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의 기억

cahiergris 2017. 1. 11. 08:32

눈을 뜨자마자 이끌리듯 자리에 앉았다. 써야 한다는 의무감보다는 쓰도록 이끌렸다는 표현이 더 맞는 듯하다. 

그것은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 아니 기억이다. 공동체의 복원, 공동체의 해체, 마을공동체 등 많은 이들이 공동체를 말하지만 그것을 무어라 정의내리기는 어려운 것이라 생각된다. 나 또한 그걸 사회과학적 개념으로 표현할 재간은 없다. 대신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게는 떠오르는 한 폭, 두 폭의 그림이 있다. 아니, 이어지고 움직이는 장면이며 풍경이다. 너무나 또렷하게 남아 있어서 지금도 얘기하라면 줄줄 쏟아져나올 정도이다.

그 공동체의 기억을 쓰는 이유는 행복한 어린날을 추억하고자 하는 멜랑꼴리한 정서때문은 아닌것 같다. 그것은 말로도 글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공동체라는 것의 '원형(原形, prototype, archétype)'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어차피 공동체라는 것은 삶의 터전에서 역사를 통해 형성되는 것이니 원형은 모델일 수 없을 것이고 추상화할 수 없을 것이다.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딱 떠오르는 심상(心像).

그 시기는 대략 4살~7살 학교 들어가기 전까지로 기억된다. 부산시 금정구 장전1동으로 이사오고나서부터의 기억인데 아마 그 이전은 너무 어려서 또렷이 기억나지 않기도 하고, 공동체와 관련이 없는 유아의 흐릿한 기억이기에 패쓰. 그것을 떠오르는대로 기록해보려고 한다. 그것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는 나중에 생각해보리라.

 

1. 홍수

 

노아의 방주를 들을 때마다 내겐 어릴 적 계단 꼭대기에서 구경한 홍수의 물살이 겹쳐진다. 동네에서 거의 유일한 양옥집이었던 우리집은 구조가 특이했다. 한때 당구장을 하던 건물이어서 그런지 폐쇄된 공간 안에 흙마당이 아니지만 마당이 있었고, 그 한켠에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다. 홍수가 나면 나는 그 계단의 꼭대기에 올라가 문밖의 세상을 구경하곤했다. 문이라는게 요즘엔 시골 점방에서나 볼 수 있는 나무틀의 유리문인데, 아래쪽은 셀로판지로 덮혀있으니 윗부분에 난 틈으로 밖이 보였다.

그 신기한 장면이란!!! 흙색의 뿌연 물살이 세차게 흘러갔는데 그게 마치 통삼겹살마냥 뭉턱했다. 그 위로 무색 다라이, 나무 판자, 개새끼 등이 딸려 둥둥 떠내려갔고 때로는 돼지가 보이기도 했다. 우리집은 고지대도 아니지만 멀쩡할 수 있었던 건 그 홍수길이 동네 한가운데를 흐르던 도랑물이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 초반이고 금정산 바로 아랫동네여서 그런지 동네 한가운데는 또랑이 흘렀는데 그게 움푹 파인 것이라 동네 아줌마들은 빨래하고 아이들은 물놀이하거나 겨울에 꽁꽁 얼면 스케이트를 타며 놀던 곳이다. 우리집 외 대부분이 쓰레트나 기와집, 또는 물결모양의 플라스틱 지붕으로 얼기설기 짜여진 집들이 대부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때 살림살이가 다 떠내려간 집들은 동네에서도 더 가난한 집들로서 쑥 내려간 도랑 옆에 자리잡은 작고 엉성한 집들이었던 것이다. 집들이 낮아 길옆에 바로 지붕이 있으니 한번은 그 지붕위로 걸어가다가 지붕이 푹 꺼지면서 남의 집 부엌에 떨어진 적도 있었다(ㅋㅋ) 

여튼 그렇게 대홍수가 나면 그들의 고통을 알 수 없었던 어린 나이로서 나는 마냥 좋은 구경거리로만 생각되었고 신기할 따름이었다. 세상이 다 둥둥 떠내려가는데 우리집만 멀쩡해서 구경할 수 있는 그 재미란! 헌데 한차례 그렇게 쓸려 내려가는 와중에 동네 사람들은 우리집으로 피난을 왔다. 당구장을 했던 실내여서 넓은 공간이 있었던지라 사람들은 이불을 챙겨 피난와서 당구다이에서 잠을 청하며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우리 아버지가 동장이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우리집이 크고 안전해서 그랬는지 나는 이유는 알 수 없다. 다만 내겐 홍수가 나면 내겐 재밌는 구경거리가 생기고 도랑 옆 동네 사람들은 피난을 와서 마치 우리집이 뭔가 떠내려가는 세상의 구원자가 된 듯한 뿌듯함을 느꼈던 것 같다. 

이후 그 도랑은 건설붐이 일면서 시멘트로 덮여지고 길이 되었으나 그 밑으론 여전히 물이 흘렀다. 온전한 길이 아니어서 중간 중간 갑자기 뚝 끊기기도 해서 애들이 놀다가 떨어지기도 했지만 어쨋든 그 이후론 홍수를 구경할 수 없게 되었다. 덩달아 떠내려가던 다라이도, 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