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경제/사상과 성찰

cahiergris 2012. 9. 3. 21:13


신자유주의라는 이념아닌 이념이 지배한 지 30여년. 그 폐해가 극에 달하는 요즈음, 시장논리의 지배는 단지 경제영역에 머물지 않는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에 모든 죄목을 붙이는 것 또한 경계해야 할 일이다. 이러한 태도는 마치 이전의 자본주의는 그나마 수용가능한 체제라고 여겨 현재 시도되는 많은 사회운동을 건강한 자본주의의 회복이 목표인듯 잘못 이끌게 된다. 

이러한 인식이 그르지 않음은 현재 한국사회에서 공론화되고 있는 사회적경제에 대한 논의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사회적경제가 단지 정치권이나 제도권에서 뿐 아니라, 심지어 시민사회에서도 시장의 폐해를 논하면서도 사회적경제가 주는 '이익'만을 다룬다. 기업이 못하는 일자리 창출이나 부족한 국가의 대리를 위한 복지서비스 제공, 거기다 사회가 버리는 사람들을 보듬어 안는다는 자선과 시혜의 논리로 호소하면서 마을공동체를 회복한다는 명분으로 모든 주민의 건강한 만남의 장을 다 기업으로 만드는 정책을 펴는 제도에 동참한다. 


애초에 인간의 활동은 사회적인것, 경제적인 것, 문화적인 것으로 분리되지 않고 생활에 노동과 문화가 있었고, 그 것으로 먹고살았다. 이렇듯 사람을 중심에 두고 살림의 관점에서 경제를 보자는 것이 사회적경제의 기본이 아닌가? 그리고 그 활동의 목적은 사람과 사람간의 만남, 즉 관계가 강화되는 사회를 만들어 그 안에서 개인의 자유가 확장되고자 하는 전망을 가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모든 시도와 노력을 '기업화'하는 것은 어쩌면 폴라니가 말한 '시장사회'를 가속화하는 길일지도 모른다. 어찌 인간의 모든 자발적 활동과 만남, 그를 통한 결사로 만들어지는 공동체를 기업의 틀에 가두려 하는가? 단언컨대 사회적경제든, 연대의 경제든 민중경제든 어떤 것도 결사를 통한 공동체를 기업으로 축소시키려 하지 않았다. 협동조합도 사업체라는 것을 가지는 결사체이지 시장의 단위인 기업이 아니다. 그 것은 협동조합이 시장에 제한되지 않고 삶의 모든 영역에 존재한다는 뜻이다. 

누구는 아담스미스가 지금의 신자유주의 체제의 자본주의를 보면 놀랄거라 하는데 정말 그럴까?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마술이 이토록 잘 실현되는 꼴을 보고, 내가 왜 더 오래 살았더라면 하지 않았을까? 신자유주의란 이전부터 사상으로 존재해 온 자유주의가 온전히 실현되는 것에 다름아니다. 사람을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목적이며 서로 무관심한 존재로 보는 공리주의는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으며, 그 것에 기반한 제도가 자본주의이다. 

하지만 신자유주의는 분명 이전의 자유주의에서 더 발전된 것이 있다. 아니 발전이라기보다는 더 첨예화된 것, 그것은 '무한한 팽창'과 무절제를 실현하기 위해 보다 체계적으로 사람을 소외하고 배제시킨다. 그래서 산업혁명 후 초기 자본주의가 형성되던 시기 야만적인 착취와 탄압이 있었듯, 지금 한계에 이른 자본주의 모델은 초기를 연상시키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묻지마 범죄, 아동성범죄 등을 연일 방송하며, 판사들이 모여 의논해서 느슨하게 대응하지 않겠다는 대책을 발표하는 것을 부각하는 지금의 행태는 결국 사회불평등과 사회적배제,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버리고 상품화한 결과로 발생하는 사회적 문제인데, 치안의 문제로 호도하는 것이다. 그래서 불심검문을 하고 치안을 강화하며 통제와 감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만들 것이다. 그러나 나와 내 가족이 안심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만을 가지는 사람들이 모인 사회에서 어찌 자유로운 사람들의 결사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 

다시 말하지만 요즘 자주 등장하는 사회면의 범죄는 사회의 위기의 징후이지 치안부재나 못믿을 이웃의 문제가 본질이 아니다. 사람을 상품으로 보는 풍토, 노동을 통해 살아갈 수 없는 현실의 아픔을 달래주는 환각제의 만연, 주고 받고 되돌려 줄 이웃과 사회적 관계가 없는 파편화된 개인, 삶의 뿌리가 뽑히고 생존의 기반이 무너진 많은 이들의 모습이 드러나는 과정이다. 신자유주의는 이렇게 드러나고 그 대책은 경찰과 판사, 검사로 이루어진 감시와 통제 시스템의 강화로 이어져 우리의 삶을 그들의 손에 위탁하게 만들 것이다. 

19세기 초 야만적인 자본주의에 대응하기 위하여 유럽에서 사회적경제가 등장하고 노동자결사체 운동이 일어났고, 조금 뒤 한국에서 동학 결사체가 형성되었듯, 지금 우리에겐 새로운 결사운동이 필요하다. 자유로운 사람이라면 우리의 삶을 우리 스스로 지켜야 하지 않을까?
시스템의 반성없는 현재의 문제해결방법에는 분명 한계가 있는데... 분명 모두가 행복해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바꾸어나가야할 것들이 있는데... 말이죠... 새로운 결사운동이 뭘까요?
제가 생각하는 새로운 결사운동은 그야말로 개인의 자발적인 결사에 기초한 조직을 만들어 사회변혁 뿐 아니라 살림살이도 돌보는 포괄적인 운동입니다. 그리고 그 결사체 구성원들은 집단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지만 자신의 성찰로부터 사회변혁을 모색하는 주체적인 사람으로서 존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