 협동조합은행에 그 자리를 내준다면 그 돈이 다 지역사회나 나라살림에 돌아갈 것 아닌가? 또한 모든 기차역과 지하철 및 버스터미널에는 민간기업의 프랜차이즈와 유통업체가 들어와 있다. 한마디로 일반업자처럼 임대수입만 노리는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완주에서 하듯 로컬푸드 매장을 내고, 로컬푸드 식당을 내어 장을 보고 밥을 사먹게 한다면 우리 농민들, 우리 먹거리를 지키는 데 얼마나 큰 힘이 될까! 거기에 건강한 협동조합과 사회적조직의 매장을 내고 거래를 하도록 만들어주면 사회적기업이든, 마을기업이든 정부지원 다 필요없을 것이다.

큰 경제는 시장논리를 따르면서 무슨 사회적기업육성정책이니 마을기업이니, 사회적경제활성화니 무슨 큰 성과를 보겠는가? 공기업도 사기업 출신들에게 다 맡기고, 효율을 위해 경쟁에 붙인다며 실제 사유화나 하면서 무슨 사회통합을 실현하겠다는건가? 그리고 왜 이윤의 사유화를 효율성이라 호도하는가?

진정한 공기업이 되려면, 공유기업이 되어 국민의 발이 되려면, 이용자대표, 일하는 노동자대표, 경영자대표 등 각 이해당사자가 경영에 참여하여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그야말로 공적인, 공동의 소유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지배구조의 변화없는 공기업은 국민세금 축내고 나라살림 거덜내는 기업가들의 먹이가 될 뿐이다. 김상봉 교수님이 그러지 않았는가? 기업이 폴리스가 되지 말란 법이 없다고.

한국에는 제대로된 공적인 조직도, 제3섹터 조직에 관한 법도 없고 다 사기업에 준해있다. 그래서 사학재단비리가 터져나오고 복지마피아가 날뛰게 되는 것이다. 사회가 다 이익을 좇아가게 설계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데 누가 이웃을 걱정하고, 사회를 위해 사는 사람이 될 생각을 할까? 어찌 사회통합이 되고 사회복지가 실현될 수 있을까?

반대를 넘어, 저항을 넘어 건설이 필요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