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의 기억

cahiergris 2017. 1. 12. 09:07

재구아줌마는 동네서 키가 젤 큰 아줌마였다.

아들래미 이름이 재구여서 그렇게 불렸겠지만 그 아들을 본 적은 없었다. 큰 키때문인지 늘 구부정하게 걸었고  배우 신구씨같은 얼굴에 늘 여유가 넘치던 자태, 여유있는 말투가 인상적이었다. 아줌마들끼리 모여 화투를 칠 때도 그 아줌마는 한 번도 애달아하거나 화를 내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늘 느긋하게 패를 던지는 포스가 범인들이 이르지 못한 어떤 경지에 이른 것 같은 강렬한 인상을 남긴 분이다. 울아버지가 동장이었기 때문인지, 아님 엄마 친구여서 그런지 나는 동네 어른들을 다 알고 있었고, 온 종일 싸돌아다니면 애 어른 할 것없이 다 인사하며 새끼동장 노릇을 하고 다녔었다. 어느날도 그렇게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그  아줌마가 불러서 떡을 주었던 기억도 난다. 

그런데 어느날 그 아줌마가 야반도주를 했던 것이다. 아줌마들의 비공식은행이었던 계모임이 여러개였는데 그 아줌마가 곗돈은 들고 날랐던 것이다. 동네는 그야말로 개판이 되었고 쌈짓돈은 잃은 아줌마들은 모일 때마다 그 사람이 그럴 줄 몰랐다느니, 자기들한테 말은 안했지만 집안이 어려웠다느니 하며 야반도주한 원인을 두고 설왕설래하다가 뜸해졌다. 그 일이 있고 나서도 우리 엄마를 비롯한 아줌마들은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다른 계를 또 꾸려서 다달이 곗돈을 부으며 일욜 낮에 함께 모여 점심을 먹고 화투를 치며 히히덕거렸던 기억이 난다.


그러던 어느날 재구아줌마가 동네에 다시 나타났다. 오잉! 여전히 구부정하고 느긋한 자태로.

나는 실로 궁금하였다. 아줌마들의 반격이 어떻게 이루어질지. 근데 어느날 그 아줌마는 예전처럼 동네 아줌마들과 어울려 태연하게 화투를 치고 있었던 것이다. 이거슨 대체 뭔 조화래? 엄마한테 빚청산이 어찌 되었는지 물어봤는데 돈이 없어 못갚았다고 했다. 그런데도 재구아줌마는 다시 우리 동네로 돌아왔고 아줌마들과 다시 어울려 놀고 있었다.


재구아줌마는 왜 다시 돌아왔을까? 또 동네 아줌마들은 떼인 돈을 받지 못했으면서도 왜 재구아줌마랑 전처럼 같이 화투치며 놀았던 것일까? 어린 나였지만 권선징악과 정의의 관점에서 사고한 나는 도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근데 지금은 좀 알 것 같다. 얼마나 어려웠으면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을 줄 알면서도 돈 떼먹고 도망갔을까. 그 돈 가지고 잘 살아보겠다고 토낀게 아니라 감당 안되는 빚 갚으려고 그랬던 거고, 그러니 돈 갖고 토끼고 나서도 뭐 그리 잘 살았겠는가? 빚이야 갚았겠지만 그 나이에, 그 아줌마가 어디서 뭘해서 먹고살며 또 낯선 곳에서 친구도 없이 얼마나 외로웠겠는가? 그 맘을. 그 사정을 동네 아줌마들은 묻지 않아도 알았을 것이며, 그런 일은 자신들에게도 , 누구나에게도 닥칠 수 있다는 걸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하니 분하고 억울한 마음은 있어도 재구아줌마를 내친다고 없어진 돈이 다시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법에 호소한다고 될 일도 아니고, 어떤 식으로든 회복할 뾰족한 방도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럴 수 있음을, 자신들에게도 생길 수 있는 일임을, 그랬을 때 갈 데가 없음을, 그러할 때 돌아오고 싶을 것이라는 걸, 돌아왔을 때 덮어주고 받아주기를 바라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미우니 고우니 잘했니 못했니 그런 정의의 갈날을 휘두르기엔 다들 뾰족한 수가 없는 사람들이라는 걸 알기에. 그것보다는 오늘 하루 고단한 삶을 견딜 수 있는 내 친구가 동네에 있는 것이 살아가는 데 더 중요한 자산임을 아줌마들은 알고 있었던 것 아닐까? 그렇게 살다가 늙어죽는게 인생이란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