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遊

自遊人 2013. 3. 1. 12:47

 

 

살다보면 뜻밖에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되고

본의 아니게 실수를 범하기도 한다.

평소엔 늘 성실한 삶을 살다가도

유혹에 빠져 큰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인간은 그래서 나약한 갈대와 같기도 하지만

동시에 생각하는 강인한 이성을 지니고 있기에

오늘날까지 인류사에 거대한 문명의 업적을 쌓아 올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문명의 이기는 자연을 거스르는 일에 앞장 서 오기도 하면서

신성한 지구와 자연 만물 앞에 악행을 저지르는 악동의 기능을 감행해 오고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는 물론

사람과 자연 앞에서 다시금 인간은

망령된 행실을 끊고

피차 경외심을 가지고 서로를 대해야 할 것이다.

 

궤도를 이탈한 기차는 탈선하여 전복되기 마련이고

정도를 벗어난 인간 행위는 반드시 재앙을 맞이하기 마련이다.

뜻밖의 재난이나 일시적인 실수로 고난이 따르더라도

하늘과 자연의 법칙에 따라 정도를 걸을 때

반드시 형통하는 복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 본 ‘무망(無妄)'괘의 교훈이다.

 

위로는 하늘을 뜻하는 건(乾, ☰)괘요

아래는 우레를 뜻하는 진(震)괘로서 천뢰무망(天雷無妄)괘라 한다.

하늘은 강건한데 우레는 역동적이다.

맑은 하늘에 벼락이 치는 청천벽력(晴天霹靂)의 상황이니

시국을 잘 판단해야 한다.

 

텅 빈 하늘에 우레가 진동하여

천지 사방으로 만물을 진동시키니

사람의 마음도 흥분하여 크게 인위적인 작태를 벌인다.

그러나 그럴수록 모름지기 정도를 걸어야 한다.

그래서 괘명(卦名)을 '무망(無妄)'이라 했다.

 

[서괘전, 序卦傳]에서 "다시 돌아오니 망령되지 말아야 한다(復則無妄).

그러므로 무망(無妄)이다."라고 했다.

"다시 돌아오는 것(復)"은 앞선 '복(復)'괘를 뜻한다.

겨우내 얼어붙었다가 해빙기를 맞이한 봄날이 돌아오는 것과 같다.

다시 돌아왔으니 망령됨이 없을 것이고, 또 그래야 한다.

 

다시 돌아옴은 자연의 현상이요 규칙이다.

그러므로 '복'괘에 이어 '무망'괘가 이어지는 것이 자연스럽다.

망령되다(妄)는 것은 규칙도 없이 어지럽게 행동한다는 뜻이다.

이는 상대방이나 사물에 대해 어떤 존경심도 없이 제멋대로 하는 행위다.

정치적으로 말하면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요

환경적으로 말하자면 생태계를 파괴하는 행위다.

 

중국어에서 정상적인 행위(常態)를 위반하는 행동(非常態)을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혼란스러운 상태'로서의 '병태(病態)'

'기복이 심한 상태'로서의 '실태(失態)'

'정상적인 행위를 벗어난 상태'로서의 '변태(變態)'

'거짓 행위'로서의 '작태(作態)'다.

 

이상의 어느 행동도 정상적인 행위가 아니므로 망령되다고 볼 수 있다.

구약성서에서 가장 중요시 되는 계명인 십계명에서도

"하느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는 계명이 있다.

'신(神)'을 망령되이 부른다는 것은

유교적 전통에서 볼 때, '하늘(天)'을 무시하고 경거망동하게 산다는 뜻이요,

노자의 개념으로 볼 때, 도(道)나 자연(自然)을 거스르는 행위다.

 

특히 노자가 “만물이 무성히 자라지만, 각기 그 뿌리로 돌아간다(各復歸其根).

뿌리로 돌아가는 것을 고요함이라 하고, 고요함을 일러 명을 회복하는 것(復命)이라 한다.

명을 회복하는 것을 영원함(復命曰常)이라 하고, 영원함을 아는 것이 현명하다(知常曰明).

영원을 모르는 자는(不知常), 망령된 행실을 한다(妄作凶)"고 했던 말과도 상통하는 이치다.

 

괘사를 보면, "형통하고 이로운 점이다(元, 亨, 利, 貞).

정도를 걷지 않으면 재앙이 있다.

가는 바가 있으면 이롭지 않다."고 했다.

이는 정해진 규율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이롭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다가는 재앙이 따른다는 것을 경고하는 것이다.

 

효사를 살펴보자.

초구(初九)는 "망령된 행동을 하지 않고 가면 길하다(無妄, 往吉)."고 했다.

육이(六二)는 "밭을 갈지 않아도 수확하며(不耕穫), 개간하지 않아도 밭을 얻는다(不葘畲).

나아가는 바가 있으면 이롭다"라고 했다.

밭을 갈지 않아도 수확하는 경우나 개간하지 않고도 밭을 얻는 경우는

그간의 노력의 결실로 얻는 대가다.

그러니 "나아가는바"가 이로우니 더욱 정진하라는 뜻이다.

 

육삼(六三)은 망령된 행위를 하지 않는데도 얻게 되는 재앙의 경우다(無妄之災).

"소를 매어 두었는데(或系之牛), 지나가던 사람이 잡아 가버려서(行人之得)

고을 사람이 피해를 본다(邑人之災)."는 식이다.

이는 뜻밖에 재난을 당하는 경우를 두고 한 말이다.

우연한 사건이 필연적인 귀결을 당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대개 모든 일이 우연하게 벌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할지라도

그 이면에 숨겨진 필연성이 작용하는 것을 우리는 간과할 때가 많다.

비록 뜻 밖에 재난을 당한다고 하지만

도리어 자신의 결함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로 삼는 것이 유익할 수도 있다.

예컨대 그곳에 소를 매어두지 않았다면 그러한 화를 당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구사(九四)는 "정도를 지키면 허물이 없다(可貞無咎)."고 했다.

이는 정도를 능히 지킬 수 있으면 재난을 당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연히 만나게 되는 역경의 와중에서도

정도를 지속적으로 지킴으로써 위기를 극복하게 되는 경우다.

 

구오(九五)는 "망령된 행위를 하지 않았는데도 얻게 되는 질병의 경우(無妄之疾)"다.

"약을 사용하지 않아도, 곧 치유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勿藥有喜)."

성인(聖人)이 아닌 바에야 누구든지 오류를 범할 수 있지만

오류를 범하지 않았는데도 갑작스런 병이 닥쳐 올 수 있다.

하지만 근본 동기에 망령됨이 없었기에 굳이 약을 써야 할 이유도 없다.

 

구오(九五)는 군왕의 자리에 해당한다.

최고의 영도자로서의 존엄한 자리다.

기업으로서는 사장의 자리요 학교로서는 교장의 위치다.

덕과 재능을 겸비해야 한다.

하지만 실수를 범할 수도 있는 것이 사람이다.

문제는 어떤 경우라도 반성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스스로 반성의 기회로 삼으니 약을 쓸 필요가 없는 법.

이를 두고 '물약유희(勿藥有喜)라 했다.

우연히 병을 얻는다 해도

고귀한 인품과 덕행으로 필연적인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상구(上九)는 "망령되이 행해서는 안 된다(無妄).

나아가면 재앙이 있어(行有眚) 이로울 바가 없다."고 했다.

숲속에 들어가면 앞이 잘 보이지 않아서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을 찾지 못하는 경우와 같다.

멈춤의 미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초구에서 '무망'이라하면서도 '나아가면 이롭다'고 했는데

상구에서는 '무망'이라 하고서 '나아가면 이롭지 못하다'고 했다.

이는 초구와 상구의 위치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초구의 경우는 일의 시작 단계이므로 나아감이 이롭지만

상구의 경우는 일의 마지막 단계이므로 나아가는 것이 이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나아가야 할 때와 머물러야 할 때를 아는 지혜가 그래서 필요하다.

 

불교의 참선에서 멈추거나 가거나 모든 행동이 명상이라 했듯이

나아가야 할 때 나아가고, 머물러야 할 때 머무르는 지혜

그것이 유가에서 말하는 시중(時中)이요

예수가 말하는 치우침 없는 삶이다.

사람과 자연 앞에 경거망동한 행실을 끊고 정도로 돌아가는 길

그 길은 마치 눈발이 휘날리는 하얀 대지를 헤쳐 가는 "삼포로 가는 길"인지도 모른다.

 

2013 03 01

여전허시지유?..^*^
아우님이랑 탁배기 한사발 해야쓴ᆢ
잘지내시제?^^