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경제/사상과 성찰

cahiergris 2014. 1. 2. 07:51
' 노예의 사슬을 끊는다고 노예제도가 폐지되지는 않는다'

사회도 기업, 마을도 기업, 우리사회는 기업가 모델이 일반화되고 있다. 공유지가 다 기업의 논리를 강요받는다.
모두가 기업가가 된다면 우리는 어떤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인가? 그렇게되면 우리는 우리의 존재(생활)를 기업 운영 모델에 기초해서 운영하게 될 것이다. 스스로를 일종의 운용해야 할 자본으로 간주하며 우리의 모든 활동과 정서 또한 투자대비 최대한의 수익을 내기 위해 합리적으로 경영하려고 할 것이다.

어찌보면 사회적기업가정신은 슘페터의 사고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 기업가는 모험가” 즉, 열정과 혁신의 삶을 사는 모험가라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기업가모델의 ...일반화는 임금노동자(피고용인)를 열정적인 혁신가로 바꾸고자 하는 전망으로 아주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

모든 이들이 다 기업가가될 수 있는가? 임금노동모델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이는 어쩌면 함께하기(협동)를 활성화하기 위하여 위계를 무너뜨리고자 하는 담론인데 이는 허상일 뿐이며 지배는 항상 존재한다. 대부분의 경우 협동은 외형적인 협동일 뿐, 각자는 나름의 협동방식이 있지만 어느 누구도 진정으로 협동하지 않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는데 이는 기업공동체의 안정성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상 부정적 권력과 부정적 협동이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외견상 협동네트웍을 보면 본질은 이익을 챙기고 어떤 금전적 손실도 보지 않으려한다. 즉, 협동하는 척하면서 결국 각자는 자신의 입장에서 자신의 이익만 챙기려 노력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 모든 용어, 담론은 기업리더의 담론일 뿐이다.

새로운 경제, 기업가모델의 일반화, 세계화에 필요한 적응 등과 관련한 담론에서 전체주의적 경향이 보인다.

이 모델은 노동자에게 단지 그들의 능력이나 그들 시간의 일부를 요구할 뿐 아니라 자신의 전부를 바치기를 원한다. 그런데 삶과 노동, 공과 사, 노동과 여가의 구분을 없애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 전체주의는 이 구분을 없애는 데서 기인하지 않는가? 이러한 담론은 극단적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복무할 수 있으며, 매력적으로 보이는 외향 뒤에 이것을 감추는 데 이용될 수 있다. 그런데 알고보면 많은 경우 이는 일회용노동자(비정규직) 사회를 구축하려는 계획의 도구가 되고 있으며, 한걸음 더 나아가 일회용, 취약한 고용주와 리더를 만들려는 계획이 될 수 있다.

지금 누가 이 영역의 담론을 주도하고 정책을 만드는 지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